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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나눔 체험

이기진 주부의 ‘보육원 아기 돌보기’

■ 기획·최호열 기자 ■ 구술정리·이수향‘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2005. 06. 01

주부 이기진씨(45)는 8년째 보육원에서 아기들을 돌보는 봉사를 하고 있다. “매주 아기 천사들을 만나는 기쁨과 행복이 생활의 활력이 된다”는 그가 들려주는 봉사활동 체험기.

이기진 주부의 ‘보육원 아기 돌보기’

오늘은 ‘작은 천사들’을 만나러 가는 날. 내가 매주 화요일마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영아 돌보기’ 봉사를 한 지도 벌써 8년이 되었다. ‘영아돌보기’ 봉사란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하루 ‘엄마’가 되어주는 것으로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오후 2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를 알아본 7명의 어린 천사들이 두 팔을 들고 폴짝폴짝 뛰며 반긴다. 아직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작은 천사들은 서로 안아달라고 조르고 내 무릎을 차지하려고 아우성이다. 나의 ‘보잘것없는’ 사랑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그 초롱초롱한 눈길들에 나는 매번 ‘누구를 먼저 안아줘야 되나’ ‘누구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되나’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우리 혜원이, 엄마 보고 싶었어? 우리 준이는 그새 더 씩씩해졌네. 우리 지영이는 예쁜 옷 입었네.”
아기들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며 인사를 나눈다. 유난히 춤에 재능을 보이는 예인이, 낯가림을 심하게 하는 울보 성은이, 장난꾸러기 준이, 좀처럼 내 무릎을 떠나려 하지 않는 미나…, 하나같이 내겐 소중한 보물들이다.
장난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방안을 치우고, 깨끗하게 세탁된 기저귀며 옷들을 차곡차곡 정리한다. 아기들의 헝클어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매만져주는 것도 내 일이다. 그리고 중간 중간 노래와 율동을 하며 아기들과 놀아주기도 한다.
태어난 지 2~3년밖에 안된 이곳의 아기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중학생에게서 태어난 아기, 아빠가 교도소에 있는 아기, 카드 빚으로 키울 여건이 안돼 맡겨진 아기….
이곳 아기들은 여느 아이들에 비해 말이 느린 편이다. 다른 집 아기들처럼 하루 종일 끼고 앉아 말을 걸어줄 부모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기들의 이름을 자주 부르며 일부러 말을 많이 시킨다. 유난히 말이 느린 혜원이가 띄엄띄엄 내게 “엄…마”라고 부르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져온다.
이기진 주부의 ‘보육원 아기 돌보기’

작은 사랑과 관심에도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는 이기진 주부.


멀리서 쿵쾅쿵쾅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왔다는 소리를 듣고 승혁, 승미, 승희 삼남매가 달려온다. 8년 전 겨울, 지붕이 뜯겨나간 집에서 얼어죽기 직전에 발견돼 이곳으로 온 아기들이 어느덧 초등학생이 되어 밝고 씩씩하게 자란 모습을 보니 대견스럽기만 하다.
“우리 승미는 볼 때마다 예뻐지네.”
“선생님! 요즘은 학교 갔다 와서 숙제부터 해놓고 놀아요!”
“그래, 우리 승혁이는 의젓하기도 하지.”
“오늘 선생님이랑 우리 옷이랑 똑같아요. 역시 우린 통하나봐요.”
승희가 깔깔거리며 좋아한다. 정말 오늘따라 맞춘 듯이 분홍색 상의에 청바지를 입은 승미와 승희, 그리고 나. 이럴 때 진짜 모녀지간 같다.
이렇게 아기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정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저녁 6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지금 저 일곱 명의 아기들도 8년 후엔 승혁이 남매처럼 잘 자라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기쁜 마음으로 다음 주를 기약한다.


◆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는 주부들의 훈훈한 사연을 찾습니다. 자원봉사를 하시는 주부 본인이나 주위 분들이 간단한 사연을 적어 연락처와 함께 이메일(honeypapa@donga.com)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문의 02-36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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