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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아이와 함께 보는 명화 ①

역사의 아픔을 생생히 전하는 ‘키오스 섬의 학살’

2005. 12. 12

역사의 아픔을 생생히 전하는 ‘키오스 섬의 학살’

페르디낭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 키오스 섬의 학살, 1824, 캔버스에 유채, 419×354cm,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역사는항상 자비롭지만은 않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는 억울하고 분한 사연도 많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35년 동안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우리의 경험이 이를 잘 말해주지요. 19세기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가 그린 ‘키오스 섬의 학살’도 역사의 아픔을 생생히 전해주는 작품입니다.
1822년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독립전쟁을 일으키자 키오스 섬 주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고 노예로 팔아버렸지요. 많은 유럽 사람들이 오스만투르크의 잔인한 행위에 격분했습니다. 화가 들라크루아도 몹시 화가 났지요. 그래서 오스만투르크 사람들의 잔인함과 키오스 사람들의 비참한 운명을 그림으로 그려 영원히 기억되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림을 보면 뒤쪽으로 약탈과 방화, 진압, 처형 장면이 이어지고 앞에는 포로로 잡혀 처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그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들을 감시하고 학대하는 오스만투르크 사람들도 크게 부각돼 있습니다. 피를 흘리고 몸부림치거나 자포자기한 키오스 사람들의 모습이 동정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당시 이토록 참혹하고 공포스러운 주제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그린 그림이 드물었기에 그림을 처음 본 사람들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키오스 섬의 학살이 아니라 회화의 학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림이 너무 보기 흉하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격동의 역사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뜨거운 마음으로 고발한 이 그림은 이후 회화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회화가 진실에 대해 이토록 충격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돼 많은 화가들이 역사의 고통과 아픔을 보다 생생하게 표현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더∼
그리스는 15세기 말부터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19세기 초부터 경제력이 커지고, 프랑스혁명의 영향으로 독립의식도 높아졌습니다. 1822년 1월 그리스가 독립을 선언하자 오스만투르크는 심한 탄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와 영국이 원조를 제공하고 나바리노 해전에서 오스만투르크 군을 격파함으로써 1829년 독립을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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