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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솔직한 고백

홍성호 박사, 이미숙과 이혼 후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기획·김명희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9.22 13:23:00

6년 별거 끝에 지난 3월 이혼한 영화배우 이미숙과 성형외과 전문의 홍성호씨. 당시 이들은 이혼을 발표하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함구,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5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홍성호씨가 파경에 이른 속사정과 조금씩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 그리고 두 아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홍성호 박사, 이미숙과 이혼 후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자신의 이름 앞에 20년 동안 따라다니던 ‘영화배우 이미숙 남편’이라는 꼬리표를 뗀 성형외과 전문의 홍성호씨. 지난 3월 이혼소식이 알려진 직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지금은 너무 힘들다. 시간이 좀 지나고 마음이 안정되면 그때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5개월여 만에 다시 만난 그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많이 평온해 보였다.
“제가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데 큰 힘이 됐거든요. 수술 후 환자들이 밝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도 느끼고 아픈 마음을 위로받기도 했지요.”
그는 여전히 힘든 부분이 있지만 아이들을 생각해서 웃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미국 유학 중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던 아이들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이미숙과의 사이에서 아들(20), 딸(16) 남매를 두고 있다.
“7월9일 귀국해서 한 달 남짓 있다가 미국으로 떠났어요. 이혼 후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거라 아이들에게 무슨 얘길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됐어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얼굴 맞대면 또 다르잖아요. 그런데 제 걱정과는 달리 아이들이 오히려 ‘우리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면서 ‘엄마, 아빠 각자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가슴이 뭉클했죠. 아이들에게 미안해요. 안쓰럽기도 하고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빛이 한층 더 밝아졌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만날 때마다 애틋하다는 그는 남매가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아이들이 괜찮다며 오히려 저를 위로해줬어요”
“‘괜찮다’고는 하지만 아이들 역시 저희 못지않게 힘들었을 겁니다. 이번에 귀국할 때 딸이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한국에 가면 엄마 집에서 지내고 싶은데 아빠 생각은 어때요’ 하고 묻더라고요. 제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 같더군요. 흔쾌히 ‘그러라’고 했죠. 저는 주중에 병원 일 때문에 바빠 저녁 때밖에 시간을 낼 수 없잖아요. 대신 주말에는 종일 아이들과 함께 보냈어요.”
1년에 두어 차례 귀국하는 아이들이 한국에 오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던 그는 수첩에 맛있는 식당에 대한 정보를 깨알같이 적어놓았다고 한다. 오랜만에 한국을 찾는 아이들과 함께 가기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함께 밥 먹고 영화나 연극을 보러 다니는 시간이 꿀맛 같았어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볼 때마다 더 잘해주고 싶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고 싶거든요.”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아들과 예술가적 감각이 있는 딸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는 즐거움이 살아가는 데 활력소가 된다고 한다. 자식 사랑이 남다른 그는 “아무래도 딸이 좀 더 크면 성형수술을 해줘야 할 것 같다”면서 웃었다. 지난해 미국에 갔을 때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 딸이 거울 앞에서 한참 동안 꾸물거려 무엇 때문인지 확인하러 갔다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고 한다.

홍성호 박사, 이미숙과 이혼 후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글쎄, 눈에다가 풀을 붙여서 쌍꺼풀을 만들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아빠가 예쁘게 해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더니 ‘정말 해줄 거냐’고 되묻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예쁘게 해주겠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배시시 웃으면서 학교에 가더라고요.”
딸을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이혼 사유에 대해 물었다. 이혼 당시 이미숙 측이 소속사를 통해 “두 사람이 협의이혼을 하게 됐으며 두 아이의 양육권은 이미숙이 갖기로 했다. 미국 유학 중인 두 아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번갈아 미국을 방문하다보니 6년간 별거를 하게 됐고 자연 예전의 애틋한 감정이 식어 부부 관계를 정리하기로 했다”는 내용만 발표한 채 구체적인 이혼사유 등에 대해서는 침묵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만한 건 사실 없었어요. 당초 발표한 대로 6년 전 남매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뒤로 부부가 함께 지낼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별거 아닌 별거를 하게 된 거죠. 부부란 티격태격하더라도 살 맞대고, 얼굴 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 게 이혼을 하게 된 이유라면 이유겠죠.”
그는 “87년 결혼한 후 온 가족이 함께 생활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면서 90년대 초반 둘째 아이를 낳은 직후 이미숙에게 일본 유학을 권하던 당시의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때, 일본에 가라고 (이미숙의) 등을 떠밀지 않았다면 지금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고백을 곁들였다.
“(이미숙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했어요. 그래서 학업을 다 마치지 못했거든요. 그게 늘 마음에 걸려 공부를 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뭔가 마음속에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부분을 채워주고 싶었던 겁니다. 배우로서 대성하려면 영어와 일어를 다 구사하는 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둘째를 낳자마자 일본에 보냈어요. 그때도 별거한다, 이혼했다 소문이 많았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다만 훌륭한 배우가 돼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외조를 했어요.”

그 사람이 최고의 배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가정에 충실했으면 하는 모순된 마음 가져
90년대 초반부터 이미숙이 일본과 미국에서 5~6년 동안 공부하고 자녀와 함께 외국에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부부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최고의 배우가 되기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과 아이들에게도 충실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부부라도 어떻게 그런 걸 강요할 수 있겠어요? 만약 저더러 의사를 그만두라고 하면 제가 그만두겠어요? 마찬가지죠. 저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밥하고 살림하면서 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일 욕심이 많은 그 사람이 편하고 홀가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이혼을 결심한 거죠.”
고려대 의대에 진학하기 전 한양대 연극영화과 2학년까지 다닌 그의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지금도 그 꿈을 접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그는 결혼 후 아내가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항상 최고의 차를 선물했다고 한다. 자신은 국산 중형차를 타면서도 아내에게는 캐딜락을 선물했다고. 그는 한때 서울 방배동의 초대형 복층 빌라에 산 적이 있었는데, 아내를 위해 융자까지 내서 구입한 것이었다고 한다. 아내가 배우라는 화려한 직업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과거를 회상한 그는 “비록 이혼했지만 아이들 엄마가 하는 일이 모두 잘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홍성호 박사, 이미숙과 이혼 후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아이들이 오고 갈 때면 공항에서 만나고 아이들 진로문제를 상의하기도 하고…. 서류상 부부가 아니라는 것 외에 이전과 특별히 달라진 점은 없어요. 양육권은 그 사람에게 있지만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 등은 앞으로도 제가 다 책임지기로 했고요.”
누구나 그렇듯 그도 이혼 결심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이미숙과의 결혼이 재혼이었던 만큼 두 번째 이혼만은 피하고 싶었다는 것. 부부가 서로 떨어져 살면서 마음이 멀어지고 외로움이 적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보통 부부들처럼 알콩달콩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이혼을 결심하고 나자 갈팡질팡했던 마음이 정리됐다고.
“사실 그 사람과 떨어져 살면서 ‘나도 나이를 먹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외롭게 살아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노부부가 손잡고 걷는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한참 동안 쳐다보곤 했죠. 그렇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생각이 있는 건 아닙니다. 좀 더 온전하고 편안하게 저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어요.”
혼자 사는 게 익숙해진 지금 그는 여전히 불 꺼진 집에 들어가는 게 고역이라고 한다. “아침은 대충 때우고 점심은 병원에서 해결한다”는 그는 퇴근길에 “어느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집에 들어갈까” 하는 게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라고.
“주중에는 병원과 집을 오가는 단순한 생활의 반복이죠. 운동할 시간도 없어 집에서 병원까지 매일 걸어서 출퇴근해요. 4년 전엔 아예 차를 없앴어요. 굳이 필요치 않더라고요. 어디 갈 데 있으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녀요. 그게 훨씬 마음 편하고 좋더라고요. 사람들과 섞여 사는 맛도 나고요.”
그는 요즘 20년 전 세운 계획을 실천에 옮기며 이혼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중이다. 경기도 기흥에 성형센터를 짓기 위한 구상에 들어간 것.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병원을 짓고 환자들이 너른 정원과 호숫가를 거닐며 정서적인 안정을 취하도록 돕는 병원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려고 해요. 아픈 과거를 계속해서 떠올리면 우울할 수밖에 없지만 밝은 내일을 설계하고 꿈을 위해 노력하면 웃음이 찾아오거든요. 그 사람도 새 작품에 들어갔어요. 얼마 전 태국에서 2주 동안 촬영하고 왔다고 해요. 이혼 후 하는 첫 작품인데 잘되면 좋겠어요.”

여성동아 2007년 9월 5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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