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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명문대 총장의 조언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이 들려주는 ‘따뜻한 인성과 전문적 지식 갖춘 리더로 아이 키우기’

글·송화선 기자 / 사진·김성남 기자

입력 2006.11.24 11:27:00

이화여대의 역사는 곧 우리나라 여성교육의 역사다. 지난 1백20년 동안 이 땅의 여성교육을 이끌며 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해온 이화여대의 이배용 총장을 만나 자녀를 따뜻한 인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리더로 키우는 교육법에 대해 들었다.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이 들려주는 ‘따뜻한 인성과 전문적 지식 갖춘 리더로 아이 키우기’

1886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여성교육 기관으로 문을 연 이화여대가 창립 120주년을 맞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사 박에스더, 박사 김활란, 변호사 이태영, 국무총리 한명숙 등 수많은 ‘국내 최초 여성’이 이화여대 출신. 지난 10월 찾아간 이 대학 캠퍼스에는 이들의 뒤를 이을 젊고 건강한 여대생들의 활기찬 웃음 소리가 가득했다.
40년 전 바로 그 캠퍼스에서 미래를 꿈꾸던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59)은 “여성이 역사의 뒷전에 밀려있던 19세기에 이화는 여성교육의 등불을 들고 ‘여성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여성 앞에 갖가지 벽이 놓여있던 20세기엔 그 벽들을 하나하나 깨나가며 여성의 사회 진출 길을 연 학교”라며 “21세기 양성평등 시대에 이화여대의 역할은 세상의 변화를 앞장서서 이끌며 새로운 문명과 가치를 주도하는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지난 7월 이화여대 제13대 총장으로 취임하며 선언한 ‘이니셔티브 이화(Initiative Ewha·주도적인 이화)’ 구상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 총장이 생각하는 ‘이니셔티브 이화’의 바탕은 개척자 정신과 따뜻한 배려. 그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가지 가치가 이화여대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를 세운 선교사들은 여성에게도 근대적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한 개척자들이었어요. 하지만 서양 문물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변화를 강요하지는 않았죠. 이화학당 교사를 한옥으로 짓는 등 당시의 조선 문화와 새로운 학문이 잘 어울리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지금 이화여대 안에 복원돼 있는 이화학당 한옥 교사를 보면 동양과 서양, 우리 전통과 서양 문화가 따뜻하게 만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요. 전 그게 바로 21세기에 필요한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지도자가 이화여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이죠.”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이 들려주는 ‘따뜻한 인성과 전문적 지식 갖춘 리더로 아이 키우기’

이 총장은 ‘진취성을 갖춘 겸손한 지성인’을 길러내고 이화여대를 조만간 세계 100대 명문 대학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경기도 파주에 학생들이 일정기간 머물며 집중적으로 외국어·인성·리더십교육을 받을 수 있고 IT 첨단과학 분야의 산학연구가 이루어지는 교육·연구 복합단지를 세우기 위해 최근 파주시와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내년 입학생부터는 재학 중 영어 강의 4과목 이상 수강을 의무화할 계획. 각 학과에 외국어로 강의할 수 있는 교수 인력을 확충하는 등 대학 안의 글로벌 지수도 한 단계 높일 계획이라고 한다. 이화여대를 동서양을 잇는 여성교육 허브로 만들기 위해 외국 대학들과의 교류를 늘려나가는 아웃바운드 국제화도 추진 중이다. 이 총장은 “선진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주요 10개 대학을 거점 대학으로 선정해 다양한 파트너십을 맺고 재학생의 10~20% 이상이 외국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과 더불어 그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인성교육. 이 총장은 “따뜻한 마음을 갖지 못한 전문가는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앞으로 이화여대 학생들은 파주 교육·연구 복합단지에서 영어뿐 아니라 인성, 리더십 교육도 집중적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은 “이화여대의 강점으로 학생들을 주체성과 자신감을 가진 지도자로 키워주는 학교 분위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이화여대 출신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서 큰 활약상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학교에 다니면서 ‘모든 일은 스스로 한다’는 자립형 리더십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화에 들어오면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될 만한 선배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저 자신도 입학 후 인성과 실력을 겸비한 선배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갖게 되었거든요.”
실제로 이화 출신 전문직 선배들은 언론인, 법조인, 회계사, 변리사, 고위공무원 등 다양한 직종의 전문직동창클럽을 결성하여 탄탄한 네트워킹을 통해 후배들의 사회 진출을 돕고 있다는 것이 이 총장의 설명이다.

“암기력이 뛰어나니 역사학자가 되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격려가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이 총장은 85년부터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로 일하며 한국사상사학회장, 한국여성사학회장, 조선시대사학회장 등을 역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성 사학자. 두 아들의 어머니이기도 한 그는 자식을 키울 때도 훌륭한 인성과 전문성을 함께 길러주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되도록 많이 칭찬하고 격려해주는 것’이었다고. 어린 시절 칭찬과 격려를 받은 아이는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연스레 전문성을 쌓게 되고, 자신이 받은 것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심성도 갖게 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 총장을 지금의 자리로 이끈 것도 어린 시절 주위에서 받은 칭찬과 격려였다.
“어린 시절 제가 암기력이 좋은 편이었거든요. 사회책에 실린 사건들의 연대를 거의 다 외웠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그걸 보시더니 ‘너는 기억력이 좋으니까 나중에 역사학자가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이 참 멋있게 들렸어요. 그때부터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죠. 자연스럽게 역사에 흥미가 생기고, 성적도 잘 나왔어요.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지금도 저를 보면 ‘넌 그때부터 사학자가 될 줄 알았어’라고 해요(웃음). 사학을 공부하면서 폭넓은 시야와 균형감각을 갖게된 것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부모도 그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 총장은 2남5녀 가운데 넷째 딸. 딸 중에서는 셋째다. ‘딸 많은 집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그는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여자가 무슨 공부냐’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부모님 두 분 다 제가 계속 공부하는 걸 참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전 석사를 마치고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아 기른 뒤 다시 박사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도 부모님과 시어른들 모두 ‘잘한다’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죠. 그 덕분에 저도 ‘그래, 할 수 있어’라는 믿음을 갖게 됐어요. 격려해주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아이의 지식뿐 아니라 인품을 중시했던 옛 어머니들이 역사 속 위인 만들어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이 들려주는 ‘따뜻한 인성과 전문적 지식 갖춘 리더로 아이 키우기’

이화여대 설립자 스크랜튼 여사부터 김활란 총장까지 역대 이화여대 총장들의 사진 옆에서 포즈를 취한 이배용 총장.


그래서 지금 그가 후배와 제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바로 “너는 할 수 있어”라고 한다. 특히 젊은 시절 결혼과 임신, 출산 등을 겪느라 공부를 중단했던 이들이 자신을 찾아와 “이제 공부하기엔 늦은 것 같다”고 하면 언제나 “인생에 늦은 때란 없다”고 말해준다고. 칭찬과 격려를 받으면 마음이 열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총장은 우리나라 사학계에 여성사라는 분야를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국 역사 속의 여성들’ 등 여러 저서를 통해 우리나라 옛 여성들의 삶을 알려왔기 때문. 이 총장은 “우리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을 연구하다보면, 언제나 위대한 인물 뒤에는 더 훌륭한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 “자녀의 인품을 지식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 것이 우리의 전통적 가정교육”이라고 소개했다.
“17세기 안동에 살았던 정부인 장씨는 여성군자라고 불릴 만큼 학문과 인품이 뛰어난 인물이었어요. 훗날 이조판서에 오른 그의 셋째 아들 갈암 이현일은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란 게 모두 어머니 덕분이었다면서 ‘어머니는 늘, 난 너희들이 높은 지식이나 지위를 갖는 것보다 착한 일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어요. 지금 돌아봐도 고개가 숙여지는 말씀이죠.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오성부원군 이항복의 어머니 최씨 부인도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아들을 반듯하고 심성 바르게 키운 것으로 유명해요. 이항복이 어린 시절 이웃의 헐벗은 아이에게 자신의 옷을 모두 벗어주고 돌아오자 꾸중하기는커녕 ‘잘했다’고 칭찬해줬다는 건 유명한 얘기죠.”
이 총장은 “젊은 부모들도 과거의 자녀교육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며 “근대로 들어서면서 한때 능력만 있으면 최고로 인정받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21세기엔 탁월한 능력에 따뜻한 마음까지 겸비한 사람만이 진정한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녀를 미래의 지도자로 키우고 싶은 부모라면,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도덕성을 길러줘야 할 것”이라는 게 이 총장의 조언이다.
이배용 총장이 공개하는 “우리 부부 러브스토리 & 가족 이야기”
“2남4녀의 장남인 남편과 친구 소개로 만나 결혼, 큰 살림 꾸리면서 효율적으로 시간 활용하는 지혜 배워…”
이화여대 이배용 총장이 들려주는 ‘따뜻한 인성과 전문적 지식 갖춘 리더로 아이 키우기’

백두산 정상에 오른 이 총장(왼쪽)과 충북 보은 삼년산성에서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이배용 총장 부부(오른쪽).

이배용 총장은 지난 7월 이화여대 총장에 취임한 뒤 종갓집 맏며느리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여 년간 사학분야에서 두드러진 연구업적을 내며 각종 학회장을 역임하고 10여 권의 저서를 펴내는 등 왕성하게 활동해온 그가 종가의 안주인 역할까지 해왔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장은 “2남4녀의 장남인 남편과 결혼해 작지 않은 살림을 꾸리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크게 힘들었던 적은 없다”며 “오히려 많은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시간을 분배하는 지혜를 알게 돼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총장이 남편을 만난 것은 이화여대 사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71년.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이젠 착하고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하던 무렵, 친한 친구가 다리를 놓아주었다. 당시 한국은행에 근무하고 있던 남편은 한눈에도 선하고 점잖은 인상을 풍겼다고 한다. 이 총장의 친정 역시 큰 가문의 맏이여서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큰살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 때문에,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고.
남편은 선한 인상뿐 아니라 남다른 노래 솜씨로도 이 총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이 총장은 고등학교 시절 음악선생님으로부터 성악과 진학을 권유받았을 만큼 노래 실력이 뛰어난 편인데, 남편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 노래 솜씨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이 총장 내외는 함께 음악회에 다니며 사랑을 키웠다고 한다. 남편이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점도 두 사람의 만남에 큰 몫을 했다. 함께 역사 유적지를 답사 다니며 취미와 특기가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은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다.
이 총장은 결혼 뒤 시부모와 함께 살면서 이화여대 여성사연구소 연구원 및 사학과 강사로 일했고, 두 아들을 낳아 길렀다. 공부를 더 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것은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란 뒤인 81년. 이 총장은 “남편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 사람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는 휴머니스트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겠다고 말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했다고 해서 집안 살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어 대학원에 진학한 뒤 그는 매일 새벽 일어나 책을 읽곤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는 “여러 일을 다 열심히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냐”며 앞장서서 이 총장을 도와줬다고.
자식을 기르는 일도 남편과 함께했다. 남편은 수학·과학·컴퓨터 분야, 이 총장은 인문학과 암기 과목 쪽을 맡아 아이들을 돌봤는데, 부모 손에서 자란 두 아이 가운데 큰아들은 엄마 쪽인 역사학을, 작은아들은 아빠 쪽인 경영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전 후배나 제자들에게 결혼은 배려심 있고 취미가 같은 사람과 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해요. 남편의 그런 면이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큰 힘이 됐거든요. 제가 공부하는 동안 남편은 티내지 않고 집안의 윤활유 역할을 해줬죠. 저만큼이나 역사를 좋아해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같이 전국을 돌며 답사여행을 다녔고요. 얼마 전엔 남편의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향수’를 듀엣으로 불러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어요(웃음). 일과 가정을 함께 꾸리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 가정에서 받은 따뜻한 배려와 든든함이 오히려 바깥일을 하는 데 큰 힘이 된 것 같아요.”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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