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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책 속에 길이 있어요

‘책읽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는 독서교육법’

“책을 항상 눈과 손이 닿는 곳에 두는 것이 중요해요”

기획·강지남 기자 / 글·서정임‘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6. 01. 06

독서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게 보통 엄마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세 아이를 학원 한 곳 보내지 않고 오로지 책읽기만으로 영재로 키워낸 유은정 주부에게 아이들의 사고력을 높여주는 독서교육법에 대해 들어보았다.

‘책읽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는 독서교육법’

요즘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영어, 수학, 피아노, 논술 등 각종 학원을 다니느라 바쁘다. 하지만 서울 휘경동에 사는 김민주(12·휘경초 5학년), 소정(11·휘경초 4학년), 승우(6) 남매네 집 풍경은 다른 집과는 사뭇 다르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책이 빽빽하게 들어찬 책장들과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다.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는 소정이가 읽고 있는 책을 살짝 들춰보니 ‘과학공화국 물리법정2’. 얼핏 보기에도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을 넘는 책인 것 같다. 이미 생후 26개월 때 TV 프로그램에 ‘공룡박사’로 출연한 적 있는 승우 또한 ‘수호지’ ‘초한지’ 등 중국 고전들을 이미 다 읽었다고 한다.
“책 속에 모든 길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니까 사고의 영역이 넓어지고, 학원에 다니지 않으니까 학교 수업시간에 더 집중하게 돼 성적도 잘 나오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왜 학원에 보내지 않느냐는 질문에 엄마 유은정씨(41)는 이처럼 자신 있게 답한다. 민주와 소정이는 둘다 생후 46개월 때 사설기관에서 영재 판결을 받았다. 민주는 다섯 살 때 영어동화책을 줄줄 읽어 TV에 출연한 적이 있고, 지금도 교내외 글짓기 상을 독차지 하고 있다. 논리력과 창의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소정이는 벌써부터 부산에 있는 영재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아들 승우 또한 두 누나들 못지 않게 똑소리가 나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유씨는 ‘굳이 어렸을 때부터 여기저기 얽매이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유치원 몇 달 보내고 학원은 아예 보내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집에서 노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어 지금까지 민주는 7천여 권, 소정이는 1만5천여 권을 읽었다고 한다. 막내 승우의 독서량 또한 누나들 못지않다고.
“민주를 임신했을 때 육아 관련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읽다가 ‘생후 36개월 이전까지는 모든 아이들이 천재’라는 이론을 접했어요. 그때 처음 ‘우리처럼 평범한 부부에게서도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책을 통해 교육을 하게 됐어요.”
‘책읽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는 독서교육법’

유은정씨네 집안 곳곳은 책들로 가득하다. 왼쪽부터 승우, 유은정씨, 소정, 민주.


아이들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많은 책을 읽어줬다는 유은정씨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책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집안을 어지럽힌다고 혼을 내지 않았고 책 읽고, 종이를 오리고 붙이는 놀이를 하도록 장려함으로써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도록 했다고.

책읽기 싫어하는 아이는 ‘책 듣기’부터 시작하게 하는 게 효과적

유은정씨는 책을 싫어하는 아이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바꾸려면 엄마의 관심과 노력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는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달려올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무턱대고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며 아이가 책에 관심 가질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많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게 유씨의 생각이다.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글을 스스로 읽을 줄 알게 되면 책 읽어주기를 그만둔다. 하지만 책 읽는 소리를 많이 듣다 보면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듣기’는 매우 중요한 학습방법이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따라서 유씨는 책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책 듣기’부터 시작하게 하라고 조언한다.

엄마가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엄마가 아이의 책을 읽으며 키득거리며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엄마가 왜 저러지?’ 하며 관심을 갖게 돼요. 그렇다고 바로 그때 ‘너도 이 책 읽어보라’고 강요하면 너무 속보이니까, 적당한 때를 봐서 아이가 그 책을 읽도록 분위기를 유도하는 게 좋아요.”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아이가 집어드는 책으로 독서교육 시작하면 돼
‘책읽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는 독서교육법’

유은정씨의 세 아이는 방과 후 학원에 가는 대신 집에서 책을 읽는다. 각자의 도서대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들.


유은정씨는 또한 가정 내에 ‘독서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단은 책이 발에 밟히도록 거실이나 방에 책들을 깔아놓으라고 권한다. 아이들 방에 책을 보기 좋게 정리해놓는 것보다는 온 가족이 함께 있는 장소에 책을 두어 책이 눈과 손에 항상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 또 특정한 책 한 권만 반복해서 읽는다고 억지로 다른 책을 읽도록 하는 것보다는, 읽고 싶은 만큼 실컷 반복해 읽게 내버려 두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에게 전집을 한 질씩 사주는 게 좋은데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찾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 읽은 책은 바로 처분하지 말고 3년 정도는 보관해놓는 게 좋다고.
그리고 독서에 방해가 되는 것들을 제거해주는 게 바람직하다. 민주네 집에서는 TV 시청과 컴퓨터 게임 등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있다. 유은정씨는 민주와 소정이가 어릴 때 TV만화조차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독서를 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많은 엄마들이 이 학원, 저 학원 다 보내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히려고 하는데 아이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잘 안돼요. 아이들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수많은 책 중 우리 아이에게 딱 맞는 책을 고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은정씨는 아이의 연령보다는 아이가 그동안 읽어온 책의 수준을 파악해서 단계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연령별 권장도서는 개인차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무턱대고 그것에 의존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같은 초등학교 1학년이라도 평소 독서량이 많은 아이는 고학년 수준의 책읽기가 가능하지만 독서습관이 길러지지 않은 아이는 그림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책읽기 즐기는 아이로 키우는 독서교육법’

어린아이들의 경우 그림동화부터 시작하는데, 한 살 때는 한 줄짜리, 두 살 때는 두 줄짜리로 책 내용을 조금씩 늘려간다. 항상 윗 단계의 책을 한 질 정도 준비해놓고 가끔씩 아이의 수준을 파악해본다.
“그래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를 땐 아이를 서점이나 도서관에 데려가세요. 아이가 관심을 보이며 집어드는 책을 시작 단계로 잡으면 대체로 맞더라고요.”
많은 엄마들은 아이가 만화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게 유씨의 생각. 만화든 아니든 아이가 진심으로 관심을 보인다면 거기서부터 독서교육을 시작하는 게 좋다. 같은 수준의 책을 여러 권씩 충분히 읽으면서도 조금씩 단계를 높여갈 수 있도록 책을 공급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민주네 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련된 전집만 해도 만화 시리즈에서부터 조금씩 글의 비중이 높아지다가 그림이 거의 없는 전집까지 모두 네 종류를 갖춰놓았다. 덕분에 아이들은 가장 쉬운 전집부터 읽기 시작해 가장 수준 높은 전집까지 거뜬히 소화해냈다고 한다.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두세 시간씩 자기 마음대로 책을 골라 읽도록 해준다. 엄마가 도서관에 어떤 책들이 있는지 파악한 다음, 가끔씩 도서관에 없는 책들을 한두 권씩 권해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일.



둘째 소정이는 3학년 때까지는 창작동화나 명작동화만 즐겨 읽었다. 하지만 화학자가 되겠다는 꿈이 생긴 뒤로는 ‘앗! 시리즈’나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등 수학과 과학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엄마의 권유로 읽고 있다고 한다. 5학년인 민주는 중국에 관한 책을 읽고 난 다음 중국의 매력에 푹 빠져 요즘 중국어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직접 인터넷으로 중국어 드라마나 중국어 노래를 찾아 다운받아 스스로 중국어로 익히고 있다고. 민주는 베이징대에 진학하겠다는 목표가 생겨서 그런지 공부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고 한다.
“독서교육을 시작하려는 엄마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은, 눈에 보이는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해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아이와 엄마가 함께 그저 책 자체를 즐긴다면 이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플러스 정보
유은정 주부 제안! 효과적인 독서교육법
▼ 독후 활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독서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독서를 학습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는 것. 때문에 독후 활동을 따로 하기보다는 아이가 책과 관련해 이야기할 때 좀 더 길게 유도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책과 연결시켜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무조건 많이 읽고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난 후 반드시 감상을 쓰도록 강요하면 아이가 책읽기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쓰기를 강요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 좋다. 자연스럽게 쓰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 아이가 좋아하는 책부터 읽도록 해 흥미를 유발시킨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우선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의 책을 아이가 원하는 만큼 읽도록 한 뒤 단계를 높인다.

▼ 특정 분야에 깊이 빠졌을 때는 그 분야를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배려한다
막내 승우가 한참 자동차에 빠져 있을 때 엄마 유은정씨는 매일 승우를 데리고 주차장으로 나가 자동차를 관찰하며 차 이름과 회사 이름을 외우도록 배려했다. 승우가 공룡에 빠져 있을 때는 세계 지도를 함께 보면서 공룡의 서식지를 익히고 나라 이름, 기후, 지형의 특색 등까지 익히게 했다.

▼ 책과 함께 창의력 개발을 위한 놀이를 한다
유은정씨의 세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일주일에 100ℓ짜리 쓰레기 봉투를 하나 가득 채울 정도로 폐품을 이용해 오리기, 붙이기 등 작품놀이를 많이 했다. 무엇을 만들었느냐는 결과보다는 만들고 노는 과정을 중시하며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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