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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암 극복 체험기③

암 진단 받은 후 정미자씨의‘식이요법 & 마음 다스리기’

“유기농 재료로 된장·고추장 담가 먹고, ‘커피 관장’으로 몸속 독소를 제거해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06.05.11 15:29:00

98년 여름 폐암 진단을 받은 정미자씨는 수술 시기를 놓쳐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만 받았다. 그는 “남은 생명은 6개월”이란 이야기를 들었지만, 남다른 식이요법과 생활요법으로 8년째 건강을 지키고 있다.
암 진단 받은 후 정미자씨의‘식이요법 & 마음 다스리기’

정미자씨(63)를 보면, 그가 말기암 환자였다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본인이 병력을 말하지 않는다면 그저 50대 중반의 건강한 아주머니로 보일 뿐이다.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악착을 떨며 살았는데 아프고 나서는 마음을 비웠어요.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자, 모든 일을 돼가는 대로 내버려두자 했지요. 일주일에 닷새는 가까운 산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나물도 뜯으며 2시간 정도를 보냅니다.”
정미자씨가 폐암 선고를 받은 것은 98년 여름. 그는 당시 경기도 동두천시 버스터미널에서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해 큰 물난리가 났다. 수해로 집이며 가게가 엉망진창이 된 것. 물난리 뒤에는 한 달간을 밤낮없이 수해복구에 매달렸다. 그런데 그 즈음 몸이 계속 피곤하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우면 기침이 심하게 나왔다고 한다.
“특히 어느 한쪽으로 누우면 마치 천식환자처럼 기침이 끊이질 않았어요. 감기나 기관지에 염증이 오면 열이나 오한 같은 증상도 있을 텐데 그런 증상은 없고 그냥 기침만 계속 났죠.”
그가 심상치 않은 기침으로 밤에 잠을 잘 못 이루자 남편도 병원에 가보라고 재촉했다. 동네 개인병원을 찾아가 증상을 이야기하자 “일단 엑스 레이부터 찍고 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혹시 폐렴일지 모르니 사흘일쯤 치료해보고, 차도가 없으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어요. 사흘일 뒤에도 기침이 그치지 않으니 소견서를 써주며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군요.”
평소 감기 한번 앓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던 정씨는 대학병원에서 소세포 폐암이란 진단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주치의는 그의 상태에 대해 “초기도 아니고 꽤 많이 진행됐다”고 했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집착 버리자 마음이 편안해져
“한 푼, 두 푼 모으며 참 악착같이 살았어요. 아이들 셋을 다 서울에서 공부시켰는데 매일 새벽 4시경에 일어나 서울에 사는 아이들의 밥을 해주러 갔어요. 도시락까지 다 싸서 보낸 후에는 다시 동두천으로 와서 남편 밥상을 차려주고 가게로 출근했어요. 그렇게 가게 일 정리하고 집에 들어오면 늘 자정을 넘겼지요.”
정미자씨는 자정 넘어 잠이 들고 새벽 4시면 일어나 다시 서울로 나가는 생활을 20년이나 했다고 한다. 이렇게 피곤한 삶이 지속되니, 신체 저항력이 떨어졌다. 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간접흡연이 그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한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버스터미널에서 하루 10시간이 넘게 일한 게 화근이었다는 것.
절망의 터널 앞에서 그는 ‘못 해본 것들을 해보고 죽으려면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항암주사를 맞고, 방사선 치료도 받았다. 항암제가 얼마나 독하던지 그와 같이 치료를 받던 환자 중에는 두어 번 맞고 쓰러지는 사람도 많았다. 그 역시 머리가 빠지고 심한 구토에 시달렸다. 두 번째 항암주사를 맞은 뒤에는 백혈구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주치의가 이런 상태로는 치료를 계속할 수 없다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살고 싶다’는 간절함으로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항암제를 하도 독하게 맞아서 걷지를 못하고 앉아서 기어 다닐 정도였어요. 그렇게 어렵게 항암주사를 다 맞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습니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도 항암제 못지않아서 유방이 돌처럼 단단해졌고 등은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암처럼 변했지요. 그런데 결과는 더 악화된 걸로 나타났어요.”
주치의는 정씨에게 “치료효과가 좋지 않아 암 세포가 상당부분 남아 있다. 어느 때라도 재발하면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많이 살아야 6개월이라는 소리가 의료진으로부터 흘러나왔다.

암 진단 받은 후 정미자씨의‘식이요법 & 마음 다스리기’

정미자씨는 6가지 잡곡이 들어간 밥과 채소류 반찬을 주로 먹는다.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지요. 그전까지는 많이 울었는데 이후부터 눈물이 나지 않았어요. ‘죽고 사는 건 하늘에 달렸다. 성한 사람도 길가다 오늘 죽기도 한다. 사는 데까지 살아보자’ 하니 마음이 비워졌어요.”
정씨는 신앙에 의지하며 “죽게 할 생각이라면 더 이상 고통 없이 죽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그런데 아들이 “어머니를 이대로 죽게 할 수는 없다”며 다른 방법들을 수소문해보자고 나섰다. 퇴원한 정씨는 99년 4월부터 식이요법과 생활요법을 시작했다.
우선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과 생활습관부터 고쳤다. 예전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몸이 고단해도 뭐든지 자신의 손길이 가야 안심했는데, 걸레가 시커메져도 설거지할 그릇이 쌓여 있어도 그냥 두기로 했다. 졸리면 늘어지게 자기로 했다. 과거에는 가족들을 먼저 생각했지만, 이제는 모든 걸 자신 위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 제가 없으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집안은 제가 없어도 별 문제없이 잘 돌아갔어요. 예부터 ‘만병의 근원은 마음에 있다’고 했는데 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결벽주의자나 완벽주의자, 제 고집으로 사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껴안고 사니, 그만큼 암 같은 질병에 잘 걸린다고 봐요.”
따지고 판단하는 것을 그만두자 훨씬 편안하고 즐거워졌다는 정씨. 그는 식습관도 철저히 자연식 위주로 바꿔나갔다. 백미 밥 대신 현미, 좁쌀, 수수, 콩, 보리 등 6가지를 넣은 잡곡밥을 지었다. 모든 요리의 기본이 되는 된장, 고추장, 간장도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무농약 유기농산품으로 직접 담갔다. 소금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1000℃ 이상에서 여러 차례 구워 불순물을 제거한 특수 소금으로 장류를 담갔고, 김치나 젓갈류를 담글 때도 이 소금을 사용했다.
몸이 나른할 때 먹을 사과식초도 직접 만들었다. 유기농 사과를 사다가 껍질을 벗기고 씨를 제거한 후 강판에 가는데 이때도 금속제 강판은 피했다. 꿀과 생수를 넣고 2주간 발효시키는 과정에서도 산소공급을 위해 하루 한 번씩 흔들어주는 수고를 잊지 않았다.

화학약품 섭취는 멀리하고, 일주일에 닷새는 산에 올라
그는 텃밭에 상추, 깻잎, 치커리, 부추 같은 채소들을 종류대로 다 심었다. 매끼 식사 전 밭에서 바로 따온 채소로 쌈밥을 해서 먹었다. 얼마나 자연식 위주의 식이요법에 철저했는지 외출하는 날에도 꼭 도시락을 싸갖고 다닐 정도였다.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지만, 한두 번 사먹다 보면 습관이 돼버릴 것 같아 꾹 참았다. 고기도 금했다. 어쩌다 오리고기만 먹는 정도로 원칙을 세웠다.
“몸에 노폐물이 쌓이면 일산화탄소 같은 독소를 유발해 세포의 돌연변이를 야기한다고 해요. 암이 싫어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암이 더 이상 자라거나 생겨날 수 없다는 생각에 커피 관장으로 몸속 독소를 제거했습니다.”
커피 관장은 대체의학자인 막스 거슨 박사가 개발한 방법. 거슨 박사는 “커피 중 팔미틱산이라는 성분이 글루타치온 S 전이효소의 활동을 증진시키고, 이 효소들이 전자 친화성 활성산소와 결합해 방광에서 유해물질을 배출시킨다”고 주장한다.
“생수 3컵에 잘게 부순 유기농 원두커피 2큰술을 넣고 3분간 끓였어요. 그 다음 약한 불에서 2분 정도를 더 끓이고 여과지에 걸러 체온만큼 식혀 관장기에 넣고 사용했는데 처음엔 익숙지 않아 힘들었어요. 하지만 커피의 카페인이 간과 연결된 담관을 열어주고 담즙 분비를 촉진시켜 통증을 빨리 줄여줬어요. 진통제를 거의 먹지 않아도 돼 거르지 않고 매일 열심히 했죠.”
그는 식이요법을 실천하면서 3개월 간격으로 병원에 가서 엑스 레이 촬영을 했다. 담당의사도 깜짝 놀랄 정도로 차도를 보였다. 자신도 현저하게 달라지는 몸의 회복 속도를 느꼈다. 그는 더욱 용기를 냈다.

암 진단 받은 후 정미자씨의‘식이요법 & 마음 다스리기’

정미자씨는 자연식 위주의 식이요법을 실천하기 위해 상추, 깻잎, 치커리, 부추를 텃밭에 키우고, 고추장과 된장, 간장도 유기농산품으로 직접 담가 먹는다.





정미자씨는 가급적 화학약품도 섭취하지 않았다. 약물의 오남용은 우리 몸의 자연치유력인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꾸준한 운동은 면역력을 키워 암을 억제하고 암의 재발을 막는 효과가 있기 때문. 그는 일주일에 닷새는 산에 오른다.
“성당에 가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식사 후 산에 오르는데 물통을 메고 가 약수도 떠옵니다. 등산을 하면 최소 1~2시간 정도 걷게 돼서 몸 안에 쌓인 독소가 땀으로 배출됩니다. 또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몸 안으로 받아들여 심신을 정화시키는 효과도 크지요.”
만일 비가 오거나 일기가 좋지 않은 날에는 등산 대신 실내운동을 통해 하루의 운동량을 채웠다. 2000년 3월 엑스 레이 촬영을 한 그에게 의사는 “이제 죽을 단계는 지났다”고 말했다. 정미자씨는 이것을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엑스 레이 촬영을 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에 연연해하는 것도 일종의 집착이 아닌가 싶더라고요. 우리 나이로 60세까지 살았으면 살 만큼 살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사는 날까지 웃으며 살다가 하느님이 부르시면 ‘감사합니다’ 하고 가야지 했어요.”
요즘 정씨의 남편은 그에게 “잠잘 때 당신 얼굴을 보면 평화 그 자체야” 하고 말한다고. 그는 “자신이 봐도 예전과는 정말 얼굴이 달라졌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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