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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새로운 출발

남자에서 여자로, 트랜스젠더 이시연 인터뷰

글·김수정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성종윤‘프리랜서’ || ■ 장소협찬·플라스틱(02-3446-4646)

2008. 03. 21

2002년 영화 ‘색즉시공’에서는 남자 대학생으로 출연했다가 얼마 전 개봉한 ‘색즉시공2’에서는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하고 트랜스젠더로 등장해 화제를 모은 이대학. 한동안 매스컴을 피해 꽁꽁 숨어다니던 그가 ‘여자’ 이시연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풀스토리를 들려줬다.

남자에서 여자로, 트랜스젠더 이시연 인터뷰

트랜스젠더라는 말이 낯설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에게 트랜스젠더의 존재는 여전히 낯설다. 따가운 눈총 일색이던 예전과 달리 이해와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들에게는 “언제, 왜 트랜스젠더가 되기로 결심했냐”는 질문이 꼭 따라다닌다.
“글쎄요…. 어쩌면 트랜스젠더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성을 거부해왔는지도 몰라요. 저 역시도 끊임없이 ‘나는 남자다’라고 외치면서 그럼 마음을 숨겨왔지만 소용이 없었거든요. 얼굴이 알려진 상태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기까지 많은 고민이 뒤따랐지만 정말 사람답게 살고 싶어 실행에 옮겼고요.”
‘여성복을 소화하는 남자 패션모델’로 활동하면서 연예계에 데뷔한 이시연(29·본명 이대학). 그는 그간 영화 ‘색즉시공’ ‘두사부일체’ 등에서 ‘여자 같은 남학생’ 역을 맡아 이목을 끌었다. 그런 그가 또다시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건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색즉시공2’에 실제 성전환 수술을 받고 트랜스젠더 역으로 출연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 당시 사람들은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했지만 그는 영화 개봉 후 일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몇 차례 설득 끝에 지난 1월 말 그를 만났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수줍은 미소를 띤 그는 누가 봐도 여자였다. 하지만 악수를 청하는 기자의 손을 망설이다가 잡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불안해 보였다.
“‘색즉시공2’ 개봉을 앞두고 갑자기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당황했어요. ‘성전환한 사실을 영화 홍보를 위해 알렸다’는 오해를 받아 속상했고요. 저에 대한 기사와 악성 댓글을 읽으니 도저히 세상 밖에 나갈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숨어 지냈죠. 트랜스젠더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지난해 봄 성전환 수술을 받은 그는 사실 ‘색즉시공2’에 출연하기 전 많이 망설였다고 한다. 극중 배역이 온전한 여자가 아닌 실제 자신의 상황과 같은 트랜스젠더 역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 것. 하지만 누구보다도 영화 속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그는 완쾌되지 않은 몸이었지만 출연을 결심했다. 당시 이시연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줄 모르고 캐스팅한 제작진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미안해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함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이 좋은 시선으로 봐줬어요. 특히 신이언니와 (유)채영언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너는 내 동생이야’ 하면서 용기를 줬죠. 그렇게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늘 때마다 힘이 나요.”

“사춘기 시절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지만 누구에게도 고민 털어놓지 못했어요”
“어릴 때부터 인형놀이를 좋아했다”는 그가 처음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심한 건 중학생 때. 친구들은 여학생에게 호기심을 가졌지만 그는 여학생들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오히려 예쁜 얼굴 덕분에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당시 그는 “여학생 앞에 잘 서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성복보다 여성복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고, 변성기마저 오지 않아 가느다란 목소리가 나왔다.
그의 부모는 이런 그를 곱게 보지 않았다. 특히 아버지는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여성스러운 말투와 행동을 할 때마다 호되게 꾸짖으며 그가 남자다워지기를 원했다고.

남자에서 여자로, 트랜스젠더 이시연 인터뷰

“점쟁이가 ‘여자로 태어났어야 할 아이인데 남자로 태어났다’고 해 다섯 살 때까지 여자아이 대접을 받고 자랐대요. 아버지는 항상 그 때문에 제가 여성스러워진 게 아닌지 걱정을 하셨죠. 대전대 패션디자인과에 입학한 뒤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하고 싶어 모델학원을 다녔는데, 어느 날 집에서 하이힐을 신고 여성 스텝을 연습하자 노발대발하셨어요.”
그는 남자모델로도 활동했지만 여장 모델로 설 때가 더 많았다. 서울컬렉션, 에콜 드 파리 패션쇼, 안티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등에 여성복을 입고 등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이를 계기로 방송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트랜스젠더나 게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마다 “여자 옷을 입고 무대에 설 뿐 여자친구도 있는 보통 남자”라고 대답했다.
“저도 모르게 ‘보통 남자’로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던 것 같아요. 사실 20대 초반까지는 정말 여자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여장 모델로 활동하면서 대리 만족을 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립스틱을 바르고 치마를 입고 무대에 설 때만큼은 행복했으니까요.”
하지만 모델로 활동할 당시 1년 가까이 교제한 여자친구에게는 지금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외로움을 잘 타는 저를 그 친구가 많이 보듬어줬어요. ‘이게 진짜 사랑일까? 아닐 거야’ 싶으면서도 계속 ‘맞아, 잘하고 있어’ 하면서 마음을 돌렸죠. 그 친구에게만큼은 평범한 남자가 돼주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조금씩 깨졌다. 소속사에서 그에게 ‘꽃미남’ 스타일을 요구한 것. 그는 반강제적으로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웨이트 트레이닝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외모가 남자다워질수록 여성성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고.
“제 의지와 상관없이 변해가면서 정말 불행했어요.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이건 내 모습이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죠. 2년 가까이 속앓이를 하다가 결국 소속사를 나왔어요. 그리고 한동안 집 안에 틀어박혀 지냈죠. 이후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앓아 술과 수면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성전환 수술을 생각해본 건 그때부터였어요. ‘내가 왜 힘들었을까’ 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을 때 ‘여자가 되고 싶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왔거든요.”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난 2006년 성적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서 더욱 확고해졌다고 한다. 여자가 되길 바라는 남자주인공이 “뭔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니고 그저 살고 싶은 거야!”라는 대사를 하는 순간 눈물이 난 것. 남자로서 사는 삶이 지옥 같았던 그는 고민 끝에 “여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먼저 주변 친구들에게 꺼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성전환 수술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족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저를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갈수록 이상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죠. 결국 ‘이렇게 살 바엔 죽자’며 수면제 수십 알을 삼켰어요. 병원에서 깨어나 보니 엄마가 머리맡에서 울고 계셨어요. 군대에 간 동생이 찾아왔기에 ‘부모님을 부탁할게’라고 말하니까 ‘나는 형이 있어야 더 잘 모실 것 같은데’라며 손을 잡아주더라고요. 그때 ‘그래, 죽느니 그토록 원해온 여자가 돼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남자에서 여자로, 트랜스젠더 이시연 인터뷰

최근 법원에 호적정정 및 개명 신청을 낸 이시연은 “성적소수자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처음 여자 속옷을 사왔을 때 갈기갈기 찢어버렸던 어머니도 어느 날부턴가 ‘이걸 꼭 입어야겠냐’면서 차곡차곡 개주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달라진 반응에 성전환 수술을 결심한 그는 그날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수술비 3천만원을 모았다고. 다행스럽게도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남성호르몬보다 여성호르몬이 더 많아 경과가 좋을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고, 곧바로 수술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은 생사를 건 위험한 일이었다.
“수술을 앞두고 엄마와 한 침대에 누웠는데 엄마가 ‘그동안 혼자 힘들게 해서 미안해. 오늘부터 아들은 죽고 딸이 생겼다고 생각할게’ 하면서 흐느끼셨어요. 동생도 ‘형이 선택한 인생이잖아. 형이 행복하다면 나도 믿음을 가지고 지켜줄게’라는 편지를 보내왔죠. 비록 아버지에게는 허락받지 못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것 같아 마음 편히 수술대에 올라갔어요.”
수술은 얼굴, 가슴, 성기 등 부위별로 몇 차례에 거쳐 진행됐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점차 여자가 돼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니 “천국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하지만 트랜스젠더의 삶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트랜스젠더인 친구를 따라 트랜스젠더 클럽에 찾아갔다가 전국을 떠돌며 무희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참담한 심정이 들었다고.
그러는 동안 그의 삶도 조금씩 위축됐다. 그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본 것. “역시 남자라서 손이 크다. 팔에 근육이 있다”는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이곳으로 와 당당하게 살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는 죄를 짓고 도망치는 것 같아 거절했다고 한다.

여자 연기자로 인정받고 사랑하는 사람 만나 행복한 가정 이루는 것이 꿈
“사람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도 제가 풀어야 할 숙제잖아요. 아직까지 목욕탕에 갈 용기가 나지 않지만 주민등록증 뒷자리가 ‘2’로 바뀌는 날엔 당당하게 여탕에 들어갈 거예요. 그때는 ‘언니’ ‘오빠’라는 호칭도 지금보다 더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겠죠.”
최근 그는 법원에 호적 정정 및 개명 신청을 접수했다. 이르면 2월 말 ‘법적’ 여자가 된다고. 그는 요즘 여자 연기자로 인정받기 위해 연기공부를 하면서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 몸매를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 맡을 수 있는 역할에 한계가 있을 거예요. 주로 성적소수자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겠죠. 하지만 언젠가는 여자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그의 또 다른 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그는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되묻다가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과 편견 없이 대해주는 시집 식구들이 있다면…” 하고 바람을 내비쳤다. 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실이 그를 가장 힘들게 한다고. 그는 “부모님에게 손자를 안겨드리지 못하는 점이 큰 불효”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며칠 전 엄마 생신이라 대전에 내려갔는데 그새 많이 늙으셨더라고요. 저 때문이죠. 그런데도 엄마는 오히려 ‘그 수술을 하면 갱년기 증상이 올 수 있다더라. 몸조심하라’면서 사골국을 끓여주셨어요. 수술 후 아버지를 제대로 뵙지 못한 점이 마음에 걸리지만, 아버지에게도 시간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기자로 인정받고 한 남자의 아내가 될 즈음이면 아버지도 저를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질 무렵, 그가 먼저 기자의 손을 잡았다. 그는 “세상에 내던져진 것 같다가도 나를 따뜻하게 봐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힘이 난다”며 빙그레 웃었다. 그에게 언젠가는 모두가 당신의 행복을 인정해줄 것이라고, 그때까지 당신의 행복을 위해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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