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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 키우며 체득한 독서교육 노하우’

“아이와 같은 책 읽고 생각과 느낌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글·이남희 기자 / 사진ㆍ지재만 기자

입력 2006.05.08 17:19:00

대학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높아지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자녀에게 어떤 책을 읽히고, 어떻게 독서습관을 길러줘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다. 출판평론가 표정훈씨가 두 아이를 키우며 체득한 독서교육 노하우를 들려줬다.
‘두 아이 키우며 체득한 독서교육 노하우’

책으로 탑쌓기 놀이를 하면 아이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붙여줄 수 있다.


“성준아, 이 책에 나오는 제인 구달이 뭐 하는 사람이지?” “음~, 침팬지와 함께 살아온 학자요.”
“맞아, 성준이는 이 책에서 어느 부분이 가장 재밌었니?”
“흐흐, 제인 구달이 열 살 때 아프리카에 가서 야생동물과 처음 만나는 부분요.”
초등학교 3학년인 아들 성준이(9)와 다섯 살배기 딸 현진이의 아빠이자 출판평론가인 표정훈씨(38). 그는 1만 권 이상의 책을 모아온 애서광(愛書狂)답게 아이들과 늘 책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을 ‘직업 독서꾼’이라 일컫는 그는 자녀의 독서 지도에 있어서도 남다른 장기를 발휘한다.
지난 3월 말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위치한 표정훈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거실은 물론 발코니, 부엌 등에 빼곡히 들어선 책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의 유비쿼터스(사용자가 장소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 환경을 만들자’는 표씨의 독서교육 전략이 그대로 묻어나는 인테리어다. 그는 아이들의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책꽂이를 배치함으로써 두 자녀가 책과 쉽게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단 독서를 시작하는 어린아이에게는 ‘책은 놀이’라는 개념을 심어줘야 해요. ‘책은 지루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책과 거리를 두려고 하거든요.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책으로 도미노 놀이, 탑쌓기 놀이를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책을 장난감 삼아 갖고 놀다 보면, 책 속의 내용도 궁금해하기 마련이거든요.”
표정훈씨는 “부모의 조급증이야말로 자녀에게 독약”이라고 강조한다. 자녀가 읽는 책의 수준이 또래에 비해 뒤떨어진다거나 책읽기를 싫어한다고 해서 부모가 조급하게 반응하면 아이에게 부담만 준다는 것. “부모는 자녀가 책읽기의 즐거움을 깨닫도록 환경을 조성해주고, 그 다음은 아이의 흥미와 감수성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표씨의 지론이다.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뒹굴며 자라온 성준이는 하루에 4~5권의 책을 독파하는 독서광이다. 학원에 다니며 지식을 암기하는 데 급급한 또래 친구들과 달리, 성준이는 집에서 책과 씨름하며 궁금한 것들을 해결한다. 자연·사회·국어 과목의 경우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나이에 따라 관심 분야 달라지므로 한 분야에 몰두해도 걱정할 필요 없어
최근 로봇의 세계와 역사 이야기에 심취한 성준이는 과학잡지인 ‘어린이 과학동아’와 이현세의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다. ‘과학자가 될지 역사학자가 될지 고민’이라는 성준이는 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중이다. 표정훈씨는 이처럼 아이가 특정 분야에 빠져 있더라도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은 성장 단계에 따라 관심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성준이는 다섯 살 때 공룡을 무척 좋아해서 공룡의 종류, 크기, 습성 등을 줄줄 외웠거든요. 그때 공룡에 관한 책을 아이에게 참 많이 보여줬어요. 요즘은 성준이가 역사와 과학에 흥미를 붙여 그쪽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느 한 분야의 책에 푹 빠질 때, 부모는 걱정하기 쉽지요. ‘이러다가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외곬수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아이의 관심은 늘 바뀌기 마련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한 분야의 책에 몰두할 때 더욱 빠져들게끔 북돋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이들 부자의 대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표씨는 아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관심을 갖고 그 내용에 대해 지나가는 말로 슬쩍 물어보곤 한다. 아이의 관심사를 꾸준히 격려하고, 책의 내용에 관해 퀴즈를 냄으로써 복습효과까지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준이가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다가 모르는 것이 생겨 물어볼 때, 그는 아이가 책에서 답을 찾도록 노련하게 유도한다.

‘두 아이 키우며 체득한 독서교육 노하우’

표정훈씨는 아들 성준군, 딸 현진양과 함께 늘 책 이야기를 나눈다.


“성준이가 ‘○○을 모르겠다’고 물어보면, 특정한 책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요즘은 부모가 초등학생 자녀의 질문에 다 대답해주기도 어렵잖아요. 그럴 때 ‘책 속에 모든 답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책에 흥미를 느낍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TV 동물농장’을 보면서 옛날에 읽었던 동물도감을 꺼내 궁금한 동물 이야기를 다시 찾아봅니다. 언젠가는 성준이가 인쇄기술 이야기를 다룬 역사 만화를 읽다가 제게 구텐베르크에 대해 묻기에 ‘둘리와 함께 떠나는 박물관 여행’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그 책은 근대 활판인쇄술의 발명자인 구텐베르크와 박물관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거든요. 성준이는 두 책을 겹쳐 읽음으로써 인쇄기술에 대한 흥미와 지식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부모는 좋은 책을 많이 사두는 게 좋습니다. 책은 상호 레퍼런스(참고자료)가 되므로 책이 많을수록 아이에게 다양한 정보를 줄 수 있어요.”
출판평론가인 아버지와 출판사에서 근무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성준이와 현진이는 독서광이 될 만한 유전자와 환경을 두루 타고났다. 혹자는 두 아이가 바람직한 독서습관을 갖게 된 것이 “좋은 조건의 부모를 만난 덕분”이라고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표정훈씨는 “문맹인 부모라도 자녀에게 얼마든지 좋은 독서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과 책읽기를 소중히 여기는 부모의 자세만으로도 아이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
“책을 사거나 책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 ‘즐거운 일’임을 자녀에게 알려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책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평소 부모가 꾸준히 책 읽는 모습을 보이면, 자녀는 저절로 부모의 습관을 따릅니다. 심지어 유대인은 ‘책의 소중함을 자녀에게 알려주기 위해 책에 꿀을 발라놓으라’고 권할 정도니까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서점에 자주 데려가세요. 가족 나들이 코스에 서점을 늘 끼워넣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집니다. 서점에 들를 때 장난감도 함께 사주면 더 좋고요. 아이는 ‘서점에 가면 신나는 일이 생긴다’고 여기게 돼 책과 저절로 친해집니다.”
자녀의 독서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데 시리즈물은 훌륭한 미끼가 된다. 표정훈씨는 성준이에게 여러 권으로 된 시리즈물을 한꺼번에 사주지 않고, 한두 권씩 사서 읽혔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책을 모으는 일이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또 한권 한권 읽어나가다가 시리즈물 전체를 통독했을 때 아이는 큰 성취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성준이는 극한의 상황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일러주는 ‘서바이벌 만화 과학상식(일명 살아남기)’ 시리즈와 프랑스 만화 ‘아스테릭스’ 시리즈를 열광하며 읽었다. ‘다음 편엔 어떤 내용이 나올까’ 하는 기대감에 책 읽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한다.

자녀가 그림책에서 글자 위주 책으로 넘어가도록 ‘도전적 과제’ 제시해야
자녀가 독서에 흥미를 갖고 있어도, ‘아이가 균형 있는 독서를 하도록 어떻게 지도할 것이냐’는 여전히 부모의 고민거리다. 요즘 그림 위주의 책이나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 범람하면서 학생들은 긴 호흡의 글을 읽는 것을 기피한다. 만화만 읽으려 하는 자녀에게 부모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만화라고 해서 무조건 못 읽게 하면 아이는 독서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책은 재밌다’는 생각을 계속 갖게 하려면 자녀의 독서 욕구를 막지 말아야죠. 다만 부모는 만화 외에도 다른 종류의 흥미로운 책이 많다는 것을 자녀에게 꾸준히 알려줘야 합니다.
성준이도 만화에만 푹 빠진 시기가 있었지만 만화를 두 권 볼 때마다 글과 약간의 삽화로 이뤄진 책을 한 권 보기로 약속하고 이를 실천케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세종대왕에 대한 만화를 보고 난 다음에는 만화가 아닌 세종대왕 위인전을 읽힌 것이죠. 이때 백과사전을 찾아보게 한 것도 큰 도움이 됐어요.
성준이가 읽는 책을 살펴보면, 반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나머지 반은 저와 아내가 추천한 것입니다. 아이 엄마는 주로 성준이에게 세계 명작을 읽도록 추천하는 편입니다.

‘두 아이 키우며 체득한 독서교육 노하우’

시리즈물은 아이의 흥미를 유발하는 데 훌륭한 미끼가 된다.


만약 아이가 ‘죽어도 만화만 읽겠다’고 고집한다면 그냥 내버려두세요. 어떤 책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여러 종류의 만화를 읽는 것이 낫거든요.”
자녀에게 책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면, 부모는 아이의 독서 능력에 따라 좀 더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인 자녀의 경우 책읽기에 흥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면, 고학년은 긴 내러티브(이야기)의 책을 읽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스토리 자체에 빠져 두꺼운 책을 읽어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 능력이기 때문. 긴 글을 소화할 수 있어야 아이는 중·고교에 진학해서도 학습에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성준이는 유아기용 책에서 창작과 비평사의 ‘재미있다 우리 고전’ 시리즈로 넘어갔는데, 책을 읽고 엄마랑 한두 마디라도 나눈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된 듯합니다.
요즘은 성준이가 중학생 권장도서인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를 가장 재밌게 읽었다고 해요. 열한 마리 토끼가 고향마을을 탈출해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가는 모험 이야기인데, 책이 무려 4권으로 이뤄져 있죠. 아이가 긴 스토리의 맛을 알게 된 데는 엄마의 역할이 컸습니다. 엄마가 책을 먼저 읽고 대강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면서 아이의 흥미를 유발한 거죠. 지금은 아이가 먼저 아내와 저에게 책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그는 ‘지식 전달 및 학습을 위주로 하는 책과 감성을 중시하는 책(명작동화류)을 아이에게 반반씩 읽히자’는 원칙을 갖고 있다. 아이의 지능과 감성을 고루 발달시키기 위해서다. 그는 인터넷 서점의 ‘어린이 도서’란이나 신문의 ‘북 섹션’을 적극 활용해 아이에게 좋은 책을 골라주는 데도 만전을 기한다.



“5~6세 유아에게는 여러 권의 얇은 그림책을 돌아가면서 반복적으로 읽혀야”
‘두 아이 키우며 체득한 독서교육 노하우’

자녀의 책읽기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독서교육의 성공비결이다.


표정훈씨는 미취학 아동인 딸 현진이를 위해서도 ‘눈높이 독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나이에 비해 성숙한 성준이와 달리 현진이는 삽화가 많은 그림책을 좋아하는 평범한 아이라고. 그는 딸과 함께 그림책을 읽으며 즐겁게 대화한다.
“5~6세 된 아이가 독서에 흥미를 느끼려면 얇은 책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책을 다 읽었다는 성취감을 자주 맛보게 하기 위해서죠.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반복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여러 권의 얇은 책을 돌아가며 계속 읽히세요.
아이는 어른보다 집중력이 뛰어나 무엇이든 잘 암기합니다. 그렇게 반복해서 읽은 책의 내용을 외우는 것도 아이의 사고력 계발에 도움이 됩니다. 어른들은 책 속 활자의 의미만 습득하지만,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 상황 자체를 기억하고 있어요. 부모와 책을 읽는 분위기 자체가 아이의 지능 및 정서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거죠.”
표정훈씨의 독서교육이 빛을 발하는 것은 비단 그의 풍부한 지식 때문만은 아니다. 자녀의 책읽기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책을 통해 아이와의 대화 소재를 넓혀나간 그의 노력이 가장 큰 성공 비결이다.
“‘책을 읽은 후 아이가 꼭 독후감을 써야 하느냐’고 묻는데, 독후감 쓰기를 억지로 강요하면 역효과가 납니다. 아이가 긴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우선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나 기억에 남는 부분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부모와 아이가 같은 책을 읽고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공부가 됩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추천! ‘아이 연령별 권장도서’
의식적으로 번역서를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에는 국내 작가와 출판사들도 수준 높은 어린이·청소년 도서를 많이 내놓고 있다. 책을 고를 때는 감수성과 생활환경 등을 감안할 때, 가능한 한 우리나라 작가 및 출판사가 내놓은 책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게 좋다.

초등학교 고학년·중학교 1학년을 위한 ‘문학과 이야기’

▼ ‘재미있다! 우리 고전’ 시리즈, 창작과 비평사
▼ ‘고양이 학교’ 김진경 저, 문학동네어린이
▼ ‘하늘을 나는 교실’ 에리히 케스트너 저, 문성원 역, 시공주니어
▼ ‘워터십 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리처드 애덤스 저, 햇살과 나무꾼 옮김, 사계절출판사
▼ ‘카라반 이야기’ 빌헬름 하우프 저, 박민수 역, 비룡소

유아 및 초등학교 1, 2학년을 위한 그림책

▼ ‘나보다 작은 형’ 임정진 글, 이웅기 그림, 푸른숲
▼ ‘내 짝궁 최영대’ 채인선 글, 정순희 그림, 재미마주
▼ ‘마법에 걸린 병’ 고경숙 글·그림, 재미마주
▼ ‘넉 점 반’ 윤석중 글, 이영경 그림, 창작과 비평사
▼ ‘나쁜 어린이표’ 황선미 글, 권사우 그림, 웅진주니어

학습 만화

▼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 이현세 그림, 녹색지팡이
▼ ‘만화로 즐기는 한자 오디세이’ 시리즈, 정춘수 저, 부키
▼ ‘만화 과학은 흐른다’ 정혜용 저, 청년사
▼ ‘서바이벌 만화 과학상식’ 시리즈, 문정후·코믹컴 외 저, 아이세움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저, 휴머니스트

기타

▼ ‘아름다운 가치 사전’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한울림어린이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명화집’ 선현경 저, 토토북
▼ ‘즐거운 역사체험 어린이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허현경 그림, 웅진주니어
▼ ‘그림으로 생각 키우기’ 고미 다로 저, 창해
▼ ‘어린이 세계지도책’ DK 편집부 엮음, 강미라 역, 대교베텔스만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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