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작은새’ 등의 히트곡을 남긴 70년대 인기 포크 듀오 어니언스 멤버였던 가수 임창제(55). 81년 솔로로 전향한 후에도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그가 사업적인 면에서도 남다른 수완을 발휘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5년째 운영하고 있는 라이브 카페 ‘어니언스’가 지역의 명물로 자리 잡으며 성황을 누리고 있는 것.
그에게 창업은 잠원동 어니언스가 처음은 아니다. 97년 초 경기도 양수리 맞은편 금남리에서 라이브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 그 카페 이름 역시 어니언스. 60평 규모로 2억원을 투자한 라이브 카페는 3년간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거의 24시간 내내 라이브 카페에서 살았어요. 노래를 부르는 것은 물론 서빙, 카운터, 주방 관리까지 운영 전체를 직접 챙겼죠. 그 때문에 금남리 일대에서는 가장 잘 나가는 음식점으로 꼽혔어요.”
그의 첫 창업이 성공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고객 타깃을 라이브 음악을 좋아하는 30~40대로 정하고 그들에게 어울리는 메뉴를 만들었다. 바닷가재, 스테이크 등의 고급스런 음식부터 스파게티 같은 대중적인 음식까지 아우른 것. 이는 특별한 메뉴를 선호하는 연인들은 물론 자녀를 동반한 가족 단위 고객들까지 부담 없이 찾을 수 있게 한 요인이 됐다.
라이브 카페에 어울리는 입지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요소였다. 창문 밖으로 강물이 흐르고 시야가 확 트여 전원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던 것.
하지만 97년 말 외환위기로 시작된 불황이 장기화되고 인근 미사리에 라이브 카페촌이 생기면서 매출이 감소, 결국 99년 말 문을 닫아야 했다. 그 후 한동안 가수 활동에만 전념하던 그가 다시 창업에 도전한 것은 지난 2000년 6월.
“사람들과 어울려 통기타를 치며 노래 부를 공간이 늘 그리웠어요. 큰돈을 벌 욕심보다는 저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추억의 팬들과 어울려 얘기 나누는 만남의 장소를 만들고 싶었죠.”
소박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고 하지만 그가 카페 어니언스에 들인 공은 만만치 않다. 입지 선정부터 인테리어 컨셉트, 운영 방향, 메뉴 구성 등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아이디어를 내며 정성을 기울인 것.
실평수 33평의 카페 공간은 크림색과 갈색, 청록색이 조화를 이뤄 세련된 느낌을 준다. 또한 나뭇잎이 프린트되어 있는 청록색 소파와 붉은색 포인트를 준 벽면은 아늑한 거실 분위기를 풍긴다. 바닥은 청록색과 회색이 마블링 되어 있는 대리석 타일이라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그래서 어니언스는 이 일대에서 분위기 좋은 집으로 통한다.
인테리어를 고급스럽게 하느라 들인 창업비용도 만만치 않다. 총 2억1천3백만원이 들었는데, 그중 인테리어 비용이 1억4천만원이 들었다고. 이 외에 점포보증금 3천만원, 권리금 3천만원, 악기구입비 1천3백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현재 월 매출은 평균 2천4백만원. 여기서 임대료 2백만원, 재료비 7백20만원(매출의 30%), 인건비 6백만원, 기타 잡비 80만원을 제한 순수익은 8백만원이다. 일요일은 쉬기 때문에 영업일이 월 25일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강남권은 카페, 술집, 레스토랑과 같은 외식업의 수명이 1년을 넘기기 쉽지 않다. 항상 새로운 컨셉트의 업종들이 생겨나 고객들을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페 어니언스는 꾸준히 흑자를 내면서 장수하고 있다. 많은 연예인들이 카페, 레스토랑 등 외식업 창업에 도전했다가 1년을 넘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경우가 허다한 강남에서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게 만든 성공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외식업 창업에서 첫 번째 성공조건은 입지다. 그런 점에서 카페 어니언스는 서초구 잠원동에 자리 잡았다는 게 장수의 비결이라 할 수 있다. 카페 어니언스는 신사동 사거리에서 먹자골목 가는 방향인 잠원로 굴다리를 지나자마자 대로변 1층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강남지역에서 볼 때 중심 상권이 아닌 동네 상권에 해당해 압구정동이나 청담동 등 인근 중심 상권에 비해 권리금이나 점포 보증금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그는 소비력이 왕성한 강남 지역이면서도 동네 상권을 선택해 비교적 저렴한 점포 보증금으로 창업비용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잠원동 동네상권 선택해 임대보증금 줄인 대신 인테리어에 더 많이 투자
서초구 잠원동은 30~50평대 아파트가 1만 세대가 넘는 등 고정인구가 두터워 강남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동네 상권으로 손꼽힌다. 또한 20m만 가면 강남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동 먹자골목이 있어 식사를 마친 후 가볍게 차 한 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려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상권에 어울리는 업종을 선택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외식업을 선택하면서 가수라는 직업을 접목시켜 라이브 카페를 업종으로 정했다. 동네 상권은 특성상 낮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뤄 비교적 한가하고 저녁부터 장사가 잘 된다. 따라서 같은 음식점이라도 밥집보다는 카페나 레스토랑, 보쌈 등 가벼운 술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업종이 유리하다.
입지나 업종 선택에 있어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택했기에 여러모로 유리했다고 말한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상권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동네라 그런지 20대 젊은 친구들보다는 중년층이 퇴근길에 친구나 가족들과 어울려 가볍게 식사를 하거나 술 한잔 하러 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과잉서비스도 고객에게 부담 될 것 같아 일부러 고객리스트 안 만들어
카페 어니언스를 주로 찾는 손님들은 그의 말대로 40~50대 장년층 남성이 대부분인데 이들은 ‘통기타 가수’ 임창제를 기억하는 세대이자 임창제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세대다. 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힙합이나 댄스 등 비트 있는 음악보다는 포크, 발라드, 재즈 등 편안한 음악을 선호한다. 더구나 하루 종일 쌓인 직장생활의 피로를 풀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따라서 그는 음악도 포크, 발라드 등 국내 가요나 잔잔한 올드팝 등 장년층이 젊었을 때 즐겨 들었던 노래를 주로 들려준다.
정성을 기울인 맛있는 요리들도 어니언스의 명성에 한몫했다. 인기 메뉴는 찹스테이크, 낙지소면, 함박스테이크 등이다. 주방장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메뉴 개발이나 음식의 맛은 부인 최수미씨(52)가 주로 책임진다. 그에 따르면 아내 최씨는 맛깔스런 음식 솜씨를 발휘,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스테이크는 담백하면서도 씹히는 고기맛이 좋고, 낙지소면은 매운맛과 약간 새콤달콤한 맛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입맛을 당기게 만든다고.
그는 모든 음식을 내집에서 먹는 것처럼 정성스레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고기는 모두 국내산을 사용하고, 해산물은 수산시장에서 직접 매일 매일 구입해 신선도를 유지한다고.
“원가 한두푼에 연연하면 손님들이 다시는 찾지 않아요. 원가 계산하지 말고 더 많이 퍼준다는 자세로 서비스하면 당장은 손해날 듯 하지만 상황은 오히려 반대가 되면서 더 많은 손님들로 붐비게 됩니다.”
임창제는 라이브카페를 돈을 벌 욕심보다는 추억의 팬들과 어울리는 만남의 장으로 만들고 싶어 창업했다고 한다.
그는 고객 리스트도 따로 만들지 않는다. 고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예전에 카페를 운영할 때 고객 리스트도 만들고 이메일도 보내고 기념일 등에 축하카드도 보내고 했어요. 그런데 이런 서비스가 고객들에겐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냥 이웃들이 내집에 놀러온다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고객을 대하는 게 최선이 아닌가 싶어요.”
고객 리스트조차 없지만 고객과 주인의 입장을 떠나 동네주민으로 흉허물 없이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그는 물론 부인도 손님들의 얼굴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또 단골손님들이 좋아하는 차나 음식취향 등 기호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손님을 기억하고 있기에 의식하지 않아도 고객 기호에 따른 맞춤 서비스를 펼칠 수 있다.
그가 말한 ‘내집 같은 편안함’이란 인간적인 유대가 끈끈했던 추억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고객을 배려한다는 의미인 셈이다. 그런 자연스러움에 고객들도 만족을 표시해 지금은 80%가 단골고객이라고 한다.
또한 그는 지방 공연을 끝내고 돌아오면 카페에 들러 가끔씩 손님들에게 라이브 음악을 들려주고 인사를 건네며 고객들을 스스럼없이 대한다.
그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하얗게 백발이 돼서도 무대에 서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팬들과 만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까지 카페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내년 3월쯤 부산이나 대구 등 한 곳을 골라 1백평 규모의 라이브 카페를 차려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최근 그는 지방에서 공연을 할 때면 입지를 물색하고 다닌다. 메뉴 구성이나 운영 컨셉트도 머릿속에 이미 짜여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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