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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긍정의힘

아버지, 모두 당신 덕입니다

글·곽의진‘작가’

입력 2008.03.18 13:55:00

컹컹컹, 우주(愚主)가 짖어댑니다. 캥캥캥, 꼭지가 따라 짖습니다. 나를 깨우는 알람소리입니다. 갯가 흙집엔 두 마리의 진돗개가 있으며 우주(愚主)와 꼭지는 내가 사랑하는 개의 이름입니다.
우주는 농사꾼 이웃이 ‘느그 주인은 바보 같은께 니놈 이름을 우주라고 허믄 좋것다’면서 내 행동거지가 너무 어리석다고 붙여준 이름이고 꼭지는 내가 붙인 이름입니다. 두어 달 전 우리 고을 원님 댁 진돗개가 새끼 7마리를 낳았는데 원님 각시가 하는 말, ‘콧잔등이에 점 있다고 싫어들 해요. 그러니 곽 선생이 가지고 가셔서 사랑으로 잘 키워주세요’였습니다. 저는 그 점박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콧잔등이에 큰 점이 있으니 참 못생겨 보였습니다. 그러나 원님 각시의 진정어린 말에 감복해 잘 키우겠다며 점박이를 지프에 실었습니다. 읍에서 산 너머 해안을 따라 흙집으로 오는 길에 강아지 이름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꼭지다’. 문득 꼭짓점 춤이 생각났고 꼭지에 점이 있다는 의미로 점자를 빼고 꼭지라 이름 붙이기로 생각하니 그 점박이 강아지가 어찌나 귀엽게 느껴지는지요. 휴대전화를 열어 원님 각시에게 강아지 이름을 알려줬더니 무선의 휴대전화 작은 구멍 속에서 기쁨에 찬 목소리가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꼭지라는 귀여운 이름처럼 귀염받고 잘 자라겠구나’ 하는 안도의 목소리였습니다.
암튼, 두 마리의 진돗개가 나를 깨웠습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봉창을 활짝 열었습니다. 펑펑 눈이 내리고 있는데 이미 마당에도, 1백여 개의 장독 위에도 동백나무에도,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직 어스름한 새벽 시간인데 천지가 환했습니다.
‘월명(月明) 설명(雪明) 천지명(天地明)이여! 달 밝고 눈(雪) 밝으니 천지가 밝구나’.
이것은 부친의 목소리입니다. 지난해 겨울 보름달이 떠오르는 초저녁, 툇마루에 서서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을 바라보며 했던 부친의 말입니다.
‘아버지’ 하고 목구멍으로 소리를 넘기려니 그리움으로 눈물이 왈칵 솟구칩니다.

이른 새벽 단잠 깨워 아름다운 밤, 찬란한 아침 알게 해준 아버지
“야야.”
나를 부르는 소리가 깊은 잠 속으로 파고들어왔습니다. 눈을 뜨고 벽시계를 봤습니다. 새벽 2시12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이불을 뒤집어썼습니다.
“야야, 좀 와봐라.”
다시 큰 소리가 들립니다. 오밤중에 나를 찾는 부친의 목소리였습니다.
“또야, 으째 늙으면 잠도 없는가.”
나는 혼잣소리로 궁시렁거리면서 쪽마루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부친은 오도카니 앉아 나를 기다리다가 ‘거그 앉거라’ 하셨습니다. 나를 깨운 사연인즉슨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이야기를 듣다가 끄떡끄떡 졸기라도 하면 부친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로 내 어깻죽지를 내려쳤습니다. 그런 날이 거듭될수록 차츰 두통과 함께 돌아버릴 것 같은 강박감에 내 몸 안의 습기가 말라 바자작 졸아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오래전 노환으로 쓰러져 링거 꼽고 기저귀 차고 내 작업실에 오신 부친은 차츰 건강을 되찾자 흙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고향에나 데려다다오 했는데 다시 살아났소. 그런께 여그가 우리나라에서 젤 좋은 병원이고 막내딸이 젤 좋은 의사요. 인제 10년은 더 살 것 같으요. 허어허’ 하시며, 큰 소리로 웃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나더러 효녀라고 말했습니다.
“효녀는 먼 효녀, 함께 사는 자식은 무조건 불효잡니다.”

나는 웅얼거리며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습니다. 부친 말씀대로 나는 좋은 의사도 아니고 듣기 좋으라고 말하는 효녀도 아닙니다. 건강 찾으셨으니까 도시에 살고 있는 오빠네로 갔으면 좋으련만 가실 생각도 모셔갈 생각도 안 했습니다. 사실 부친은 내게 정말 귀찮은, 엄청난 무게의 짐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했던 모든 걸 버리고 훌쩍 서울을 떠나 산속 깊이 묻힌 사연, 큰 욕심 없이 글이나 쓰며 자연과 벗하고자 했던 본래의 내 꿈이 사라지고 말았기에 부친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도 지팡이로 내 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습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나는 마루 반대쪽으로 난 작은 창문을 열고 방을 탈출, 해남 대둔사를 찾아 차를 몰았습니다.
한밤 풀벌레 울고 싱그런 나뭇잎 냄새, 이름 모를 꽃향기 맡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 상쾌했습니다. 길 떠난 지 1시간 30여 분 만에 나는 대둔사 입구에 도착,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새벽을 등에 업고 혼자 걸었습니다. 교교히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계류를 따라 오르자 어느새 대둔사 경내에 다다랐습니다.
홀연, 목어(木魚)가 울었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목탁소리와 함께 독경소리가 들렸습니다. 무명을 쫓아내듯 승방마다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나는 대웅보전으로 들어갔습니다. 본존불상 앞에 두 무릎과 두 팔, 이마를 바닥에 붙이고 오체투지(五體投地·불교에서 행하는 큰절의 형태)의 예를 올렸습니다. 모든 생각을 지우고 싶었습니다.
1세기를 넘게 살고 있는 부친이 자랑스럽기보다는 귀찮다는 생각, 한밤중에 깨워서 이야기 들어달라는 부친이 두통 동반한 스트레스의 원인이라는 생각, 막내에게 늙은 부친을 떠넘겨버린 오빠와 올케들을 미워했던 생각들이 수그러들고 범종소리만 귓가에 가득, 깊은 지혜와 자비의 울림으로 퍼졌습니다. 그런 중에 정신도 가벼워졌습니다.
대웅보전을 나와 무염지 앞에 섰습니다. 옥거울처럼 투명한 연못 위에 마침 새벽안개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느린 흐름으로 흐르고 있는 안개는 보는 것만으로 따스함을 주었습니다. 한밤 나를 깨워준 부친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부친이 나를 깨우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그 아름다운 밤을, 또한 이 찬란한 아침을 볼 수 있었겠습니까?
어느새 아침햇살이 천지에 가득 채워지고 나는 1세기를 사시면서 정신이 오락가락해 나를 귀찮게 하는 부친 덕으로, 대둔사에서 맞는 그 아침에 새로운 무엇을 깨쳤습니다.
그 여름날 밤, 부친을 피해 사찰을 찾았다가 깨친 큰 진리로 나는 어떤 힘을 얻었고, 그 이후 104세의 연세로 기저귀 찬 어린아이 같은 부친과 사랑하며 싸우며 7년을 함께했습니다.
이제 나는 갯가 언덕 흙집에서 홀로 펑펑 쏟아지는 눈을 봅니다. 지난해 겨울 소복이 쌓인 눈의 풍경을 바라보며 ‘월명, 설명, 천지명이라’ 말씀하시던 부친은 다시는 오지 못하는 멀고도 긴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그립습니다.
우주와 꼭지가 그리움에 눈시울 적시는 나를 향해 아침 인사하느라 꼬리를 흔들어댑니다.

곽의진씨는… 1947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다. 1983년 ‘월간문학’ 신인상 공모에 단편 ‘굴렁쇠 굴리기’가 당선돼 등단했으며, 장편소설 ‘솔베이지의 노래’ ‘여자의 섬’, 창작집으로 ‘비야, 비야’‘얼음을 깨는 사람들’, 산문집 ‘향 따라 여백 찾아가는 길’ 등을 펴냈다. 진도에서 살면서 고향의 향토사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여성동아 2008년 3월 5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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