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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수줍은 고백

네 자녀 축복 속에 다섯 살 연상 교수와 재혼한 김미화 감동 러브스토리

글·김명희 기자 / 사진·지호영 기자, 나무 스튜디오 제공

입력 2007.02.20 14:09:00

방송인 김미화가 지난 1월 초 대학교수 윤승호씨와 재혼했다. 윤 교수를 오랜 기간 지켜봤다는 그는 정신지체가 있는 큰아들을 티 없이 맑게 키워낸 윤 교수의 부성애에 감동받아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서로의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게 결혼의 첫 번째 목표라는 김미화가 직접 들려준 러브스토리 & 주말 부부로 사는 속 깊은 사연.
네 자녀 축복 속에 다섯 살 연상 교수와 재혼한 김미화 감동 러브스토리

“아이들이 축하를 많이 해줬어요. 힘든 결정이었지만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05년 이혼 후 두 딸이 혹시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운 시간을 보내온 김미화(43)가 좋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지난 1월5일 성균관대 스포츠과학부 윤승호 교수(48)와 재혼한 것.
각자 한 번씩 이혼의 아픔을 겪은 두 사람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고 화려한 웨딩마치를 울리는 대신 양가 부모와 아이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가운데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 결혼식이 끝난 후 김미화는 “이제 교수 사모님이 됐다”며 농담을 건넨 뒤 “아이들이 축하를 많이 해줘 눈물이 날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딸 둘을, 윤 교수는 대학생 남매를 두고 있다.
“거창하게 식을 올린 건 아니에요. 얼굴이 예쁘거나 웨딩드레스를 입어서 어울릴 만한 몸매도 아니고…(웃음). 그동안 아이들과는 왕래를 하면서 지냈지만 양가 부모님들은 인사를 한 적이 없어 식사 자리를 마련한 거죠.”
남편 자랑을 해달라고 하자 그는 “미남은 아니지만…(웃음). 뭘 맡겨도 믿을 수 있는, 인품이 좋은 사람”이라며 활짝 웃었다. 그가 자신의 일로 그처럼 환하게 웃는 건 참 오랜만이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뒤 미국 이스턴 일리노이대학과 루이지애나주립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윤 교수는 88서울올림픽 당시 서울올림픽조사위원회 조정관을 맡기도 했다.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제가 사람 복이 많은 사람이라…(웃음).”

“이렇게 좋은 사람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용기 냈어요”
네 자녀 축복 속에 다섯 살 연상 교수와 재혼한 김미화 감동 러브스토리

좋은 일 많이 하며 아이들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는 김미화·윤승호 커플.


김미화는 2005년 남편의 폭행으로 이혼한 후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SBS 교양프로그램 ‘김미화의 U’ 등 시사성 짙은 프로그램을 맡아 MC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또 자신의 아픔을 사회문제로 확대시켜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고 봉사활동에도 앞장섰다. 지난해에는 자신이 진행하는 ‘김미화의 U’에 저소득층 창업지원금 3천만원을 익명으로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열정과 진심에 많은 사람이 박수를 보내고 있고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잃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때문에 재혼이 꼭 필요한 선택인가, 또는 좀 이른 결정이 아니었나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그 역시 “적잖이 고민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혼자 살아보니 편하고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어요. 굳이 이런 선택을 해 더 안 좋아지는 건 아닌지 고민도 많이 했지만 이렇게 좋은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혼하고 나니 마음 놓고 비빌 언덕이 있어 참 든든해요. 손잡고 다닐 사람이 있다는 것도 좋고요.”
별 다른 프러포즈는 없었다고 한다. 가족의 지지와 축하가 두 사람에겐 최고의 프러포즈이자 결혼선물이었다고 한다.
“나이 마흔이 넘은 사람들이라 정열적으로 꽃다발을 주고받고… 그런 거 없어요(웃음). 각자 상처가 있으니 그저 어떻게 하면 서로 스트레스 안 주고 아끼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두 사람 결혼의 일등 공신은 가수 홍서범·조갑경 부부라고 한다. 이들 부부와 가족처럼 지내는 김미화는 10년 전 홍서범의 소개로 그의 친구인 윤 교수를 처음 알게 됐고 2001년 윤 교수가 재직 중인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하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여러 지인들 사이에 섞여 친구처럼 지내던 두 사람이 급격히 가까워진 것은 1년 전 ‘서로를 좀 다르게 생각해보라’는 조갑경의 조언 덕분이었다고.
“다르게 생각해보라는 얘기를 듣고 보니 사람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서로 대화가 잘 통하고 와인을 마시든 막걸리를 마시든, 어떤 자리에서도 함께 있으면 행복했던 것 같아요.”

“남편은 뭐든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 발달장애 있는 아들 잘 키워낸 부성애에 감동받았어요”
김미화는 마음속으로 윤 교수를 배우자감으로 가늠해보았다. ‘그와 함께라면 남은 인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는 윤 교수가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군요. 저는 아이들이 원치 않는 건 하지 말자는 주의인데 고맙게도 아이들이 이해를 해주었어요. 그동안 결혼을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아이들과도 자주 만나 자연스럽게 친해졌거든요. 윤 교수에게 아들과 딸이 있어 제 딸 둘까지 자녀가 넷이 됐는데 서로 좋은 엄마·아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사는 엄마가 안쓰러워 먼저 좋은 남자친구를 구해주겠다고 나섰던 두 딸은 윤 교수가 엄마의 남자친구라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약간 실망(?)하는 기색이었다고 한다.
“아이들과는 뭐든지 터놓고 얘기하는데 조심스럽게 윤 교수 얘기를 꺼냈더니 자기들이 좋아하는 얼굴형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저쪽 집에서도 똑같이 엄마 흉을 볼 수 있고, 남자 얼굴 뜯어먹고 사는 거 아니라고 설득했어요.”
‘얼굴 빼고는 아저씨의 모든 것을 좋아하는’ 딸들은 결혼식 날 ‘언니와 오빠가 생겨서 기쁘다. 엄마가 행복하면 우리는 더 행복하다. 앞으로 더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리본으로 곱게 묶어 윤 교수에게 건넸고 윤 교수는 그 편지를 세상의 그 어떤 보물보다 소중하게 여긴다고 한다.

네 자녀 축복 속에 다섯 살 연상 교수와 재혼한 김미화 감동 러브스토리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딸들을 생각하며 힘들 때마다‘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자신을 추슬러왔던 그와 마찬가지로 윤 교수 역시 남매를 키우며 녹록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다. 윤 교수의 아들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신체적인 나이는 22세이지만 지능은 7~8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 김미화는 그런 아들을 ‘영화 ‘말아톤’의 초원이처럼 티 없이 맑게 키워낸’ 윤 교수의 부성애를 높이 샀다.
“생각하는 게 좀 어릴 뿐,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은 순수하고 착한 아이에요. 음악 쪽에 재능이 뛰어나 현재는 재활대학에서 드럼을 전공하고 있어요. 그렇게 키우기까지는 윤 교수의 노력이 컸죠. 언젠가 한번은 윤 교수가 아들 걱정을 하며 술자리에서 눈물을 비친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그랬죠. 나이 들어서까지 그렇게 맑은 심성으로 부모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되겠느냐고요. 입양이라도 해서 평생 곁에 두고 싶은, 그런 착한 아들입니다.”
김미화는 “아들이 발달장애아들을 위한 특수학교인 밀알학교를 나왔는데 그 학교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대학에 입학한 케이스”라며 슬쩍 아들 자랑을 했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을 듣고 가장 기뻐했던 것도 그 아들이라고 한다.
“아이가 결혼한다는 소리를 듣더니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왜 좋으냐’고 물었더니 유명한 아줌마가 엄마가 돼서 좋고, 하나님이 저를 자기 앞에 이끌어준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감동받았어요. 저도 장애가 있는 아이의 부모가 되는 건 그 사람이 가장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신이 인연을 맺어주는 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하늘이 저희를 맺어주셨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를 대신해 온갖 장사를 하며 힘들게 그를 키운 것도 모자라 두 손녀까지 반듯하게 키워준 그의 친정어머니는 새로 얻은 손자·손녀 역시 넉넉한 품으로 끌어안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처음에는 아들을 보고 약간 당황하셨던 것 같은데 저한테는 별 내색을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그에 대해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으셨죠. 집에 자주 불러 밥도 먹이고 예뻐해주셨어요. 어머니도 이제는 제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려 하는가에 대해 잘 알고 계신가 봐요(웃음).”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살림을 합치지는 않았다고 한다. 혹시라도 아이들이 불편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당분간은 두 집 살림을 하며 주말부부로 지내기로 했다는 것.

“아이들 적응 문제 고려해 당분간은 떨어져 지내며 주말부부로 지내기로 했어요”
“얼마 전 남편과 제가 경기도에 전원주택을 지었어요. 시어머니와 남편은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고, 저는 서울에 머무르고 있어요. 제 아이들이 아직 초등학생과 중학생이라 전원주택에 같이 살기는 어렵거든요. 또 갑자기 살림을 합치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그렇게 결정했어요. 젊은 사람들의 연애라면 억지로 맞추려고 노력하겠지만 지금은 서로 합치면 아이들이 잘 적응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군요. 윤 교수의 아이들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고…. 아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번거롭더라도 저희가 오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거죠.”
호칭 문제 역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적응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라고 한다.
“윤 교수 아이들은 저를 ‘고모’ ‘아줌마’라고 불렀고 저희 아이들은 윤 교수를 ‘아저씨’라고 불렀는데 아이들이 먼저 호칭을 바꾸겠다고 하더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두려울 거예요.”
결혼 일주일 후 다시 만난 김미화는 “아직 초야도 치르지 못했다”며 쑥스러워했다. 그동안 두 사람 모두 바빠 “간첩 접선하듯” 몇 번 만난 것이 전부라는데도 그는 무척 행복해 보였다.
“결혼식이든, 집이든, 호칭 문제든 형식이란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식을 올리던 날도 기업체에서 사회복지 강의가 있었는데 그냥 했어요. 그쪽에서 먼저 ‘그래도 결혼식 날인데 할 수 있겠냐’고 묻기에 ‘새 신부가 강의하면 그 회사에 큰 복이 갑니다~’라고 했죠. 신혼여행도 2월에 홍서범씨 부부가 공연차 미국에 가는데 그때 동행하는 걸로 대신할 계획입니다.”
어린 시절의 가난, 상처를 남긴 첫 결혼, 하지만 부단한 노력과 용기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보다 힘든 처지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김미화. 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요즘에도 매니저 없이 혼자 활동하고 있고 동대문에서 옷을 사 입는다고 한다. 마음이 이미 부자인 그는 “가정이 안정됐으니 앞으로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하며 아이들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말이 아닌,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에게 자신보다 힘든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삶을 살면 그건 성공한 삶이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저 역시 주변사람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온 만큼 조금이라도 베풀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성동아 2007년 2월 5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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