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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아이와 함께~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 관람기

준성이와 엄마가 함께 다녀왔어요

기획·김동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2007. 03. 13

진주를 두른 거울 속에는 여인의 눈만이 떠 있고, 검은 탑 아래엔 뿌리가 자라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에선 아이들의 창의력을 북돋우는 그림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주부 오진영씨(40)가 만화를 좋아하는 아들 준성이를 데리고 전시회를 찾았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 관람기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로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낯익은 이름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독특한 그림이 많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해 평소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들 준성이(10)를 데리고 전시회 구경에 나섰다.
정동에 위치한 서울시립미술관에 도착하자 가로등에 걸린 코앞에 파이프를 띄워놓은 남자를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신뢰’ 광고 포스터가 바람에 펄럭이며 맞아 주었다.
전시회가 열리는 미술관 2층으로 올라가 팸플릿을 커닝해가며 화가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해주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에 태어나 1967년까지 살았던 벨기에 화가야. 이 사람 그림을 초현실주의 그림이라고 하는데 초현실주의라는 건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의 세계를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돼. 네가 좋아하는 만화 속에서도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자유롭게 일어나잖아? 그처럼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상상의 세계를 그리는 일을 통해 자유를 누려보려고 했던 거야.”
전시실은 2층과 3층에 있는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은 3층에 많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관람객은 3층부터 돌고 내려가는 게 좋을 듯하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 관람기

자신의 작품 ‘구출’ 옆에서 같은 포즈를 취한 르네 마그리트를 흉내내며 즐거워하는 준성이.


2층 전시실 입구에는 마그리트의 그림 중 드물게 규모가 큰 작품인 ‘보이지 않는 선수’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운동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엄숙한 표정인 두 남자가 야구 방망이 같은 것을 휘두르고 있는 정원에는 준성이가 “체스 말 같다”고 표현한 기둥이 늘어서 있고 그 기둥에서 나뭇가지가 자라나 있다. 설명을 보니 마그리트는 이 기둥들을 ‘빌보케’라고 불렀고,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림을 더욱 기묘하게 만드는 건 그림 오른쪽의 마스크를 얼굴에 쓴 젊은 여성과 남자들 위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검은 거북이(처럼 보이는 물체)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설을 찾아보니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러티브(인과관계로 엮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하며, 아직까지 확정적인 해석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씌어 있다. “그러니까 준성아, 우리가 이 그림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든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거란다. 네가 보고 느낀 대로 생각하면 되는 거야.” 나는 다른 많은 그림에 대한 설명 또한 이 한마디 말로 대신했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 전 관람기

보이지 않는 선수, 캔버스에 유채, 1927, 셰헤라자드, 캔버스에 유채, 1948, 올마이어의 성, 캔버스에 유채, 1951(위에서부터 차례로)


상상력 자극하는 작품 보며 이야기꽃 피워
전시회에 오기 전 그림에 대해 잘 아는 지인이 “붓 터치가 중요한 인상주의 작품은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장인의 숨결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 전시회에서는 전체적인 작품 세계를 빠르게 한눈에 돌아보며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조언해주었다. 그래서 찬찬히 작품을 들여다보게 하는 대신 가볍게 작품을 돌아보며 준성이가 관심을 보이는 그림에만 멈춰 서서 해설을 읽고 느낌을 나눴다.
아이와 함께 미술 전시회에 갈 때마다 ‘집에 가져다 걸어놓고 싶은 그림 하나’를 찍어보는 놀이를 하는데 준성이가 점찍은 그림은 뜻밖에도 어둠침침한 느낌의 ‘올마이어의 성’. 한 귀퉁이가 깨져나가 폐허가 되어버렸음을 알 수 있는 돌탑이 아래로 검은 뿌리를 뻗은 채 은은한 주황빛 공중에 떠 있는 그림이 준성이의 마음을 어떻게 건드린 건지 궁금했다.
내가 가져다 안방에 걸고 싶은 그림은 마그리트가 1948년에 그렸다는 ‘셰헤라자드’다. ‘올마이어의 성’처럼 한 귀퉁이가 깨져나간 돌탑 위를 흰 새들이 날아다니고 흰 구름 떠다니는 푸른 하늘이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탁자 위 진주를 두른 거울 속에는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는 듯한 여인의 눈이 그려져 있다. 천일 동안 밤마다 듣는 이로 하여금 도저히 그 다음을 기다리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들 만큼 재미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목숨을 구했다는 여인, 셰헤라자드의 눈이라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가 아내와 친구를 주인공으로 익살스럽게 찍은 짧은 흑백 영상까지 보고 나니 1시간 남짓 흘러 있었다. 그림을 보며 아이의 상상력을 키워주고 함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가슴 뿌듯하게 느껴졌다.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전’ 4월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평일 오전 10시~오후 9시. 토·일요일과 공휴일은 오전 10시~오후 8시. 매주 월요일 휴관. 어른 1만원, 만 13~18세 8천원, 만 7~12세 6천원, 만 7세 미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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