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부서진 기둥, 1944, 캔버스에 유채, 40×30.7cm, 돌로레스 올메도 컬렉션
한여자가 울고 있습니다. 붕대를 감았고 온몸에 못이 박혀 매우 아픈 것 같습니다. 몸속에는 등뼈 대신 기둥이 몸을 떠받치고 있는데 그것도 금이 가 곧 부서져 내리려고 합니다. 뒤로 펼쳐진 배경은 황무지처럼 삭막하네요. 몸과 마음이 아픈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프리다 칼로는 살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나타내기 위해 그린 그림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프리다의 고통은 여섯 살 때 시작되었습니다. 소아마비에 걸려 동네 친구들로부터 “나무다리 프리다”라는 놀림을 받았습니다. 열여덟 살 때는 타고 가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면서 심각한 중상을 입었습니다. 대퇴골과 갈비뼈가 부러졌고 골반은 세 군데, 왼쪽 다리는 열한 군데가 골절되었습니다. 오른쪽 발은 아예 으스러졌는가 하면, 왼쪽 어깨는 빠져버렸습니다. 그러고도 살아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엄청난 사고였지요.
프리다는 사고의 후유증으로 갖은 고통을 겪었고 두 차례나 유산했습니다. 남편 디에고 리베라는 그런 프리다를 두고 다른 사랑을 좇아 떠나기도 했지요.
프리다는 “이런 날들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고 한탄했는가 하면, “유일한 희소식은 (통증이 없어진 게 아니라) 참는 데 익숙해졌다는 것이다”라고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리다에게는 그림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열여덟 살 때의 사고로 침대에 오래 누워 있게 되면서 배우기 시작한 그림이 평생 그의 아픔과 괴로움을 받아주고 그를 진정으로 위로해주는 친구가 되었지요. 이렇게 그린 그림으로 프리다는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 한 가지 더∼ 현대 이전의 문명은 대부분 남성 중심이었습니다. 남성이 권력을 쥐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활동으로부터 여성을 떠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여성의 인권이 존중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여성이 사회 각 분야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기게 됩니다. 프리다 칼로 역시 화가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는데, 여성의 시각을 잘 살린 그림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이주헌씨는… 일반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서양미술을 알기 쉽게 풀어쓰는 칼럼니스트로, 신문 기자와 미술 잡지 편집장을 지냈다. 현재 미술서 집필과 강연, 아트 경영 및 마케팅에 관한 컨설팅을 하고 있다. 러시아 미술관 탐방기 ‘눈과 피의 나라 러시아 미술’, 어린이를 위한 미술관 소개서 ‘이주헌 아저씨의 날아다니는 미술관 여행’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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