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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5주년 맞은 가수 김세환

글·송화선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7.03.21 10:06:00

70년대 부드러운 목소리와 해맑은 미소로 큰 인기를 모았던 가수 김세환. 올해로 데뷔 35주년을 맞지만 요즘도 공연할 때면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서는 그를 만나 가수로 살아온 지난 삶,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들었다.
데뷔 35주년 맞은 가수 김세환

김세환(59)은 청바지와 통기타로 대표되던 70년대 청년문화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긴 머리 짧은 치마~”로 시작되는 ‘토요일 밤’, “가방을 둘러멘 그 어깨가 아름다워~”로 시작되는 ‘길가에 앉아서’ 등 그의 노래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널리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
여전한 것은 노래만이 아니었다. 때 이른 봄볕이 내리쬐던 2월 중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자택에서 만난 그의 해맑은 미소, 편안한 목소리에서도 굳이 꾸미지 않아도 저절로 풍겨나는 젊음의 향기가 느껴졌다.
“저도 사실 제 나이를 잘 모르겠어요(웃음). 언젠가부터 그냥 늘 똑같거든요. 제가 유난히 덜 늙는다면, 그건 아마도 즐겁게 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대한민국에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행복해요. 자유로운 부모님 아래서 태어나 부족할 것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가수로 데뷔한 뒤에 바로 큰 사랑을 받았거든요.”
김세환은 지난해 향년 90세를 일기로 작고한 연극배우 김동원씨와 여고 시절 성가대 피아니스트로 활동한 홍순지씨(90) 사이에서 태어난 3형제 가운데 막내 아들. 예술을 사랑하고 개방적인 성품이던 부모님은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댄스파티를 열게 했을 정도로 아들을 자유롭게 키웠다고 한다.
“집에 당시로서는 드물게 큰 전축이 있었는데, 댄스파티가 열리면 부모님이 먼저 시범으로 춤을 보여주시고는 편하게 놀라며 자리를 피해주셨어요. 음악과 춤, 자유와 낭만이 살아 있는 환경에서 지금 생각해도 참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죠.”

‘트윈 폴리오’ 출신 윤형주 소개로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 가수의 길 걷게 돼
데뷔 35주년 맞은 가수 김세환

김세환의 건강은 20년 넘게 타 온 산악자전거 덕분이다(위). 두 살 터울인 아들, 딸 남매와 김세환 부부. 아들은 현재 군복무를 마치고 일본에서 연수 중이고 딸은 중앙대에서 바순을 전공하고 있다.


김세환은 큰형의 고등학교 친구로 자주 집에 드나들던 정성조 전 KBS 교향악단장 등과 어울리며 자연스레 악기를 배웠고, 형들 어깨너머로 팝송을 들으며 자랐다고 한다. 기타를 처음 치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한 대학생이 기타로 팝송을 연주하자 여학생들이 선망의 눈빛으로 몰려드는 장면을 보고부터였다고.
“집에 온 날부터 어머니께 기타를 가르쳐달라고 졸랐더니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기타를 사주셨어요. 그 뒤부터 밤낮없이 기타치며 노래를 불렀죠(웃음). 노래가 좋아서 불렀을 뿐,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대학교 2학년 때인 69년 TBC에서 ‘대학생 재즈 페스티벌’을 연다기에 친구들과 함께 밥 딜런의 노래를 들고 참가했다가 이름이 알려지게 됐죠. 본선에서 탈락하기는 했지만 그 사건으로 학교 안에서는 ‘노래 좀 하는 아이’로 소문이 났거든요. 그때부터 각종 교내행사에 불려다니며 노래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당시 경희대 신문방송학과 학생이었는데, 연세대 의대 시절 듀오 ‘트윈 폴리오’로 활동하다 팀을 해체하고 학교도 경희대로 옮아온 가수 윤형주의 소개로 71년 이종환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면서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별밤’에 나가서 비지스의 ‘돈 포겟 투 리멤버(Don’t forget to remember)’를 불렀어요. 그때만 해도 그냥 한 번의 방송 출연 정도였죠.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방송국에 ‘진짜 돈 포겟 투 리멤버 말고, 김세환과 윤형주가 부른 그 노래를 들려달라’는 엽서가 쏟아졌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저 ‘노래 좀 하는 학생’이던 제가 순식간에 가수가 된 거예요.”
김세환은 이듬해 윤형주와 함께 낸 데뷔앨범 ‘별밤에 부치는 노래시리즈’와 독집 ‘김세환 노래모음’ 등 두 장의 앨범으로 TBC 방송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상 남자 신인상을 받았고, 74년 MBC 10대 가수상과 TBC 방송가요대상 가수왕, 75년 TBC 방송가요대상 가수왕을 받는 등 최고의 통기타 가수로 이름을 날렸다.
“저처럼 고생 없이 큰 가수는 아마 가요사에 없을 거예요(웃음). 그저 좋아서 부른 노래로 과분할 만큼 큰 사랑을 받았죠. 저는 다른 가수들처럼 직접 작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 덕을 많이 봤어요. 송창식씨가 만들어준 ‘사랑하는 마음’, 윤형주씨의 ‘길가에 앉아서’, 이장희씨의 ‘좋은 걸 어떡해’ 등이 연이어 히트를 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김세환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행복’과 ‘감사’였을 만큼 그는 지금 충분히 행복해 보였고, 그런 자신의 오늘에 마음 깊이 감사하고 있는 듯했다.

“아내가 ‘당신은 너무 야망이 없어’ 하고 핀잔줄 때면 ‘그래서 행복하잖아’ 하고 말해요”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뒤 김세환은 행복한 가정도 꾸렸다. 친구의 부탁을 받고 축가를 부르기 위해 참석한 한 결혼식 피로연장에서 첫눈에 반한 일곱 살 연하의 아내 이현숙씨(52)와 78년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어려서부터 행복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저도 꼭 우리 부모님 같은 가정을 이루고 싶었어요. 저는 평생 단 한 번도 두 분이 큰 소리 내며 다투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거든요.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최고의 배우셨지만 집에서는 직접 화초를 다듬고, 눈비 오면 당신이 다 치울 만큼 궂은일을 도맡아 하셨죠.”
그래서 그는 결혼한 뒤부터 방송활동을 줄이고 가정에 충실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부모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 덕분에 미국 유학 후 군복무를 마치고 지금은 일본에 연수가 있는 아들 기범군(27), 중앙대에서 바순을 전공하고 있는 딸 도연양(25)과 격의 없이 지내며 마음을 나눈다고 한다.
“저희 부모님의 삶의 철학이 ‘자유롭고 편하게 살자’였어요. 저는 제 삶을 통해 아이들에게 그 정신을 전해주고 싶어요. 큰 계획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생하기보다는,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을 마음껏 누리라고요.”
김세환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찰기마대에서 승마 강습을 받았고, 젊은 시절에는 오토바이 경주를 즐겼을 만큼 만능 스포츠맨. 우리나라에 스키가 알려지기 전인 68년부터 강원도 등지를 다니며 스키를 탔고, 86년에는 미국 여행을 갔다가 처음 본 산악자전거(MTB·Mountain Bike)에 반해 우리나라에 들여왔을 정도로 스릴 넘치는 스포츠를 즐긴다고 한다.
“미국에서 산악자전거가 활성화된 게 80년대 초반이니, 우리나라에서는 제가 거의 처음으로 산악자전거를 탔다고 할 수 있어요. 정직하게 땀을 흘리는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때부터 산으로 들로 돌아다녔죠. 저는 요즘도 자전거를 타고 청계산을 오르내리고, 강원도 속초까지 다녀오기도 해요. 태백산맥의 대관령과 미시령을 1시간이면 올라간다는 걸 믿으시겠어요?(웃음)”
아직도 청년 못지않게 단단한 그의 체격은 끊임없는 자전거 타기를 통해 길러진 셈이다. 그는 3월 초 남다른 자전거 사랑과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아 산문집 ‘두 바퀴로 가는 행복’도 펴낸다.
“그렇게 건강을 유지하는 덕에 노래도 계속 부를 수 있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에도 윤형주씨, 송창식씨 등 예전의 동료들과 함께 포크음악 공연을 하고 있고, 최백호 남궁옥분 최성수 김범룡 등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가수들과는 매달 세 번째 월요일에 만나 병원이나 양로원을 다니며 자선공연을 하는 ‘세월회’ 모임을 갖고 있어요.”
그는 앞으로도 큰 목표나 계획 없이, 지금처럼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생각이라고 한다. 욕심 부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첫째 조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간혹 아내가 ‘당신은 너무 야망이 없어’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제가 그러죠. ‘그래, 없어. 하지만 그래서 행복하잖아’라고요(웃음).”
시원하게 웃는 그의 미소는 밝고 투명한 그의 노래를 똑 닮아 있었다.

여성동아 2007년 3월 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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