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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클리닉 처방 약 부작용 실태

‘식욕 없애는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 부른다!’

기획·강현숙 구가인 기자 / 글·강지남‘주간동아 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6.11.21 11:57:00

항우울제는 울증을 조증으로 바꾸는 정신과 치료제다. 그러나 우울증 치료와 함께 식욕을 감퇴시키는 효과로 인해 많은 비만클리닉에서 살을 빼는 약품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비만처방전에 항우울제가 들어있다는 사실, 그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과 폭력행위까지 야기할 정도로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아는 여성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비만클리닉 처방 약 부작용 실태

지난 7월,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20대 여성이 ‘의문의’ 자살 시도를 했다.
비가 많이 내리던 7월28일 오후 2시경. 박모 양(23)은 4층 거실 베란다를 통해 아파트 밖으로 뛰어내렸다. 외출했다 방금 전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를 향해 “됐어, 내가 죽어버리면 되잖아!”라는 말을 내뱉은 채.
“집안 청소도 해두지 않고 누워 있었어요. 잔소리를 좀 했을 뿐인데 말릴 틈도 없이 갑자기 거실 베란다 문을 열고는….”
9월 중순 박양이 입원 중인 병원 앞에서 만난 박양의 어머니 최모씨(48)는 두 달 전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여전히 버거운 듯했다. 박양은 왼팔과 골반, 갈비뼈 1대가 부러지는 등 전치 12주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최씨는 자신의 딸이 우울증 치료제의 부작용으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생각한다. 박양은 5월부터 7월까지 집 근처 산부인과의 비만클리닉에 다니며 주사와 약물로 비만 치료를 받았다. 박양이 복용한 약은 플루옥세틴(fluoxetine)을 성분으로 하는 SSRI(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계열의 항우울제. 박양은 6주 동안은 매일 1알씩, 3주 동안은 매일 2알씩 이 약을 복용했다.
SSRI계열 항우울제는 전 세계적으로 ‘자살 및 폭력 성향 증가’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약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항우울제를 복용한 환자들이 자살하거나 타인을 살해하는 등의 폭력행위를 한 일이 여러 차례 보고된 바 있다. 특히 이러한 부작용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자주 나타났는데,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사에서도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을 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급기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004년 모든 SSRI계열 항우울제에 ‘자살 충동을 유발할 위험성이 있다’는 경고문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라고 결정했다.
박양과 최씨 모두 그동안 복용한 약의 ‘정체’를 자살 시도 이후에야 알게 됐다. 처방전에 적힌 약 이름을 인터넷으로 검색한 결과 SSRI계 항우울제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게다가 박양은 초기 3주 동안은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 식욕억제제인 펜터민 제제도 함께 처방 받았다. 그러나 FDA는 ‘심각한 심장 유해 반응’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SSRI계 항우울제와 펜터민 제제를 함께 처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7월 중순 박양은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얼굴과 온몸에 빨갛게 발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산부인과에서도 약을 그만 먹으라고 했다. 어머니 최씨는 “발진이 너무 심하게 나타나 창피해서 동네 목욕탕을 못 갔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박양이 자살을 시도한 것은 복용 중단 10여 일 후. 최씨는 “딸이 약을 끊은 후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짜증이 늘었어요. ‘엄마, 나 기분이 이상해. 내가 왜 그러지?’라는 말도 몇 번 했고요. 눈빛도 달라졌어요. 광채가 난다고 할까요. 딸에게 차마 ‘눈빛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없어서 ‘눈 좀 작게 떠라’고만 했습니다.”
최씨는 “딸은 사교성 있는 성격으로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덧붙였다.

“환자들에게 약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만…”
비만클리닉 처방 약 부작용 실태

우울증을 치료하는 약이 어떻게 해서 자살 충동을 불러일으킬까? 이에 대해 대한비만학회 홍보이사이자 가천의대 가정의학과 이규래 교수는 “예측하건대 감정과 정서에 영향을 끼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의 농도 변화 때문에 문제 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항우울제는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즉 항우울제를 복용하면 몸속에 평소보다 많은 세로토닌이 축적된다.
“인권 문제 때문에 세로토닌의 농도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된 바는 없습니다. 다만 빠른 속도로 뛰다가 갑자기 멈추면 관성의 힘 때문에 적응하기 힘들듯이, 항우울제를 복용하다가 갑자기 중단하면 세로토닌 농도에 변화가 생겨 자살 충동 등이 유발될 수 있습니다.”
비만클리닉을 찾아갔다가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것은 비단 박양의 경우만이 아니다. 현재 많은 비만클리닉에서 항우울제를 비만치료제로 사용하고 있다. 항우울제는 식욕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는데, 이 부작용을 살 빼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자가 서울의 한 약국을 통해 입수한 4장의 처방전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모두 이 약국 주변의 비만클리닉에서 나온 처방전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FDA는 항우울제와 마약류 식욕억제제인 펜터민(혹은 펜디메트라진) 제제의 병용처방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4장 모두 이 두 약물을 병용처방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역시 뇌에 작용하는 약물인 항경련제까지 삼중으로 처방된 경우도 있었다. 항경련제는 간질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으로 손발저림 등의 부작용이 흔하게 나타난다.
항우울제와 펜터민 제제를 병용처방하는 것은 일명 ‘펜 요법’으로 불린다. 단일 약물만 처방하는 경우보다 체중감량 효과가 훨씬 뛰어나다. 그러나 97년 미국에서 펜 요법을 받은 8명의 환자가 심장판막증으로 사망하자 미국 FDA에서 병용처방을 금했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펜 요법이 아주 흔하게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약국의 약사 A씨는 “비만클리닉에서 나오는 처방전 중 절반은 병용처방한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항우울제 또는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단일 처방한 것”이라고 밝혔다. A씨에 따르면 비만클리닉들은 환자의 체중감량 효과가 작으면 단일처방을 병용처방으로 바꾸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A씨가 걱정하는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약들을 처방하는 의사들이 정신과 전문의가 아니라는 점.
“보통은 피부과, 성형외과, 산부인과 등에서 비만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이러한 처방을 하고 있어요. 약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 채 식욕 저하의 효과만을 이용하는 것 같아요. 적정한 복용량을 저한테 문의하는 의사도 있고, 심지어 약품명을 틀리게 적어 보내는 병원도 있는 형편이에요.”
살 빼기 위해 먹는 약이 뇌에 작용하는 약물이며 자살 충동까지 불러일으키는 부작용 논란에 휩싸인 약이란 사실을 여성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안타깝게도 박양처럼 단순히 ‘식욕을 떨어뜨리는 약’이라고만 알고 있는 여성들이 많다. A씨는 “여러 차례 비만약의 문제점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만클리닉 환자들 중 절반은 자신이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환자들에게 약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만 병원 눈치가 보여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도 밝혔다. 얼마 전 한 약국이 항우울제를 오랜 기간 복용하는 환자에게 약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며 주의사항을 일러줬다가 환자의 항의를 받은 의사가 다른 환자들에게 해당 약국에 가지 말라고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한다.
현재 최씨는 딸을 산부인과 비만클리닉에 보낸 것을 무척 후회하고 있다. 비만약의 정체와 주의사항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던 병원에 대해서도 몹시 화가 난 상태다. “약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줬더라면 딸이 몹시 예민한 상태라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고, 그날 딸에게 잔소리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최씨는 결국 눈물을 훔쳤다.
“며칠 전 딸에게 ‘네가 희생양이 돼라’고 했어요. 이번 일로 젊은 여성들이 항우울제를 쉽게 복용하지 않았으면 해요. 단지 살을 빼기 위해서 이 약을 먹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먹는 비만치료제의 ‘정체’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대한약사회 홈페이지(www.kpanet.or.kr)의 ‘의약품 정보’ 코너에서 병원에서 받은 처방전에 적힌 약물의 이름을 검색하면 한눈에 약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여성동아 2006년 11월 5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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