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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특별한 여행

세계일주 사물놀이 여행 다녀온 공새미 가족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조세일‘프리랜서’

2007. 11. 22

지난 2005년 온 가족이 3백4일 동안 세계 31개국을 돌며 사물놀이 공연 여행을 하고 돌아와 화제를 모은 ‘공새미 가족’이 2년 만에 당시의 경험을 담은 책을 펴냈다. 그들을 만나 길고 고된 여행을 통해 알게 된 가족의 소중함과 여행 뒤 달라진 삶에 대해 들었다.

세계일주 사물놀이 여행 다녀온 공새미 가족

지난 2005년, ‘공새미 가족’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가족 사물놀이팀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40대 중반의 아버지부터 일곱 살배기 딸까지, 다섯 식구가 3백4일 동안 세계 31개국을 돌며 사물놀이 공연을 펼쳤다는 뉴스가 전해지면서 이들의 독특한 세계여행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 것.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난 10월, 서울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서울드럼페스티벌’ 장에서 이 가족을 만났다. 이들은 세계여행 당시의 구성 그대로 아버지 김영기씨(47)는 북, 엄마 강성미씨(46)는 장구, 큰딸 민정양(19)은 꽹과리, 아들 민수군(16)은 징, 막내딸 현정양(9)은 장구를 연주하며 신명나는 공연을 펼치고 있었다.
“귀국한 뒤 그동안 지하철역 문화마당, 청계천 광장 등에서 꾸준히 공연을 해왔어요. 공연을 요청하는 양로원 고아원 등 각종 보호시설도 찾아다녔고요.”
아버지 김씨의 설명이 무색하지 않게 가족의 장단은 척척 맞아 돌아가며 환상적인 호흡을 과시했다. 공새미 가족이 새삼 관심을 모은 것은 최근 민정양과 민수군이 2년 전 세계여행의 경험을 담은 책 ‘민정이와 민수의 304일간의 세계일주’를 펴냈기 때문. 그들은 책을 통해 사물놀이 전문가도 아닌 평범한 가족이 악기를 들고 세계를 여행한 이유와 그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것들을 공개했다.
이 가족이 처음 사물놀이를 배우기 시작한 건 지난 2001년 6월. 서로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가족애를 돈독하게 다지기 위해서였다. 이미 사물놀이를 배운 상태였던 민정양이 선생 역을 맡아 한 명 한 명 악기를 가르쳤다고.
“그러던 중 아빠가 사물놀이를 하면서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처음 냈어요. 어린 시절 누구나 막연히 한 번쯤 꿈꾸는 세계일주를 진짜로 해보자고 한 거죠. 제 대학입시에 차질이 생기지 않고, 막내 현정이가 일곱 살이 되는 2004년을 ‘세계여행의 해’로 삼고, 그때부터 더 열심히 사물놀이 연주 연습을 했어요.”
지난 2002년부터 지하철 예술무대, 장애인 복지시설 등에서 공연하며 사물놀이 실력을 탄탄히 다진 이들은 ‘가족 간 사랑이 샘물처럼 퐁퐁 솟게 하고, 가족 모두가 샘물처럼 이웃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자’는 의미를 담아 아버지 김씨의 고향 마을에 있는 샘물 이름 ‘공새미’를 가족의 이름으로 정했다고 한다.

세계일주 사물놀이 여행 다녀온 공새미 가족

사물놀이로 우애를 돈독히 쌓은 공새미 가족의 김현정, 민정, 민수 남매.


세계여행 하며 가족 사랑 한층 탄탄해져
아버지 김씨는 “솔직히 처음엔 아이들이 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민정이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여행을 다녀오면 친구들보다 1년 늦게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했고, 초등학생이던 아들 민수는 외국에서 부딪칠 위험과 돌아와서의 생활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 이름을 정하고 우리 여행의 목표는 ‘가족 사물놀이 연주를 통한 사회봉사’라며 아이들을 설득하자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여행 준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이들은 각각 대륙을 하나씩 맡아 조사하며 여행 자료를 만들고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다녀온 가족, 세계 곳곳을 돌며 사물놀이 공연을 한 대학생 등을 집으로 초대해 여행과 공연에 대한 살아 있는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2004년 2월28일 마침내 첫 목적지인 인도로 떠났다. 한 사람당 무게가 25kg 정도 나가는 배낭을 짊어지고, 각자의 악기를 들고서였다.
“인도에서 중국, 아프리카 대륙을 지나 유럽을 거쳐 미국과 캐나다, 남미 지역까지 10개월 동안 31개국 1백여 개 도시를 돌았어요. 길거리 공연이 불법인 인도와 치안이 불안한 남미 몇 나라를 제외하고 가는 곳마다 길거리나 광장, 심지어 기차 안에서도 사물놀이판을 벌였죠.”
아들 민수군은 이 특별한 여행을 통해 “모든 것이 180도 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온 가족이 하루 24시간을 함께 지내며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소중함을 실감하게 됐다는 것.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특히 여행 초반엔 미처 몰랐던 서로의 단점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고.
“직장 다니는 아버지가 대부분 그렇듯 저도 한국에 있을 때는 아침에 나와서 밤늦게야 집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아이들과 오랜 시간 함께 지내고 한방에서 지내려니까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더라고요. 특히 아이들이 ‘이것만은 안 닮았으면’ 했던 저의 단점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게 자꾸 보여 괴롭기도 했죠.”
이런 어려움을 느낀 것은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였고, 여행이 4개월째에 접어들던 무렵 이들은 영국에서 서로 큰 소리가 오갈만큼 심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다같이 끌어안고 엉엉 울었어요. 서로의 안 좋은 점, 마음에 안 드는 면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고 부딪치고 싸움도 하면서 제가 얻은 건 ‘내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인정해줘야 된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김씨는 “예전에는 가족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때면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 두려웠는데 여행을 하면서 ‘갈등은 당연히 있는 것이고 중요한 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라는 것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기간 중 나눈 대화가 나머지 일생의 전 기간을 합친 것보다 많을 거라는 공새미 가족에게 여행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가져다준 경험이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학교를 1년 쉰다는 것에 대해 많이 불안해했던 민정이와 민수는 이제는 ‘학교 1년을 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에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현재 학생회장을 맡고 있는 민수는 “한 학년 늦으면 친구를 사귀기 어려울 것 같았는데 세계여행 다니며 본 것 등 교과서에 없는 얘기를 해주면 아이들이 좋아한다”며 활짝 웃었다. 현재 고3으로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민정이는 평소엔 밤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지만, 주말 가족 공연만큼은 결코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대학에 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여행을 통해 가족들이 “남과 비교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표와 인생계획”을 갖게 된 것이 가장 뿌듯하다는 아버지 김씨는 “삶에 시달려 지치는 것이나 이유 없이 불안한 것은 알고 보면 남들만큼 따라가야 한다는 비교 때문인 것 같다”며 “세계여행은 우리에게 사회적인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면 충분히 행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공새미 가족이 앞으로 이뤄갈 목표는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가족 사물놀이’를 계속하는 것, 그리고 긴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눈’으로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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