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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여성 리더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여성상 받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첫 인터뷰

기획·송화선 기자 / 글·허문명‘동아일보 교육생활부 기자’ / 사진·CJ그룹 제공

입력 2006.11.23 15:08:00

우리나라에 복합상영관을 처음 소개하며 영화산업을 개척한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여성상’ 수상자가 됐다. 이 수상을 통해 최근 상을 받은 오프라 윈프리, 앨리슨 래퍼 등 세계 명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그는, 아시아 여성으로서 세계 무대에 우뚝 서기까지 기울인 남다른 노력과 삼성가의 맏손녀로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할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와의 추억 등을 들려줬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여성상 받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첫 인터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여성상을 받았다.


지난 10월14일 오후 7시(현지시간), 늦가을 쌀쌀함이 물씬한 뉴욕 맨해튼 34번가 맨해튼 센터 앞은 갑작스런 인파로 술렁였다. 할리우드 스타 우피 골드버그, 수전 서랜든을 비롯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TV 시트콤 ‘위기의 주부들’의 주인공 테리 해처, 슈퍼 모델 클라우디아 시퍼 등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들을 에워싼 보도진과 행인들로 북적이는 거리에서, 키 큰 서양 여자들 사이에 서 있는 작은 동양 여자가 한 명 눈에 띄었다. CJ그룹 이미경 부회장(48)이었다.
이날 맨해튼 센터 앞에 명사들이 모인 것은 2006년 세계여성상(Women’s World Awards 2006) 시상식이 열렸기 때문. 세계여성상은 지난 2000년 오스트리아 작가 게오르그 킨델이 창설한 상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있는 권위 있는 상이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 상은 그동안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영국 구족화가 앨리슨 래퍼 등에게 주어졌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이 상의 경영부문 수상자 자격으로 초청받은 것이다.
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포함해 모두 12개 부문의 수상자를 발표했는데 자선부문은 샤론 스톤, 연예부문은 우피 골드버그, 스타일 부문은 수전 서랜든 등이 선정됐다. 아시아인이 세계여성상을 수상한 건 이 부회장이 처음이다.
세계여성상위원회는 이 부회장의 수상 이유에 대해 “그는 CJ그룹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영상산업을 넘어 인터넷, 케이블 TV를 총괄하는 미디어그룹으로 키웠을 뿐 아니라 미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국제적 브랜드로 만들었다”며 “또 암 연구 지원 등 여러 자선사업에도 공헌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05년 1월부터 CJ그룹의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총괄하며 글로벌 사업부문을 이끌고 있다.
시상식장에서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시상대에 선 이 부회장은 “여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상을 주신 데 대해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간단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이 부회장은 ‘공동경비구역 JSA’ ‘친절한 금자씨’ ‘살인의 추억’부터 최근 흥행작인 ‘타짜’까지, 한국 영화사에서 굵직한 흥행기록을 낸 여러 영화의 투자 배급을 맡은 인물.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맏손녀이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조카이기도 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그의 동생. 그러나 이 부회장은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커리어 우먼
세계여성상 시상식이 열리기 6시간 전, 뉴욕 맨해튼 중심부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에서 이 부회장을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그가 언론을 상대로 하는 첫 인터뷰. 이 부회장은 시상식 참가를 위해 이날 아침 일찍 LA에서 뉴욕으로 날아왔으며, 행사가 끝나면 또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공항으로 직행해야 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그를 만난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그의 손목에 채워진, 두 나라 시간을 한 번에 보여주는 커다란 듀얼 시계였다.
155cm가 될까말까한 작은 키에 가녀린 체구, 맏언니를 연상케 하는 살가움과 여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애교 섞인 말투는 그가 세계 무대에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여성 리더라는 사실을 무색케 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부드러운 말투 속에 숨어 있는 그의 본 모습이 드러났고, 그의 성취는 재벌가의 상속인에게 들어온 덤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추구해온 열정과 꿈의 결실임을 깨닫게 됐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여성상 받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첫 인터뷰

세계여성상을 받은 뒤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는 이 부회장. (왼쪽) 최근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어 자랑스럽다는 이 부회장.(오른쪽)


▼ 우선 수상소감부터 듣고 싶습니다.
“제가 이런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부담스러워요. 하지만 이건 제게 주는 상이 아니라 한국 영화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영화인 덕분에 덤으로 받은 영광이지요. 또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 ‘롤 모델’이 되라는 뜻으로 알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다고 했습니다.”
▼ 이번 상이 CJ엔터테인먼트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은데요.
“CJ엔터테인먼트가 영상사업을 시작한 뒤 영화관을 짓고, 한국 영화 제작을 활발히 하는 등 우리나라에 영화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일조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감독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지 않았으면 이렇게 수출이 잘되기 어려웠겠죠. 모든 것은 한국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 덕분이에요. 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럽습니다.”

이 부회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인의 힘’을 강조했고, 자신의 이번 수상에 대해서도 “개인적 기쁨도 있지만, 한국인에게 이런 상이 주어졌다는 자랑스러움이 더 크다”고 이야기했다. 이익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의 CEO라기보다는, 문화라는 콘텐츠를 통해 우리나라를 홍보하고 싶어하는 외교관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에는 어린 시절 유학을 통해 겪은 남다른 개인사가 깔려 있다.

▼ 그동안 인터뷰를 하신 적이 없어서 개인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미국 중국 등에서 지역학, 역사학을 공부하신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일을 하게 됐습니까.
“어릴 때부터 영화를 참 좋아했어요. 한마디로 할리우드 키드였죠. 흑백 TV로 디즈니 만화를 즐겨봤고, 오후 6시에 TV가 시작되면 밤 11시까지 볼 정도였어요. 당시엔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저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영화 보는 게 유일한 문화생활이었죠. 그러다 83년 미국 유학을 가서 처음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를 봤습니다. 한 극장에 무려 12개 스크린이 걸려있어서 언제 어느 때고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게 돼있는데, 정말 영화 천국 같았죠. 한국에서 좋은 영화를 보려고 한 달 전부터 기다리고, 표를 구하느라 동분서주하다 미국에 간 제겐 정말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어요. 보스턴에서 살았던 4년 동안 1주일에 한두 번은 꼭 영화를 보러 다녔죠.(이 부회장은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에서 동아시아지역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영화 자체뿐 아니라 제작 시스템, 감독의 철학 같은 좀 더 전문적인 분야에까지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지금 비즈니스하는 영역이 영화뿐 아니라 팝 음악까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데, 기본적으로 끼가 있었나요.
“(소리내어 웃으며) 네. 확실히 있어요. 음악에 대해서도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고요. 학창 시절엔 ‘레코드 빽판’(불법복제음반)을 사 모으곤 했습니다.”



기자가 “삼성가 맏손녀가 ‘빽판’을 샀다니 좀 이상하게 들리네요”라고 하자 이 부회장은 “우리 엄마는 엄격해서 용돈을 많이 안 줬다”고 대답했다.

“비지스, 비틀즈, 클리프 리처드, CCR, 린다 론스타트 등 (유명 가수의) 원판은 정말 비쌌거든요. 명동이나 동대문에 가 미8군에서 흘러나온 ‘레코드 빽판’을 듣곤 했죠. 아버지(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장남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가 음악을 좋아하셔서 어릴 때부터 늘 음악 듣는 분위기에서 자랐어요. 열두 살 때 아버지가 비틀즈 음악 테이프를 사다 주셨는데, 그게 다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나요. 참 자랑스러운 건, 15년 전만 해도 팝송이 한국 음악시장의 70~80%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가요가 그 만큼을 점유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참 흐뭇해요. 우리도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국력입니다. ‘체력이 국력’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력이 국력’이란 걸 나날이 실감합니다(웃음).”
▼ 노래를 잘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나요.
“힙합을 좋아해요. 그 리듬을 좋아합니다. 가수 중에선 심수봉 이선희 양수경을 좋아하고, 씨야 김종국 sg워너비 등 요즘 가수들 노래도 할 줄 알아요.”

유학 시절 보잘것 없는 대한민국의 위상에 충격받아 문화사업 구상해
▼ 다시 유학 시절로 돌아가볼까요. 관심 있던 문화분야를 비즈니스와 접목시켜야겠다는 구상을 시작한 건 유학 무렵이었죠.
“네. 하버드에 있을 때 전 외국 아이들한테 두 가지 면에서 기가 죽었어요. 첫째는 그 아이들이 정말 똑똑하다는 점 때문이었죠. 승부욕이 강하고 경쟁심도 높은데다가 저보다 한자를 더 많이 아는 아이도 있을 만큼 다방면에 박식했어요. 우리보다 사고력이나 논리 전개력도 나아보이고…. 그러면서 또 놀 때는 아주 끝내주게 노는 거예요. 그 면에서 기가 죽었죠. 또 하나는 기가 죽으면서 동시에 화도 난 일인데, 하버드 내에서 한국인의 위상이 정말 보잘것 없더라고요. 제가 동아시아 지역을 공부했는데, 거기서 한국 역사를 강의하는 분이 일본인의 입장에서 가르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정말 화가 났어요. 중국은 화교들이 기부를 많이 하는 덕분에 힘이 셌고, 일본은 소니 워크맨이 한창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었죠. 중국·일본 학생들을 볼 때마다 ‘우리는 어느 세월에 저렇게 되나’ 한숨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한국의 힘이란 게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요새는 미국에서 손톱 손질하러 갔다가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제 손톱을 만져주고 있던 베트남 직원이 ‘장동건, 이병헌, 비 아느냐’고 물어봐요. 그럴 때 으쓱해지는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가 없죠.”
▼ 한국 영화가 지금처럼 계속 발전할 거라고 보시나요.
“그럼요. 전 절대적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의 삶 자체가 훌륭한 콘텐츠이기 때문이죠. 한국 감독님들은 연배 많으신 분들과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 모두 격동의 시기를 겪었어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죠. 그들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는 게 비슷해요. 그러니까 10년 전 영화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죠. 하지만 우리는 눈만 뜨면 달라져 있는 세상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익숙해져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죠. 우리는 안주할 수 없는 성격인 것 같아요. ‘내가 남보다 조금 달라야지’ 하는 마음이 뼛속에 스며있다고 할까요(웃음). 베니스나 칸 같은 해외 영화제에 가면 ‘(한국 감독들은) 아시아 어느 나라 감독과 견주어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 이 부회장이 보시기에 ‘좋은 영화’란 무엇입니까.
“좋은 이야기와 짜임새 있는 연출력이 합쳐진 영화입니다. 해외에서 인정받는 감독이나 영화를 봐도 알 수 있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자신이 본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왕의 남자’와 ‘올드 보이’를 꼽더군요. 특히 ‘왕의 남자’의 경우 보는 내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을 만큼 집중해서 봤대요. 그가 한 말이 ‘잇 트래블즈 에브리웨어(It travels everywhere)’, 즉 ‘근본에 충실한 스토리는 어느 나라에서나 통한다’였어요. 이렇게 진정성이 담겨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은 자상하고 부지런한 분이셨어요”
이 부회장은 사업뿐 아니라 자신의 개인사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히 털어놓았다.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에 대한 추억과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 스스로 사업분야를 개척해서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할아버지(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로부터 배운 것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 대목에서 이 부회장은 잠시 말을 끊고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다시 입을 연 그의 목소리는 약간 젖어있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항상 자상하셨다는 거예요. 전 맏손녀이다보니 할아버지를 뵐 기회가 많았어요. 운이 좋았죠. 할아버지는 항상 규칙적인 생활을 하셨어요. 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손자 손녀들에게 보여주셨고요. 고모들도 항상 일을 하셨기 때문에 전 어릴 때부터 일 없이 노는 삶은 상상도 못하며 자랐어요. 작은아버지이신 삼성 이건희 회장님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계시고, 제 성장과정에 많은 영향을 끼치셨죠.”
▼ 장남인 아버지가 가업을 잇지 못한 것에 대해 불운하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그런 것은 없어요. 할아버지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는 철학을 갖고 계신 분이었죠. 할아버지는 ‘장자승계’라는 전근대적 사상을 무너뜨린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셨다고 생각해요.”

▼ 몸이 조금 불편하시다고 알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팔다리 관절이 좀 약해요. 늘 몸에 대해 연구하면서 관리하는 편이지요. 7년 전엔 단추를 못 채울 정도로 넉다운된 적이 있는데, 크게 절망했지요.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하는 겸손을 배울 수 있는 계기였어요.”
▼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선배 세대로서 조언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우리 때는 여자가 남자한테 기댔는데 지금은 남자가 여자에게 기대더라고요(웃음). 여자라도 잘나고 똑똑하면 다 되는 시대가 됐죠. 제 머릿속에는 여자, 남자 구분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CJ엔터테인먼트도 여자 직원이 상당히 많고, 다들 자기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한국이 미국보다 더 여성상위인 것 같아요.”
▼ 여자의 행복은 아이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면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전업주부를 폄하하는 분위기에 대해 저는 절대 반대예요. 제 주변에는 능력이 있는데도 좋은 일자리를 마다하고 아이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하는 훌륭한 주부들이 많거든요. 중요한 건 주부냐 일하는 여성이냐를 떠나 자기 일에 충실한 거라고 봅니다.”
▼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는 어떤 생각으로 이겨내시나요.
“어릴 때부터 종교, 절대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어려움이 닥치면 좌절하지 않고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어려움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일 수도 있고, 불교식으로 하면 ‘전생의 업’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거라고 믿어요. 비관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 세계여성상을 수상한다는 말을 듣고 동생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진심으로 축하해줬죠. 올케와 조카들이 오늘 시상식에 참석할 거예요.”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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