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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아이 낳아 숨어 기른 영화배우 출신 박씨 가슴 아픈 지난 세월 고백

“아들에게 아버지 찾아주고 싶었을 뿐, 다른 욕심은 없어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ㆍ홍중식 기자

입력 2006.04.03 15:31:00

최근 한 모자가 전 재벌회장 A씨를 상대로 낸 친자인지청구소송에서 승소, 화제가 되고 있다. 원고의 어머니 박씨는 45년 전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시절 당시 국내 손꼽히는 재벌가의 장남이던 A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고.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는 박씨가 힘겹게 살아온 지난 세월과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주기까지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재벌가 아이 낳아 숨어 기른 영화배우 출신 박씨 가슴 아픈 지난 세월 고백

지난 3월 중순 박씨(69)를 만났을 때 3일 전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는 그는 수술 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아 고통스러워했다. 갸름한 얼굴형에 하얀 피부, 커다란 눈이 인상적이었다. 박씨는 1961년 친구로부터 당시 국내 손꼽히는 재벌가의 장남 A씨를 소개받았다고 한다. 신인 영화배우였던 박씨는 한눈에 A씨에게 반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 A씨는 그에게 연기를 그만둘 것을 권했고 박씨는 영화계를 떠났다. 두 사람은 열렬히 사랑했지만 A씨는 이미 가정이 있던 터라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만난 지 2년 뒤인 63년 아들을 낳았어요. 이름도 그분이 직접 지었는데 본처에게서 낳은 아이와 같은 돌림자를 썼어요.”

본처 자식과 같은 돌림자 써서 아들 이름 직접 지어준 재벌회장
40여 년 전의 일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잇지 못한 그는 어렵게 다시 말문을 열었다. 화장지로 연신 눈물을 닦던 그는 “아들이 두 살 되던 해부터 그분을 만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분의 아버지가 우리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고 헤어질 것을 요구했어요. 저나 그분이나 마음이 아팠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저도 그분의 가정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무엇보다 재벌가의 장남이라 이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았죠. 그냥 제가 아들을 데리고 떠나면 조용해지겠다고 판단했어요. 아이는 제 호적에 올려 키웠죠.”
박씨는 눈물을 머금고 A씨와 헤어졌다고 한다.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도 아들에게 아버지가 누구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그분은 유순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진 분이었어요. 일할 때는 불같이 열정적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다정했죠. 아들을 키우면서 보니 그런 아버지의 성격을 쏙 빼닮은 것 같더라고요.”
아이의 생일이나 초·중·고등학교 입학식에 아버지의 자리는 늘 비어 있었다.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서를 작성할 때마다 속이 상했어요. 늘 아버지의 이름을 빈칸으로 남겨서 보냈으니까요.”
박씨의 친정어머니는 외손자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누군지 귀띔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박씨에게 아버지에 대해 되묻지 않았다고.
“아버지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지 말해주지 못하는 심정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거예요.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보내다가 더 이상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82년 저 혼자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아들은 1년 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기로 돼 있었고요. 그런데 아들이 그 무렵 배다른 형을 수소문해서 만났는데 그 형이 아버지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더군요. ‘아버지의 아들이 맞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더라고요.”
미국에서 생활하던 박씨는 아들이 미국으로 가기 전 단 한 번만이라도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는 게 자신의 도리라고 생각, 잠시 귀국해서 A씨에게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재벌가 아이 낳아 숨어 기른 영화배우 출신 박씨 가슴 아픈 지난 세월 고백

“헤어진 지 17년 만에 세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앉았어요. 그분을 만나자마자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고요. 뒤늦게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줬다는 뿌듯함보다 초라해진 그분의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예전의 패기는 찾아볼 수 없었거든요. 두 사람은 처음에는 좀 낯설어했지만 이내 가까워졌어요.”
박씨는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함을 내비치는 A씨를 보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그분도 아들을 반갑게 맞았어요. ‘그동안 사는 게 고생스럽지 않았냐’고 묻기도 했고요. 아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렸을 때는 이랬는데…’라는 이야기도 하셨죠. 아들에게 ‘내가 네 엄마를 무척 사랑했다. 세상 살면서 남에게 미안한 짓 안 하고 살았는데 너와 네 엄마에게만큼은 미안하다’고도 하셨고요.”
A씨는 아들에게 자신의 시계와 지갑을 건네며 “아버지를 만난 기념으로 간직하라”고 말했다. 박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준 특별한 선물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여겼다고 한다. 박씨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이후 박씨의 아들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종종 아버지와 만나 시간을 보냈다고.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해했어요. 무엇보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게 감격스러웠다고 말했죠. 아들이 83년 미국으로 이민가면서 그 때부터 그분과 연락이 끊겼어요. 그런데 아들이 결혼해서 첫아이를 낳고는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처음과는 달리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에 귀국을 결심하게 됐죠.”
92년 박씨는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아들과 함께 귀국했다. 현재 박씨의 아들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아들이 제대로 된 호적을 갖고 싶어해서 귀국한 뒤 그분이 있는 곳을 수소문했는데 찾을 길이 없었어요. 그분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도 알아봤는데 어디에 계신지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A씨의 행방을 찾을 수 없자 박씨의 아들은 지난 2004년 법원에 A씨를 상대로 ‘친자 인지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손녀가 종종 ‘할머니, 우리는 왜 할아버지가 없어?’ 하고 묻곤 하는데 그때마다 먼 곳을 쳐다봤죠. 아들도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픈지 지그시 눈을 감곤 하더라고요.”
A씨는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재판 진행 중에도 A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분이 편찮으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저희는 아는 게 없어요. 재판은 그분의 아들들이 대응했어요. 판사는 재판 중에 피고 측에 유전자 검사를 하라고 직권 명령을 내렸는데 그분의 아들 중 한 사람과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99% 이상 일치한다는 소견이 나왔고요.”
박씨는 “죽기 전 아들이 아버지를 찾아야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 같았다”면서 “아들을 낳았을 때 그분이 자신의 호적에 입적시킨다는 약속을 했다”고 주장했다. 또 “그분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재판을 통해 아버지를 찾게 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 재판 통해 아버지를 찾은 것 뿐”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2년 동안 몹시 긴장하면서 살았어요. 아무에게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지만 내심 ‘재판에서 지면 아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고민했죠. 재판에서 승소하고 나니 그동안 쌓였던 긴장이 풀린 모양이에요. 갑자기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통증이 심했을 텐데 그동안 어떻게 참았느냐’면서 의사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라고요.”



재벌가 아이 낳아 숨어 기른 영화배우 출신 박씨 가슴 아픈 지난 세월 고백

박씨는 아들이 아버지를 찾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한다.


박씨는 “법적으로 아들, 손자, 손녀가 뿌리를 찾을 수 있게 돼 기쁘다. 그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큰 바윗덩어리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고백했다.
이번 재판을 두고 항간에서는 ‘유산을 노린 게 아니냐’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박씨에게 이에 관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돈을 노렸다면 옛날에 재판을 했겠지요. 그분이 왕성한 활동을 하던 젊은 시절에 말입니다. 이제는 재산도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미 재산을 물려줬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눈곱만큼도 재산에 욕심내본 적이 없어요. 아들이 하는 사업도 잘되고 있고 저 또한 죽을 때까지 먹고사는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는 박씨는 “자식이 아버지를 찾는 것은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그분께 누가 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았어요. 그분 또한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못해 저와 아들을 어쩔 수 없이 멀리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다만 아들이 아버지와 만나 부자간의 정을 나누면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부모와 자식이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사는 거, 그게 가장 큰 행복 아닌가요?”
박씨는 퇴원하는 대로 며느리와 손자, 손녀에게 시아버지와 할아버지에 대해 얘기할 생각이라고 한다.
“손자와 며느리는 재판 중인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몸을 추스르고 나면 털어놓으려 합니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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