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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픔을 딛고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동화로 펴낸 임은경

기획·구가인 기자 / 글·어수웅‘조선일보 기자’ / 사진ㆍ조영철 기자

입력 2006.06.21 16:24:00

‘TTL 소녀’ 임은경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동화 ‘붕어빵의 꿈’을 펴냈다.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라며 받아야 했던 상처들을 담담하게 들려준 그는“부모님을 대신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다”고 말한다.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동화로 펴낸 임은경

임은경(23)이 청각 장애를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과 연예인으로 사랑 받게 된 행운을 동화 형식으로 담아낸 책 ‘붕어빵의 꿈’을 펴냈다. 스물 세살 나이에도 아직 소녀티가 남아 있는 그는 만난 지 한 시간 쯤이 흐른 뒤에야 어렵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어린시절 늘 주눅 들어 있었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무서웠다”고 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벙어리 딸’하고 놀지 말라고, (친구들을) 제게서 떼어놨었죠. 그때 누구도 제게 말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장애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라고.”
그의 부모는 두 사람 모두 2급 판정을 받은 청각장애인. 아버지는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는 어린 시절 고열에 시달린 뒤 청력을 잃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상대방의 입 모양을 보고 몇 마디는 알아듣지만, 어머니는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엄마는 언제부터 그렇게 됐냐”고 어린 임은경이 물었을 때, 외할머니는 “감기 앓을 때 약을 너무 많이 먹였더니 고막이 녹아 눌러붙었다”는 대답을 들려줬다. 소녀는 절간 같은 집에서 표정을 잃고 살았다. 그나마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었다면 말도 제때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임은경의 부모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적지 않지만,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부모 밑에서 외동딸인 그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그 불행이 어떻게 찾아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 발간된 책 ‘붕어빵의 꿈’은 그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기록한 동화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본인도 1급 지체장애인인 작가 고정욱씨가 임은경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옮겼다. “책까지 내고 이제는 마음이 좀 편해졌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힘들게 말을 잇는다.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분명히 이런 분들도 일부 있을 거예요. 부모 팔아서 책 팔아먹으려는 속셈 아니냐고. 솔직히 신경 쓰여요.”
그는 “이제 인기가 떨어지니까, 별짓을 다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라는 말까지 했다. 그런데 어떤 힘이 그에게 이런 고백을 하게 만들었을까.
임은경은 ‘부모님 대신’이라는 표현을 썼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것은 부모가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러지 못하기에 자신이 나섰다는 것. “아직도 아이들을 장애인들과 같이 놀지도 못하게 하는 부모님들이 얼마나 많으냐”고 덧붙였다.

‘무너진다‘는 소리 듣지 못해 청각장애인 삼촌이 쇠파이프 더미에 깔려 목숨 잃는 아픔도 겪어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시절 동화로 펴낸 임은경

지난 5월 발간한 동화 ‘붕어빵의 꿈’ 사인회에서.


그가 들려준 슬픈 경험 하나. 얼마 전 지하철을 탔을 때라고 한다. 정신지체를 앓고 있는 것 같은 청년을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이 손잡고 타더라는 것. 젊은이의 덩치는 커다랗고 노인은 더할 나위 없이 왜소한데, 할아버지의 표정이 그렇게 슬플 수 없었다고 한다. 모든 걸 체념했다는 쓸쓸한 표정. 그런데 이상하게 보는 차원을 넘어, 그들 부자를 슬슬 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임은경에게는 그렇게 불편했다고 한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묻자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떠난 삼촌 이야기를 꺼냈다. 유전 탓인지, 아버지와 함께 목수로 일하던 삼촌도 청각장애인이었는데 둔촌동 집 주변 건축현장에서 일하던 두 사람은 “무너진다”는 소리를 듣지 못해 수십 톤 쇠파이프 더미에 깔려버렸다고 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목숨을 건졌지만, 삼촌은 목숨을 잃었다. “우리 은경이는 얼굴이 예쁘니까 나중에 꼭 탤런트될 거야”라고 수화(手話)로 격려해주던 삼촌이었다. ‘벙어리 딸’이라는 주변의 놀림이나, 반지하방에서 샹들리에에 들어갈 작은 전구를 하루 종일 끼워야 했던 어린 시절의 가난은, 그 슬픔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것이었다.
99년 TTL 광고에서 ‘신비 소녀’로 사랑받으며 모든 이의 관심이 집중되던 몇 년 전에 비해, 사실 현재 임은경은 인기의 정점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다. 하지만 덕분에 밤이면 부모가 좋아하는 치킨과 족발을 밤참으로 시켜먹을 수 있는 소박한 여유가 생겼다. 아버지 어머니와의 대화 수단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문자메시지만 사용하는데도 기본요금은 똑같이 받아요. 너무 하지 않아요?”라고 투덜대는 그가, 사랑스러웠다. 아니, 나이 어린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해야 솔직한 대답이 될 것이다.

여성동아 2006년 6월 5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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