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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뜻밖의 변신

대학에서 기초영어 강의하는 개그맨 김영철

기획·김명희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ㆍ조영철 기자

2006. 05. 04

개그맨 김영철이 대학 강단에 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3년 전부터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해온 그가 올 봄부터 대학에서 기초영어 강의를 맡게 된 것. “영어로 사람들을 웃기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그에게 영어를 잘하게 된 비결을 들어보았다.

대학에서 기초영어 강의하는 개그맨 김영철

개그맨 김영철(32)이 대학 강사가 됐다. 이번 학기부터 계원조형예술대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 교양과목 ‘기초영어 초급’ 강의를 맡은 것. 영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해외유학 경험도 없는 그가 대학에서 강의를 한다는 게 좀 의외다.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그 자신도 많이 망설였다고.
“처음에는 못한다고 했어요. 아직 배우는 입장이라서. 그런데 저를 추천한 EBS 영어강사 이근철씨가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Teaching is Learning)’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었어요.”
어렵게 강사직을 수락했지만 그는 첫 출강을 앞두고 또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학교 측으로부터 학생들이 졸지 않도록 수업을 재미있게 이끌어달라는 특별 주문을 받았기 때문.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는 학과 특성상 야간작업이 많기 때문에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조는 경향이 있대요(웃음). ‘어떻게 하면 재미와 교양,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는 왜 재미없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문제는 문법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말을 배우기 전에 먼저 복잡하고 머리 아픈 것들과 씨름해야 하니 영어에 흥미가 생기겠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좌충우돌 하며 배웠던 생활영어 위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는 2003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렸던 ‘코미디 페스티벌’에 다녀온 뒤 영어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인사말 외엔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어 비참하고 창피했어요. 그때 ‘10년 뒤에는 이 자리에서 영어로 사람들을 웃기겠다’는 결심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죠.”
그는 귀국하자 곧바로 영어학원에 등록, 일주일에 3일 동안 1시간 30분씩 강의를 듣고 부족한 부분은 개인 교습을 받았다. 또 할리우드 연예인들의 가십이 실린 잡지를 보며 독해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연예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학교 다닐 때는 못하면 손바닥을 맞으면 되지만, 사회에 나오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연예인이 뭐 공부하겠어?’ 하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숙제도 꼬박꼬박 잘해 갔죠.”
학원 강의가 끝난 뒤에는 곧바로 집에 가지 않고 원어민 강사들과 어울려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대학에서 기초영어 강의하는 개그맨 김영철

“제가 TV에 나오는 사람이란 게 알려지니까 강사들이 호감을 갖더라고요. 그들이 먼저 제안해 강의 후에는 가벼운 뒤풀이 시간을 갖곤 했죠. 원어민 강사들은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로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으면 말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지적하며 ‘대화는 통하는 게 우선이다. 입 닫고 있으면 안 된다’고 충고해줬어요.”

그는 이렇게 꾸준히 영어 실력을 쌓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영어 전문방송인 ‘아리랑 라디오’에서 영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틀리는 게 두려워 입 닫고 있으면 영어와 친해질 수 없어요”
3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영어를 정복한 김영철은 영어를 잘하는 비결로 자신감과 오버액션을 꼽았다.
“어떤 표현을 연습할 때는 목소리 톤을 높이고 얼굴 근육을 많이 움직여 자신감 있게 발음해야 합니다. 연습할 때조차 입으로 웅얼웅얼하면 실제 상황에서는 더욱 말을 못하게 돼요.”

대학에서 기초영어 강의하는 개그맨 김영철

처음 강의 제의를 받고 망설였던 김영철은 첫 수업을 앞두고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그는 ‘영어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벗어버리라고 말한다. 영어는 우리말이 아니기 때문에 틀려도 창피하지 않다는 것.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다가는 영영 영어와 담을 쌓을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학생들에게 ‘so far so good’해야 하는데 ‘so good so far’라고 했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가 전혀 없다고 말해요. ‘(집에) 잘 갔니?’가 정확한 표현이지만, ‘갔니 잘?’이라고 말해도 틀린 표현은 아니잖아요. 다만 어색해서 잘 안 쓸 뿐이죠.”
김영철은 또 “영어 공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우라”고 조언했다. 목표가 막연하면 오랜 시간 공부해도 좀처럼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
“그냥 ‘친구가 영어학원을 다니니 나도 따라다닌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해요. 그런 막연한 목표 말고 학생이라면 ‘졸업 후 외국인 회사에 취직하겠다’든지 주부라면 ‘외국여행을 갔을 때 물건값을 흥정하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공부에 열정이 생기죠.”
올해로 방송생활 8년 차인 김영철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생활에 활력이 생겼다고 한다. 또 영어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희망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제가 어학연수 한번 다녀오지 않고 학원에 다니며 평범하게 공부해 실력을 쌓은 걸 보고 다른 분들도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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