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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아빠와 둘이서

‘가정에서 실천하는 철학 교육’

“부모와 아이가 TV 끄고 30분만 차분하게 대화 나누면 사고력이 쑥쑥 자라요”

글·구미화‘신동아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6.04.13 18:10:00

90년대 중반 강남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어린이 철학 교육이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글쓰기 교육만으로는 창의적인 논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부모들이 아이들을 철학학원에 보내고 있는 것. 매주 일요일 2시간씩 딸과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철학 공부를 대신하는 아빠 김용규씨를 만나 일상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철학 교육에 대해 들어보았다.
‘가정에서 실천하는 철학 교육’

‘심각한 척 폼 잡기’가 취미이고, ‘골치 아픈 질문 다 받아주기’가 특기인 아빠. ‘골치 아픈 질문 던지기’가 취미이고,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가 특기인 딸.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튀빙겐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알도와 떠도는 사원’ ‘다니’ ‘영화관 옆 철학카페’ 등 철학을 대중의 영역으로 이끌어내는 여러 권의 책을 펴낸 김용규씨(54)는 매주 일요일 2시간씩 중학생 딸(15)의 골치 아픈 질문들을 받아준다. 하지만 처음부터 작정하고 골치 아픈 질문 받아주기를 시작했던 건 아니다.
“딸이 초등학교 5, 6학년 때 처음으로 철학을 가르쳐달라고 했어요. ‘강남에 사는 아이들은 논술학원이나 철학학원에 다닌다는데 아빠는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 왜 안 가르쳐주냐’면서요. 그때는 ‘넌 아빠의 유전자를 받고 태어났으니까 철학을 절로 잘하게 될 것’이라며 어물쩍 넘어갔는데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까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아무 학원에도 안 보내거든요. 그래서 매주 일요일 2시간씩 제가 직접 아이에게 논술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때 논술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던 그는 글쓰기 기술만 배워서는 천편일률적인 글밖에 쓸 수 없고, 나름의 철학이 담겨야만 좋은 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터라 딸에게 글쓰기가 아닌 철학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대입 논술문제 대부분이 고전을 예문으로 제시해요. 고전을 이해하고 최근의 시사문제와 연관시켜 논리를 펴도록 요구하죠. 그렇다고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 전 범위의 고전을 다 살펴볼 수도 없는 노릇이죠. 논술문제에 계속해서 고전이 제시되는 건 고전이 자유, 평등, 사랑, 이기심, 이타심 등 인류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 보편적 주제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철학이고요. 제 아이가 철학을 배우면 고전을 이해하고 시사문제와 연결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춘기 딸의 고민들로 시작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철학 공부로 이어져
이러한 야무진 목표를 갖고 2004년 여름 처음 딸과의 철학 공부를 시작한 그는 직접 딸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수업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전문적인 철학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고, 보편적인 얘기만 늘어놓는 철학자들의 논리를 이해하기 쉽도록 구체적인 사례를 찾아 제시했다고. 하지만 아이는 아빠의 설명을 지루해했고, 아빠는 그런 딸이 못마땅해 다투기 일쑤였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는데 어느 날 딸이 심각하게 묻는 거예요. 자기를 괴롭히는 아이가 있는데 계속 참고 있어야 하냐는 거였죠. 내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까 철학 공부는 뒷전이 됐고 아주 진지하게 딸의 신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 결국 ‘팃 포 탯(Tit for Tat)’ 전략으로 결론을 내렸죠.”
‘팃 포 탯’은 처음에는 이타적으로 협조하고, 상대방이 계속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상대방과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손해 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
김씨는 자신과 밀접한 일상의 고민에서 출발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철학적인 이야기로 이어지자 눈을 반짝이던 딸의 모습에서 앞으로 철학 공부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인가를 깨닫고 그 뒤로 친구관계, 사랑 등 딸의 관심 분야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고 한다.

딸이 그룹 ‘신화’의 이민우에 푹 빠져 있을 때는 그가 먼저 “넌 정말 네가 그를 사랑하는 거라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던져 사랑과 에로스, 플라톤, 가족의 의미까지 범위를 넓혀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통해 딸은 스타에 열광하는 건 그들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연출해낸 아름다움, 선함 같은 ‘이상형’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피아니스트인 아내와 함께 독일에서 유학하며 나이 마흔에 딸을 얻은 김씨는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더군다나 저술활동을 업으로 하고 있는 터라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아내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그는 “일을 하다가도 딸이 돌아올 시간이 되면 일을 멈추고 창 밖을 보며 딸을 기다리게 된다”고 말한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운동회를 하는데 젊은 아빠들 사이에 있으려니 참 쑥스럽더라고요. 그때 처음 ‘내가 내 딸과 함께 있어줄 수 있는 시간이 다른 아빠들보다 10년 정도 적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굉장한 충격을 받았고,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그 후로 아이가 ‘아빠가 없을지도 모르는 10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아빠가 살아보니 인생에는 이러이러한 어려움이 있더라’는 것을 일러주고 싶었다는 그는 철학 공부 시간에 많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딸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딸과 함께 한 1년간의 철학 수업을 정리해 ‘철학 통조림’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그는 “나중에라도 아이가 살면서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아빠가 살아 있다면 이렇게 말씀하셨겠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한다.
“철학은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부딪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다만 철학자들이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는 거죠. 또 개별적인 예를 들지 않고 보편적인 얘기만 하고 싶어하고요.”
어렵고 거창하게 느껴지는 철학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부모가 자녀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충분히 철학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어떤 상식적인 것을 의심하고 그것에 대해 질문과 응답을 주고받는 일, 물음표와 느낌표를 자꾸 주고받으면서 잘못된 상식을 깨뜨리는 일이 바로 철학이에요.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소크라테스는 날마다 광장으로 나가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것이 그가 철학을 하는 방법이었죠. 소크라테스는 질문과 응답으로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사람들이 가진 막연한 상식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봄으로써 참된 지식을 찾으려 했던 거예요. 아이에게 대단한 걸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TV를 끄고 30분이라도 차분히 앉아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 그게 바로 철학이에요.”
그는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른들이 사용하는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을 뿐 나름의 생각과 논리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며 직접적인 가르침보다 대화를 통해 논리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워낙 ‘엄마 같은 아빠’라 그전에도 ‘수다쟁이’ 딸과 대화하는 것을 즐겼지만 매주 시간을 정해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며 아이가 고전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선뜻 빠져들기 어려운 고전을 아빠가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주고 나면 부쩍 관심을 보인다”면서 “재미있고 삶에 유익한 고전도 부모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강요하면 아이에게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며 먼저 고전의 묘미를 살짝 맛보여주는 방법을 시도해보라고 말한다.
“아이가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면 ‘역사’에 실려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줘보세요. 전 아이에게 재미있는 구절을 얘기해준 다음에 아이가 재미있어하면서 더 얘기해달라고 하면 ‘네가 직접 찾아봐라’ 해요. 제 서재에 꽂아놓고 아이가 직접 찾아보게 하죠. 누구나 정말 알고 싶은 것이 있을 땐 직접 찾아보지 않고는 못 배기거든요.”
그는 “가장 좋은 교사는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동기를 유발하는 사람”이라며 부모가 먼저 고전들을 읽어보고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자극해볼 것을 권했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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