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진주 중간에 위치한 경남 합천은 산맥과 강이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까닭에 길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합천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이동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합천에서는 겨울철 즐길거리가 풍성하다. 가야시대 역사체험을 할 수 있는 합천박물관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는 어느 계절에 찾아가도 좋지만, 시골마을에서 직접 가마솥밥을 해먹고 유기농 딸기를 수확하는 재미는 겨울철이 제 맛. 흰 눈이 온 산천을 뒤덮는 겨울이 반가운 경남 합천으로 떠나보자.
합천에서 만나는 가야시대 역사체험, 합천박물관
합천읍 동남쪽에 자리한 합천박물관은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시대로 떠나게 한다. 2004년 12월 문을 연 이 박물관은 가야시대의 한 나라인 다라국 터에 자리하고 있는데, 박물관 옆으로는 합천의 주강인 황강이 흐르고 뒤로는 가야시대 무덤들이 모여 있는 옥전고분군이 있다.
박물관 유물을 구경하기 전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특이한 모양의 분수대다. 분수대 가운데 우뚝 솟은 특이한 구조물은 합천의 대표적인 유물인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의 칼자루를 형상화한 것. 용봉문양고리자루큰칼이란 둥글게 생긴 고리 안에 새겨진 조각이 용봉(龍鳳) 문양이라는 뜻이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발길을 붙잡는 게 또 있는데, 바로 박물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고분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는데, 높다란 흙 토대 위에 건물을 세우고 계단으로 땅바닥과 건물을 연결시켜놓았다. 둥글게 생긴 박물관의 중앙홀은 옥전고분에서 출토된 토기들 중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원봉모양그릇받침을 상징한다. 이 중앙홀을 나선으로 감아올라가는 복도를 따라가면 다양한 토기 모양의 부조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의 외벽 또한 시선을 잡아끄는데, 외벽은 봉분 속에서 발견한 석곽(돌터널)을 형상화한 것.
합천박물관에서는 가야문화의 대표유물인 토기의 블록 맞추기, 갑옷 입어보기 등의 체험을 즐길 수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면 가야시대 대가야를 종주국으로 삼은 작은 가야, 다라국을 만날 수 있다. 다라국은 ‘일본서기’ ‘양직공도’ 등 역사서를 통해 합천 일대에 건설된 나라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다 84년 옥전고분군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 중 3백50점이 이 박물관에서 상설 전시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유물은 고구려 계통의 금동장투구와 서역과의 교역으로 들여온 로만글라스(로마시대 제작된 유리그릇). 로만글라스는 다라국의 교역문화를 엿보게 하는 유물로 경주의 신라 유적지에서 발견된 것 외에는 이곳이 유일하다.
박물관에서는 가야문화의 대표유물인 토기의 블록 맞추기, 갑옷 입어보기, 탁본하기 등의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로 마감 1시간 전에 도착해야 입장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과 1월1일, 설날, 추석은 휴관. 입장료 어른 7백원, 어린이 5백원. 6세 이하 유아는 무료. 문의 055-930-3753 museum.hc.go.kr
산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와 불을 때 가마솥밥 짓기와 두부 만들기 체험을 해보는 대기마을.
황매산 오지마을에서 가마솥밥 짓고 두부 만들며 전통문화 체험, 대기마을
황매산 자락에 자리한 민박마을인 가회면 대기마을. 황매산 기암 봉우리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이 마을은 유난히도 상쾌한 공기와 함께 아침이 시작된다. 이곳에서 민박을 하면 시골집에서 차려내는 구수한 시골밥상으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시설도 마련돼 있다.
아침식사를 마칠 즈음이면 “산으로 나무하러 가자!”고 외치는 마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마을 아저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곳은 마을 앞산. “바싹 마른 것으로 골라야 해. 잘 안 마른 것은 불을 때면 연기가 너무 많이 나거든. 그럼 눈이 맵겠지? 잘 골라보자.” 아저씨의 주의사항에 따라 아이들이 숲속에서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들고 마을로 돌아오는 사이 엄마들은 쌀을 씻고 전날 밤부터 물에 담가두었던 콩을 건져 씻는다. 두부 만들기와 가마솥밥 짓기 체험을 위해서다.
먼저 두부 만들기를 해본다. 두부 만들기는 잘 불린 콩을 맷돌에 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아이들 몸집보다 더 큰 맷돌은 혼자 돌리기 힘들 정도로 무겁다. 아이들 둘이 맷돌 손잡이를 함께 잡고 돌리기 시작한다. 콩을 맷돌로 갈아 뽀얀 콩국이 만들어지면 화덕에 건 솥에 붓고 불을 땐다. 잘 끓여 익힌 후 망으로 된 자루에 건져 짜낸다. 이때 망 안에 남은 콩 건더기가 바로 비지. 짜낸 국물을 솥에 붓고 단백질을 엉기게 만드는 간수를 넣으면 뭉글뭉글 두부가 만들어진다. 이쯤되면 아이들은 군침 닦느라 바쁘다. 이때 두부를 젓던 빨간 바가지에 두부 한 그릇을 떠내 아이들에게 건넨다. “이게 순두부란다. 한번 먹어봐.” 엄마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럿이 달려들어 후후 불어 먹는 순두부의 맛은 고소하기 그지없다. 이제 보자기를 깐 틀에 두부를 부어 무거운 나무틀로 눌러 적당히 물기를 뺀 모두부를 만든다.
이제는 가마솥밥을 지어볼 차례. 무쇠가마솥에 오리농법을 활용해 유기농으로 농사지어 수확한 쌀을 넣고 불을 때 끓기 시작하면 불을 빼내고 잔불로 쌀을 익힌다. 무쇠솥은 쌀이 일단 끓기 시작하면 그 남은 열만으로도 충분히 쌀을 밥으로 만들 수 있다. 뜸이 든 밥솥 뚜껑을 열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이 보인다. 아이 머리만한 커다란 주걱으로 깊은 솥에서 퍼낸 밥은 보기만 해도 입맛이 돌 정도. 이제 밥과 두부, 그리고 시골김치를 꺼내 한 상 차려 먹는 것만 남았다. 가마솥 누룽지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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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겨울철 대기마을에서는 인절미 만들기, 송기떡 만들기, 군고구마·군밤 구워 먹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예약할 때 하고 싶은 체험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된다. 비용은 체험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1일 숙박과 세 끼의 식사, 체험을 포함해 어른 6만원, 어린이 4만원 선. 매주 토·일요일만 체험 가능. 문의 055-932-9427, 055-933-9268
한겨울에 직접 수확한 딸기를 맛보는 달콤한 체험 즐기기, 이상렬 농가
이상렬 농가에서는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딸기따기 체험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 한겨울에 딸기를 구해 아픈 부모께 갖다드려 병을 낫게 했다는 효자 이야기가 있다. 영양학상으로도 양기를 가득 머금은 겨울딸기는 추운 겨울 건강식으로 매우 좋다고 한다.
합천과 의령, 진주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외토리는 마을이 외롭게 떨어져 있다 해서 붙은 이름. 남명 조식 선생의 생가 터가 있는 토당마을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비닐하우스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이상렬씨가 유황을 피워 병충해를 막는 방식으로 유기농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곳이다.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면 달콤한 딸기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이것들은 모두 지난 9월 옮겨 심어 자라는 것들로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딸기밭 한가운데 이상하게 생긴 나무통 하나가 서 있다. 바로 벌통이다. 자연적으로 꽃을 수정시켜 열매를 얻기 위해 비닐하우스마다 벌통을 놓고 있다고 한다. “딸기는 17∼8℃에서 50일 동안 자라야 과육이 단단하면서도 아삭해요. 또 이렇게 천천히 자란 딸기는 보름이 가도 쉽게 상하지 않죠.”
한창 딸기를 따고 있는 아이들에게 “딸기 씨앗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물어본다. 많은 이들이 딸기 표면에 있는 작은 알갱이를 딸기 씨앗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딸기는 씨앗이 아닌 꽃대를 내어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방식으로 번식한다. 밤 기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딸기는 꽃대를 내놓는다. 이렇게 내놓은 꽃대를 모주(母株)라고 부른다. ‘어미 모(母)’ 자를 쓰는 까닭은 딸기가 사람처럼 자식을 품어 내놓는 식물이기 때문. 아직도 왜 딸기가 씨앗이 아닌 모주로 번식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농부들은 딸기를 수확한 뒤 모주를 모아 다음 농사를 준비한다고.
딸기를 실컷 따먹으며 흥미로운 딸기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딸기 따기 체험은 끝이 난다. 체험에 참여한 아이들 손에는 작은 상자가 하나씩 쥐어지는데, 그 안에는 직접 딴 딸기가 가득 담겨 있다. 딸기체험은 딸기 수확철인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가능하다. 그 후에는 상추 따기 체험이 운영된다. 체험료는 1인당 5천원 선(유기농 딸기체험은 8천원). 예약 필수. 문의 055-930-3655, 011-9321-8063 www.hcgreen.com(합천그린투어)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이 있는 곳, 가야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 장경각.
신라 제40대 왕인 애장왕 3년(802)에 창건된 해인사는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바다에 풍랑이 쉬면 삼라만상 모든 것이 도장 찍히듯 그대로 바닷물에 비쳐 보인다는 뜻)에서 이름을 따 지은 절로 ‘진리의 세계’란 뜻이다. 해인사는 말사(末寺)가 1백3개나 되는 대찰이지만 무엇보다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이 보관돼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팔만대장경의 본래 이름은 고려대장경인데, 경전을 새기고 있는 목판의 수가 8만 장에 가깝다고 해서 팔만대장경으로 불린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불가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은 숫자’를 뜻할 때 ‘8만4천’이라는 숫자를 쓴다는 것.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 두 번 만들어졌다. 처음 만들어진 대장경은 거란의 침공을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을 담아 1011년부터 무려 77년에 걸쳐 만들어졌지만 1232년 몽골군의 방화에 의해 불타버렸다. 그로부터 5년 뒤 다시 대장경이 만들어지기 시작해 1251년 완성된 것이 현재 해인사가 보관하고 있는 팔만대장경이다. 이 대장경은 처음 강화도에 보관됐다가 서울 지천사로 옮겨졌고 조선 태조 때인 1393년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해인사 입구에 있는 성보박물관에서는 인경체험을 할 수 있다.
팔만대장경은 장경각(국보 52호)에 보관되고 있는데, 그 구조가 특이하다. 창문의 크기나 위치가 조금씩 다른데, 이는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적절하게 차단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여름에는 습한 바람을 덜 맞게 하고 겨울에는 찬 바람을 덜 맞게 하면서 환기가 충분하게 이루어지도록 설계된 것. 덕분에 대장경 경판(經板)들은 습기를 피할 수 있어 지금까지도 곰팡이가 슬지 않았다고 한다. 해인사 홍보실에 들르면 장경각의 신비한 구조를 설명하는 비디오 자료를 볼 수 있다.
해인사까지 오르는 길은 가야산 생태관찰로로 꾸며졌다. 길가에 자라는 식물과 나무,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에 관한 설명을 붙여놓은 것. 해인사 입구에 있는 성보박물관에서는 판에 먹물을 묻혀 새겨진 글자를 찍어내는 인경체험을 할 수 있다. 문의 055-932-7810(가야산 국립공원사무소), 055-934-3002(해인사 종무소)
가족여행 전문가 한은희씨는요…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체험 여행지를 소개하기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이 달에 찾은 합천은 합천박물관, 해인사 등에서 역사문화체험을 하고 대기마을에서 직접 두부를 만들어 볼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많은 추억거리를 선사할 수 있는 합천을 찾는 발길이 많으면 좋겠다고 적극 추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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