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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생이다

웃음치료사 진진연 굴곡진 인생 고백

기획·구가인 기자 / 글·안소희‘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진진연 제공

2007. 07. 23

우울증으로 인한 다섯 차례의 자살기도, 알코올 중독, 빙의체험 등 지독한 시련을 이기고 웃음치료사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진진연씨. 유년시절 불우한 가정환경과 왕따로 입은 상처 때문에 힘겨운 인생을 살던 그는 ‘웃음’을 만나 희망을 찾았다고 한다. 그가 자신의 굴곡진 삶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웃음치료사 진진연 굴곡진 인생 고백

진진연씨(37)를 만나기 위해 찾은 동대구역 대합실. 멀리서도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무표정한 사람들 속에서 가슴팍에 눈에 띄는 노란색 스마일 배지를 단 채 밝은 표정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 주변까지 환하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색하기 마련인 첫인사에서도 큰소리로 웃으며 손을 덥석 잡고 어깨를 토닥이는 게 꼭 10년 지기 친구를 만난 듯하다.
“제가 옛날에는 다른 사람 눈을, 심지어는 남편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어요. 아이가 네 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놀이터나 이웃집에 놀러나간 적이 없었고요. 사람이 무섭고 세상이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저 눈 잘 맞추죠?”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이처럼 묻는 진진연씨. 환한 얼굴, 경쾌한 목소리, 씩씩한 발걸음… 도무지 그늘이라곤 찾기 어려운데, 대체 그의 어디에 굴곡진 사연이 숨어 있는 걸까.
“딸만 다섯인 집안의 넷째 딸이에요. 아버지는 3대 독자였고요. 대충 제가 자란 환경이 짐작 되시죠? 태어날 때 환영은커녕 그냥 죽어버리라고 씻기지도 않고 윗목에 버려놓았다고 하더군요. 엄마와 할머니는 아버지를 유난히 닮은 저를 보고 제가 ‘고추’만 달고 태어났으면 모든 게 잘됐을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결국 진씨의 아버지는 작은부인을 들여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작은 부인과 정을 쌓지 못한 아버지는 자꾸 어머니를 찾았고, 그쪽 친정식구들이 찾아와 어머니를 때리는 일이 생겼다.
“내복만 입고 파출소로 달려가 우리 엄마 살려달라고 울기도 했어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죄책감 때문에 ‘나 같은 건 그냥 죽어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아버지는 이런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에 빠져 결국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셨어요. 우유부단했지만 항상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신 유일한 분이었는데 그렇게 돌아가신 후로 가족들은 마치 애초부터 아버지의 존재가 없었다는 듯 아무도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게 더 미칠 것 같더라고요.”

딸만 있는 집안의 넷째로 자라며 받은 상처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앓아
유년시절의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중학생이 됐지만 태생적으로 낙천적이었던 그는 공부도 제법 잘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한 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또다시 견디기 힘든 시련이 찾아왔다. 교내 연극공연에서 주연을 맡았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한 것. 연일 계속되는 집단 구타와 괴롭힘에 시달리며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한없이 추락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냥 땅으로 쑥 꺼져버리는 것 같았죠. 혼자 밥 먹고, 혼자 공부하고… 어떻게든 친구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무조건 친구들이 시키는 대로 했어요. 그랬더니 줏대가 없다고 또 따돌리더군요.”
문제는 학교뿐만이 아니었다. 집에서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다. 특히 그의 큰언니는 자매들 중 유난히 아버지를 닮은 그에게 이유 없는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고, 다른 식구들 누구도 그를 보살펴주지 않았다. 그는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투명인간 같은 취급을 받았다.

웃음치료사 진진연 굴곡진 인생 고백

“친구들이 대입시험을 치는 날 저는 죽기 위해 약을 먹었어요.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었어요. 아마도 무의식속에서는 그렇게라도 애정을 갈구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느낌이 없었으니까요. 쥐약을 먹었는데 위세척을 하고 간신히 살아났죠. 하지만 그 후에도 저 자신이나 저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 모두 변한 게 없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됐지만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직장에서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사람들을 대하는 게 두렵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서 자신의 꿈을 찾아보려 했으나 그 역시 인간관계 때문에 좌절하고 몇 달 만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 진씨는 세 차례나 더 자살을 시도했다. 유리조각으로 온몸에 상처를 냈고, 수면제와 쥐약을 삼켰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다가 스물네 살에 남편을 만나 두 달 만에 결혼식을 올렸어요. 지긋지긋한 큰언니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도피처로 선택한 결혼이 순탄할 리 없잖아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허니문베이비로 딸 유빈이(13)가 생긴 거예요. 처음엔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어른들께 사랑받기 위해 몸이 바스라지도록 노력했지요. 하지만 유빈이 역시 처음엔 딸이라는 이유로 환영을 받지 못해 제 안에 쌓인 분노가 다시 폭발한 것 같아요.”
그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가장 힘없고 죄 없는 유빈이를 향해 터졌다. 강박적인 결벽증에 아이를 하루 세 번씩 목욕시키며 박박 닦이고 옷가지 하나, 양말 한 짝도 비뚤어진 모습을 참지 못했다. 젖병을 ‘꽂아주는’ 기계처럼 아이를 대했다. 유빈이가 좀 더 자라자 자신처럼 무시당하지 않는 사람으로 키울 욕심에 조기교육에 열을 올렸다.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는 학대에 가까운 폭언도 했다. 뒤돌아서 후회하고 울기를 반복하면서도 내면에서 치밀어오르는 화는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이한테 참 몹쓸 짓 많이 했어요. 이유식을 먹이다가도 국물 한 방울을 흘리면 옷을 모두 벗겨서 새로 입혔으니,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혔지요. 멋모르는 아이를 샤워기로 얼굴이고 머리고 사정없이 씻기면 자지러지곤 했어요. 그러니 제가 이름을 부르면 겁에 질려 무조건 두 손을 싹싹 빌더라고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들려주던 그도 딸 유빈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눈망울이 흐려졌다.

딸 앞에서 손목 긋고 자살기도, 그가 웃음을 되찾자 딸이 가장 기뻐해
그는 죄책감을 잊기 위해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다 마신 술병을 모아 새 술을 살 지경이었다. 창피한 줄 모르고 술을 쌓아놓은 채 항상 술에 취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 우울증을 이기지 못하고 딸이 보는 앞에서 다섯 번째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그날도 술에 잔뜩 취해 있었어요. 세상이 밉고 더럽다는 생각에 집안의 물건을 모두 밖으로 집어던지고 술병을 깨서 제 몸 이곳저곳에 상처를 냈어요. 급기야 손목까지 그었고 침대며 옷이며 피로 범벅이 됐지만 기억조차 나지 않아요. 병원에서 깨어났을 때 맨 먼저 유빈이가 떠올랐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사건 이후 진씨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다. 장애인 봉사활동을 시작하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동화구연도 배웠다. 봉사활동을 통해 그는 처음으로 ‘웃음’을 만났다. 자신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노래를 들으며 한쪽 팔이 없는 분들이 자기 어깨며 무릎을 치면서 웃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또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바라보며 그는 처음으로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몸무게가 43kg까지 빠져 해골 같던 얼굴에도 웃음이 서렸고 찌푸린 표정도 조금씩 밝아졌다.

웃음치료사 진진연 굴곡진 인생 고백

진진연씨가 웃음치료를 통해 달라지자 가장 좋아한 사람은 딸 유빈양이었다. 이제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됐다.


그러나 진진연씨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3년 야간대학에 진학, 공부를 하며 봉사활동에도 열심이던 그는 대구지하철 참사를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었다. 2백여 명의 희생자를 낸 사고 전철 바로 앞차를 탔던 것. 보통사람들이라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겠지만 그는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분향소를 찾았는데 분향을 하는 순간 정신을 잃었어요. 그때 흔히 말하는 빙의를 체험한 것 같아요. 귀신 씐 사람처럼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끊임없이 악몽에 시달렸어요. 내림굿을 받아야 한다, 푸닥거리를 해야 한다, 주변에서 난리가 났었죠. 하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니 정신을 차려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제 어깨에 앉아 있는 것만 같은 그 ‘무엇’을 토닥이고 달래주었어요.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스르르 악몽에서 깨어나더군요.”
하지만 몸도 마음도 쇠약해진 그는 다시 한없는 무기력감에 빠졌다고 한다. 심리상담 치료도 받아보았지만 우울증의 늪은 깊고 깊어서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었다.
“한 달을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면서 누워만 있었어요. 의식이 가물가물한데 창밖에서 지나가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어요. 홀린 듯이 그 소리에 이끌려 맨발로 집을 나섰더니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고 있더군요.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놀라서 따라 나왔어요. 그때 남편을 붙잡고 ‘여보, 단 한 번만이라도 나도 저 아이처럼 웃고 싶어, 여보! 제발!’ 하고 말했어요.”
그는 2005년 가을 신문에서 ‘웃음치료’라는 생소한 단어를 접하고 ‘한국웃음연구소’(소장 이요셉)에서 주최하는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에 참여했다.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이란 2박3일 동안 숙박하며 웃음의 중요성을 깨닫고 맘껏 웃는 일종의 정신치유 프로그램이다.
“그곳에서 정말 작정을 하고 웃었죠. 제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웃었습니다. 한동안 웃고 났더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어요. 그렇게 울면서도 미친 듯이 웃었어요. 행사에 참여한 60여 명 중에서 스마일 퀸으로 뽑힐 정도였으니까요. 절박한 심정으로 웃는다는 걸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웃음치료를 받으며 진씨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일생을 괴롭혔던 우울증과 마음의 상처가 웃음으로 치유가 된 것이다.
“웃음치료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고 정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죠. 물론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에요. 주기적으로 대인기피 증상과 무력감에 빠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웃음요법을 실천하고 동료들을 만나 웃음을 충전합니다. 그러면 곧 훌훌 털고 일어나게 돼요.”
한동안 무력감에 제 몸조차 가누지 못하던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음을 찾자 남편은 안도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변화를 누구보다 좋아한 사람은 다름 아닌 딸 유빈이었다. 처음에는 극적으로 달라진 엄마의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지만 꾸준한 노력과 변화된 모습에 조금씩 믿음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유치원 시절 별명이 ‘간섭쟁이’로 통해 친구가 없던 유빈이었다.
유빈이는 한 번도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온 적이 없었다. 결벽증적인 성격 때문에 친구의 잘못을 참지 못했고 화가 폭발하면 앞뒤 가리지 않아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집에서는 거의 말이 없는 붙박이 가구 같은 아이였다.
“딸아이와 함께 웃기 시작했지요.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다!’라고 외치며 크게 웃고 하루를 시작했어요. 엉덩이 한 번 부딪치며 웃고, 볼 한번 비비며 웃고…. 감사 일기를 교환하고 칭찬 메모를 수시로 방 여기저기에 붙여놓았죠. 수박을 먹으면서도 그냥 안 먹고 수박씨를 붙이고 웃으며 먹었어요. 우리가 개발한 웃음이 ‘나 잡아봐라 웃음’ ‘목욕탕 웃음’ 등 수십 가지가 넘어요. 그냥 눈만 마주쳐도 웃는 거예요.”
그렇게 웃었더니 모녀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됐다고 한다. 진씨는 폭군엄마에서 ‘인기짱 엄마’로 변했다. 유빈이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기 시작했고 집에 놀러온 친구들은 “너희 엄마 정말 재밌다”며 부러워했다.
“딸아이 친구들에게뿐 아니라 어딜 가도 저는 항상 인기가 좋아요. 제가 스마일 고무신을 신고 돌아다니면 모두들 즐거워하죠. 남편 직장에서도 남편보다 인기가 더 좋아 남편이 ‘니 얄미운 데가 있는 거 아나’ 하며 샘을 낼 정도예요. 예전에 저와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저를 만나면 열에 아홉은 못 알아봐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목소리까지 변했대요.”
이제 그는 ‘웃음치료사’로 강의와 상담을 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틈틈이 사이버대학을 다니며 상담심리도 배우고 있는 그는 어디선가 예전의 자신처럼 마음의 아픔을 가지고 있을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한다.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꿈이라는 진진연씨. 그의 꿈은 환한 웃음과 함께 벌써 이루어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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