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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중견배우의 힘

‘엄마가 뿔났다’ 주연 맡아 2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김혜자

글·김유림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KBS 제공

2008. 03. 21

중견 탤런트 김혜자의 진가가 다시 한 번 입증됐다. KBS 새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자식들 때문에 울고 웃는 지극히 평범한 어머니 역할을 맡아 방송 첫 회부터 사실적인 연기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사고 있는 것. 그에게 드라마 촬영 뒷얘기와 실제 가정생활, 봉사활동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뿔났다’ 주연 맡아 2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김혜자

‘국민 어머니’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 김혜자(67)가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KBS 주말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평생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며 남편에게 순종하고 살아온 어머니 역할을 맡은 것. 드라마 초반 혼전 임신을 하고 만삭의 몸으로 집으로 쳐들어온 장남의 애인 미연(김나운)의 출산을 지켜보며 속으로 “이런 식으로 며느리를 맞고 싶지는 않았어. 나는 왜 이렇게 바보처럼 살았지” 하고 푸념하는 모습은 많은 주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다. 앞으로 그는 중학교 때부터 가출을 밥 먹듯이 하다 결국 마음을 잡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장남(김정현) 외에도 어린 딸을 키우는 이혼남과 동거 중인 노처녀 큰딸(신은경), 재벌 집안 외아들과 연애 중인 막내딸(이유리)과의 갈등을 그려갈 예정이다. 또한 착하지만 무능력한 남편(백일섭), 사사건건 집안일에 참견하는 남편의 쌍둥이 여동생(강부자), 친정아버지처럼 마음이 잘 통하는 시아버지(이순재)와의 관계를 통해 어머니로서뿐 아니라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삶도 그린다.
“드라마에서 보면 세 명의 자식 중 어느 하나 마음에 쏙 드는 자식이 없어요. 자기 뜻대로 살아주지 않는 자식들을 보면서 엄마는 삶의 허망함과 회한을 느끼죠. 하지만 그런 못마땅한 자식을 통해서 무한한 기쁨을 얻고 인생의 진리를 깨치는 게 어머니란 존재인 것 같아요.”

‘엄마가 뿔났다’ 주연 맡아 2년 만에 브라운관 복귀한 김혜자

김혜자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평생 자식 걱정으로 하루도 편할 날 없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오랜만에 김수현 작가 작품에 출연 중인 그는 다른 때보다 부담감이 컸다고 한다. 시나리오를 받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연습시간이 충분했던 것만큼 더욱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든 것. 그는 “남들은 이 나이 되면 눈 감고도 연기할 거라 생각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게 연기인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 히트 제조기로 정평이 나 있는 김수현 작가에 대해서도 마음속에서 우러난 신뢰감을 표했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지휘자에 따라 달라지듯이 드라마도 작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요. 사실 이번에 대사 분량이 너무 많아 줄여달라고 항의를 하기도 했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대사하는 게 재미있을 정도로 맛깔스럽게 대본을 써요. 모든 인물 하나하나에 당위성을 부여해주는 것 또한 김수현 작가의 매력인 것 같아요.”
그는 연극무대에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 지난해에는 연극 ‘다우트’ 주연을 맡아 6개월 동안 의심 많고 냉철한 원장수녀 엘로이시어스로 지냈다. 그는 오랜만에 무대 위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동안 몸무게가 많이 빠졌다고 한다. 그는 “요즘 들어 사람들로부터 ‘어디 아프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며 “빠졌던 살이 금세 다시 찌지 않을 뿐 건강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구호활동에 앞장서며 척박한 땅의 아이들에게 희망 주고 싶어요”
하지만 그가 지난해 5월 연극을 마치고도 다시 살이 찌지 않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연극을 끝내자마자 아프리카 중서부에 자리한 콩고로 구호활동을 다녀온 것. 92년부터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빈곤 국가를 지원하는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에티오피아·소말리아·모잠비크·방글라데시·미얀마·북한 등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그는 이번에도 역시 많은 것을 깨닫고 돌아왔다고 한다.
“콩고는 내전이 심각한 긴급 구호지역이에요. 지금까지 다녀온 곳과 마찬가지로 그곳에도 헐벗고 굶주린 아이들이 있었죠. 우리가 전하는 작은 도움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척박한 땅에서 사는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뭔지를 깨닫게 하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 생각해요. 나이가 들수록 봉사활동이 힘에 부치지만 저 역시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슬하에 아들, 딸 남매를 두고 있는 그는 현재 큰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평생 그가 시부모를 모신 것처럼 아들 역시 신혼 때 잠시 분가를 했다가 이내 그와 살림을 합쳤다고 한다. 덕분에 그는 손자, 손녀가 자라는 모습도 마음껏 지켜볼 수 있었다고. 고부갈등은 없었는지 물어보자 그는 “시어머니라는 사람이 밤낮없이 밖에서 활동하다 보니 딱히 며느리와 부딪칠 일이 없었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들 내외가 효자효부”라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어느덧 예순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그는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을 가슴에 품고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죽는 그날까지 오로지 연기자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도 많다”며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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