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영어를 좋아하고, 잘하게 된 데는 태권도 사범이셨던 아버지 영향이 컸어요. 아버지께서 미군들에게 영어로 태권도를 가르치셨거든요. 그렇다고 영어를 가르쳐주시거나 ‘영어 공부하라’는 훈계를 하셨던 건 아니에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말씀만 하셨어요. 또 영화를 무척 좋아하셔서 토요일 밤이면 꼭 아버지와 함께 AFKN(현 AFN)에서 하는 영화를 봐야 했죠.”
김재민씨(42)는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92년 귀국해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으며 연세대, 성균관대, 한국외국어대 등에서 토익·토플을 강의하고, 현재는 온라인 중등교육 사이트 메가스터디 엠베스트에서 인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에게 유창한 영어 실력의 비결을 묻자 그는 조금 엉뚱하게도 어릴 적 추억을 이야기했다. 영어 대사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 주말마다 외화를 열심히 보았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어 실력이 쑥쑥 자랐다는 것.
“아버지가 ‘저 사람 화난 것 같니?’ 하고 물으시면 보고 느낀 대로 ‘예’ 혹은 ‘아니요’라고 대답하고, 또 ‘어떤 내용인 것 같니?’ 하고 물으시면 제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말씀드렸어요. 그러면 아버지께서 영화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고, 배우들이 어떤 의미로 저런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죠.”
아버지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하고, 흥미를 갖게된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고도 결국 영어강사를 직업으로 삼게 됐다. 그 또한 선후(14), 진하(9), 준영(5) 세 딸에게 영어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어릴 적 아버지께서 그랬듯 아이들에게 매일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으라고 당부한다고.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아내가 세계명작동화, 창작동화 같은 책들을 많이 읽어줬어요. 요즘도 매일 밤 아이들을 눕혀놓고 책을 읽어주면 아이들이 참 좋아해요.”
그와 그의 아내 김미리씨(43)는 이렇듯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거나, 아이들 스스로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내용이야?” “주인공이 어땠어?” 하는 식으로 물어 아이들이 전체 흐름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가를 살피고, 이해한 내용을 정리해 말하는 실력을 키워준다고 한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 즐기는 것이 영어교육의 첫걸음
영어강사인 그가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 영어보다 국어에 비중을 두는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며 깨달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
“84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단어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문장을 못 만들겠더라고요.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자세로 1년 정도 미국인 친구들에게 계속 물으며 공부를 했는데 제가 남들보다 적응이 빨랐던 건 모국어를 잘했기 때문이었어요.”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고등학교 때까지 국어 성적이 좋았던 그는 국어 실력이 미국에서의 토론 수업에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수업의 80%가 토론으로 진행됐다”며 “영어를 듣고 빠른 시간 내에 모국어로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영어로 표현했기 때문에 내 생각을 조리 있게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2003년 말 첫째 딸 선후양을 미국 시카고에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보냈다. 선후양은 미국 학교에서 한 한기를 마친 뒤 우등생 반에 들어갔을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선후양을 미국에 보내기 전 평소와 다름없이 한글로 된 책을 많이 읽도록 하고 ‘How are you?’ ‘Fine, Thank you.’ ‘I’m sorry.’ ‘What’s this?’ ‘What do you like?’ 같은 간단한 회화와 기쁠 때, 슬플 때, 화났을 때 할 수 있는 감정 표현 정도만 일러줬을 뿐 별다른 영어학습을 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선후가 쉽게 미국 생활에 적응한 데는 환경적인 영향이 있었을 거예요. 아내가 선후를 임신했을 때 제가 ‘AFKN 뉴스 청취’를 강의했는데 아내가 AFKN 뉴스를 녹음해 놓으면 퇴근하고 돌아와 그것을 갖고 다음 강의록을 만들었어요. 결국 선후는 뱃속에서부터 영어를 듣고 자란 셈이지요. 선후가 태어난 다음에는 TV 드라마나 영화를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해 선후가 제 곁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접했고요.”
그가 따로 조기 영어교육을 시킨 적은 없지만, 선후양은 집에 있는 아빠의 강의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친숙한 목소리를 재미있어 하며 여러 번 반복해 듣고, 흥얼댔다고 한다. 그는 “다른 가정에서도 영어 비디오와 카세트 테이프를 이용해 충분히 선후가 경험했던 영어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무리 영어를 보고 들어도 부모와 아이 모두 듣기 실력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발전적인 영어학습을 위해서는 영어 말하기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영어를 꽤 많이 했는데 왜 안 들리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분들이 많아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말과 다른 영어의 특성 때문에 그렇기도 해요. 영어는 일단 말하는 속도가 빠르고, 우리말과 어순이 다르죠. 그리고 무엇보다 연음 때문에 알아듣기가 어려워요.”
우리말과 다른 이러한 영어의 특성을 인식한 뒤에는 단어 하나하나의 기본을 충실히 익히는 것이 필수라고 한다. 사전에서 발음기호를 확인한 뒤 다른 단어와 만났을 때 일어나는 연음현상까지 원어민의 발음으로 정확하게 익혀야 하는 것. 그런 다음엔 그 단어를 포함하는 다양한 구문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얼마나 많은 기본 구문을 알고 있느냐’가 영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 그는 ‘~할 예정이다’를 뜻하는 ‘be going to’ 하나로도 꽤 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다며 “구문을 아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영어는 우리말과 달리 주어 다음에 바로 동사가 나오는데 자주 쓰이는 기본적인 동사는 대략 70~90개 된다”며 “make, take 같은 기본동사의 다양한 의미와 전치사가 붙은 동사구까지 꼼꼼하게 익히면 영어의 절반은 정복한 셈”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도 주의할 점이 있어요. ‘make up’ 하면 우리는 ‘화장하다’ ‘구성하다’ 2가지 정도의 뜻만 알고 있는데 사실 10개가 넘는 뜻이 있어요. 그 많은 뜻을 모두 알고 있어야 문맥상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금세 파악해낼 수 있죠.”
기본동사와 동사구, 구문까지 익혔는데도 듣기가 잘 안되는 것은 영어의 호흡법이 우리말과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How are you?’ 하고 영어를 발음해보면 미끄러지듯 이어지는데 같은 의미를 가진 우리말 ‘안녕하세요’는 각각의 음절이 뚝뚝 끊기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렇듯 “영어는 우리말보다 호흡이 빠르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인은 보통 한 문장을 10단어에서 많게는 25단어까지 한숨에 말해요. 미국인은 한번에 ‘와르르’ 얘기하는데 듣는 우리 한국인은 ‘하, 하, 하, 하’ 하며 숨을 쉬면 늦죠. 흔히 ‘처음엔 알아들었는데 뒤는 못 알아들었다’고 얘기하는 게 다 이 때문이에요.”
강하게 발음된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며 듣는 습관 길러야
그는 전치사, 관사 등 단어 하나하나를 끊어서 들으려고 하지 말고, 미국인이 말하는 대로 ‘따르르르’ 통째로 듣고 이해하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어에는 강세와 리듬이 있어요. 중요한 의미를 담은 단어는 반드시 강하게 읽게 돼 있어요. 강하게 발음된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내는 방식으로 들으면 듣기 실력이 월등히 향상됩니다. 리듬 감각은 원어민이 발음하는 것을 반복해 흉내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고요.”
그는 마지막으로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차이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와이셔츠를 입을 때 우리와 달리 외국인들은 단추를 밑에서부터 채운다. 이런 장면이나 동작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면서 ‘저것 봐, 우리랑 참 다르지?’ 하며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아이 스스로 ‘저 사람이 왜 저런 말을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어를 접하도록 유도하면 영어가 훨씬 재미있어진다는 것.
“한국에서 영어공부를 할 때 ‘wear’ 하면 ‘옷을 입다’라는 의미 하나만 외웠는데 미국에 가서 공부하다 보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에 걸치는 것에는 다 ‘wear’를 쓰더라고요. ‘옷을 걸치다’ ‘향수를 바르다’ ‘핀을 꽂다’ ‘안경을 끼다’ ‘양말을 신다’에 이르기까지요. ‘아하, 이 사람들은 어휘가 풍부하지만, 한 단어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표현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는 “단어의 변화에 민감해지면 영어를 배우는 묘미가 더욱 커진다”며 이렇게 듣기를 완성시키고 나면 자연스럽게 입에서 영어가 터져나온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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