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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구가인 기자의 Space

이화동 낙산길

보물찾기하듯 멋진 예술작품 만날 수 있는~

글·구가인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2007. 03. 14

서민동네 낙산이 “예뻐졌다”. 지난해 여름부터 6개월간 예술가와 동네사람들이 ‘낙산 프로젝트’를 이끈 덕에 동네 곳곳에서 예술작품을 볼 수 있게 된 것. 서울 혜화동 방송통신대 뒤편에서 시작해 낙산공원을 끼고 이화동으로 이어지는 낙산길, 보물찾기하듯 동네구경에 나섰다.

이화동 낙산길

낙산공원 산책로 난간에 설치된 조형물, 백민준 ‘가방든 남자’(왼쪽) 어린이집 담장에 설치된 이화진의 ‘어린이와 새’(오른쪽)


이화동 낙산길

고선경, 신창용, 윤기원, 이완, 인동욱이 참여한 ‘바다풍경’.회색빛 벽이 미터기와 조화롭게 어울린다.(왼쪽) 일반 주택의 담에 그린 벽화. 장선환 ‘연인’(오른쪽)


#1 서울 이화동 낙산을 아시나요?
이화동 낙산길

발랄한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공공표지판.


서울의 중심, 성북구와 종로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낙산. 낙타의 등과 같이 굽어 있어 낙타산 혹은 낙산이라고 불렸다는 이곳은 산 중반까지 빽빽하게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산이라기보다는 마을이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곳이다. 굽이굽이 언덕을 넘듯 동네 비탈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종로구와 동대문구, 성북구 등이 하나로 펼쳐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는 이곳을 사람들은 ‘달동네’라고 불렀다. 달과 가까운 동네라는 뜻은 사뭇 낭만적이지만 산 아래 도심에서 고립된 채 섬처럼 남아 있는 회색빛 마을은 어쩐지 쓸쓸한 모양새를 감추기 어려웠다.
그랬던 낙산이 변신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혹자는 ‘분홍색을 입었다’고도 하고, 다른 이는 ‘마을 전체가 갤러리가 됐다’고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낙산 어귀에 있는 방송통신대 근처 담벼락 여기저기에 만화 캐릭터를 비롯, 다양한 벽화들이 보인다. 대체 이곳에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이화동 낙산길

굴다리 근처 쓰레기장 담 위에 설치된 조각. 설총식 ‘자리만들기’. 서울성곽이 있는 낙산공원에서는 서울시내 정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계단에 피어난 꽃. 고선경·신창용·윤기원·이완·인동욱이 참여한 ‘꽃계단’.(왼쪽부터 차례로)


#2 섞다, 잇다, 함께 어울리다~
변화를 샅샅이 살펴보기 위해 먼저 방송통신대 뒤에 위치한 쇳대박물관(02-766-6494) 1층 카페에 들러 지도를 받아가자. 한손에 쥐어지는 지도를 펼쳐들고 박물관 왼쪽으로 돈 다음, 약국과 마트가 있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빙고! 두리번거리던 중 하나를 발견했다. 빨간 벽돌에 푸른색 날개들로 꾸며진 파출소. ‘파출소 프로젝트’라는 이 작품(?)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 한젬마가 작업했다고 한다. 살펴보니 파출소 앞 주차금지 표지판도,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도 뭔가 ‘다르다’. 보물찾기하듯 ‘작품’을 찾느라 예전 같으면 힘들다며 투덜거렸을 가파른 길 오르기가 마냥 즐겁다. 이 길의 하이라이트는 낙산공원 주변 산책로. 서울시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산책로 난간에 ‘가족과 연인’이라는 각종 조형물들이 세워졌다. 서류가방을 든 신사와 그를 따라나선 강아지 조형물은 웃음을 자아낸다. 이런 조형물들 덕분에 평이한 산책길 중 하나였던 이곳은 카메라 족들에게 사랑받는 출사코스이자, 이젠 대학로 공연 관람과 견줄 수 있는 데이트 코스 대열에 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해 6월부터 6개월에 걸쳐 진행된 ‘낙산 프로젝트’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 작가와 동네사람들 70여 명이 참여해 마을 가꾸기에 나섰다고. 낙산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았던 이태호씨(경희대 객원교수)는 “14세기에 만들어진 성곽이 있고, 역사·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계층이 살고 있는 낙산 일대의 분절된 문화를 하나로 연결짓고, 예술과 지역적인 특성이 어우러지는 것을 가장 염두에 뒀다”고 한다. 그래서 주제도 ‘섞다, 잇다, 함께 어울리다’라고.
이화동 낙산길

동네 어르신들과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만든 타일벽화.(왼쪽) 봉제공장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박종해 작가와 경희대 학생들이 제작한 ‘봉제인, 존경의 벽’.(오른쪽)


#3 떠나고 싶던 달동네, 몽마르뜨 언덕으로 변신!
동네 구석구석 설치된 ‘작품’들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만큼 튀지 않지만, 한결 세련된 표정으로 대학로 주변 문화와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정성을 쏟아 하나하나를 훑다 보면 가파른 긴 계단에 피어난 꽃도 보이고, 굴다리 아래 동네 어르신과 아이들의 그림을 모아 만든 타일벽화도 찾아낼 수 있다. 2천6백여 개 봉제공장이 자리 잡은 이 일대의 특성을 반영해 봉제사를 커다랗게 그려넣은 건물 벽화와 ‘자작나무 숲’이라고 불리는 연두색 컨테이너 박스 건물 또한 멋스럽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 역시 “그간 떠날 생각만 하고 살았던 동네가 더 머물고 싶은 곳이 됐다”고 말할 정도로 좋다고 한다. 햇살이 좋은 오후에는 몽마르뜨 언덕으로 변신한 낙산에 올라가보자.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지는 작품들을 접하면, 초봄의 외출길이 한결 더 포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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