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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역경을 딛고

시력 잃고 방황, 자활훈련하며 제2의 인생 준비하는 탤런트 홍성민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05. 31

지난 2000년 드라마 ‘꼭지’ 이후 방송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던 중견 탤런트 홍성민이 그동안 힘겨운 삶을 살았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당뇨합병증으로 시력을 완전 상실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던 것. 최근 역경을 딛고 힘차게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그를 만났다.

시력 잃고 방황, 자활훈련하며 제2의 인생 준비하는 탤런트 홍성민

개성 있는 연기로 40여 년 동안 시청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던 탤런트 홍성민(66). 지난 2000년 드라마 ‘꼭지’를 끝으로 방송에서 소리 없이 사라졌던 그가 ‘실명’이라는 큰 시련을 딛고 자활훈련을 하며 제 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사실이 알려져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5월4일 서울시 노원구에 있는 서울시립시각장애인복지관을 찾았을 때 그는 동료들과 함께 점자 공부에 한창이었다. 온 신경을 손끝에 모으고 한 글자씩 띄엄띄엄 점자를 읽고, 그 글자를 다시 점자판을 이용해 써내려가는 모습이 무척 진지해 보였다. 점자 수업 후에는 흰 지팡이에 의지해 길을 걷고,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훈련이 이어졌다. 인도를 걷다가 이따금씩 차도로 내려가는 등 위태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얼굴에선 장애의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시각장애가 왔을 땐 그걸로 인생이 끝날 줄 알았어요. 화려한 연기자로 살았기에 좌절감이 더욱 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곳에 와서 장애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이젠 더 이상 좌절하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생활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열심히 훈련해 앞으로 저를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동료 장애인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갈 생각이에요.”
그의 눈에 이상이 생긴 건 99년. 당시 KBS 드라마 ‘꼭지’에 출연 중이었는데 갑자기 사물이 흐릿하게 윤곽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병원에 갔더니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망막에 이상이 생겼다고 하더군요. 20년 동안 당뇨를 앓았는데 음식조절도 안 하고 술과 담배를 즐기는 등 건강관리를 하지 않은 결과였죠.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었더라고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장애를 감추고 촬영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대본을 미리 녹음해 외우고, 사람들 눈을 피해 자신이 움직여야 할 동선을 손으로 더듬어가며 확인해놓아도 촬영을 하다 보면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 봄, 드라마를 끝낸 후 눈을 되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 수술을 하고 치료도 했지만 눈은 좋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누가 찾아와도 만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살았어요. 출연 제안이 들어와도 무조건 고사했고요. 더구나 이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구르면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철심을 2개나 박는 수술을 한 후에는 더더욱 집에만 틀어박혀 있게 되었어요. 눈이 안 보이니까 세상과 담을 쌓게 된 거죠.”
그나마 흐릿하게 윤곽만 보이던 눈이 지난해 8월부터는 아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집에 있어도 상대방의 말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누군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는 그는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술을 마시는 것밖에 없었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아내가 생계를 위해 가게를 하고 있어요. 아이들도 학교와 직장에 나가고 나면 집엔 장모님과 저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장모님은 귀가 어두우셨어요. 전 눈이 안 보이고…. 대화가 될 리 없었죠. 자연히 가족들에게 짜증을 부리고 화를 내는 일만 늘었죠.”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고 한다. 아내의 위로도, 아이들이 건네는 격려의 말도 고깝게만 들려 가족과의 대화는 말싸움으로 끝나곤 했다고.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가족들에게 짐만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고요. 그런데 앞이 안 보이니까 죽을 방법이 없더라고요(웃음).”

시력 잃고 방황, 자활훈련하며 제2의 인생 준비하는 탤런트 홍성민

합숙생활을 하며 점자를 익히고 점자컴퓨터를 배우고 있는 홍성민(오른쪽 사진)은 눈을 잃은 후 아내에 대한 사랑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왼쪽 사진).


그런 어느 날, 실명을 하기 전에 이따금 길에서 보았던 시각장애인들이 문득 떠올랐다고 한다. 자신도 그들처럼 다시 사회에 나갈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작정 114로 전화를 했어요. 114 안내원에게 제 사정을 이야기하니까 이곳 복지관을 연결해주더군요. 그렇게 해서 지난 1월 말부터 여기서 교육을 받게 됐어요.”
현재 그는 4개월 총 16주 과정의 기초 적응훈련을 받고 있다. 평일엔 이곳에서 합숙생활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들과 지낸다. 5월 말로 기초 과정이 끝나지만 이곳에 계속 남아 자활훈련을 할 생각이라고 한다.
나이도 많고 더구나 당뇨까지 앓고 있는 그가 자활훈련을 받는 게 무리가 아닐까 싶은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손가락 끝의 감각이 무디어져 점자를 읽는 게 어렵기는 하지만 2~3분이면 한 장 분량의 점자를 읽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 또한 아직은 서툴지만 혼자 힘으로 가까운 거리를 걸어 다니는 것은 물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닐 수도 있다고 한다.
“비록 눈 2개를 잃었지만 대신 이곳에 와서 26개의 눈을 새로 얻었어요.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 두 귀, 코, 입, 지팡이, 몸이 그것이죠. 이것들이 저를 보호해주니까 자신감이 생겨요.”
처음 이곳에 올 때는 걸을 수도 없어 업혀서 들어왔다는 그는 지금은 건강을 많이 회복한 모습이었다. 하루 1시간 이상 보행연습을 하다 보니 체력이 길러지고, 동료 시각장애인들과 어울리면서 활기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땐 말할 상대가 없어서 죽을 맛이었어요. 그런데 여기는 대화할 사람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집에 가서도 할 이야기가 많아요. 늘 침체되어 있는 제 모습만 보던 가족들이 요즘 신바람 나 있는 절 보며 놀라고 있어요.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혼자 고립돼 있는 것보다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에 들어왔는데 잘한 것 같아요.”
그가 이곳에 와서 얻은 건 몸과 마음의 건강만이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에 눈을 뜬 것이다.
“이곳 시각장애인들은 서로 정말 잘 돕고 살아요. 조금이라도 보이는 사람은 전혀 안 보이는 사람을 돕고, 젊은 사람은 힘없는 사람을 돕고, 저처럼 힘없고 못 보는 사람은 인생 경험을 나누어줘요.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을 도우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재미있는 게 저에게 점자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저에게 한글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가르쳐달래요(웃음).”
그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동료들이 아침에 생일축하 파티를 해주었다고.
“그동안 수없이 생일상을 받았지만 오늘처럼 정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동료들의 사랑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정말 행복했어요.”
그는 이곳에서 알게 된 한 젊은 여성 시각장애인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볼 수 없었다는 말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위로의 말을 건넸다가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여성이 해맑은 목소리로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며 오히려 제가 중도장애인이 되었으니 고통이 크겠다며 위로를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그동안 제가 가졌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았어요. 이곳 사람들은 저마다 드라마 주인공처럼 기막힌 사연들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밝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는 왜 그렇게 헛되게 살았을까 하는 반성을 하게 되더라고요.”
또한 그는 가족 사랑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한다.

시력 잃고 방황, 자활훈련하며 제2의 인생 준비하는 탤런트 홍성민

처음엔 걸음을 옮기지도 못했던 홍성민은 지금 웬만한 곳은 혼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보행에 자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여기 오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어요. 집에만 있을 때 아이들하고 참 많이 싸웠어요. 그때 아이들이 저에게 ‘아버지는 아버지만을 위해 살지 않았냐’는 말을 했을 때 정말 화가 났어요. 전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았는데 그걸 몰라주니 섭섭했죠.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전 가족들하고 여행을 간 기억이 없어요.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 수영장에 간 후로 한번도 없어요. 일에 치여서 그런 거죠. 가족과 더 가깝게 지내지 못한 게 후회가 되더라고요. 앞으로는 잘 해주려고요. 특히 40년 동안 저를 위해 봉사를 했는데도 사랑한다는 말 한번 안 해준 아내에게 정말 미안해요.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밝고 열심히 사는 동료 시각장애인들 보며 깨달음 얻어
현재 그의 목표는 다시 연기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가 연기를 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도 깨고,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TV에서 드라마가 나오면 꺼버렸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고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지 상상이 가니까 연기를 할 수 없는 제 처지에 대한 절망감이 더욱 커졌거든요. 다시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은 한번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이 의외로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들에게 시각장애인 연기자도 연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4월, 연기를 재개할 기회가 생길 뻔했다.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고 정주영 역으로 캐스팅 제의를 받은 것. 모든 ‘공화국 시리즈’에 다 출연했던 그로서는 컴백 작품으로 최고일 것 같아 흔쾌히 수락하고 대본연습까지 했는데, ‘왜 하필이면 시각장애인이냐’라는 현대그룹 관계자들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제작진의 고민을 듣고 스스로 출연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연기 재개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에 20m쯤 되는 복지관 복도를 지팡이 없이 열 번 정도 왔다 갔다 했는데 한번도 넘어지거나 벽에 부딪치지 않았어요. 아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젊은 여성이 지팡이도 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어요. 그러면 제 본업인 탤런트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물론 처음엔 제 말을 듣고 다들 웃었죠. 지팡이 없이 걷기는커녕 일어나기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려 움직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4개월 만에 짧은 거리지만 지팡이 없이 다닐 정도가 되니 정말 기분이 좋아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시각장애가 부끄러워 집안에만 숨어 있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처럼 집에 갇혀 고통받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세상으로 끌어내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그게 앞으로 살아갈 제 2의 인생의 목표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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