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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으로 나서 시 띄우는 안도현

글·김수정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6.22 10:20:00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로 꾸준히 사랑받아온 안도현 시인이 최근 문학집배원으로 나섰다. 그가 매주 월요일마다 시배달에 나선 사연, 휴대전화 없이 느긋하게 사는 일상에 관해 들려주었다.
문학집배원으로 나서 시 띄우는 안도현

전북 전주에 터를 잡고 사는 안도현 시인(47).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올라와 시를 낭송, 녹음한다는 그와 만날 약속을 하고도 인터뷰 당일 기자는 가슴을 졸여야 했다. 그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약속시간에 맞춰 여유롭게 걸어 들어온 그는 “예전 사람들은 휴대전화 없이도 잘 살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옛날에는 ‘언제 어디서 보자’고 말한 뒤 며칠이 지나서도 잘 만났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제가 전주 촌사람으로 오래 지내다 보니 좀 느긋해진 것 같아요(웃음).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고나 할까요? 없애버렸더니 아주 편합니다. 잠깐 동안은 누구한테 전화나 오지 않을까 전전긍긍했지만 지금은 ‘급하면 알아서 연락하겠지’란 생각으로 살죠. 허허허. 누군가와 말하고 있다가도 전화가 오면 뚝 끊어지고 마는데, 조그마한 기계 하나가 시간을 간섭하고 사람을 갈라놓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그는 무슨 일을 하든 ‘빨리빨리’ ‘용건만 간단히’를 강조하는 세상이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그래서 예전의 우리네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한적한 전주가 참 좋다고.

자상한 아빠, 푸근한 아저씨로 기억되고 싶은 시인
“사후 50년까지 저작권이 보장된다는 걸 어찌 아는지 하루는 책장 정리를 돕던 아들이 ‘이 시는 내 것, 이 시는 누나 것’이라면서 나눠놓데요. 제가 쓴 시나 동화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는데 늘 재미없다고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도 미리미리 챙겨두는 걸 보면 우스갯소리로 배신감까지 든다니까요. 허허허.”
슬하에 베이징대에 유학 중인 딸 유경양(22)과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민석군(17)을 둔 안도현 시인은 집에서는 자상한 아빠, 밖에서는 푸근한 아저씨로 기억되고 싶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편안한 놀이 상대가 되고 싶다고. 그는 아이들을 보면 때로 자신의 옛 모습이 기억나 대화를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4형제 중 맏이로 태어난 그는 학창시절 공부를 뒷전으로 한다는 이유로 부모와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기대를 한 몸에 받은 터라 부모의 잔소리는 늘 부담스럽게 여겨졌다고. 그래서 그는 유경양, 민석군을 비롯한 모든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길 바란다고 한다.
“예전의 아이들과 요즘의 아이들 마음이 다르고, 시골 아이들과 도시 아이들 혹은 심술이 난 아이들과 칭찬받은 아이들의 마음도 다 제각각이라 지켜보고 존중해줍니다.”
아버지 이름이 교과서에 나오면 자녀들이 좋아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손사래를 친다.
“하루는 민석이가 제가 쓴 시를 들고 오더니 이것저것 묻데요. 아마 선생님이 ‘오늘은 민석이 아버지의 시를 읽자’면서 아들 녀석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나봐요.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는지 집에 와서 제게 다시 그 문제를 묻는데… 결국 못 풀었어요(웃음). ‘아빠가 쓰고도 모르면 누가 알아?’ 하며 투정하는데 식은땀이 다 났습니다.”

문학집배원으로 나서 시 띄우는 안도현

한 달에 한 번 서울에 올라와 시를 녹음하는 안도현 시인은 “늘 연애하는 마음처럼 설렌다”고 말한다.


몇 차례 이런 일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시인 안도현’에 대한 자녀들의 반응은 영 시원찮다고. 그래도 그는 아이들과 함께 시를 읽고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고 한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그는 81년 스물한 살의 젊은 나이로 대구매일신문을 통해 등단했고 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으로 다시 당선됐다. 이듬해 2월, 이리중학교 국어교사로 부임하면서 교직생활을 시작했으나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한 것이다. 95년 전북 장수군 산서고등학교로 복직했지만 2년 만에 퇴직했다. 이미 교사란 직업은 그에게서 멀어져 있었다고.
“해직당했던 스물여덟 살 때부터 4년 넘게 백수로 지내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수입이 없어 아내의 마음고생도 심했고요. 그때는 글쓰기 자체가 노동이었어요. 빠듯하게 시를 써야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요.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기보다 굶어죽지 말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클 정도였습니다.”
대학 때 만나 연애 결혼한 아내 박성란씨(45)는 그런 그를 많이 이해해줬다고 한다. 아내의 지지로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될 수 있었다는 그는 전북 전주의 한 작은 농가를 고쳐 지금의 보금자리를 틀었다고. 현재는 우석대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한 것은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연어’다. 96년 발표한 이 책은 11년간 70여만 부가 판매됐다. ‘연어’에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삶을 그렸던 그는 올해 말쯤 ‘연어2’도 집필할 계획이라고 한다.
“‘연어’ 100쇄를 기념하는 콘서트가 5월25일 명동성당에서 열려요. 벌써 100쇄라니 놀라울 뿐이죠. 책을 읽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감동받았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저 자신에게도 큰 변화를 줬어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새로운 양식을 만들었다는 책임감이랄까요. 글 쓰는 일이 나 혼자만의 성과물이 아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죠. 특히 몇 년 전 수녀님들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연어’ 점자책을 만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습니다. ‘연어2’는 더 박진감 넘치게 쓸 테니 기대해주세요.”

돈 들지 않고 행복과 즐거움까지 얻어갈 수 있는 시 읽기의 즐거움
“얼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서전인 ‘라이프치히 도서전’ 참관도 하고 독일어판으로 번역된 ‘연어’의 낭독회도 열 겸 독일에 다녀왔어요. 그곳 청소년들이 책을 낭독한 뒤 끊임없이 대화거리를 만드는 모습이 참 좋아보였습니다.”
독일에 다녀온 뒤 낭독의 즐거움을 깨달은 그는 5월 초부터 ‘문학집배원 안도현의 시 배달’을 시작했다고 한다.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이메일을 통해 시 한 편씩을 사람들에게 배달하고 있는 것. 지난해 도종환 시인이 한 일을 물려받았다는 그는 “내 육성이나 성우, 아나운서의 낭송에 애니메이션 등의 이미지 플래시가 더해져 재밌게 받아볼 수 있다”고 말한다.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 홈페이지(www.for-munhak.or.kr)를 통해 신청한 사람은 무려 23만 명. 지난해보다 15만 명이 늘었다고 한다. 개인은 물론 단체별로 수신 문의가 들어오기도 하고, 요새는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 학생들까지 신청한다고.
한 달에 한 번 전주에서 올라와 마이크 앞에 선다는 그는 수많은 강연에서 마이크를 잡았지만 녹음실에서 잡는 마이크가 색다른 긴장감을 준다고 한다. 자신이 녹음한 시가 사람들에게 보내질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고. 그러나 그는 처음 ‘문학집배원’이란 활동을 접했을 때 ‘떠 먹여준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자기 돈을 지불하고 산 책과 누군가에게 얻은 책에 대한 애정이 다르듯이, 이것도 ‘공’으로 얻은 거니까 휴지통에 버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죠. 하지만 제가 찾아낸 맛집을 남들에게 소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요. 저는 지금 독자와 시인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장애물도 치우고 벽을 허무는 사람이 돼야죠(웃음). 사람들이 배달받은 시를 자신이 아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또 전달해주길 원해요. 원래 맛있는 음식일수록 나눠 먹는 법이잖아요.”
안도현 시인은 지난 3월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을 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회상과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낀 감정을 담았다고 한다. 그는 “부모에게는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아이들에게는 자연이나 동물을 상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동시들은 올겨울 동요CD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부모님이 아이와 함께 시를 읽거나 노래를 부른다면 더없이 좋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방정환 선생처럼 아이들을 위한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최근 ‘북녘에 나무보내기 운동’이라는 것도 펼치고 있거든요. 북한을 몇 차례 방문하면서 바위산이나 민둥산이 너무 많다는 걸 알고 마음이 아팠죠. 푸른 산과 들은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건데…. 내년에는 북쪽 어린이들을 위한 사과농장을 만들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그는 늘 연애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어떤 일이든 가슴이 뛸 만큼 적극적으로 매달려 산다는 것. 특히 시를 읽다 보면 참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그는 “시를 읽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데, 행복과 즐거움까지 얻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헤드셋을 끼고 그가 녹음실로 들어섰다. 두런두런 대화를 주고받듯 시를 읊더니 “따뜻하면서도 아릿아릿한 느낌이 전해진다”며 눈을 감던 안도현 시인은 몇 번을 읽은 뒤에야 마음이 가라앉은 듯 차분한 음성으로 시를 낭송하기 시작한다.
이번 주 월요일 아침에는 그에게서 어떤 시가 배달될까.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진다.

여성동아 2007년 6월 5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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