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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출발

뮤지컬 ‘메노포즈’ 무대 서는 개그우먼 이영자

‘사건 후’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글·송화선 기자 / 사진·박해윤 기자

입력 2006.09.21 10:03:00

이영자에게 지난 5년은 길고 혹독했다. 2001년 다이어트 파문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그는 2년 뒤 다시 방송에 복귀했지만 화려한 조명이 꺼지면 늘 ‘자기만의 방’에 갇혀 살았다. 뮤지컬 ‘메노포즈’에 출연하며 마침내 대중 앞에 나서는 이영자를 만나 그동안 겪은 아픔과 사건 이후 달라진 삶에 대해 들어보았다.
뮤지컬 ‘메노포즈’ 무대 서는 개그우먼 이영자

이영자(38)를 만나기로 한 날 서울에는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었다. 폭우와 폭염으로 유난히 힘겹던 이번 여름의 끝을 알리는 바람이었다.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영자는 “오늘 날씨 정말 좋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얘기하자”며 기자를 테라스로 이끌었다. 벽도, 커튼도 없는 열린 공간. 하지만 그는 거리를 오가는 이들의 시선에 개의치 않는 듯했다.
사실 그동안 이영자는 언론과의 프라이버시 인터뷰를 피해왔다. 2003년 다이어트 사건 관련 소송에서 승소하며 각종 구설로부터 자유로워진 뒤에도 그랬다. 이영자는 그해 방송에 복귀, 라디오 DJ와 드라마 연기 등으로 차츰 활동 범위를 넓혀갔지만 여전히 지난 시절의 무게에 눌려있는 듯 보였다.
그가 기자를 만난 건 지난 8월 중순. 9월8일 시작되는 뮤지컬 ‘메노포즈’ 출연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백화점 할인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네 명의 갱년기 여성들이 자신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털어놓다 ‘찐한’ 자매애를 느끼게 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이 뮤지컬에서 이영자는 또래들과의 수다를 통해 자아에 눈을 뜨는 폐경기 여성 역을 맡았다.
“98년에도 ‘살을 빼고 싶은 돼지 이야기’라는 뮤지컬에 출연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때는 워낙 인기가 많을 때여서 애드리브로 대충대충 넘어가며 사람들을 웃기려고만 했죠. 이번에는 달라요. 노래를 13곡이나 불러야 되거든요. 하루에 10시간씩 춤, 노래, 연기를 연습하고 있어요.”
집에 들어갈 때면 녹초가 돼서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5년 반 만에 드디어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영자는 그의 다이어트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소동들을 ‘그 사건’이라고 불렀다.)
2001년 봄 벌어진 ‘그 사건’은 이영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연예오락 전문 MC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2000년 5월 돌연 방송을 중단했던 그가 다음 해 36kg이나 감량한 모습으로 나타난 게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영자는 피나는 노력 끝에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밝히고 미용 다이어트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가 지방흡입수술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인 것. 이영자의 수술 사실을 폭로한 성형외과 의사는 이영자가 사업진행 과정에서 자신을 폭행, 협박했다며 그를 고소했고, 이영자 역시 그가 환자의 비밀을 누설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맞고소했다. ‘진실게임’으로 번진 소송사건에서 이영자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법원은 의사측이 의료법을 위반했고, 명예훼손의 죄도 지었다고 판결했다.

뮤지컬 ‘메노포즈’ 무대 서는 개그우먼 이영자

하지만 이 사건이 이영자에게 남긴 상처는 컸다. 그는 ‘거짓말쟁이’라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고,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여자로서 결코 말하고 싶지 않았을 치부까지 밝혀야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잊으라’고 말해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서 ‘그 사건’은 오랫동안 현재진행형이었죠. 어디를 가나 모두 나만 쳐다보는 것 같고, 내 살에 대해 수군대는 것 같았어요. 저를 보며 웃고 박수치던 이들이 순식간에 돌아서서 욕을 퍼붓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부모와 형제 등 10명이 넘는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질적 가장이었던 그는 법원의 승소 판결을 받은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세월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이름이 무서웠고, 그저 그대로 사라져버리고만 싶었다고. 그는 지난 5년을 “이영자라는 존재를 지우기 위해 살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부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잊혀지고 있다는 두려움에 괴로워했다고 한다. 자신조차 종잡을 수 없는 극단적인 감정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자살을 생각했을 만큼 힘들던 그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낸 건 지난 3월 갑작스러웠던 김형곤의 죽음. 가까운 개그계 선배였던 그의 죽음은 이영자에게 “왜 내가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며 불행하게 살아야 하지. 언제 죽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누가 뭐라든 나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고 한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늘 떠나지 않던 우울과 불안, 자기 혐오가 ‘그 사건’의 출발점
그는 “개그맨들이 겉으로는 잘 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쓸쓸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가 아는 대부분의 개그맨들은 남모를 슬픔을 갖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늘 웃어야 하는 직업의 특성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형곤이 오빠가 죽은 것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잘나갈 때는 한꺼번에 7개 프로그램을 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아무리 ‘재밌다’ ‘대단하다’고 해도 저 자신은 불행했죠. 그때 우리 매니저랑 스타일리스트들은 거의 죽었어요. 제 신경질과 짜증이 극에 달했거든요. 마음이 힘드니까 폭식하고, 주위 사람들 괴롭히고…. 좋은 개그가 나올 수가 없었죠. ‘그 사건’ 때문에 일이 다 떨어지고 집에 있을 때 혼자 후회했어요. ‘왜 그때 그렇게 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을까’ 하면서요.”
당시 그를 힘들게 했던 문제 가운데 하나는 가정 내 갈등이었다고 한다. 2001년 다이어트 사건 과정에서 세간에 알려졌듯이, 당시 이영자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는 “처음에는 우리 가족이 불행한 이유가 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데뷔한 뒤부터 끊임없이 돈을 벌었다. 그런데도 갈등은 점점 더 커져가기만 했다. ‘돈만 있으면 다 함께 웃을 줄 알았는데 왜 안될까’ 회의가 들면서 모든 게 싫어졌다”고 고백했다.
실연도 당했다. 이영자는 자신이 “한번 사랑에 빠지면 완전히 미쳐버리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만 한다. 2000년 무렵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잘 안됐다”고 털어놓았다. 그 원인 가운데 한 가지가 이영자의 외모 때문이었다고.
“솔직히 저도 남자 사귈 때 외모 봐요. 누구나 그러잖아요. 나도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을 탓하겠어요. 대신 저 자신을 미워하게 됐죠. 예뻐지고 싶었고, 그래서 다이어트를 했어요.”
체중이 98kg까지 가기도 했던 이영자는 이때 다이어트로 169cm, 62kg의 체격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몸 관리를 하지 못한 탓에 지금은 15kg이 도로 불었다고.
“최근에 (이)소라가 다이어트 식품 사업을 시작하면서 저한테 그걸 좀 줬어요. ‘그 고생을 해서 살을 빼놓고 도로 다 쪘냐’고 구박하면서요. 저도 모르게 ‘살 빼고 나서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어서 그런다. 네가 뭘 안다고 그러냐’라고 톡 쏘아붙이고는 깜짝 놀랐죠. 내 무의식 속에 ‘살 빼면 뭐해. 더 힘들기만 한걸’이라는 생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거든요. 돌아보니 ‘그 사건’ 이후로는 한 번도 살 빼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더라고요. ‘그때 받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구나, 다 털어버려야 하는데’ 하고 생각했죠. 이제는 소라 도움 받아서 다시 한 번 빼보려고요(웃음).”

어려움 속에서 더 깊어진 우정, 친구들과 함께 폐경기 맞고 싶어
뮤지컬 ‘메노포즈’ 무대 서는 개그우먼 이영자

항간에는 다이어트 파문 이후 이영자와 이소라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이영자는 그 사건을 겪으며 친구들과의 우정은 훨씬 더 단단해졌다고 말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전 프로그램 녹화 때문에 미국에 있었어요. 서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죠. 그런데 소라가 호텔로 전화를 걸어온 거예요. 일 터지자마자 제가 있는 곳을 알아내서 바로 전화를 건 거죠. 대뜸 ‘언니, 일단 들어오지마. 나만 믿어. 다 해결할 테니까 미국에서 버텨’ 하데요.”
그 전화를 끊고부터 전화기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친구들이 앞다퉈 전화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이영자에게 행동 요령을 ‘하달’했는데, 그 내용이 각양각색이었다고.
“(최)진실이는 ‘야, 네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그냥 붙어, 붙어’ 그러더라고요. 지연이 언니(MBC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백지연. 이영자와 같은 프로그램을 한 뒤 인연을 맺어 각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는 ‘영자야, 내가 변호사 구해놨다. 아무 걱정 말고 들어와’ 그러고요. (엄)정화는 ‘언니, 어떡하면 좋아’ 하며 징징대기만 했어요. (정)선희는 ‘기도하자’ 그랬죠(웃음). 문제는 제가 (최)화정이 언니 얘기를 들었다는 거예요. 화정이 언니가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니. 미국에서는 의사가 환자 비밀 얘기하는 걸 상상할 수도 없어.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젠 수준이 높으니까 네가 당당하게 행동하는 걸 좋아할 거야. 멋지게 돌아와서 있는 대로 다 얘기해. 그리고 유머있게 말하는 거 잊지마~’ 그랬거든요.”
이영자는 최화정의 말만 믿고 다음 날 새벽 6시 비행기로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공항에 모여있는 기자들에게 “제 결혼식 때도 이렇게 와주실 거죠?”라는 유머를 했다고 한다.
“그 말 때문에 아주 난리가 났죠. 인터넷을 보니 딱 죽고 싶더라고요(웃음).”
나중에 최화정은 “내가 당당하라고 했지 언제 건방지라고 했냐”며 겸연쩍게 사과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해프닝은 있었지만 이후에도 이 친구들은 이영자가 세상의 비난에 시달리며 상처받는 동안 가장 든든한 울타리가 돼주었다.
“우리 친구들이 다 매력 있고 개성이 강하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들 만나서 어울리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우리가 친해진 건 서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였어요. 다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으로 한두 가지씩 아픔을 안고 살거든요. 그걸 서로 이해하는 거죠. 갖가지 사건들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줬고요(웃음). 우리는 사실 평소에는 잘 안 보는데, 우리 가운데 한 명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딱 뭉쳐요. 한 장소에 모이지는 못해도 각자 담당하는 역할이 있죠. 누구는 인터넷 뒤지고, 누구는 기자 전화 받고…. 저는 밥을 해요(웃음). 먹어야 힘이 나잖아요. 사실 화정이 언니는 버터냄새 나고, 진실이는 진한 곰탕국물 같고, 소라는 백화점 같고, 전 재래시장 같은데도 우리가 다 이렇게 모여있는 건 그런 끈끈한 의리 덕분일 거예요.”
이영자는 뮤지컬 ‘메노포즈’에서 또래 여자들 사이의 유대감을 연기하면서 늘 이 친구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는 “연예계 데뷔 초부터 친해지기 시작해 어느새 15년 지기가 됐다. 이제는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돼 거짓말도 못한다. 질투와 뒷말 많은 연예계에서 집안 얘기, 연애 얘기 다 털어놓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진짜 친구들”이라며 “나는 이 친구들과 같이 ‘메노포즈(폐경기)’를 맞고 싶다. 그때까지, 그 뒤에도 쭉 같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자들 사이의 우정은 분명 아름답고 진하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어울리느라 하나같이 매력적인 이 친구들이 모두 ‘싱글’로 남아있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 이영자는 “그건 절대 아니다”라고 한다. 자신과 친구들이 싱글인 건 모두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기대가 유난히 강해서라는 것이다. 때로는 ‘너 왜 그리 맹하냐’고 핀잔주고 싶을 만큼 좋은 남자를 놓치면서까지, 자신을 뒤흔들어놓을 만한 ‘인연’을 기다리고 있다고. 특히 이영자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불타는 사랑을 해야만 결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언젠가 한 번은 모든 것을 다 거는 사랑 해보고 싶어요”
뮤지컬 ‘메노포즈’ 무대 서는 개그우먼 이영자

“30대 초반에는 주위에서 하도 결혼해라 결혼해라 해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그런데 아예 늦고 나니까 오히려 편안해요. 이왕 늦은 거, 내가 미치도록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나 아니면 나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지 뭐하러 서두르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아이 문제도 크게 걱정 안 해요. 정말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입양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이미 결혼했던 사람이라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같이 키울 수도 있고요.”
어려운 일을 겪는 동안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이영자는 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한다. 식구들 사이의 정도 돈독해졌다. 그 안에서 느낀 평화는 이번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한 힘이 됐다고.
“이제는 내 삶을 즐기며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을 통하지 않고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뮤지컬을 하면서부터 하루하루가 신나고 온몸의 감각이 다시 살아나요. 예전에는 오직 내 고민만 있을 뿐, 세상 무엇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바람의 향기를 맡으면 가을이 오는 걸 알겠어요. 나뭇잎이 흔들리면 그 안에서 아름다움이 보여요.”
30대 초반 실연의 아픔을 겪은 뒤 또다시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사랑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는 이영자는, 이제는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도 생긴다고 털어놓았다. 큰 고통을 겪으며 밀쳐두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바람도 커져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재킷 하나만 걸쳐도 실루엣이 살아나는 스타일리시한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다 던질 수 있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영자가 바라는 것은 이 새로운 시작과 함께 고통스럽던 지난날이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이다. 아무리 혹독하던 여름이라도 가을 바람이 불면 조용히 사라지듯이.
그는 먼 훗날 사람들이 자신과 함께 울고 웃던 시절을 돌아보며 “이영자, 참 웃기는 지집애였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솔직히 ‘그 사건’ 재밌었지? 그때 내 덕에 수다 많이 떨었잖아. 내가 한 건 한 거라니까”라고 말할 만큼 여유있는 모습이 되고 싶다고.
이영자의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은 서영은의 ‘웃는 거야’다. “먼지처럼 툭 가볍게 다 털어낼 수 있잖아. 옛일인 듯 기억조차 없는 듯 선물 같은 내일만 생각하면서. 웃는 거야. 그래, 그렇게. 늘 그래왔던 것처럼. 별일 아냐. 흔한 일이잖아. 이젠 너인 것 같아. 늘 그렇게 웃어”라는 가사처럼, 이제는 그가 지난 일을 털어내고 활짝 웃게 되기를 바란다.

여성동아 2006년 9월 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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