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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권말부록│토익 고득점 영어 영재②

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백30점 받은 초등 6년생 전한나

"어려서부터 책 속에 파묻혀 지내고, 영어로 독서 감상문 썼더니 독해는 물론 작문 실력까지 늘었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김미희‘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2005. 06. 14

초등학교 6학년 전한나양에게 영어는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취미이자 친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에서 1년여간 지낸 것이 외국 체류 경험의 전부인 전양은 올해 초 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백30점을 받았다. 영어가 정말 재미있다는 전양과 그 어머니를 만나 영어에 푹 빠진 비결을 들어보았다.

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백30점 받은 초등 6년생 전한나

부산남성초등학교 6학년 전한나양(12)은 지난 2월 말 치른 토익에서 9백30점을 받았다. 취업할 때 필요한 토익 점수를 높이기 위해 매달 토익을 치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토폐인(토익 폐인)’이라는 신조어가 있고, 9백점은커녕 8백점도 못 넘는 성인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초등학교 5학년생이 처음 응시한 시험에서 9백30점을 받은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런데 별다른 준비 없이 시험을 치른 전양이 고사장을 나오면서 한 첫마디는 “엄마, 시험 한 번 더 볼래요”였다고 한다.
“한나가 시험을 보러 들어갈 때는 약간 두려워하는 눈치였어요. 그런데 막상 시험을 보고 나서는 문제 유형을 파악했으니 다시 보면 만점도 받을 수 있겠다고 하더군요.”
전양의 어머니 김우미씨(40)는 내친 김에 지난 3월 토플도 보게 했는데 3백점 만점에 2백60점을 받았다고 말했다. 토익은 비즈니스와 관련된 듣기·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반면 토플은 미국 대학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실력이 되는가를 알아보기 위한 것으로 토익보다 더 학문적인 영어 실력을 요구한다. 전양은 실용 영어와 학문적 영어 양쪽 면에서 모두 실력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전양이 어린 나이에 이만한 영어 실력을 갖추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부산 고신대 의대 약리학과 부교수인 어머니 김씨는 맞벌이를 하다 보니 딸을 찬찬히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영어 유치원에 보냈는데 전양이 노래와 놀이를 통해 영어를 접한 뒤 영어에 큰 흥미를 보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입학 뒤에는 학교에서 영어 교육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덕분에 따로 영어를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전양이 다니고 있는 부산 남성초등학교는 영어를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회화는 원어민 교사가, 문법과 독해는 한국인 교사가 가르친다.
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백30점 받은 초등 6년생 전한나

유치원 때부터 영어 읽기를 꾸준히 한 전한나양은 미국에서도 뛰어난 영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전양은 지금껏 한번도 영어를 공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저 “영어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그가 영어를 터득한 비법은 학습지나 학원 수업이 아닌 독서에 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영어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뒤로 영어로 된 책에 빠져들었다고. 책 욕심이 많아 읽고 싶은 책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며, 일단 책을 구입하면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다고 한다. 전양은 “책을 많이 읽으면 단어와 문법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된다”고 똑부러지게 말했다.
“문법이나 단어를 기계적으로 외우는 건 영어 실력에 도움이 안돼요. 책을 많이 읽으면 동사나 명사를 따로 외우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죠.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앞뒤 문장을 연결해보면 대강 뜻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설사 의미를 잘 몰라도 그냥 계속 읽어요. 그러다 보면 전체적인 흐름에 따라서 모르고 넘어갔던 내용도 알게 되고, 제가 추측했던 게 맞아떨어지면 기분이 정말 좋거든요(웃음).”

원서 읽다 모르는 단어 나오면 문맥을 통해 추리하고, 이해가 안되면 영영사전 이용
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백30점 받은 초등 6년생 전한나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 반복해 읽는다는 전한나양은 최근 클린턴 저 미국 대통령부부의 자서전을 독파했다.


그는 책을 읽다가 정 이해가 안되는 단어가 있으면 영영사전을 이용한다. 영영사전을 이용할 때는 필요한 뜻만 찾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뜻과 여러 예문을 모조리 읽고, 중요하게 생각되는 건 따로 메모해둔다고.
혼자서 영어로 된 책을 보며 영어 실력을 쌓아가던 그에게 지난 2003년 미국에 건너갈 기회가 생겼다. 어머니 김씨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 된 것. 전양은 그해 4월부터 1년 4개월간 샌디에이고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입학 전 받은 영어 테스트에서 또래 미국 아이들 못지않은 영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성적이 총 다섯 등급으로 나뉘는데 최고 수준인 ‘어드밴스드 레벨’을 받은 것이다. 미국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학생”이라며 칭찬을 받은 전양은 곧바로 같은 나이의 미국 학생들과 함께 4학년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당시 ‘독서광’이었던 전양은 도서관과 독서 프로그램이 발달한 미국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더 열심히 책에 빠져들었다. 학교에서 정해준 학년별 권장도서는 물론 도서관에 있는‘주니어 권장도서’까지 모조리 챙겨 읽었고, 헤밍웨이의 소설과 ‘해리포터’ 시리즈 등 베스트셀러도 즐겨 읽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지낸 1년여 동안 그가 읽은 책은 어림잡아 2백여 권. 재미있는 책은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좋아하는 책은 책장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자연 읽는 속도도 빨라져 이제 웬만한 책은 하루에 한 권씩 거뜬히 소화할 수 있다고. 최근엔 자서전에 재미를 느껴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과 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자서전을 독파했는데, 책을 읽은 뒤에는 독서 기록장에 영어로 줄거리를 요약하고 느낀 점을 적어둔다고 한다.
어머니 김씨는 전양이 미국에서 교회에 열심히 다닌 것도 영어 실력을 쌓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한인교회 주일학교에 캘리포니아 주립대(University of California in San Diego) 학생들이 교사로 활동하는 영어 성경공부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전양이 여기에 참가해서 한국말이 서투른 대학생들과 갓 이민 온 아이들 사이에서 통역을 해준 것이다.
“미국에서 한나를 가르친 선생님들이 칭찬을 참 많이 해주셨어요. 발음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아주 미세한 발음의 차이까지 정확하게 짚어낸다고 감탄하셨죠. 특히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한나가 글을 쓸 때와 말할 때 아주 다양한 표현을 쓴다면서 6학년 아이들보다 뛰어나다고 하셨어요.”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그 감상을 영어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인 전양은 5학년 때 교내 어휘력 테스트에서 1등을 했고, 학과 성적도 최상위권에 들었다고 한다.

CNN 뉴스 본 뒤 동생에게 설명해주고, 주말마다 자막 없이 외국 영화 봐
처음 응시한 토익에서 9백30점 받은 초등 6년생 전한나

전한나양은 장차 신약을 개발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이 되고 싶다고 한다.


지난해 여름 가족과 함께 귀국한 뒤에도 전양은 영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여전히 영어 원서에 파묻혀 지내고, 미국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타임’을 즐겨 읽는다. 미국에 가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미국을 대표하는 뉴스 채널 CNN을 즐겨 본다는 것.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에는 대통령 후보들의 연설을 녹화해놓고 반복해서 보았다고 한다. 전양은 요즘 CNN 뉴스를 보고 나면 초등학교 3학년인 동생에게 그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TV 앞에 가만히 앉아 뉴스를 보는 딸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니 김씨가, 혼자 듣고 넘길 때와 자신이 들은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조리 있게 전달해야 할 때 요구되는 이해의 정도가 다르다는 생각에서 딸에게 권한 것이다. 설명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김씨가 나서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대체로는 전양이 김씨가 놓친 부분까지도 듣고 이해한다고 한다.
어머니 김씨는 아직 딸이 어리기 때문에 영어 공부를 강요하기보다 딸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편이다. 지난해 여름 귀국한 뒤에도 미국에서 배운 영어를 잊어버릴까 조바심 내지 않고 학교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다. 겨울방학이 되어서야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원어민 교사로부터 일주일에 두 번 한 시간씩 문법과 SAT 전 단계인 ‘PreSAT’를 배우는 정도라고 한다.
김씨가 딸의 영어 교육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있다면 일주일에 한 번 영화를 한 편씩 보게 하는 것이다. 전양은 어려서부터 책을 끼고 살아 다른 아이들처럼 영어로 된 비디오테이프를 본 적이 없는데, 최근 영화에 나오는 영어를 접하면 회화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주말마다 DVD를 한 편씩 골라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김씨는 전양이 먼저 자막 없이 영화를 보게 한 다음 영어 자막이 나오게 한 상태로 다시 보게 해 자막 없이 이해한 것이 맞았는지 확인하도록 하는데 ‘슈렉’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어린이물을 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의 앞날을 정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가 가는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양의 부모는, 딸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면서 풍부한 사랑을 나눌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또한 영어를 잘하는 것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국사 공부를 강조하고 있다고.
“학교에서 한창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대해 배울 나이에 미국에 있었으니 한나 스스로 노력해서 보충해야죠. 한나도 그 필요성을 잘 알고 있어요. 미국에 있을 때 친구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해하는데 아는 게 없어 부끄러웠대요. 그래서 요즘은 우리나라의 역사와 시사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졌어요.”
아직 장래 희망이 확실히 정해진 건 아니지만 전양은 요즘 두 가지의 꿈을 갖고 있다. 하나는 하버드 의대에 진학해 에이즈 같은 불치병 치료약을 개발하는 것. 다른 하나는 예일대 법대를 졸업한 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최근 불거진 독도 문제 때문에 생긴 꿈이라고 한다.
“독도 문제에 대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방식이 너무 감정적이에요. 역사적인 사실을 밝혀내서 정정당당히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아야죠.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앞선다고 미리 좌절해서는 안 돼요.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데 언어 소통이 큰 걸림돌인 것 같아요. 제가 영어에 능통한 법관이 돼서 우리나라가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게 돕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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