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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준비 중인 가수 정훈희

기획·김명희 기자 / 글·박경아‘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8.02.22 09:38:00

67년 ‘안개’라는 곡으로 데뷔, 개성 넘치는 목소리로 사랑받았던 가수 정훈희. 79년 가수 김태화와 결혼한 후 활동이 뜸했던 그가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그를 만나 궁금한 근황을 들었다.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준비 중인 가수 정훈희

남편 김태화(58)가 운영하는 경기도 일산 라이브 카페에서 만난 가수 정훈희(58). 그는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준비로 바빴다. 20년간 몸무게 48kg을 유지하다가 최근 얼굴 살이 너무 빠지는 듯해 52kg으로 늘렸다는 그는 젊은 시절보다 훨씬 여유로워 보였지만 청아한 음색만은 변함이 없었다.
남편과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89년 제작한 ‘우리는 하나’ 이후 19년 만에 세상에 내놓는 이 음반에는 ‘광화문 연가’‘옛사랑’ 등 숱한 히트곡을 만든 이영훈을 비롯해 윤종신·윤상·김현철·유영석 등 내로라하는 작곡가의 곡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조카인 가수 제이와 듀엣곡도 부를 예정이라고.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준비 중인 가수 정훈희

“많은 분이 기대할 것 같아 신경이 많이 쓰여요. 제가 처음 데뷔한 게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
그의 데뷔 이야기하자면‘나 홀로 걸어가는~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로 시작하는 데뷔곡 ‘안개’를 빼놓을 수 없다. 재즈풍의 이 노래 한 곡으로 그는 단숨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67년 김승옥 작가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에 삽입된 이 노래는 평범한 여고 1학년생이던 그를 가요계의 깜짝 스타로 만들었다.
이후 그는 72년 ‘너’로 그리스 아테네 국제가요제에서 4위에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그해 10월 ‘좋아서 만났지요’로 동경국제가요제 특별상 수상, 79년 ‘꽃밭에서’로 칠레 국제가요제 최우수상을 받는 등 국제가요제에서 여섯 번이나 입상하면서 ‘국가대표 가수’로 불리기도 했다.

“소박한 청혼에 감동해 결혼, 고비 있었지만 아이들 낳아 키우며 자연스레 극복했어요”
그는 인기가 절정으로 치닫던 79년 그룹사운드 ‘라스트 찬스’의 리드 보컬이던 김태화와 결혼했다. 그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가 재미있다.
“보통 남자들이 청혼할 때는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게 해주겠다’ 같은 달콤한 유혹을 한다는데 우리 남편의 프러포즈는 굉장히 소박했어요. 어느 날 둘이 같은 클럽에서 노래하는데 남편이 ‘우리 좋으니까 연애할래?’라고 묻더라고요. 그렇게 교제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또 ‘좋으니까 살아볼래?’라고 묻고요. 남편이 거창하게 프러포즈를 해왔다면 제가 주춤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솔직하게 다가오니까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더라고요.”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 한다. 일 년에 서너 번은 방송 가요무대에 서고 친분이 두터운 동료 가수들과 서울·부산 등에서 간간이 무대에 서왔지만 두 아들 대한(25)과 민국(21)을 낳아 키우고 시어머니(작고)를 모시고 살며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에 만족했다는 것.
“결혼생활을 하면서 가수로서의 활동은 당연히 뜸해졌죠. 당시만 해도 결혼하면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이 많이 중요했으니까요.”
물론 결혼생활을 하면서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느 부부처럼 서로 좋아 죽고 못 사는 신혼이 끝나자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 생기더라는 것.
“결혼이란 서로 잘 맞아서 하는 것보다 맞춰가면서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도 처음에는 많이 싸우고 그럴 때마다 ‘헤어지자’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죠. 하지만 아이들을 낳아 키우면서 변했어요. 상대에게 실망한 것만 생각하면 이혼에 이르기 쉽지만 상대를 실망시킨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고 살게 되더라고요.”
한 사람은 록을, 다른 한 사람은 발라드를 고수하며 수십 년간 살아온 부부는 나름대로 ‘평화의 법칙’을 터득했다. 서로의 음악에 대해 터치하지 않는 것. 단 모니터링은 냉정하게 해준다고 한다.
“자존심이요? 그런 거 안 상해요. 서로 전문가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수긍을 하죠.”
그는 그날 착용한 귀걸이며 반지 등 액세서리 모두 그동안 남편이 사준 것이라고 했다. 결혼 25년이 지나자 남편이 전보다 더 자상해지고, 아내 소중한 것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지 이렇게 선물공세로 사랑을 보여준다고 한다.

데뷔 40주년 기념 음반 준비 중인 가수 정훈희

이 부부가 부산과 일산에 열고 있는 카페는 각자의 ‘음악 놀이터’다. 부산에 자리 잡은 카페 ‘꽃밭에서’는 오랫동안 부부가 함께 운영하다 최근에는 아내만의 놀이터가 됐고, 일산에 오픈한 카페 ‘마스크’는 남편의 놀이터라고 한다. 특히 완벽한 반주 시스템을 갖춘 마스크에서는 일요일 낮 시간 커피와 와인을 내놓는 콘서트를 열어 가요계 원로들과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탤런트는 나이가 들어도 젊은 주연배우 이외에 부모나 다른 나이 든 가족의 배역이 필요하지만 가수는 딱 ‘톱’ 하나면 되거든요. 그렇다 보니 원로가수는 물론 젊은 가수들도 음반판매나 콘서트가 안되면 금방 상황이 나빠져요. 한동안 가수들의 설 무대가 좁아져 한강변 미사리 라이브 카페촌이 대안이 되기도 했는데 그나마 미사리마저도 쇠락해 가수들의 무대가 더욱 좁아졌어요.”
게다가 음반의 불법 다운로드가 많아 제작자나 기획자, 가수 모두 노래가 히트를 하고도 경제적으로는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공짜 노래를 듣는 분위기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결국 좋은 노래, 좋은 가수는 나오지 못하게 될 거예요. 음악은 다른 어떤 예술보다도 다양한 색깔로 기쁨을 주는 삶의 비타민이에요. 그러한 삶의 풍요로움을 앞으로도 다양하게 누리고 싶다면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수 되고 싶어하는 두 아들 적극 지원할 생각이에요”
평소에도 집 주변 초등학교 결식아동들에게 빵과 우유를 제공하며 남몰래 선행을 실천해온 그는 지난해부터 가수협회 수석 부회장을 맡아 가수들의 친목 도모와 권익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렇듯 이제 ‘가요계의 어른’이 된 그이지만 과거 40년을 돌아보면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고 한다.
“너무 일찍 가수로 데뷔한 게 마이너스였던 것 같아요. 철없을 때 갑자기 유명해지는 바람에 제게 노래가 얼마나 소중한지, 팬들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거든요. 세상 무서운 줄 알고 가수가 됐더라면 훨씬 더 감사하며 겸손한 마음을 가졌을 텐데….”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음반을 낸 적이 있고 오빠는 60년대 유명 그룹 멤버 출신이라고 한다. 조카 제이에 이어 그의 두 아들도 가수 꿈을 키우고 있어 그의 집안에는 젊은 가수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얼마 전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큰아들이 발라드 가수를 하겠다고 나선 데 이어 내년에 군대 가는 둘째도 음악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
“아이들이 음악을 하는 것 자체는 대환영이에요. 하지만 이왕 음악을 할 바에는 잠시 반짝하는 아이돌 스타가 아니라 노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공부도 못하고 얼굴도 별로인데 타고난 음악 재능이 있으니 그 길로라도 나가야죠(웃음).”
이렇게 아이들에 대해 ‘겸손하게’ 말하지만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거는 꿈까지도 겸손하지는 않을 것 같다. 열정적이고 아름답게 나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가 여전히 생기 있고 아름다운 이유는 같은 길을 걸어 온 동료들에 대한 넉넉한 마음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은 덕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여성동아 2008년 2월 5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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