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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두번째 인생

iMBC 사장직 내놓고 미국에서 신학공부 마치고 돌아온 조정민 전 앵커

글·김유림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08.22 11:13:00

4년 전 iMBC 사장직을 버리고 유학길에 올랐던 조정민 MBC 전 앵커가 전도사가 돼 돌아왔다. 가족과 함께 미국 보스턴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현재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이유, 신앙을 갖게 되면서 일어난 가족들의 변화에 대해 들었다.
iMBC 사장직 내놓고 미국에서 신학공부 마치고 돌아온 조정민 전 앵커

세상 사람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자리를 박차고 새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있다. 20년간 MBC 보도국 기자로 활동하다 ‘뉴스데스크’ 앵커 자리를 거쳐, iMBC 사장을 역임한 조정민씨(56)가 그 주인공. 78년 MBC 보도국 기자로 입사해 20년 넘게 언론에 몸담아온 그는 4년 전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iMBC 사장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가 지난 5월 고든콘웰신학대를 졸업하고 귀국해 현재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온누리교회 전도사로 활동 중이다.
“이제야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니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모두 본질이 아닌 대용품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태양을 본 사람은 더 이상 촛불에 연연해하지 않는 법이죠.”
그러나 그가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유학을 가겠다고 하자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다. 특히 아내 홍지혜씨(48)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범하게 목회활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다고. 당시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이던 두 아들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굳이 유학을 고집하는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두 번의 심장수술, 안면마비 겪으며 ‘내려놓는 법’을 배워
“사실 저도 처음부터 유학을 갈 생각은 아니었어요. 2001년 iMBC 사장이 되면서 ‘회사가 흑자로 돌아서면 신학공부를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에 공부를 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2003년 야간 신학대 입학을 준비하던 중 담임 목사의 추천서가 필요해서 하용조 목사님을 찾아간 게 유학을 떠난 계기가 됐어요. 그 자리에서 목사님이 ‘하나님께는 풀타임으로 헌신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미국 유학을 권하셨죠. 순간 모든 걸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식간에 유학을 결심한 그는 학교를 선정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학교 탐방에 나섰다고 한다. 결국 보스턴 고든콘웰신학대에서 입학허가서를 받은 그는 2003년 6월 사표를 내고 한 달 뒤 가족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iMBC 사장직 내놓고 미국에서 신학공부 마치고 돌아온 조정민 전 앵커

미국 보스턴 고든콘웰신학대 교정에서 찍은 가족사진. 조정민 전도사 가족은 방 두 칸짜리 기숙사에서 4년 동안 함께 지냈다.


네 식구의 유학생활은 학교 내 기숙사에서 시작됐다. 다행히 방이 두 칸이어서 부부와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었지만 서울에 살 때와 비교하면 초라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화장실이 잘 막혀 아침마다 학교 도서관, 체육관으로 뛰어가야 했던 날이 많았다고. 공부 또한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기자로 있을 때 3년간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하긴 했지만 새삼 영어로 공부를 하려니 쉽지 않더군요. 나이가 드니 기억력도 떨어지는데다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성경을 공부하는데 숨이 턱턱 막혔어요. 강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읽으라는 책도 다 못 읽고, 리포트도 허술하게 작성해서 제출한 적도 많아요(웃음).”
이민 교회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일곱 가정으로 시작한 보스턴 온누리교회에서 목회 훈련을 받은 그는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담임목사를 도와 교회를 일궜고, 깊은 잠이 들까봐 침대 밑 딱딱한 마룻바닥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생활이었지만 이민 교회에서 전도사를 하면서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 새벽마다 울며 기도했던 것이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지금은 교회가 아름답게 성장해 뿌듯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유학생활 2년 만에 큰 시련을 겪었다. 무리하게 공부와 교회 일에 매달린 탓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심장수술을 두 차례나 받은 것. 또한 수술 후 심장약 부작용으로 안면마비까지 왔다고 한다.
“그때 가족들이 많이 힘들어했어요.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냐며 원망도 많이 했죠. 하지만 좌절과 절망의 시간 속에서 저희 가족은 ‘내려놓는 법’을 배웠어요. 하루는 아내가 제게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그동안 나는 남편이 사장이 되고 목사가 되길 원했던 게 아니라 사장이고 목사인 남편의 아내가 되길 바랐던 것 같다’고요. 그러면서 저희 가족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가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는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는다. 집 근처 골프연습장에서 운동을 하던 그는 어느 날 골프장 문이 잠겨 있자 그 옆에 있는 온누리교회에 매일 새벽기도를 나가는 아내를 찾아간 것이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처음 교회에서 기도하는 신도들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설교가 끝나고 어둠 속에서 울부짖고, 방언을 하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낯설고 거북하게 느껴졌던 것.
“이게 말로만 듣던 ‘사이비 종교구나’ 싶었어요(웃음). 순간 ‘일주일만 취재해서 ‘카메라 출동’에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아내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묵상만 하고 있었는데, 순간 ‘중증환자(?)’는 아니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취재를 목적으로 매일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를 나갔는데 나흘째 되는 날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예배 중 찬송가를 부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아내는 다음 날 바로 교회 목사를 집으로 초청해 영접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가 교회에 나오기 전부터 ‘남편이 교회에 나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오던 아내였기에 이번이 남편을 적극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던 것. 하지만 그는 목사를 보자마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당장 집에서 쫓아낼지, 아니면 잠깐 앉아서 얘기를 들을지’ 고민을 했는데, 결국 그는 목사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방석에 무릎을 꿇고 설교를 듣기 시작했다.

iMBC 사장직 내놓고 미국에서 신학공부 마치고 돌아온 조정민 전 앵커

“그 사건 이후 아내와 함께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했어요. 저와 비슷한 상황의 남자 다섯 명이 집에 모여서 성경공부도 시작했고요. 하지만 처음에는 다들 술병을 하나씩 들고 왔어요. 성경공부도 좋지만 남자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는 게 더 좋았던 거죠. 어느 날은 술에 취해 다 같이 손을 잡고 기도를 하기도 했어요(웃음). 하지만 성경공부를 시작한 지 4개월째로 접어들자 더 이상 술병은 보이지 않더라고요.”
새벽기도를 나가는 동시에 술도 완전히 끊어버린 그는 신앙생활을 통해 가장 먼저 경험한 변화는 ‘회개’였다고 한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왔으며, 아내와 아이들에게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 마음 깊숙이 반성하게 됐다고. 가장 먼저 그는 아내에게 세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술을 완전히 끊을 것,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대화 중 아내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줄 것.
“연애할 때는 하루에 네 번도 만날 정도로 열정적이었는데 결혼하니까 많이 변하더라고요. 특히 부부간에 대화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아내는 한 가지 일어난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그런 아내에게 매번 ‘그래서 결론이 뭔데? 결론만 말해!’ 하고 윽박지르기 일쑤였으니 도저히 대화가 이뤄질 수 없었죠. 하지만 아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기로 약속한 날부터 부부간에 대화가 많아졌어요. 어떤 날은 새벽 4시까지 졸면서 아내의 말을 듣기도 했죠(웃음).”

“가족에게 용서를 구하자 아내와 대화가 늘고 아이들과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됐어요”
부부간의 대화가 늘어난 지 1년 반 정도 지났을 무렵 아내는 그에게 뜻밖의 고백을 했다고 한다. “이제야 드디어 당신을 믿을 수 있게 됐다”고 말한 것. 순간 그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고 한다. 그 어떤 명예나 부를 얻은 것보다, 평생 반려자인 아내에게 믿음을 얻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아이들과의 관계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이들을 자신의 기분대로 다루고 권위적인 모습을 많이 보였던 그가 신앙을 갖고부터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 아이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두란노 아버지학교를 다녀오고 큰아들에게 처음으로 용서를 구했어요. ‘그동안 너에게 윽박지르고, 때론 매도 들고, 약속도 지키지 못한 아버지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하고요. 큰아들은 처음에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저의 진심어린 사과에 결국 눈물을 펑펑 쏟더라고요. 그런 아들을 안고 저도 한 시간 넘게 ‘미안하다. 용서해달라’며 눈물을 흘렸어요. 그 후로 제가 아이들에게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어요. 서로 만나기만 하면 안고 등도 두드려주면서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나누죠.”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들은 군 입대를 앞두고 얼마 전 한국으로 돌아왔고, 둘째 아들도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는 성령이 충만했을 때와 술을 많이 마셨을 때의 증상이 비슷하다고 말한다. 가끔 눈물을 흘리고, 고백을 하며, 너무 많이 먹었을 때는 밖으로 토해내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그는 “성령을 많이 먹으면 내 안의 상처와 분노, 악한 마음을 밖으로 분출하게 된다”며 “과거 폭탄주를 마시고 다니던 시절 묻은 세상의 때가 이제야 조금씩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정민씨는 오는 10월 목사 안수를 받을 계획이다. 그는 “평생을 다 바쳐 다음 세대들이 소명을 가지고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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