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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9박10일 취재기

29년 만에 어머니와 한국 방문한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

“한때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했지만 지금은 더없이 자랑스러워요”

기획·이남희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ㆍ김형우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6.05.04 14:38:00

지난 4월3일,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29년 만에 고국을 찾았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왔다”는 하인스 워드의 9박10일 한국 방문 일정을 밀착 취재했다.
29년 만에 어머니와 한국 방문한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

“제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지난 4월3일 오후,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 최우수선수로 등극한 하인스 워드(30)가 어머니 김영희씨(59)와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두 살 때인 77년 미국으로 건너 간 뒤 29년 만의 방문이다. 이번 방문은 워드가 어머니와 1년 전에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자, 어머니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어머니와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부인과 아들도 동반하지 않은 채 왔다고 한다.
“제가 태어난 한국에 처음 오게 돼 기쁩니다. 한편 긴장도 많이 되네요. 슈퍼볼 MVP가 됐던 순간에도 떨렸지만, 지금 이 순간은 더 긴장됩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또한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몰라 긴장된다는 워드. 그는 조심스럽게 9박10일간의 일정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했다.
“자라면서 어머니께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직접 보고 경험하고 알고 싶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동안 가능하면 한국의 많은 곳을 돌아보고 싶고, 또 한국 음식도 많이 먹고 싶어요. 한국의 전통도 배우고 싶습니다. 절반은 한국인이기에 한국의 전통을 배우는 것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4월4일 오전, 워드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색 양복을 차려입고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그는 서투른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한국에서 하룻밤을 지낸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어제 저녁 이모, 사촌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호텔방에서 편안하게 둘러앉아 맥주를 마시며 TV를 봤다. 기분이 좋았다”고 대답하며 환하게 미소지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혼혈이기 때문에 겪은 아픔과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졌다.
“어린 시절, 제가 누구인지 모를 때가 많아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어요. 흑인들은 저를 한국인이라고 했고, 한국인들은 저를 흑인이라고 했어요. 또 백인 친구들은 저를 흑인 혹은 한국인이라고 놀려서 힘들고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저도 힘들었지만, 미국에서 아무 도움 없이 저를 키우느라 어머니가 더 많이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워드는 자신의 삶을 돌이켜볼 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야 했고,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세상으로부터 받은 차별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날 오후 워드는 한 방송사가 마련한 토크쇼에 출연했다. 평소 가족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진 워드는 이 자리에서 아내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구로 만난 아내에 대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 집에서 몇 점짜리 남편이냐는 질문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한다. 아내의 결정을 존중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라고 답했다. “가끔 설거지와 요리도 돕는다”며 자상한 남편으로서의 면모도 보여줬다.

‘명예 서울시민증’ 받고 감격의 눈물 흘려
식목일인 4월5일, 서울시청에서 이명박 시장으로부터 명예 시민증을 받은 워드는 ‘감격의 눈물’을 흘려 사람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단상 아래에서 아들의 시민증 수여식을 말없이 지켜보던 어머니 김씨도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워드가 손으로 눈물을 연방 훔치자, 이 시장은 자신의 손수건을 워드에게 건넸다.
마음을 가다듬고 마이크를 잡은 워드는 “한때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인 게 자랑스럽다”며, “여러분의 환대에 감사하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죄송할 뿐”이라고 어렵게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앞에 앉은 어머니를 향해 “저를 위해 희생한 어머니, 정말 사랑합니다”라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29년 만에 어머니와 한국 방문한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

청와대 오찬에 초대받은 하인스 워드. 노무현 대통령이 워드가 선물한 미식 축구공을 던져보고 있다.(좌)하인스 워드는 이명박 서울시장에게서 명예시민증을 받은 뒤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워드는 혼혈 어린이들을 만나 용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 관악구 신림동 펄벅재단을 방문한 것. 워드와 어머니는 이곳에서 혼혈 어린이 안아름양과 엄마 안진희씨, 배유진양과 엄마 배선주씨, 그리고 혼혈인 여자 프로농구선수 장예은양(19·우리은행)을 만났다. 항상 환한 미소를 보이는 워드와는 달리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어머니 김씨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혼혈아 어머니들을 만난 뒤 참아온 눈물을 쏟았다.
“한국사람 안 쳐다보고, 생각 안 하고 살아온 30년이었어요. 제가 워드 데리고 한국에서 살았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 아이는 거지밖에 안됐겠지요? 여기선 저를 누가 파출부라도 시켜줬을까…. 이제 와서 우리 워드가 유명해지니 관심을 참 많이 가져주는데, 좀 그래요. 부담스럽지 뭐.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4월6일, 워드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경복궁을 찾았다. 어머니가 “한국에 가면 꼭 경복궁을 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 경복궁에 들어서자마자, 워드는 조선시대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에 매료된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워드 모자가 관람하는 동안 경복궁에 소풍 나온 여학생 30여 명은 이들이 가는 곳마다 쫓아다니며 환호했다. 워드는 그런 여고생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워드 모자는 경복궁에 이어 창덕궁과 비원도 방문해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워드는 “경복궁과 창덕궁 모두 참 아름답다”며 “이런 궁궐이 도심 안에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오후 워드는 어머니와 함께 자신이 태어난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을 방문, 자신의 탯줄을 자른 유한기 당시 주치의를 만났다. 병원 측으로부터 30년 전 출생기록 카드를 선물받은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4월7일, 워드는 놀이공원을 가보지 못한 어머니를 위해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를 찾았다. 2시간 동안 어머니와 놀이기구를 타고 동물 공연을 관람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에버랜드를 찾은 이유에 대해 묻자, 워드는 “한국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곳이기 때문”이라며, “미국에서도 디즈니랜드와 같은 놀이공원이 있는데, 어머니는 가본 적이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29년 만에 어머니와 한국 방문한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06 프로야구 개막전, 두산과 LG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선 하인스 워드.


소풍 나온 학생들이 워드 모자를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바람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지만, 워드는 웃음을 잃지 않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하고 사인까지 해주는 여유를 보였다. 늘 담담한 표정을 보여온 김씨도 이날만큼은 여러 차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4월8일, 워드는 어머니와 함께 펄벅재단에서 주최한 ‘혼혈 아동 희망나누기’ 행사에 참가해 1백여 명의 혼혈 아동과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 파크텔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워드는 어린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싸인한 미식 축구공을 하나씩 나눠줬다. 그는 차별과 편견 때문에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고, 자신은 “운동을 통해 역경을 이겨냈다”고 고백했다. 혼혈 아동들에게 “꿈을 높게 잡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무엇을 하든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워드는 “혼혈 아동이 선입견 때문에 겪는 차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면서, “미국에 돌아가면 가장 먼저 국내 혼혈 아동들을 위한 장학 사업을 시작할 것”을 약속했다. 그 장학기금은 꼭 어머니의 이름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29년 만에 어머니와 한국 방문한 ‘미국 슈퍼볼 영웅’ 하인스 워드

열흘간의 모국 방문 일정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출국하는 하인스 워드.(좌) 입국 기자회견장에서 떨리는 모국 방문 소감을 밝힌 하인스 워드.


‘미국의 슈퍼볼 영웅’ 워드는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색다른 모습을 선보이기도 했다. 2006 프로야구 개막전인 두산과 LG의 경기에서 시구자로 나선 것. 바쁜 일정으로 지친 워드는 전날 이 일정을 취소했지만, “수많은 팬과의 약속은 지켜야겠다”며 흰색 두산 유니폼 상의와 편한 청바지 차림으로 야구장에 나타났다.
많은 이들이 고교시절 야구선수로 활약했다는 워드의 실력을 기대했으나 투구 모습은 조금 엉성했다. 본인도 머쓱했는지 그는 공을 던진 후 활짝 웃었고, 그 모습에 3만여 관중들은 뜨거운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4월9일 워드 모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경기도 용인 한국민속촌을 찾았다. 이들은 다정한 모습으로 민속촌 곳곳을 거닐었으며, 직접 떡메치기를 해보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워드는 또한 동헌 마루에 잔칫상을 차려놓고 어머니의 만수무강을 빌며 큰절을 올리기도 했다. 워드는 기자들에게 “내가 옛날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튼튼한 농부가 돼 벼농사를 지었을 것”이라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9박10일 일정 내내 워드 모자를 수행한 한 측근에 따르면, 워드는 4월10일 밤 9시경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어머니 김씨하고 몰래 호텔을 빠져나와 신촌과 홍대 일대에서 떡볶이 등 길거리 음식을 즐기다 자정이 다 돼서 호텔로 돌아왔다고 한다. 서울에서 머무는 마지막 밤, 카메라의 촬영 공세로부터 해방돼 진정한 자유로움을 만끽한 것.

“혼혈 아동을 돕기 위한 재단 설립 위해 다시 한국 찾을 것”
4월11일 워드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출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어머니 김씨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워드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번 한국 방문에 많은 도움을 준 이들에게 일일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 첫 방문 일정을 마친 소감에 대해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한국 어디를 돌아다녀도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도 어두운 면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 어머니가 겪은 것과 같은 인종 간 갈등과 편견입니다. 제가 한국의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앞으로 인종 갈등과 편견을 극복해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워드는 “미국에 돌아가더라도 혼혈인 차별 철폐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한국의 혼혈 아동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혼혈 아동을 돕기 위한 재단 설립을 구체화하기 위해 다음 달인 5월 말, 아들과 아내와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다.
“저와 어머니를 따뜻하게 맞아준 한국사회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혼혈인으로 대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대해준 것에 감사드립니다. 한국을 사랑합니다.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9박10일의 한국 방문 일정을 모두 마친 워드 모자는 이날 미국 애틀랜타로 돌아갔다. 숨가쁜 일정과 넘치는 관심에 지치고 피곤했을 텐데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던 하인스 워드. 벌써부터 그의 ‘환힌 미소’가 또다시 기다려진다.

여성동아 2006년 5월 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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