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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도보여행 다녀온 김종휘·차승민 부부

기획·송화선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07.08.22 09:59:00

많은 이들이 훌쩍 떠나는 삶을 꿈꾸지만, 실제로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두 달여간 함께 도보 여행을 다녀온 부부가 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와 아내 차승민씨. 두 달 동안 인적 드문 바닷길을 함께 걸으며 부부 사랑이 더욱 돈독해졌다는 이들을 만났다.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도보여행 다녀온 김종휘·차승민 부부

부부는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중함을 잊기 쉬운 사이. 큰마음을 먹지 않으면 같이 여행 한 번 떠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관계다. 최근 우리나라 부부 10쌍 가운데 4쌍은 결혼 뒤 한 번도 ‘둘만의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돼 놀라움을 줬는데, 이들이 내세운 이유는 ‘아이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시간이 안 돼서’ 등이었다.
김종휘(41)·차승민(33) 부부에게도 이처럼 “떠날 수 없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떠났다. 2005년 11월 결혼식을 올린 지 불과 다섯 달 만인 지난 2006년 4월부터 6월까지, 둘이 함께 바닷가를 걸은 것. 동해에서 시작해 남해를 돌아 서해까지 이어진 이 여행을 위해 김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고, 결혼 후 잠시 일을 쉬고 있던 차씨는 ‘무직’ 상태를 연장했다.
“사실 전 일 중독자였어요. 일을 손에서 놓으면 죽는 줄 알았죠(웃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런 제 모습에 회의가 생기더군요. 결혼 전 아내에게 ‘몸과 마음 맞대고 같이 노는 시간을 많이 갖자’고 약속했는데,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연애할 때보다도 둘이 같이 밥 먹는 날이 더 적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문득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죠. 아내와 함께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을 안쓰럽게 생각하던 차씨도 김씨의 여행 제안을 두말없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당시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에서 일하며 문화평론가로 각종 매체에 칼럼을 연재하고, 한 방송사에서 문화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고 있던 김씨가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자마자 두 사람은 길을 떠났다. 애견 ‘고미’와 사료, 지도책만 챙겨든 단출한 출발이었다.
“어디까지 가겠다는 목표도, 언제까지 여행하자는 계획도 없었어요. ‘바닷길을 걷자’, 그게 우리가 정한 전부였죠(웃음).”
두 사람이 여행 장소로 ‘바닷길’을 택한 건 이들 사이에 늘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씨가 ‘하자센터’에서 동료 교사로 만난 차씨에게 반해 처음 ‘작업을 건’ 곳이 전북 변산 앞바다. 연애 도중 한때 이별을 한 두 사람이 ‘마지막 여행’을 떠난 곳은 동해 바다였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이들이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한 곳은 홍대 앞 작은 카페 ‘bar다’였다.

일상의 속도에서 벗어난 둘만의 공간에서 서로 닮아가며 ‘진짜 식구’ 돼
“하자센터에서 일할 때 아이들과 함께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강릉 바다까지 7박8일 동안 걸어가는 도보여행을 한 적도 있어요. 그 이후 저와 아내 둘 다 그런 여행을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닷길 여행을 하게 된 거죠.”
두 사람은 ‘지루해지거나 아플 때까지 바다를 끼고 걷자’고 마음먹은 이 여행의 이름을 ‘바바’라고 지었다. 바닷길을 따라가면서 바다를 바라보는 여행, 육지의 바깥에서 바깥으로만 걷는 여행이라는 의미. 거창한 목표가 없었기 때문에 출발지는 동해 북쪽 끝 통일전망대가 아니라 그 아래 속초 해수욕장으로 잡았고, 종착지도 서해 북쪽 끝 통일전망대가 아닌, ‘한참 아래’ 경기도 안산 언저리로 삼았다.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도보여행 다녀온 김종휘·차승민 부부

“처음부터 분단 철책선 아래 삼면 바닷길을 남김없이 걷자는 목표로 떠난 게 아니었거든요. ‘되는대로 걷자’는 생각이었으니까요. 여행 내내 걷기만 한 것도 아니에요. 처음 출발한 동해안에서는 오기를 부리며 내내 걸었지만, 남해안에서는 걷기와 버스 타기, 배 타기를 오락가락했고, 서해안에선 절반은 걷고 절반은 자전거를 탔어요. 어딘가 비어 있고 빠져있고 모자란 것, 그게 바로 ‘바바여행’의 성격이었죠.”
김씨의 말처럼 동해안 21일, 남해안 25일, 서해안 19일 동안 이어진 ‘바바여행’은 우연과 변칙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일단 날씨가 애를 먹였다. 흐린 날이 잦고 수시로 비가 내렸다고. 함께 간 개 ‘고미’가 아파서 큰 도시 동물병원에 가느라 여행길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얕아뵈는 하구를 건너려다 물살에 휩쓸려 배낭 속 짐은 물론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전화기까지 모조리 망가뜨린 탓에 서울에 다녀간 적도 있다고 한다. 사소한 다툼도 많았다.
“여행 초반 부산에서 ‘고미’ 때문에 싸운 기억이 나요. 빗길을 걷느라 발에 습진이 생겼는지 잘 못 걷더라고요. 그걸 보고 아내가 저한테 안고 가라고 하는데 전 ‘그냥 더 걷게 해’하며 고집을 부렸어요. 그랬더니 갑자기 울더군요. 그러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멀리 떨어져 걸었어요.”
이런 자잘한 갈등을 풀어준 건 저녁시간의 오붓한 술자리. 여행을 마친 뒤 숙소를 잡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 금세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매일 세끼 식사를 함께한 여행에서 두 사람은 이틀 건너 한 번 정도는 술과 더불어 푸짐한 저녁을 먹었는데, 김씨는 “그 덕분에 여행 경비 대부분이 식비로 나갔지만, 한집에 살 때보다 더 서로를 잘 이해하는 ‘진짜 식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성격이 많이 달라요. 저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얘기를 해서 풀어야 하는 스타일인데, 남편은 화가 날수록 더 말이 없어지죠. 여행에 대한 생각도 달랐어요. 전 함께 여행을 하면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마치 일을 하는 것처럼 계속 사진을 찍고, 그냥 걷기만 하더라고요. 처음엔 ‘여기까지 와서도 저러다니’ 하는 생각에 남편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남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제 마음이 달라지더군요. 자연스럽게 저게 남편의 모습이라는 걸 깨닫고 이해하게 된 거예요.”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도보여행 다녀온 김종휘·차승민 부부

차씨는 “나는 가급적 일을 저지르지 않고, 청결하지만 정리는 잘 하지 않는 타입인데 남편은 일을 자꾸 저지르고, 청결하지는 않되 정리는 잘하는 성격”이라며 “결혼 전엔 이런 차이 때문에 서로에게 끌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뒤엔 바로 그 차이 때문에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서로에게 그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던 두 사람은 여행을 하며 비로소 그런 갈등을 터놓고 얘기하게 됐다고.
“일상 속에서는 서로에게 불만이 있어도 그냥 넘어가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불만이 쌓이고 문제가 더 커져간 것 같아요. 그런데 한적한 바닷가에 둘만 있으니 생각은 단순해지고 감정은 정직해지더군요. 덕분에 서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차씨는 결혼 전 선배들에게 “남자는 절대 안 바뀌고, 바꾸려고 하면 여자만 힘들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지만, 감정적으로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며 비로소 “남편은 원래 저런 사람이고, 절대 고칠 수 없겠구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포기하거나 체념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계획 없이 ‘그냥’ 떠나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 얻을 수 있어요”
“단둘이 사소한 것까지 보고 이야기하며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저도 모르는 새 제가 남편을 닮아가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예를 들면 남편이 다리를 떠는 습관이 있어서 집에서는 심하게 잔소리를 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엔가 제가 다리를 떨고 있더라고요(웃음).”
“여행을 통해 서로 닮아가게 됐다”며 차씨가 웃음을 터뜨리자 김씨는 “그 덕분에 내가 많이 편해졌다. 여행 후 아내의 잔소리가 많이 줄었고, 종종 ‘이런 것 좀 고치면 좋겠다’고 할 때조차 어조나 말투가 부드러워졌기 때문”이라며 마주 웃었다.
‘바바여행’은 모두 다섯 번의 ‘작은 여행’으로 나뉘어 이어졌다. 여행 도중 갖가지 이유로 서울 집에 들렀다 다시 시작한 것을 기준으로 1차는 경북 울진까지, 2차는 부산까지, 3차는 전남 해남까지, 4차는 전남 목포까지, 5차는 경기도 안산까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여행에서 두 사람이 함께 걸은 것은 아니다. 3차 여행을 마친 뒤 차씨는 서울로 돌아와 집에 머무르고 4차부터는 김씨 혼자 여행했다고.
“중간에 싸워서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처음부터 ‘어디까지 가자’고 마음먹은 게 아니라 ‘걷고 싶을 때까지 걷자’고 생각한 거였기 때문에, 그만 하고 싶을 때 그만둔 거죠.”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도보여행 다녀온 김종휘·차승민 부부

차씨의 대답에 김씨는 “아마 여행하면서 내가 자꾸 길을 재촉하는 게 싫었던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같이 걷다가 아내가 뭔가를 발견하고 신나서 ‘이리 와서 이것 좀 봐’ 하는데 그냥 지나쳐버린 적이 많았어요. ‘여기서 같이 밥 먹고 가자’고 해도 ‘그냥 조금 더 걷자’고 했죠. 바닷길을 걸었지만 아내가 동행한 세 번의 여행 동안 제가 바다에 발을 담근 건 서너 번밖에 안 돼요. 목표나 계획 없이 그냥 걷자던 처음의 약속을 잊고 마치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서두른 거죠. 여유를 찾겠다며 일을 다 버린 채 떠나놓고도 여전히 목적 의식과 속도감에 묶여 있는 제 뒤통수에 대고 아내는 ‘어디 퀵서비스 배달이라도 가느냐’며 핀잔을 주곤 했어요(웃음).”
차씨가 서울로 올라간 뒤 혼자 여행을 하며 김씨는 비로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많이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슬그머니 아내의 여행을 흉내내기 시작했다고. 아름다운 해변이 나오면 신발과 양말을 벗은 채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아내가 좋아했을 법한 그네를 만나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걸터앉아 발을 굴렀다고 한다. 아름다운 언덕에서 배낭을 베개 삼아 누운 채 하늘을 바라보며, 그는 함께 있는 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아내의 존재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계속 함께 걷지 않았지만, 김씨는 모두 다섯 번의 여행을 아내와 함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기억이 가득 남았다. 짧지 않은 여행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좋았던 기억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 하나를 고를 수 없을 만큼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남 남해군 다랭이마을에서 본 보름달, 강원도 양양군 ‘범바우 막국수’ 집에서 먹은 막국수와 시골 두부, 동동주 한 사발, 전남 여수시 돌산도 노점에서 먹은 커피빵과 쑥빵…. 막상 입을 열자 이 부부에게선 아름다운 추억들이 끝없이 쏟아져나왔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만난 갈매기와 주인 없는 개 한 마리까지, 여행지에서 함께 겪은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 모두가 그들의 마음속엔 소중히 남아 있는 듯했다.
“한 회사에 꾸준히 다니지 않아도 되는 제 일의 특성상 과감하게 직장을 그만두고 긴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행을 마친 뒤 느낀 건 부부 여행에 있어 기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단둘이서 함께 떠난다면 당일 여행도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은 문신처럼 깊게 남는 추억이 될 테니까요. 오래 생각하지 마세요. ‘그냥’ 떠나면 됩니다(웃음).”
여행 후 다시 ‘하자센터’에 취업해 기획단장과 공연단체 ‘노리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최근 ‘바바여행’의 기록을 담은 산문집 ‘아내와 걸었다’(샨티)를 펴냈다. 책 속에서 그는 “텅 빈 바다와 텅 빈 해수욕장에 인적이라곤 아내와 나 달랑 둘뿐이다. 한참을 떨어져 걸어도 저만치 먼 곳에 한 점으로 보이는 아내는 나와 같은 곳에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그 거리와 공간만큼 서로 넓어진 우리는 계속 연결되어 있다”고 회고하며 한층 깊어진 부부 사랑을 고백했다.
“결혼을 통해 이미 서로에게 당도했다고 믿는 건 착각”이라고 말하는 이 부부는 “앞으로도 수시로 함께 길을 떠날 것”이라고 다짐했다.

여성동아 2007년 8월 5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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