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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게 세상 뜬 고(故) 김형곤 전 부인 정유진씨 눈물 인터뷰

“이 다음에 아이 아빠 얼굴 보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아들 키울 거예요”

기획·김명희 기자 / 글·김순희‘자유기고가’ / 사진ㆍ김형우, 박해윤 기자

입력 2006.04.03 15:23:00

지난 3월11일 개그맨 김형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큰 충격을 던졌다. 운동을 마친 뒤 쓰러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간 것.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전 부인 정유진씨가 이혼 뒤에도 외아들에게 백점짜리 아빠였던 김씨의 생전 모습과 갑작스레 아빠를 잃고 충격받은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가슴 아픈 심경을 들려줬다.
갑작스럽게 세상 뜬 고(故) 김형곤 전 부인 정유진씨 눈물 인터뷰

개그맨 김형곤이 지난 3월11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졌다. 올해 49세.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운동을 마친 뒤 갑자기 쓰러져 세상과 이별한 그를 애도하는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6년 전 이혼한 김형곤의 전 부인 정유진씨(45)는 직접 조문객을 맞았다. 가족, 동료들과 함께 염습실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전 남편의 모습을 보고 나온 그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흐느꼈다.
이혼한 전처가 상가에 조문을 갈 수는 있지만 빈소를 지키고 염습실에까지 따라가는 것은 보기 드문 일. 이에 대해 김형곤의 한 친지는 “이혼했지만 시집 식구 중 누구도 정유진씨를 미워하지 않으며 시어머니와는 아직도 엄마와 딸처럼 지낸다”고 설명했다. 김형곤의 삼우제가 치러진 다음 날 정유진씨를 만났다.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그의 얼굴은 빈소에서 볼 때보다 더 야위어 있었다.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지금도 ‘도헌 엄마’ 하고 금방이라도 전화가 걸려올 것 같아요. 이혼은 했지만 친구처럼 지냈어요. 시집 식구들과도 마찬가지였고요. 누가 뭐라고 해도 아이 아빠잖아요. 그날(3월11일) 아침밥을 먹고 막 숟가락을 놓는데 도헌 아빠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 사람이 죽었다고요. 순간 ‘오늘이 만우절인가?’ 생각하고는 ‘아침부터 웬 농담이냐’며 전화를 끊었어요.”
잠시 후 정씨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휴대전화기 액정 화면에는 김형곤의 운전기사 이름이 떴다. 순간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지나갔다고.
“그 친구가 전화하자마자 ‘회장님(김형곤)이 돌아가셨다’면서 막 울더라고요.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그 길로 택시를 타고 미친 듯이 병원으로 향했죠. 가 보니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주검을 앞에 두고서도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죽기 이틀 전 저에게 전화를 걸어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모든 결과가 좋게 나왔다’며 ‘이제는 술을 마셔도 될 것 같다’고 농담을 했거든요. 만약 화장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쓰러졌다면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살 수 있었을 텐데….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정씨는 무엇보다도 영국에서 유학 중인 어린 아들 도헌(12)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는 일이 힘들었다고 한다.
“아들에게 한국에 오라고 해야 하는데 둘러댈 핑곗거리가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하면 충격을 받을 것 같아서요. 그것도 영국에서 혼자 귀국해야 하는데…. 원래 3월22일 봄방학을 맞아 한국에 나올 예정이었거든요. 비행기표도 예약해놓은 상태였죠. 마음을 진정시키고 영국에 있는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아빠가 많이 편찮으신데 너를 보고 싶어 하니까 한국에 와야겠다’고 얘기했죠. 도헌이가 걱정스런 말투로 ‘아빠가 많이 아프냐’고 되묻더라고요.”
정씨는 차마 공항으로 아들을 마중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아들의 얼굴을 보면 눈물을 감출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인 정씨 대신 김형곤의 남동생이 공항으로 향했다. 도헌군은 작은아버지에게 “아빠가 괜찮냐, 빨리 나아야 할 텐데 걱정”이라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고 한다.

“아마, 죽는 순간까지 아들을 생각하며 이름을 불렀을 거예요”
“병원에 도착한 차가 입원실이 아닌 장례식장이라고 쓴 표지판을 따라가니까 도헌이가 ‘왜 여기로 가냐’고 묻더래요. 아들이 병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제가 달려갔죠. 아들을 보니까 그동안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졌지만 참았어요. 차마 제 입으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도헌이 작은아빠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하느님이 아빠를 빨리 하늘나라에 데리고 가시고 싶었나봐’라고 말하니까 아이가 그제야 눈치를 채고 대성통곡을 하더라고요.”
“우리 아빠가 왜 죽었냐고, 하느님 데려가면 안 된다고, 나를 두고 어떻게 죽을 수 있냐”고 울부짖던 도헌군은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고 한다. 한 시간 후에 정신을 차린 도헌군은 엄마 정씨의 부축을 받고 빈소로 향했다고.

갑작스럽게 세상 뜬 고(故) 김형곤 전 부인 정유진씨 눈물 인터뷰

정유진씨는 김형곤의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다. 외아들 도헌군도 상주가 돼 빈소를 지켰다.


“도헌 아빠가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요. 자기 목숨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던 도헌이를 두고…. 아마 죽는 순간까지도 도헌이를 생각하며 아들의 이름을 불렀을 겁니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마음이야 다 똑같겠지만 도헌 아빠의 자식사랑은 남달랐어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도헌이가 찾으면 열 일 제쳐놓고 한달음에 달려오곤 했으니까요. 세상에서 둘도 없이 너그럽고 좋은 아빠였어요.”
정씨는 91년 김형곤과 결혼했다. 정씨는 결혼 후 하루빨리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산부인과를 제 집 드나들 듯했다”는 정씨는 결혼 4년 만에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어렵게 임신에 성공했다.
“누구에게나 자식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겠지만 저와 그 사람에게 도헌이는 그 이상이었어요. 어렵게 얻은 자식이니 그 소중함이 더 했죠. 특히 도헌 아빠는 아들이 붕어빵처럼 자기를 닮았다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이들 부부는 지난 2000년 이혼했다. 그러나 김형곤은 이혼 사실을 극구 숨겼다. 기자들이 이혼에 대한 소문을 듣고 취재라도 할라치면 김형곤은 “제발 이혼에 대한 기사는 쓰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고.
“이혼하면서 도헌이를 영국으로 보냈어요. 아이에게 이혼 사실을 숨기기로 합의했거든요. 한국에 있으면 부모가 따로 사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고 친지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이혼한 사실을 알게 될까봐 보낸 거죠.”
도헌군은 유학을 떠난 이후 만 4년 동안 한국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김형곤과 정씨가 번갈아 영국에 가서 아들과 함께 지냈다고.
“도헌 아빠와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번갈아 영국을 방문했어요. 저는 보름 정도 있다가 왔고 도헌 아빠는 열흘 남짓 머물렀죠. 지난해 겨울, 도헌이가 유학 간 이후 처음으로 귀국했어요. 아이를 저희 집에 데리고 왔는데 도헌이가 집안을 쭉 둘러보더니 아빠 옷가지 등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는 ‘왜 아빠 방이 없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빠가 미운 짓해서 잠깐 내보냈어’라고 얘기했죠. 그랬더니 아이는 부모가 별거하는 정도로 받아들였어요.”

이혼 사실 숨기기 위해 아들 영국으로 유학 보내
도헌군은 엄마에게 “아빠와 싸웠으면 그만 화해하고 집으로 들어오게 하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저희가 이혼한 사실을 이번에 신문 보도를 통해 알게 됐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충격인데 이혼 사실까지 알게 됐으니, 그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몰라요.”
두 사람의 이혼 사유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정씨는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며 밝히기를 꺼려했다.
“이혼이란 게 누구 한쪽의 잘못으로 빚어지는 결과는 아니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미안한 마음이 앞서네요. 남편은 밖에서는 백점이지만 아내에게는 빵점짜리였어요. 99년 정치판에 발을 내디딜 때는 엄청나게 반대했죠. 저뿐 아니라 부모형제, 그리고 선후배들이 다 말렸지만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어요. 꼭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지를 좀처럼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99년 자민련 명예총재 특별보좌역으로 정치와 인연을 맺은 김형곤은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저는 ‘국회의원의 꿈을 접었으면 좋겠다. 시사코미디를 통해 해학적으로 정치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냐. 나는 코미디언 김형곤의 아내로 족하다’고 설득했는데 포기하지 않더라고요. 그때 지쳤어요. 그 사람이 가고 나니 뒤늦게 후회가 돼요. ‘마음 아프게 하지 말걸…. 이렇게 짧게 살다 갈 줄 알았으면 미워하지 말걸’ 하고 말이죠.”

갑작스럽게 세상 뜬 고(故) 김형곤 전 부인 정유진씨 눈물 인터뷰

김형곤의 생전 모습을 회상하며 말을 잇지 못하는 정유진씨.


이혼한 지 1년쯤 지났을 때 김형곤은 다시 합칠 것을 제의했지만 정씨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한지붕 아래 사는 대신 ‘싸우지 않고’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혼할 때 시어머니가 몹시 안타까워하셨어요. 시어머니와는 가깝게 지냈거든요. 이혼한 후에도 시어머니와 자주 만나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지냈죠. 이혼 전 언젠가 어머니가 제게 ‘니 아들에게만 신경 쓰지 말고 내 아들(김형곤)도 좀 챙겨줘라’ 하고 농담을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도헌이를 낳은 후 남편에게 소홀하게 대하는 것 같아 그게 섭섭하셨던 것 같아요.”
김형곤의 부친은 몇 달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다. 힘겹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김형곤의 아버지는 아직 아들이 죽은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면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될 것 같아 알리지 않기로 했어요. 뉴스 등을 통해 소식을 알게 되실 것 같아 집에는 TV를 볼 수 없도록 아예 케이블 선을 잘라버렸어요. 신문도 끊었고요. 장례식을 마친 후 어머니가 넋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으니까 아버님이 ‘왜 요즘에는 운동도 안 나가고 집안에서 구들장 꺼지게 한숨만 내쉬고 있냐’고 말씀하셨대요.”
지난 겨울 김형곤은 도헌이와 단둘이서 열흘 동안 미국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 여행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의 마지막 이별여행이 된 것.
“여행에서 돌아와 굉장히 가슴 뿌듯해하더라고요. 영어에 능숙한 도헌이가 매니저 역할을 하더래요. 영국에서 힘들게 공부시킨 보람이 있다면서 좋아했는데….”
김형곤은 3월31일 한국 희극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카네기홀에서 공연을 하기로 돼 있었다. 그토록 손꼽아 기다리던 날을 눈앞에 두고 세상을 떠난 그가 정씨는 못내 안타깝다고 한다.



“이혼 후에도 언제든 아이 문제 의논하던 버팀목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세상 뜬 고(故) 김형곤 전 부인 정유진씨 눈물 인터뷰

김형곤의 빈소에는 최양락, 서인석, 배연정, 이경규, 최수종·하희라 커플 등 수많은 연예계 선후배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카네기홀 공연 때는 도헌이도 함께 가기로 해서 더 좋아했어요. 그렇게 원하던 일을 바로 앞에 두고 이루지 못한 채 떠나고 말았네요.”
김형곤의 시신은 지난 3월13일 가톨릭의대에 기증됐고 유품은 경기도 고양시 청아공원에 안치됐다. 시신을 의과대학에 실험용으로 기증한 김형곤에게 많은 사람이 감동과 함께 경의를 표했다.
“오래전에 도헌 아빠가 ‘이 다음에 죽으면 시신 기증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죽고 나면 땅에 묻혀 썩어 없어질 육체인데 후세를 위해 우리의 몸을 의학도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저도 함께 사인을 했죠.”
정씨와 아들 도헌군은 아직도 김형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도헌군은 악몽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해한다고.
“얼마나 상처가 크겠어요. 아이가 혼자 있으면 아빠 생각에 더 힘들어할 것 같아요. 오늘은 아이와 함께 시부모님을 뵙고 왔어요. 도헌 아빠가 죽기 전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개그맨 양종철씨 부인이 종종 저에게 ‘언니, 언니는 (이혼했지만) 그래도 아이 아빠가 살아 있잖아’ 하고 하소연을 하곤 했는데 그때는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비록 이혼했지만 늘 아이 문제를 의논하고 서로 협력해서 도헌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든든한 버팀목이 사라져버렸네요. 저 혼자 어떻게 아이를 키울까 걱정이 돼요.”
정씨는 김형곤이 세상을 뜨기 전날인 3월10일 밤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한국시간으로 일요일 새벽 3시에 영국에 전화를 걸면 도헌이가 전화를 편하게 받을 수 있으니 시간에 맞춰 전화하는 게 좋겠다’는 통화가 그의 유언이 된 셈.

“영국 시누이 집에서 학교 다니던 도헌이가 기숙사로 옮긴 후부터는 주말밖에 통화가 안되니까 도헌 아빠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거든요. 그런데 그토록 그리던 아들의 목소리도 못 듣고 도헌이 곁을 떠나고 말았네요.”
인터뷰 내내 정유진씨는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눈자위가 촉촉이 젖어들었다.
“이제 저 세상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요. 아빠 없이 아들을 키운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최선을 다할 거예요. 그래야 이 다음에 저 세상에서 도헌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을 테니까요.”
돌연사는 대부분 심장질환이 원인, 적절한 운동과 금연, 스트레스 줄여야
글·이진한‘동아일보 교육생활부 기자’

김형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많은 사람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렇듯 돌연사는 갑작스럽게 찾아오며 1시간 내에 사망하는 것이 특징이다.

돌연사는 대부분 심장병이 원인이다. 또 심장병의 80~90%는 심장동맥이 좁아진 협심증이거나 아예 막혀버리는 심근경색이다.

심장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음주, 적절한 운동과 체중감량 등이 필요하며 금연은 필수다.

원래 운동과 체중감량은 각종 심장질환의 위험을 낮춰준다. 그러나 이것이 심장질환을 완전히 예방하지는 못한다. 특히 살을 빼기 위한 단기간의 격렬하고 과도한 운동은 오히려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을 가지고 있는 환자라면 뱃살을 빼더라도 한 달에 1㎏ 정도로 무리 없이 감량할 것을 추천한다. 또 중년엔 운동도 순식간에 힘을 쓰는 과격한 운동보다는 가벼운 걷기나 조깅, 수영 등이 좋다. 체중감량 시에도 콩음료나 음식으로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걷기나 조깅은 하루 30분 이상, 일주일에 5일 정도가 적당하다. 또 운동 전 음주나 과로, 야근 등은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되도록 피해야 한다.

스트레스도 돌연사에 큰 영향을 끼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 중에서도 특히 심한 분노, 적개심, 우울증 등이 돌연사의 한 원인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는 취미활동이나 휴식을 통해 그날그날 풀어주는 것이 최선책이다.

평소 건강에 자신이 있는 경우라도 정기 건강검진을 통해 혈압, 혈당, 맥박수, 콜레스테롤 수치 등 건강상태를 꼼꼼히 살피고 병원에서 운동처방을 받아 자신에게 맞는 운동과 운동 강도를 결정하는 것이 좋다.

만일 운동을 할 때 가슴 통증이나 가슴 전체를 누르는 압박감, 불쾌감이 있거나 목, 어깨, 팔 등으로 통증이 뻗칠 경우엔 반드시 심장병 전문가를 찾도록 한다. 숨이 차거나 어지러운 경우도 마찬가지다.


여성동아 2006년 4월 5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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