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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고(故) 임선희 선생 딸 부부가 들려주는 ‘생전의 삶, 아름다운 마무리’

기획·구가인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7.03.20 18:32:00

지난 1월 향년 76세로 세상을 뜬 수필가 임선희 선생. 남편을 잃고 3남매를 키우기 위해 40대 중반의 나이에 작가의 길에 들어섰던 고인의 삶을 딸과 사위인 구혜정·조병철씨 부부가 들려줬다.
수필가 고(故) 임선희 선생 딸 부부가 들려주는 ‘생전의 삶, 아름다운 마무리’

지난 1월 말 서울 이화여대 목동 병원의 장례식장에서는 유독 40, 50대 중년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모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뜨거운 화살처럼 네게로 가리’ ‘어머나 참 멋지네요’ 저자인 수필가 고 임선희 선생의 빈소에 조문 온 이들. 서울 마포 동아문화센터에서 ‘수필의 세계’ 수업을 통해 고인과 인연을 맺은 제자들이다.
“동아문화센터가 문을 열 무렵에 시작해 25년째 맡아 오던 수필교실 강의를 지난해 9월 그만두셨어요. 지난해 봄부터 건강이 나빠지면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셨는지 주변 정리를 하셨던 겁니다.”
고 임선희 선생의 딸 구혜정씨(51)와 사위 조병철 세계일보 논설위원(54)을 만났다. 고인은 생전에 번역서 12권과 수필집 13권 등 20여 권의 책을 펴내고 20여 년간 여러 신문·잡지 매체에 수필과 칼럼을 기고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이곳에서 열었던 수필교실 강의와 그를 통해 만난 제자들과의 동인회 ‘사계’에 특히 애정이 깊었다고 한다.
“저희 어머니가 다정다감하신 성격은 아니세요. 글을 비평할 땐 굉장히 신랄하고, 때로는 호되게 야단도 치셔서 눈물 흘렸던 제자들도 많대요. 그런데도 어머니의 스타일과 잘 맞는 분들은 계속해서 수업을 들었고, 3개월 단위로 진행되는 문화센터 강의를 20여 년간 계속 들어온 제자들도 있어요. 그 제자들 30여 명이 모여 10여 년 전부터 매년 한 권씩 동인지를 만들어왔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격려사를 써주셨죠. 오는 4월에 15호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격려사를 남기지 못하셨네요.”
고 임선희 선생이 수필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큰딸 구혜정씨가 대학 4학년이던 1978년,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뜨면서부터였다. 6·25 전쟁 직후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근무했던 미국대외원조기관(USOM)에서 만나 ‘요란한 사내 연애’ 끝에 부부의 연을 맺게 된 남편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장 과다출혈로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고 한다. 급작스럽게 남편과 사별 후 40대 중반의 ‘평범한 주부’였던 임선희 선생은 대학생인 딸, 아들과 고등학생인 막내아들, 3남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전부터 ‘가정주부’라는 직함을 달고 몇 번 수필을 기고한 적이 있는 ‘여성동아’에 고정 칼럼 ‘어머나, 참 멋지네요’를 맡아 썼고, 곧 따뜻한 감성과 서늘한 이성이 섬세하게 맞물린 글 솜씨를 인정받아 동아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이었던 ‘밤의 플랫폼’의 원고를 쓰다 1980년에는 본인이 직접 ‘행복의 구름다리’라는 라디오 프로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어머니에게 글쓰기는 취미나 아르바이트가 아닌 치열한 생업, 거의 매일 밤 새워 글을 써
“그 당시 어머니께 글쓰기는 취미나 아르바이트가 아닌 치열한 생업이었어요. 원고 청탁이 많아서 거의 매일 밤 새워 글을 쓰셨죠. 어머니는 청탁을 받고 오랫동안 고민한 후 시간이 다 돼서야 부랴부랴 글을 쓰는 스타일이셨어요. 마감 없이도 글을 써서 책 내는 작가들이 참 신기하다는 말씀도 하셨죠.”
사위 조병철 논설위원은 생전 장모와의 관계에 대해 “글쟁이로서 동업자끼리의 우정을 나눈 사이”였다고 말한다. 상대방 글에 대해 평을 하지 않는 것이 ‘글 써서 밥 먹는 사람들 간의 예의’였지만, 사회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사위와 긴 논쟁을 주고받았다고.

수필가 고(故) 임선희 선생 딸 부부가 들려주는 ‘생전의 삶, 아름다운 마무리’

고 임선희 선생의 생전 모습(왼쪽)과 2006년 가을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출간한 수필집(오른쪽).


“집안 모임이 있을 때면 푸근한 장모, 공손한 사위가 아니라 작가 대 기자로서 각자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가 많아 다른 식구들이 난처해하기도 했었지요.”
지난 2006년 가을 출간된 ‘이 시대의 귀족이고 싶은 그대’는 고인이 그동안 쓴 글을 모아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책. 지난해 초부터 책을 준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딸 구씨는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10여 권의 수필집을 내는 동안 한 번도 이미 출간된 글을 다시 책으로 묶어낸 적이 없으셨어요. 예전 글을 모아 책을 내는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싫어하셨거든요. 그런데 처음으로 이런 책을 준비하시는 걸 보고 뭔가 좋지 않다는 예감이 왔습니다.”
임씨의 건강이 서서히 나빠진 것은 2001년 큰 척추수술을 받은 다음부터였다. 지난해 봄부터는 상태가 더욱 악화돼 병원 출입이 잦아지다 담당의사로부터 ‘혈액암’ 선고를 받았다. “완치를 확신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정작 본인은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고.
“어머니께서는 억지로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당신 뜻대로라면 아예 입원도 안 했으면 좋겠지만 자식들한테 회한이 될까봐 병원에 들어가신다고 하면서,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병원비까지도 당신이 직접 마련하셨습니다.”
지난 2006년 9월30일에는 저서 ‘이 시대의 귀족…’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판기념회 보름 전,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고 있던 상태에서 의사들은 무리하게 행사를 여는 걸 반대했다고 한다.
“어머니도 저도,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고 이 기회가 다시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날의 출판기념회는 선생의 생전 마지막 외출이 되고 말았다. 사위 조 위원은 “돌아가신 후에 유품을 정리하며 보니 사진도 식구에 따라 주제별로 정리를 다 해놓으셨다”면서 “미리 자신이 떠날 시간을 준비하신 것 같다”고 회상했다. 자신의 글에 실린 문구처럼 “패자의 걸음으로 평생 끝나지 않는 길을 가는 성지 순례자”의 자세로 수필가의 길을 걸었던 고인다운 삶의 마무리였다.

여성동아 2007년 3월 5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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