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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꿈은 이루어진다

영국 유학 5년 만에 케임브리지대 입학한 손에스더 공부법

“한국에선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성적 떨어졌지만 영국에선 스스로 공부 원칙 정하고 실천했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장옥경‘자유기고가’ ■ 사진·정경택 기자

입력 2005.02.11 11:47:00

중학교 2학년 때 영국 유학을 떠나 5년 만인 지난해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한 손 에스더양이 한 학기를 마치고 일시 귀국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성적이 중하위권을 맴돌았던 그가 영국 유학 5년 만에 세계적인 명문 케임브리지대에 입성한 비결을 들어봤다.
영국 유학 5년 만에 케임브리지대 입학한 손에스더 공부법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손에스더양(20)의 집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소박함이었다. 3대가 함께 살고 있는 30평 규모의 연립주택, 방으로 꾸민 거실 한쪽에 손양의 책상이 놓여 있었다. 지난해 9월 영국 케임브리지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한 손양은 방학을 맞아 지난 12월 초 일시 귀국했다.
99년 1월, 출판사에 다니는 아버지가 회사 지원을 받아 유학을 떠나게 되자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간 손양은 공립학교인 세인트 크리스핀에 다닌 지 2년 반 만인 11학년 때 중등학교 교육과정 자격시험인 GCSE에서 A보다 좋은 성적인 A스타를 8과목, A를 3과목, C를 1과목에서 받아 전교 1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2학년 때 영국 대입시험인 AS레벨 시험을 치러 5개 과목에서 A를 받고 13학년 때 AS레벨보다 심화 과정인 A2레벨 시험에서 화학·수학·생물·역사·일반교양·물리 등 6개 과목 모두에서 A를 받아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 등에 지원할 자격을 얻었다.
그는 마침내 지난해 세계적인 명문 케임브리지대에 입학했지만 처음 영국 땅을 밟았을 때는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고 한다. 중1 겨울방학 때 미국에 한 달 체류한 적이 있지만 영어를 썩 잘 하는 편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한국에 있을 당시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기 때문.
“부모님과 선생님 속을 무지하게 썩인 청개구리였어요(웃음).”
삼육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육중학교를 다녔던 손양은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재미에 푹 빠져 수업 시간에도 쪽지를 주고받으며 킥킥거리기 일쑤였다고 한다. 늘 7명이 몰려다녀 주변에서 ‘칠공주파’라는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고.
“몰려다니며 나쁜 짓을 했던 건 아니에요. 그냥 함께 있는 게 즐거웠고, 같이 장난치는 게 재밌었어요. 방과 후에도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며 떡볶이를 사먹고 팬시점과 옷가게를 들락거리며 수다 떨기를 좋아했어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었죠.”
덕분에 우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수업을 등한시하고 몰려다니며 논 대가는 처참한 시험성적으로 돌아왔다.
“과학 68점? 중1 첫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처음엔 제가 잘못 본 건 아닌가 했어요. 그런데 그건 약과였어요. 시험을 볼 때마다 성적이 한 계단, 한 계단씩 내려갔거든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던 손양의 성적이 계속해서 곤두박질치자 아빠 손윤호씨(49)와 엄마 원소희씨(47)는 뜻밖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성적이 떨어질 때마다 벌을 주고 통제하는 대신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자고 생각했죠.”
시조사 편집실에 근무하던 아빠 손씨는 적극적으로 유학길을 물색, 99년 1월 가족을 이끌고 영국으로 떠났다.
“아빠가 런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브라크넬 지방의 뉴볼드 칼리지에서 공부를 하시기로 해 가족 모두 그 학교의 기혼자 숙소에서 묵게 되었어요. 비행기에서 내려 새 보금자리로 이동하는 동안 저와 한 살 아래 여동생인 미리엄은 거의 까무러칠 뻔 했어요. 교통표지판이 영어로 돼 있었고, 차들은 모두 좌측통행을 하고 있는데다, 뉴볼드 대학의 기숙사는 멀리서 볼 때 중세의 성을 연상케 했거든요. 한국에서 머릿 속으로만 상상하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자 ‘아, 돌이킬 수 없는 모험이 시작되는구나’하는 생각에 흥분이 된 거예요.”

영국 유학 5년 만에 케임브리지대 입학한 손에스더 공부법

그러나 손양은 곧 영국 생활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세인트 크리스핀 공립학교 9학년에 배정된 그는 처음 학교를 찾은 날, 아무리 눈을 씻고 둘러봐도 동양인 학생이 없어 과연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고 한다.
“첫날 담임선생님이 케이티라는 학생을 지목해 저를 도와주라고 하셨어요. 제가 영어를 못한다고 하니까 ‘오카이, 오카이. 우어잇 이즈 요오 나임 어갸아인?’ 하면서 천천히 말하는데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ok, ok, what is your name again(이름을 다시 말해보라)?’같기는 한데 발음이며 억양이 너무 낯설어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한 교실에서 대부분의 수업이 진행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크리스핀 공립학교는 시간표에 따라 교실을 옮겨 다니며 수업을 받았다. 건물도 낯선데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상황에서 여기저기 퍼져 있는 교실들을 찾아 다니자니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실수는 매일 이어졌다. 손양은 공책 하면 당연히 ‘노트북’인 줄로만 알고 케이티에게 공책을 보여달라며 자신 있게 “메이 아이 시 유어 노트북(May I see your notebook?)” 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데 케이티는 “파든(Pardon?)” 하며 못 알아듣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다시 한 번 정성 들여 또박또박 발음을 했지만 케이티는 더욱 의아해하며 다른 친구들을 향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감을 잃은 손양이 쭈뼛쭈뼛하며 빨간 공책을 손으로 가리키자 케이티는 그제야 “엑서사이즈 북(Excercise book?)” 하며 공책을 건네줬다고.
손양은 그 후로 한동안 말을 안 하고 지냈다고 한다. 친구들이 얘기하는 것을 듣고도 무슨 의미인지 몰라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옆에서 누가 웃으면 따라 웃곤 했다고. 한창 예민할 나이에 낭패감에 운 적도 많다고 한다.
“제가 영어를 못한다고 해서 영국 아이들이 따돌리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저를 도와주려고 했죠.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조잘대며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었어요.”
그가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어에도 사투리가 있기 때문. ‘Sorry’를 ‘써뤠이’라고 하고, ‘What’을 ‘오우트’라고 하는가 하면 심지어 ‘Thanks’를 ‘팡크스[fanks]’라고 발음하는 아이들도 있었던 것. 헷갈림 투성이였지만 손양은 그 모든 것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려고 안간힘을 썼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영국은 7학년부터 9학년까지의 과정을 ‘Key Stage3’라고 부르는데 9학년 말에 영어, 수학, 과학 실력을 평가하는 ‘SATs’라는 시험을 봐요. 그래서 9학년 2학기 수학 시간에 수시로 SATs 연습 문제들을 풀죠. 영국에서는 수학 시간에 아이들이 계산기를 이용해 문제를 푸는데 하루는 선생님께서 계산기 사용을 금하고, 나눗셈 문제를 내주셨어요. 한 시간 동안 347869÷5712, 9876345÷45587, 148649÷9347 같은 문제들을 30개 남짓 풀어야 했는데 모두들 어렵다고 끙끙대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아이들도 계산기 없이 술술 푸는 문제들이잖아요.”
손양이 일찌감치 문제를 다 풀자 친구들이 그를 놀라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 뒤로 손양은 ‘수학 잘 하는 아이’로 인식되었다고 한다.
“실수하지 않을까 늘 주눅 들어 지내던 제게 수학 과목에서의 성취감은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어요. ‘하면 된다’ ‘별 것 아니다’ ‘영국에서도 잘 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들이 막 피어올랐다고 할까요.”

영국 유학 5년 만에 케임브리지대 입학한 손에스더 공부법

피아노 실력도 수준급인 손에스더양.


학교에서 실험 보고서나 에세이 등을 과제로 내주면 그는 일단 과제의 정확한 내용이 뭔지 ‘해독’해야만 했다고 한다. 사전을 펴놓고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파악해 한국말로 숙제를 정리한 뒤 다시 영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다보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서너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손양은 포기하지 않고 잠을 줄여가면서 숙제를 마무리지었다고. 또 친구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가 대화를 나누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이 즐겨 쓰는 은어를 익혔다고.
힘들게 완성한 과제물을 제출하면 학교 선생님들은 늘 작은 것이라도 칭찬거리를 찾아 그를 격려해줬다고 한다. 손양은 칭찬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자신감이 생겼다고. 그 결과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해 진땀을 흘리고, 에세이 하나를 작성하기 위해 밤을 새워야 했던 손양은 영국에 간 지 3년이 채 안 되어 케임브리지 영어 능력 검증시험(CPE)에서 A를 받아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갖게 되었다.
TV 자막 활용해 정확한 발음 익히고, 일기 쓰기로 에세이 능력 키워
흔히 열두 살이 넘어서는 언어 습득 능력이 크게 떨어져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손양이 영국으로 떠난 건 열네 번째 생일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요즘의 조기교육 열풍으로 보면 한참 늦은 나이다. 과연 어떻게 영어 공부를 했을까?
“우리 가족이 영국에서 자동차보다 먼저 구입한 것이 TV였어요.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정말 TV를 통해 얻은 게 참 많아요. TV를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넋을 놓고 쳐다보지만은 않았거든요. 전자사전을 옆에 두고, 내용을 머릿 속으로 분석하기 위해 애를 썼어요.”
영국 유학 5년 만에 케임브리지대 입학한 손에스더 공부법

유학생활에 큰 힘이 된 엄마 원소희씨와 동생 미리엄.


그는 TV를 볼 때면 자막이 나오도록 설정을 해놓고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를 영국인들이 실제 어떻게 발음하는지 유심히 듣고 보면서 그 차이를 익혀갔다고 한다.
“예를 들어 TV에서 ‘어내아플’이라는 발음이 들려 자막을 보면 ‘an apple’인 거예요. 제가 아는 ‘an apple’의 발음은 ‘언 애플’이었거든요. ‘This is such a’도 ‘디쓰 이즈 써취 어’가 아니라 ‘디씨써쳐’로 발음하더라고요.”
손양은 매일 TV 자막과 소리를 연결해 들으면서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원어민 발음과 연음현상을 익히고, 반복해 연습했다. 그는 드라마를 보며 회화를 배우고, 뉴스를 통해서는 전형적인 영국식 표준발음과 시사용어를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마음에 드는 대사가 나오면 혼자서 중얼거리며 외웠다가 일상생활에서 적절한 때에 활용했다고.
“영어 발음을 할 때 가장 유의할 점은 원어민의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발음하도록 노력했다는 거예요. 사실 발음에 일일이 신경을 쓰면 시간이 훨씬 많이 걸려요. 하지만 영어 발음이 좋아지길 원한다면 한번이라도 대충 발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발음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듣는 게 우선이라 저는 들을 때 귀를 쫑긋 세우고 발음 하나하나를 분석하면서 연습을 했어요.”
TV 자막은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드라마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자막을 해석해야 했던 것. 겨우 한 문장을 이해할 만하면 바로 다음 문장으로 바뀌어 눈과 머리가 잠시도 쉴 틈이 없었지만 단어를 보자마자 곧바로 그 뜻을 이해하고 연상하는 능력이 급속도로 향상됐다고 한다.
손양은 다른 과목을 공부할 때도 주어진 내용을 토씨 하나까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것은 조금만 상황이 바뀌어도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잘 모르는 단어, 꿰뚫어 이해하지 못하는 공식,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표현들은 이해가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원칙을 고수했다고.

영국 유학 5년 만에 케임브리지대 입학한 손에스더 공부법

케임브리지대 크라이스트 칼리지 동급생들과 함께 한 손에스더양. 그는 생화학을 전공해 노벨상을 타고 싶다고 한다.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는 독서가 중요해요. 교양을 넓히고 마음을 살찌우기 위해 누구에게나 독서가 필요하지만, 특히 영국의 중·고등학교 시험은 모두 주관식이거나 에세이 형태이기 때문에 폭넓은 독서가 바탕이 되지 않고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죠. 저는 일기를 통해 에세이 능력을 키웠고 친구들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효과적인 글짓기 방법을 터득했어요.”
친구들이 건네는 간단한 표현도 이해하지 못해 진땀을 흘렸던 손양은 13학년이던 2003년 대학 입시 자격을 얻기 위한 시험에서 화학·수학·생물·역사·일반교양·물리 과목에서 A를 받았다. 세인트 크리스핀 개교 이래 6개 과목에서 A를 받은 건 손양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장학생으로 입학을 하게 됐다.
케임브리지 입학이 확정된 날, 손양의 가족은 기뻐서 환호성을 질렀다. 세계에서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언어 장벽을 뛰어넘어 일궈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의대를 권했지만, 망설임 없이 이공계를 선택했어요. 좀 더 포괄적인 이론을 배우고 첨단 과학을 다루는 학문에 도전하고 싶어 전공을 생화학으로 정했죠.”
생화학 연구를 통해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백신을 개발해 장차 노벨상에 도전하고 싶다는 게 손양의 꿈. “턱없이 높은 목표를 세우자”를 좌우명으로 삼는다는 그는 “노력해도 안 된다고 푸념하지 말고 될 때까지 노력하면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며 “자신이 바로 그 표본”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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