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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멋진 인생

‘데뷔 3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윤석화

“연극을 향한 끝없는 열정, 가장 힘들었던 때 구원처럼 얻은 아들 수민이…”

기획·김명희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ㆍ조영철 기자

입력 2006.04.03 18:21:00

데뷔 30주년을 맞아 자선 콘서트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준비 중인 윤석화. 그는 쉼없이 달려온 지난 30년을 정리하는 이번 공연을 끝내면 네 살배기 아들 수민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잠시 안식년을 가질 예정이다. 윤석화가 들려주는 ‘연극을 향한 변함없는 열정,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구원처럼 얻은 아들 수민이와 함께 누리는 행복.
‘데뷔 3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윤석화

“어지간히 미련하고 무모해서 30년을 연극 한 길만 고집할 수 있었지만 30주년 기념 공연까지도 끝끝내 무모하게 밀어붙이고 있구나…. 이게 데뷔 30년을 맞는 제 소감이에요(웃음).”
아닌 게 아니라 윤석화(50)는 많이 피곤해보였다. 붉게 충혈된 한쪽 눈에 안약을 떨구면서 “며칠째 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데도 병원 갈 틈이 없어 이렇게 안약만 넣고 있다”고 말했다.
3월21일부터 4월5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마련한 공연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그가 절친한 동료 선후배 배우, 음악가들을 초청해 함께 출연하는 토크쇼 형식의 콘서트다. 박정자 이문세 유열 조영남 남경주 인순이 노영심 최정원 황정민 등 지인 열다섯 명이 2회씩 출연한다. 자기 스케줄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람들의 일정을 조절하며 공연을 준비해야 하니 ‘내가 또 왜 이런 힘든 일을 만들었나’ 한탄이 나올 만도 하겠다.
이번 콘서트는 그가 아들 수민이를 입양한 후 1년에 한 번씩 열어왔던 자선 콘서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수익금은 국내입양기금과 미혼모의 집 설립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30’이라는 숫자도 붙고 ‘기념’이라는 딱지도 달았으니 이번에는 좀 크게 일을 벌여서 많이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평소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네 인생에서 하루만 나에게 내달라”고 부탁해 무대로 불러들이게 됐다고.
“삶이 힘들었지만 친구들이 있음으로 해서 아름다웠다는 의미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공연 내용은 그날의 초대 손님이 누구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동안 제가 했던 작품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 될 것 같아요. 일부 명대사를 소개하고 게스트와 함께 시를 낭송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순서도 있고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사랑과 감사의 잔치
‘데뷔 3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윤석화

공연에 초대할 게스트의 목록을 뽑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이름은 연극계의 대선배이자 그가 존경하는 배우 박정자였다고 한다.
“박정자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석화와 나는 라이벌이지만 서로 질투심은 조금도 없다고. 저 역시 박 선생님을 라이벌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로 생각하고 있죠.”
긴 세월 고집스럽게 연극이라는 길 하나만 걸어오는 동안 박정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그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돼주었다고 했다.
“같은 땅에서 눈물을 흘려봐야 알 수 있는 설움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런 설움을 서로 알아줄 후배가 없다는 게 참 아쉬워요.”
‘같은 땅’은 아니지만 ‘옆 동네’인 음악계에서도 많은 친구들이 이번 ‘사랑과 감사의 잔치’에 흔쾌히 출연하기로 했다. 김광민, 노영심, 이문세 등은 만난 계기와 시간은 달라도 서로가 서로의 팬이자 친구인 음악인들이다. 특히 조영남과의 인연이 재미있다. 윤석화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당시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조영남을 ‘감히’ 학교 축제에 섭외해 초대 손님으로 모셨다는 것. 천재는 천재를 알아봤던지, 조영남은 그 후 윤석화가 유명인사가 되자 “내가 진작에 쟤를 알아봤다”고 말했다는 것.
기념공연 무대에서 회고할 작품 중에는 아무래도 첫 데뷔작인 ‘꿀맛’과 그를 일약 연극계의 대표 스타로 만들었던 ‘신의 아그네스’가 빠질 수 없다.

‘데뷔 3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윤석화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끝으로 잠시 가족과 함께 휴식 기간을 가질 계획이라는 윤석화.


스무 살 나이로 민중극단의 연극 ‘꿀맛’에 김애경, 박봉서 등과 함께 출연하며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1975년. 그 후 스물여섯 살에 연극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83년 여름방학에 귀국해 공연한 ‘신의 아그네스’는 지금의 영화 ‘왕의 남자’ 못지않게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대박을 터뜨렸다. 인기 TV 드라마도 아니고 할리우드 영화도 아닌 ‘연극’, 그것도 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이 신문 지상에 그렇게 빈번하게 중요한 비중으로 다루어지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신의 아그네스’는 인생 최고의 작품이기도 했지만 그를 몹시 힘들게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6개월을 하루도 못 쉬고 무대에 선 끝에 걸린 감기는 인후염으로 발전했고 급기야는 막 오르기 30분 전 링거주사 빼고 무대에 올라가며 공연을 계속했다. 목소리를 거의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도록 육신을 혹사했건만 영광보다는 아픔과 상처가 컸다. 연극을 시작하고 8년 만에 올린 작품이었지만 남들 눈에는 갑작스러운 스포트라이트로 비쳤던 것. 그는 ‘미국유학 딱지 붙이고 와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된 신데렐라’ 취급을 받았다.
질시에 시달리던 그는 신앙으로 힘든 시기를 견뎌냈다고 한다. 그렇게 절박하게 찾은 신은 지금까지 그에게 세상에 알려진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의 외로움을 견뎌내는 힘이 돼줬다.
10년 전 무대에 올린 ‘덕혜옹주’도 그의 배우 인생을 한 단계 밀어올린 작품이다. 한 나라의 옹주로 태어났지만 조국을 떠나 정신병원에 갇혀 살다가 결국 예순의 나이에 고국에 돌아온 주인공의 인생을 그려내는 데 배우로서의 운명을 걸었다.

연극 무대는 가장 진실하고 정직한 땅
‘데뷔 3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윤석화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 ‘마스터 클래스’도 심연 같은 절망에서 그를 구해낸 , 잊지 못할 작품이다.
“95년 초연부터 한국 최초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의 주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는데 98년 미국 공연을 앞두고 사전에 아무런 언질도 받지 못한 채 교체됐어요.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었으면 배우라는 직업에서 은퇴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에 연극배우가 무슨 필요인가, 연극을 고집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그런 회의가 심했을 때니까요.”
그런 심정으로 만난 ‘마스터 클래스’의 대본은 구원의 손을 내밀었다. 세계적인 디바였지만 그 역시 외로웠고 힘들었고 용기가 필요해 몸부림쳤던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도 다시 일어나 고난을 넘어 승리하리라는 용기를 얻었다.
“누구나 삶의 고비마다 다시 일어설 용기가 필요하다는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가 저 자신에게, 그리고 관객에게도 큰 의미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선택한 작품이었어요.”
그는 ‘이 작품에서 내가 이기지 못하면 연극을 떠나겠다’는 각오로 무대에 임했다. 무대는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98년 예술의전당에서 ‘명성황후’와 함께 나란히 무대에 올려진 이 작품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죽을 각오로 치열하게 자신을 불살랐을 때 무대는 결코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배우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게 해줬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왜 연극을 하느냐’고 물으면 ‘무대는 가장 진실한 땅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무대는 그가 헌신한 만큼, 자신을 내던진 만큼을 냉정할 정도로 정직하게 되돌려주는 곳이었다. 현실에서 미처 실천하지 못하는 진실한 삶, 그 가치를 배우고 실현할 수 있는 곳. 그래서 그는 무대에 설수록 매력과 책임감과 신념에 더욱 사로잡힌다고 했다.
정직한 예술인 연극의 매력에 깊이 빠져 영혼을 담그고 살아온 지 30년. “나에게는 연극에서의 은퇴란 없다”고 말하는 그는 이번 공연을 마치면 처음으로 장기간 무대를 비울 예정이다.

‘데뷔 30주년’ 기념 무대 서는 윤석화

“잠시 제 어깨에서 연극을 내려놓고 가족을 위해 온전히 제 시간을 쓰기로 했어요. 지금 수민이가 네 살인데 이 시기에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하거든요. 이걸 못해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아서 결단을 내렸죠.”
수민이를 입양하게 된 건 널리 알려졌다시피 2003년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가 연출한 ‘스타 도네이션’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다. 미국으로 입양되는 갓난아기의 일일 엄마를 해줄 스타로 원래 다른 연예인을 섭외했는데 스케줄이 안 맞자 주 교수가 친구인 윤석화에게 통사정해서 출연시킨 것.
당시 그는 회사 부도를 겪은 뒤 새로 사업을 시작한 남편이 머무는 홍콩과 일터를 한 달에 두 번씩 비행기로 오가고,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제작비 구하랴, 폐간 위기에 놓인 ‘객석’을 인수해 적자를 메워가며 운영하던 때라서,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지경으로 뛰어다니며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당시 그가 살던 12층 건물에서는 뛰어내려봐야 중상만 입을 것 같아 20층 건물을 찾아나서려던 때였다고. 그 앞에 나타난 수민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이고 놀라운 은혜였다고 한다.



내 인생에 주어진 놀라운 축복, 아들 수민이
“내 안에 사랑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수민이를 키우면서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어요. 피곤하다, 힘들다, 절망스럽다는 이유로 어느새 가슴이 메말라 있었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면서 다시 사랑이 샘솟는 걸 느꼈어요.”
아이가 생기자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났다. 제작 무산위기에 놓였던 ‘토요일 밤의 열기’를 다시 추진할 용기도 생겼고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대 배역에 도전하는 배포도 갖게 됐다.
“원래는 아이를 다섯쯤 입양하고 싶었어요. 기회가 되면 수민이 누나를 입양하고 싶은데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일이죠.”
그는 99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월간공연예술잡지 ‘객석’을 이제 새로운 발행인에게 넘기려 한다고 한다. 당초 IMF의 여파로 문 닫을 위기에 처한 ‘객석’을 ‘우리나라에 이런 잡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덜컥 인수하면서 취임식에서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5년은 버틸 것이고 아무리 좋아도 5년 후에는 떠나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한다.
“쓰러져가는 잡지를 겨우 일으켜 세우는 데까지는 제 능력으로 됐습니다. 저보다 훨씬 훌륭한 발행인이 맡아서 키워간다면 엄청난 효과를 창출하는 잡지로 발돋움할 가능성과 준비가 됐다고 봅니다.”
1,2년의 휴식기간 동안 그는 미국에서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스탠퍼드대와 컬럼비아대 두 곳에 원서를 넣어놓고 답신을 기다리는 중. 현재 홍콩에 있는 남편도 미국에서 함께 지낼 예정이라 세 식구가 오붓하고 단란한 생활을 꾸릴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설렌다고 한다.
가족과 함께 보낼 안식년에 대해 그는 “연극에서 막과 막 사이의 휴식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휴식이 끝나고 또다시 막을 올리면 우리는 연극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과 열정으로 눈을 빛내며 관객을 맞을 준비가 돼 있을 그를 만날 것이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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