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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프라이버시 인터뷰

시련 딛고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탤런트 김주승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겸손이라는 지혜를 얻었어요”

글·김명희 기자 / 사진ㆍ지호영‘프리랜서’|| ■ 장소협찬ㆍ카페 마리에

2006. 06. 19

탤런트 김주승이 드라마 제작자로 돌아왔다. 지난 5월 중순부터 방영되고 있는 SBS 금요드라마 ‘나도야 간다’가 바로 그가 만드는 드라마. 사업 실패와 두 차례의 암 수술 등 잇단 시련을 겪은 그가 제작자로서의 포부와 가족이야기를 들려줬다.

시련 딛고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탤런트 김주승

브라운관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탤런트 가운데 가끔 ‘요즘 어떻게 지낼까’ 궁금한 사람이 있다. 김주승(45)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 5공 시절 ‘큰손’ 장영자의 사위, 사업 실패와 두 차례의 암 수술 등 잇단 시련을 겪으면서도 간간이 TV 출연을 해왔지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그가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현재 방영 중인 SBS 금요드라마 ‘나도야 간다’를 제작하는 디지털 돔이 바로 그가 운영하는 회사.
지난 5월 중순 만난 그는 전성기 때보다 배가 조금 나왔을 뿐, 깔끔한 인상이며 지적인 이미지는 변함이 없었다. 이수만, 박진영 등 가수들이 연예기획사를 운영하고는 있지만 연기자가 직접 드라마 제작에 나선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그는 “2003년부터 2년간 탤런트협회장을 맡으며 연기자와 방송국, 시청자들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연기자들의 처우개선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말리는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가 협회장을 하면서 나이 들어 소외돼가는 연기자, 부당한 대우를 받는 연기자들을 보며 제작환경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얼마나 지켜질지 모르겠지만 그런 소수의 권익을 보호해주면서도 드라마를 잘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또 내용적인 면에서는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나도야 간다’ 역시 청춘남녀 일색인 요즘 드라마와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마흔 살이 넘어 딸과 같은 학번으로 대학에 다니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세 자매가 펼치는 가족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진다.
“드라마가 언제부턴가 가족을 벗어나서 젊은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선 세 자매와 모녀를 중심으로 한 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게 될 겁니다.”
드라마를 제작하며 힘든 점을 묻자 그는 캐스팅 문제를 꼽았다. 자신이 연기를 하면서도 PD들로부터 캐스팅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듣긴 했지만 이렇게 진이 빠질 줄은 몰랐다는 것.
“전에 한 PD가 ‘캐스팅만 하면 작품 반을 만든 것과 마찬가지’란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실감하고 있어요. 그래도 제가 연기를 하면서 쌓은 인맥이 도움이 되고 있어요. 이번 드라마에 출연하는 김미숙씨, 정보석씨가 다 그런 인연이죠.”

“아내가 없었다면 힘든 시기 견뎌내지 못했을 것”
1983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 85년 드라마 ‘첫사랑’에서 황신혜의 상대역을 맡으면서 청춘스타로 급부상한 그는 90년 장영자씨의 큰딸 김신아씨(40)와 결혼,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96년 연기와 병행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 수배를 받게 된 그는 미국으로 기약 없는 도피생활을 떠나야 했다.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그는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며 자신의 몸을 학대했다고 한다.
“당시는 저 하나쯤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아마 혼자였다면 견뎌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당시 그는 한국에 남아있는 아내가 일을 해서 부쳐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활했다고 한다. 아내가 번역 일을 해 그를 뒷바라지했다는 것. 그는 “아내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재기를 생각하게 됐다”며 “여러 차례 이혼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그건 우리 부부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얘기”라고 말했다.

시련 딛고 드라마 제작자로 변신한 탤런트 김주승

남다른 인생의 굴곡이 연기자로서나,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김주승.


“서울에서 제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와 명예를 잃었으니 건강이라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 술 담배를 끊었죠.”
결국 그는 2년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어렵사리 SBS ‘형제의 강’에 출연해 안정을 되찾을 무렵 그는 덜컥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신장은 온몸의 혈액순환을 관장하는 장기이기 때문에 그곳에 암이 생기면 전이속도가 무척 빠르다며 의사는 하루빨리 수술을 하자고 하더군요. 하지만 ‘형제의 강’은 제겐 무척이나 의미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선뜻 그러질 못했어요.”
그는 작품을 끝내고 나서야 수술을 받았고 그렇게 목숨을 담보로 최선을 다했던 만큼 ‘형제의 강’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하지만 6개월 후 그는 또다시 췌장암으로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의사가 술, 담배를 끊은 게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하더군요. 술은 이제 가끔 마셔도 별 맛이 없는데 담배는 끊은 지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각이 나요. 한번 담배를 피운 사람의 머릿속에는 평생 니코틴 인자가 각인돼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김주승은 그간의 시련과 굴곡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내친김에 그에게 복역 중인 장모 장영자씨의 근황을 물었다. 장모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이름도 같이 거론되는 바람에 이래저래 마음고생을 했지만 그는 원망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눈치였다. 그는 “가끔 면회를 가지만 장모님께서 당신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원치 않는다”며 그 얘기는 매듭을 짓고 싶어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커가는 모습 보며 행복 느껴
요즘 그는 몸무게가 8~9kg이 늘어 다이어트를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달리기, 자전거, 등산을 번갈아 하며 건강을 챙긴다는 그에게서 비로소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의 여유가 묻어났다.
드라마 제작을 제외하면 요즘 그의 가장 큰 행복은 딸이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한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은 숫기 없는 그를 닮아 수줍음을 많이 탄다고 한다. 아빠를 닮아 예쁘장하게 생겼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쑥스러운 듯 “점점 더 예뻐지긴 하는데, 아직은 좀…”이라며 말꼬리를 흐린다.
“저와 아내의 못난 부분만 골라 닮았어요(웃음). 하지만 점점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있어요. 재능이 있다면 연기를 해도 좋을 것 같긴 한데 성인이 될 때까지 지켜볼 생각이에요. 고등학교까지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와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최수종, 황신혜 등은 아직도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달빛가족’에 함께 출연하며 인연을 맺은 서인석, 길용우와는 아직도‘형, 동생’ 하며 절친한 사이로 지낸다고 한다. 제작을 하며 드라마와 인연을 맺고는 있지만 연기에 대한 미련이 없을 리가 없다.
“가급적이면 다른 연기자들을 도와 작품 완성도를 높이는 제작 일에 주력하고 싶어요. 하지만 배우란 캐스팅을 당하는 직업이니까 시청자들이 원한다면 언젠가는 좋은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인터뷰 내내 바라본 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멜로영화에 어울릴 법한 가느다란 손가락을 가진 그에게 그간의 순탄치 못했던 삶은 버거운 짐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래도 내 의지대로 걸어온 삶이다.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간 드라마에선 주로 깔끔하고 냉철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기 때문에 실제 제 모습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젊은 시절엔 그런 면이 없지 않았죠. 하지만 여러 번 굴곡을 겪으면서 성격도 원만하게 변하더라고요. 힘든 시기를 거치면서 겸손이라는 지혜를 터득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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