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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끝없는 열정

가전제품 디자인, CF 출연으로 화제 모으는 앙드레 김

“끝없이 샘솟는 열정, 쌍둥이 손자·손녀를 향한 사랑, 먼 훗날의 꿈…’

글·김명희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앙드레 김 아뜰리에 제공

입력 2006.10.24 10:22:00

최근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디자인한 데 이어 세제 광고에도 출연해 화제를 모은 앙드레 김. 수십 년간 한번도 쉼 없이 샘솟는 창작열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나 근황과 가족이야기를 들었다.
가전제품 디자인, CF 출연으로 화제 모으는 앙드레 김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앙드레 김 아뜰리에’에 들어서면 그가 흰색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벽지와 천장, 조명과 소파 등 온통 흰색 일색이라 마치 설국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다.
“미안합니다. 오늘이 네덜란드 국경일이라 화분을 보내야 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앙드레 김(71)은 재단을 하듯 능숙한 솜씨로 리본 테이프를 잘라 정성껏 사인을 했다. 외국대사관의 국경일까지 직접 챙기는 모습에서 그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9월 초 열린 삼성전자 신제품 발표기념 패션쇼에서는 민간 외교사절로서 앙드레 김의 면모가 더욱 빛을 발했다. 각국의 대사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그가 “어린이와 민간인의 희생으로 고통받고 있는 레바논 대사 부부도 와주셨습니다”라고 하자 조용하던 객석에서 갑자기 뜨거운 격려의 박수가 쏟아져나왔다.(최근 레바논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많은 민간인 피해를 입었다)
“패션쇼에 초청했을 때 처음에는 레바논 대사 부부가 국내 상황이 좋지 않다며 굉장히 조심스러워하셨어요. 용기를 내서 오시라고 격려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뜨겁게 호응을 해주실 줄 몰랐어요. 제가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죄 없는 어린이들이 희생된 데 대해 가슴이 아팠는데 그렇게 힘을 주시니 초청자 입장에서도 감사했어요.”

“오래 전부터 CF 출연제의 받아왔지만 포토제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거절했죠”
그는 요즘 잇달아 대기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삼성전자 가전제품을 디자인한 데 이어 LG생활건강의 CF에도 출연했다. 조만간 그가 디자인한 카드(KB카드)도 출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의상 외에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아동복·란제리·골프의류·보석·향수·선글라스·침구 등도 디자인하고 있다.
“랄프 로렌,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도 향수·신발·가구 등을 디자인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잖아요. 세계적인 기업들과 함께 일을 하게 돼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그동안 오래전부터 CF 출연제의가 있었지만 쑥스러워서 거절을 했습니다. 제가 포토제닉하지 않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이번 광고는 제 이미지와도 잘 맞고 오렌지 추출물에 한약재를 넣어 피부에도 자극이 없는 세제라고 해 기쁜 마음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가전제품 디자인, CF 출연으로 화제 모으는 앙드레 김

패션쇼에 앞서 손님들에게 쇼에 관해 설명하는 앙드레 김. 그는 최근 삼성 가전제품을 디자인한 데 이어 세제 CF에도 출연했다(왼쪽부터).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출연료 중 1억 원을 유니세프 후원금으로 기증했다. “쑥스러웠다”는 본인의 말과는 달리 그는 NG 없이 촬영을 마쳤으며 애드리브까지 해냈다고 한다. 62년 서울 소공동에 의상실을 열고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수백차례의 패션쇼를 총지휘한 경험이 광고촬영에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한다.
“패션쇼는 종합예술입니다. 오페라나 뮤지컬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하죠. 그래서 모든 패션쇼는 제가 직접 기획하고 콘티를 짭니다. 리허설 때는 모델들 표정을 지도하고 감성적인 연기를 가르칩니다. 배경음악은 절대 남이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원하는 음악만을 편집합니다.”
음악을 비롯, 예술에 대한 관심은 성악가 조수미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지난 9월 초 귀국한 조수미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20년 음악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앙드레 김과의 인연을 들었다. 조수미 이야기를 꺼내자 앙드레 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조수미씨는 그 어머니의 부탁으로 88년부터 의상디자인을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18년째죠.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굉장히 아카데믹한 분이에요. 독일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완벽하게 소화하죠. 음악뿐만이 아니에요. 제가 미술에 관심이 많아 모르는 건 다른 분들께 물어보는 걸 좋아하는데 조수미씨한테 물어보면 너무나도 잘 압니다. 패션에 관해서도 저와 호흡이 잘 맞아요. 클래식 무대의상은 기품이 첫째, 그 다음이 품격 있는 섹시함인데 의상을 그렇게 잘 소화할 수가 없어요.”

건강 비결은 술 담배 커피 안 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그는 “디자인을 할 때 귀족적이고 지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과거 문화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세계 각국의 문화유산과 박물관을 찾아 여행을 한다.
“유럽의 왕실문화 또는 르네상스·로코코·비잔틴 시대 건축물 등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또 한국·중국의 궁중문화, 인도·티베트의 전통적인 그림에서 발견되는 환상적인 색상에서 어떤 강렬한 느낌을 받기도 하죠. 92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초청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패션쇼를 할 때는 몇 번씩이나 현지를 방문해 피카소·미로·가우디 등의 작품을 연구했고, 96년 세계 최초로 이집트 피라미드 앞에서 패션쇼를 할 때도 수차례 현장을 답사했습니다.”
그는 기억력이 좋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어떤 말과 행동을 했는지 정확하게 짚어낸다.
“아, 제가 그런가요? 사실 인상적이었던 것, 탁월했던 것, 아주 실망스러웠던 것이 다 기억에 남아요. 특별히 머리가 좋은 건 아니고 그냥 자연스러운 겁니다.”
건강 비결을 묻자 그는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답했다. 조깅 외에 특별한 운동을 하지는 않지만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고 한다.
“일을 굉장히 좋아해서 일하는 시간이 즐겁고 쉬는 날은 지루해요. 특히 연휴에는 지구가 회전을 멈춘 것 같아요. 요즘엔 토요일, 일요일 이틀을 쉬는데 저는 그게 불만스러워요. 그래서 저는 일요일 오후에는 일을 해요. 저희 직원들한테는 미안한 부분이 있어요.”
술·담배는 하지 않는데 체질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가전제품 디자인, CF 출연으로 화제 모으는 앙드레 김

앙드레 김의 아들 중도씨 부부의 결혼 사진. 두 사람은 지난해 쌍둥이를 출산, 앙드레 김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왼쪽)


“딱 한 번씩 시도해봤지만 저한테는 잘 맞지 않았어요. 전에는 억지로 권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요즘엔 어딜 가나 금연인 곳이 많으니 저한테는 고맙죠. 쓴 걸 싫어해서 커피도 마시지 않습니다. 전 좀 단 걸 좋아해요. 사이다 콜라… 탄산음료가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해서 요즘엔 생과일 주스도 마십니다. 아, 또 돼지고기·닭고기와 비린 생선은 먹지 않습니다. 까다로운 건 절대 아니고 제가 비위가 약하거든요. 채식 위주의 전통 한국음식을 좋아합니다. 외국에 나가서도 호텔 체크인 다음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한국 식당을 찾는 거죠.”
그는 매일 아침 어느 신문에 어떤 기사가 났는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4시30분에 일어나 17개 신문을 꼼꼼히 체크하고 스크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저는 항상 신문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제가 사랑하는 나라, 또 지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해주시잖아요. 신문이 안 오는 날은 실망스러워요. 그래서 일요일 아침은 공허하게 느껴져요.”
그가 누리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것. 그가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뉴스와 KBS ‘인간시대’, SBS ‘긴급출동 SOS’ 등 감동적인 사연이 곁들여진 교양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휴머니티가 있는 다큐멘터리를 좋아합니다. 질병이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굉장히 안타깝다가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때 감동을 받아요. 개그나 말장난하는 프로그램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도 굉장히 훌륭한 것들이 많지만 지나치게 폭력적인 건 좋지 않습니다. 모범적인 드라마가 좋지만 그런 소재들은 아마 인기가 없을 거예요. 다들 아기 탄생의 비밀, 불륜, 그런 소재들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너무 인위적이에요.”



손자·손녀에게 직접 옷 만들어줘
“현유, 이리 오세요. 현서도 오세요.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세요.”
인터뷰 중에 이란성 쌍둥이인 그의 손자·손녀가 달려와 품에 안겼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손자들을 보듬고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평범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는 손녀 현유를 무릎에 앉히고는 인터뷰를 계속했다. 알려졌다시피 독신으로 살아온 앙드레 김은 82년 당시 생후 18개월 된 중도씨(25)를 입양해 애지중지 키우다 디자이너 유은숙씨(31)와 결혼시켰고 그들 부부가 지난해 2월 아들·딸 이란성 쌍둥이를 출산, 할아버지가 됐다. 입양할 무렵의 중도씨와 비슷한 또래가 된 아이들을 보며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아들 어렸을 적 모습이랑 정말 많이 닮았어요. 1분 간격으로 태어났는데 쌍둥이라서 좋은 점이 많아요. 칭찬해주면 서로 더 잘하려고 경쟁해서 말도 더 빨리 배우는 것 같아요. 벌써 쉬운 단어 몇 가지를 말하는데 아직 ‘할아버지’라는 말은 못하고 ‘하부지, 하부지’라고 해요.”

가전제품 디자인, CF 출연으로 화제 모으는 앙드레 김

앙드레 김의 패션쇼는 스타들의 향연이기도 하다. 그는 이영애는 품위있게 아름다운 모델, 최지우는 선이 가늘고 길어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델, 배용준은 지적인 모델, 비는 선이 조각같이 아름다운 모델이라고 평했다.


이날 아들 내외는 아이들 옷을 가봉하기 위해 의상실을 찾았다. 앙드레 김이 쌍둥이의 가을옷을 만들어주기 위해 불렀다는 것. 아이들이 옷을 입어보러 가봉실로 들어가자 그의 시선이 아이들을 따라 움직였다.
“현서 소매 길이 됐고, 재킷 길이 됐고… 허리 편안하게 맞나요? 현유는 스타킹을 신을 거니까 치마 길이 조금만 줄여주세요. 소매 끝에 살짝 고무줄 넣으시고요.”
아이들 옷이 편안하게 잘 맞는지를 확인한 그는 말을 계속 이었다.
“오늘 처음 옷을 만들어주는 거예요. 그동안은 너무 어려 사서 입혔거든요. 아들, 며느리가 아기들한테 굉장히 잘해요. 소아과 의사들처럼 현명하게 아이를 키우더라고요. 처음엔 함께 식당 가서 보채거나 떼를 쓰면 난감한 경우도 있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컨트롤이 돼요.”
중도씨가 유치원에 다닐 무렵 게임기를 너무 오래 가지고 노는 걸 보고 화가 나 심하게 야단을 쳤다가 다음 날 마음이 아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후회했다는 그는 이후 아이들을 꾸짖는 것보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게 교육효과가 좋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식으로 아이들을 엄하게 몰아붙이면 절대 안 됩니다.‘착한 아이니까 이런 건 안 하지’ 하고 부드럽게 타이르면 효과가 훨씬 좋아요. 요즘 식당에 가서 제가 냅킨으로 입가를 훔치면 아이들도 그걸 보고 그대로 따라해요. 그래서 아이들 앞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어린 시절 화가와 시인, 배우가 되기를 꿈꿨고 디자이너로 활동하기 전인 57년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던 그는 “시인은 글을 쓰는 재주가 뛰어나지 않았고, 배우는 잘 맞지 않아 포기했다. 그 길을 일찍 체념하고 디자인과 인연을 맺은 걸 평생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모든 아기들은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가 할 일은 자녀들의 재능을 잘 찾아내 알맞게 교육을 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소중한 행복을 주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에게 혹시 결혼을 하지 않은 게 후회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칼 라거펠트, 베르사체 같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들도 다 결혼을 하지 않았어요. 물론 그들이 그렇다고 해서 저도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젊은 시절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오랜 세월 그 사랑을 지켜가는 게 숭고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니 시기를 놓쳤어요. 결국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됐지요.”
지난해 고희를 맞기도 한 그는 내년 경기도 기흥에 ‘앙드레 김 디자인 연구소’를 열어 그동안 수집해온 각종 조각품과 미술품을 전시하고 지인들을 초청해 패션쇼도 수시로 열 계획이라고 한다. 또 올 11월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사원에서 세계 최초로 패션쇼를 할 예정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아이디어로 세계를 감동시켜온 앙드레 김. 그의 간절한 꿈은 먼 훗날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한다.
“5백 년, 천 년이 지난 뒤에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에 걸쳐 활동한 앙드레 김은 서구의 디자인을 모방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디자인 세계를 창조해 패션을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여성동아 2006년 10월 5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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