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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장애 극복하고, 물의 생명력 화폭에 옮기는 화가 한경혜

글·구가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5.08 14:24:00

매일 천 번씩 절을 올리는 화가가 있다. 어린 시절 뇌성마비 장애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 성철스님의 권유로 천 배를 올려 목숨을 구했다는 한국화가 한경혜씨는 이후 26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천 번씩 절을 올린다고 한다. 끊임없이 “운명에 도전하며 살아간다”는 한경혜씨를 최근 열린 그의 개인전에서 만났다.
신체장애 극복하고, 물의 생명력 화폭에 옮기는 화가 한경혜

물속에서 물을 보다(4차원), 2007, 435×210cm(좌)


“석달 내내 농사만 지었어요(웃음).”
지난 4월11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인사동 공화랑에서 열린 ‘물속에서 물을 보다’전. 총 21점의 그림 속에는 생명을 상징한다는 물과 벼의 알곡이 빽빽하게 그려져 있다. 한국화가 한경혜씨(33)는 이 작품들을 완성하기 위해 지난 석 달간 대학원(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 겨울방학을 고스란히 바쳤다. 1~2m가 되는 화폭의 크기로 볼 때, 한 달 평균 7점의 그림을 그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엔 그림만 그렸죠. 제가 집중력이 있는 편이에요(웃음).”
2002년 첫 전시부터 이번 세 번째 전시까지 항상 그의 작품의 주제는 ‘물’과 닿아 있었다. 한씨는 자신에게 ‘물’은 “은유를 넘어 생명 그 자체”라고 말한다.
신체장애 극복하고, 물의 생명력 화폭에 옮기는 화가 한경혜

한경혜씨가 인생의 스승으로 꼽는 어머니와 함께.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가 있었어요. 일곱 살 때 음식물은커녕 물조차 마시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병원에서도 죽음을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죠. 그러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해인사로 성철스님을 찾아갔어요. 그때 스님이 삼천 배를 하라고 하셨죠. 사흘에 걸쳐 삼천 배를 했고 비로소 물을 삼킬 수 있었어요.”
그 뒤 그는 26년간 빠짐없이 매일 천 배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절 수행이 효과가 있었는지 한때 제 몸조차 못 가누던 중증 장애를 겪던 한씨는 불교 수행자도 어렵다는 하루 1만 번씩 1백일 간 절을 올리는 1백만 배 수행을 해냈으며, 지난 2002년에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오기도 했다. 처음 시작할 당시 한나절이 걸리던 천 배 수행이 이제는 매일 저녁 1시간 반 정도면 끝낼 수 있는 일과가 됐다고 한다.
“절을 하면 몸의 병이 고쳐지고, 그 뒤에는 마음의 병이, 나중에는 사주팔자가 바뀐다고 해요. 저는 장애라는 저 자신의 타고난 운명에 부딪쳐보고 싶었어요. 운명에 대한 도전장이라고 할 수 있죠. 제 의지대로, 제가 원하는 삶대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바꾸고 싶었고 덕분에 실제로 많은 것들이 바뀐 것 같아요.”

신체장애 극복하고, 물의 생명력 화폭에 옮기는 화가 한경혜

入(물새), 2007, 72.5×90.5cm(좌) 세상나오기, 2007, 45.5×53cm(우)


“나 자신을 잘 바라보게 해준 장애에 감사해요”
그동안 한씨는 자신 앞에 놓인 수많은 한계를 깨고 이겨내왔다. 중학교 졸업 후 곧바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학력을 딴 뒤, 미대 입학을 준비했지만 장애로 인한 편견으로 번번이 실기와 면접에서 쓴잔을 들이키자 학점은행제를 통해 미대 학력을 인정받았다. 이후 홍익대 대학원에 들어가 동양화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두 차례 특선과 네 차례 입선한 소장파 화가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요? 힘든 것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되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다 좋은데요, 뭐. 살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원하는 대학의 미술대학원에 합격했을 때였어요. 그 대학 미대에 들어가 화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정말 꿈이 간절하면 이뤄지는 것 같아요. 저는 재능을 가지고 있기보다는 노력을 해서 이뤄졌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재능 있고 잘 그리는 사람도 열심히 그리는 사람은 못 따라가요.”
한경혜씨는 인생의 스승으로 절의 세계에 들어가게 해준 성철스님과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꼽았다. 그의 어머니는 홀로 그와 그의 여동생을 뒷바라지해왔다.
“어릴 적 장애가 있었지만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모질다고 할 정도로 저를 강하게 키우셨어요. 늘 제 선택을 존중해줬고 제가 직접 부딪쳐 깨달을 수 있게 도와줬죠. 엄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대학원 졸업 후 기회가 되면 강단에 서고 싶다는 한씨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사는 ‘나눔의 집’에 자신의 그림을 기증하거나 ‘자이툰 부대원’들을 격려하고자 그림엽서 6천 세트를 보내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도 하고 있다.
“그냥 그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작은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보낸 것 뿐이에요. 사람이 너무 잘나면 우쭐해져서 진심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없잖아요. 저는 장애를 극복하고자 좀 더 저를 열심히 바라보게 됐고, 그와 연결해 사회생활도 활발히 하게 됐어요. 덕분에 성철스님을 비롯해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고요. 저는 장애에 감사해요.”
신체장애 극복하고, 물의 생명력 화폭에 옮기는 화가 한경혜

씨앗(잠재된 마음), 2007, 45.5×53cm(좌) 아름다운 날, 2007, 105×146cm(우)



여성동아 2007년 5월 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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