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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시련 뒤 깨달음

30대 후반의 우울증 극복 과정 들려준 작가 김형경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7.01.24 12:00:00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세월’의 작가 김형경씨가 30대 후반 겪은 심한 마음고생과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에 대해 털어놓았다. 1백회에 이르는 정신과 상담과 2년 여의 여행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극복했다는 그를 만났다.
30대 후반의 우울증 극복 과정 들려준 작가 김형경

작가 김형경씨(47)는 지인들 사이에서 ‘좋은 사람’으로 통한다. 그의 글은 강한 개성이나 거침없는 자유로움 대신 삶에 대한 이해와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김씨는 인생의 중년으로 접어들던 시절,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몸이 많이 아프고 살도 갑자기 쪄서 몹시 힘들었어요. 그런데 병원에 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서른여덟 살 때의 일이죠. 마음이 적막해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답이 안 나오더군요.”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던 그는 차츰 ‘이것이 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병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신의 20대를 지배하던 막막하고 암울한 느낌, 30대에 찾아온 깊은 무력감이 실은 만성 우울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부터 처음 두 달 동안은 매일, 나중에는 일주일에 두 번씩 거의 백 번 정도 정신분석 치료를 받았어요. 그러면서 제가 심리적으로 심한 억압을 느끼며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죠. 정신분석을 하며 제 안에 있는 우울함과 절망의 밑바닥까지 꾸준히 파고들어갔는데, 알고보니 저는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조직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작가가 된 뒤에는 ‘돈을 벌어야 한다’ ‘소설을 써야한다’는 의무감에 쫓기며 살아왔더라고요.”
그는 자신이 억압당해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그동안 깨닫지조차 못한 채 억눌러왔던 자기 안의 분노, 질투, 불안, 공포와 직면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저는 늘 제가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주성이 강하다고 믿었죠. 그런데 제 무의식을 통해 드러난 건 제가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해온 게 실은 제 결정이 아니었다는 거였어요.”
그 길로 김씨는 자신의 전 재산이던 아파트와 세간을 정리해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99년부터 2년 동안 유럽, 뉴질랜드, 타히티섬 등을 마음껏 돌아다녔다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뒤 그는 아무 억압 없이 장편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성에’ 등을 쓸 수 있었다.
“저는 사람의 인생에서 30대 후반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보통 30대 중반까지는 유년기에 만들어진 밑그림에 따라 인생이 펼쳐지잖아요. 30대 후반이 되면 비로소 유년기의 꿈이 성취됐는지 아닌지 판가름이 나죠. 그렇기 때문에 그 시기가 되면 누구나 허무해져요. 꿈을 이뤘든 못 이뤘든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김씨는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스스로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고 스스로 해결책 찾아야 해요”
그는 젊은 시절부터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무속인을 찾곤 했다고 한다. 생의 비밀을 캐보고자 명리학을 공부한 적도 있고, 절에 가서 마음을 다독이며 법당에 앉아있던 날도 많았다고. 그는 자신의 무의식 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의존성을 알게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그런 행동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30대 후반의 우울증 극복 과정 들려준 작가 김형경

30대 후반 찾아온 우울증을 이겨낸 경험을 녹여 심리 치유에세이집을 펴낸 작가 김형경.


김씨는 또한 정신분석을 통해 자신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걸 못 견뎌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모르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는 “대학졸업 뒤 교사생활을 하다 1년 만에 그만두고, 그 뒤 잡지기자로 8년 동안 일했다”며 “그때는 다들 안정된 직장이라고 하는 교사를 왜 그만두고 싶어하는지 스스로도 이유를 몰라 답답했는데, 뒤늦게 알고보니 같은 수업을 매년 반복해야 한다는 걸 참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해박한 심리학적 지식과 자신의 체험을 동원해 심리 치유에세이집 ‘천개의 공감’을 펴낸 건 이런 깨달음 때문이라고 한다. ‘천개의 공감’은 한 신문에 연재했던 심리상담을 모아 엮은 책. 그 상담 코너에 보낸 독자들의 고민을 읽고 그가 직접 조언한 카운슬링들이 담겨있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오래 아파하며 전전긍긍하는 20대 여성, 게으르고 무기력한데다가 어린 딸에게 무관심하기까지 한 남편에게 지쳐가는 30대 주부, 자격지심과 의심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에게 잔인하게 행동하는 20대 남성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털어놓은 갖가지 고민에 대해 김씨는 다양한 조언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 모든 조언에 반드시 덧붙이는 원칙은 “내면의 상처와 마주하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라”는 것. 그가 책 안에 인용한 괴테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리 자신뿐”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음고생으로 힘들던 시절 정신상담을 통해 나 자신을 알게 된 뒤 그쪽 분야에 관심을 갖고 꾸준히 공부해왔다”며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알 수 없는 이유로 고통받는 모습이 안타까워 책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단지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것만으로 깊이 공부해 상담서적까지 낼 만큼 내공을 쌓은 데서 알 수 있듯, 김씨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관련 책을 모두 구해서 읽고 공부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서재에는 문학이론, 철학, 역사학부터 정신분석, 자연과학, 명리학, 풍수지리, 미술사까지 폭넓은 분야의 책들이 가득하다. 그가 요즘 심취해 있는 주제는 세계의 여신들. 모든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창조적 모체로서의 여신을 비교해 공부하며 유적지를 돌아보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안에 새 소설도 발표할 계획이에요. 신문에 심리상담을 연재하는 동안 제게 들어오는 청탁은 온통 심리치유 강연이나 심리학책에 대한 것뿐이었죠. 다음 소설이 언제 나오느냐고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고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위기감을 느꼈어요(웃음). 이번에 낸 에세이집은 예상치 못했던 제 인생의 선물 같은 겁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소설을 쓸 거예요.”

여성동아 2007년 1월 5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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