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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이 남자가 사는 법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로 세계문학상 받은 작가 박현욱

글·구가인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6. 04. 12

‘일부다처’가 아니라 ‘일처다부’를 그린 소설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서는 두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싶어하는 발칙한 아내가 등장한다. 국내 문학상 중 가장 높은 1억원의 고료를 지급하는 세계문학상 수상작 ‘아내가 결혼했다’의 작가 박현욱을 만났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로 세계문학상 받은 작가 박현욱

“아직도 드라마에서는 아버지가 첩을 들여 생기는 갈등을 소재로 우려먹고 있어요. 근데 이건 상황만 반대로 했을 뿐인데 다들 받아들이기 어려워해요.”


최근 미국에서는 한 남편과 세 아내를 그린 드라마 ‘빅러브’가 인기를 끌면서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비록 일부다처 상황이 비공식적으로는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을지언정 통념상 ‘혼인이란 일부일처제를 전제로 하는 남녀의 결합’이라고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일부다처제 요구는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일처다부’는 어떨까. 아내 하나가 두 명 이상의 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것 말이다.

“당신하고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그리고 그 사람하고도 결혼하고 싶어.” “말도 안 돼!” 내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게 왜 말이 안 돼?” …(중략)… “나는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당신과 결혼했어. 지금도 당신을 사랑해. 당신과의 결혼을 깨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어. 그리고 또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해. 그래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게 전부야.”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중)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는 제목처럼 자신과의 결혼을 유지한 채 다른 남자와 한 번 더 결혼하는 아내를 둔 남자의 기구한(!) 이야기다. ‘일처다부’라는 발상이 신선하다. 어떻게, 혹은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그러나 작가 박현욱(40)에게서 나온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처음에는 연애소설을 하나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랑 이야기란 게 다양하잖아요. 어느 것 하나만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 거고요. 여러 각도에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남녀간 사랑과 결혼제도에 숨은 모순을 일처다부라는 상황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박현욱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처다부도 있음직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권력자들은 배우자를 많이 거느렸잖아요. 대부분의 권력자가 남자였기 때문에 남자들만 많은 배우자를 거느린 것 같이 보이는데 역사상 권력을 쥔 많은 여성들도 여러 명의 배우자를 거느렸어요. 배우자를 여러 명 두는 것과 그 주체가 남성이냐 여성이냐는 별개의 문제예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말도 안되는 판타지에 지나지 않지만,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는 상황 아닌가요?”
그렇다면 박현욱 그 자신은 어떨까. 그는 일처다부를 주장하는 아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그에게서 뭔가 은밀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기대했건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아유, 그런 여자와는 같이 못 살죠(웃음). 제 또래 세대는 불가능할 것 같아서 소설 속 인물들의 나이를 저보다 몇 살 어리게 잡았어요. 물론 그래도 비현실적인 건 마찬가지지만.”
그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한 명의 아내와 두 명의 남편에 대해 “사랑하지 않으면서 같이 사는 부부보단 행복할 것이고 서로 사랑하는 온전한 부부들보다는 불행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저는 일처다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또 일부일처제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다만 일부일처제의 문제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얽매여 그것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하는 데 문제를 제기한 거죠. 한 예로 일처다부는 낯설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흔하잖아요. 아직도 드라마에서는 아버지가 첩을 들여 생기는 갈등을 소재로 우려먹고 있고, 실제로 두 집 살림하는 사람도 있어요. 근데 이건 상황만 반대로 했을 뿐인데 다들 받아들이기 어려워해요. 그만큼 우리가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일 수도 있죠.”

“상식이라고 믿어온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처다부의 소재에 축구 이야기를 곁들여 더욱 흥미롭다. “일처다부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직설적으로 서술하면 거부감이 들 것 같아 하위 플롯으로 축구 이야기를 끌어들였다”는 박현욱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부터 축구의 매력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어렸을 땐 야구를 훨씬 더 좋아했죠. 축구는 국가대표 경기나 보는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부터 외국의 수준 높은 축구 중계를 많이 방영해줬거든요. 예전에는 내셔널리즘이랑 결합돼서 (축구가)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준 높은 기술축구를 보다보니까 축구 자체가 굉장히 재밌는 게임이더라고요.”
이번 소설을 ‘행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는 그는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어왔던 아집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그의 소설 속에는 우리 사회의 ‘아집’을 깨뜨릴 만한 사랑, 결혼, 가족 등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가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버무려져 있다. 책 마지막에 실린 참고자료 목록이 웬만한 논문 못지않을 정도. 작가로서 그의 부지런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문과였는데 경영학과나 법학과는 가기 싫고. 남은 것 중 고른 게 사회학과예요. 그렇다고 그때 공부를 열심히 한 건 아니었어요. 학교 다닐 때 이렇게 책 읽었으면…(웃음).”
지난 2001년,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준비하던 중 서른다섯의 나이로 ‘우연히’ 소설 ‘동정없는 세상’을 통해 등단했다는 그는 어린 시절 ‘훌륭한 사람’이 되길 꿈꾸던 평범한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한 번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이 없다고.
“(어릴 때)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나보다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글짓기 상장을 한 번 받은 적도 없어요. 굳이 작가가 된 사람을 둘로 나누자면, 글을 잘 써서 된 사람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글도 못 쓰는데 운 좋게 된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저처럼(웃음).”
시종일관 묻는 말에 꼭꼭 씹어서 대답하는 박현욱은 스스로에 대해 ‘글을 못 쓴다’고 낮춰 말한다.
“가끔은 제 책을 다 거둬들여와 없애고 싶을 때도 있어요(웃음). 소설 혹은 모든 글이 ‘노출증’과 ‘자폐증’의 접점에 있는 것 같아요. 보통은 ‘아유, 이것도 글이라고…’ 하면서 다 거둬들여 증거를 없애고 싶지만 아주 가끔은 ‘내가 이렇게 좋은 글을!’ 하면서 널리 읽혔으면 하는…(웃음). 후자의 경우는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이지만 그런 기분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되는 거죠. 뭐, 다 그렇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성석제의 ‘재미’와 김소진의 ‘진지함’, 공선옥의 ‘진한 퍽퍽함’을 좋아한다는 그에게 자신의 소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는지 물었다.
“책을 어떻게 읽는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죠. 저 역시 세계 명작 읽다가도 재미없으면 집어던지는데요. 재미있게 읽으면 고맙고 아니면 할 수 없고, 재미 이상의 것이 있다면 더 고맙지만 아니어도 할 수 없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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