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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이주헌의 그림 읽기

춤과 노래를 사랑한 로트레크의 ‘춤추는 잔 아브릴’

2005. 01. 31

춤과 노래를 사랑한 로트레크의 ‘춤추는 잔 아브릴’

앙리 툴루즈 로트레크 (1864~1901), 춤추는 잔 아브릴, 1892, 판지에 유채, 85.5×4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19세기 프랑스 화가 로트레크는 파리 몽마르트르에 있는 주점과 카바레에 다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술집에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나 무용수들이 춤추는 광경을 유심히 관찰한 뒤 그것을 화폭에 담기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에게는 꽃이나 자연풍경보다 이런 밤 풍경이 더욱 흥미로운 소재였습니다. 유명한 무용수 잔 아브릴의 초상을 많이 그리게 된 것도 나이트클럽과 카바레를 자주 출입했기 때문입니다. ‘춤추는 잔 아브릴’은 아브릴의 장기라 할 수 있는 ‘다리 춤’을 인상적으로 포착한 작품입니다. 그림 속 잔 아브릴은 흰 블라우스에 흰 치마를 입고 검은 스타킹을 신었습니다. 흰 스커트가 출렁출렁 물결치는 가운데 검고 가녀린 다리가 난초 잎처럼 흔들립니다. 다리를 쫙 벌리거나 곧게 뻗어 올리는 동작들은 아브릴에게 ‘누워서 떡 먹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림에서처럼 한 발을 치켜들고 앞뒤로 마구 흔드는 것 또한 그의 장기 중 하나였습니다. 얼마나 역동적으로 춤을 추었던지 ‘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까지 생겨났다고 하는군요. 그림에서 로트레크가 배경을 거친 터치로 흔들리듯 그린 건 아브릴의 열정과 역동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대충 그린 것 같은 터치가 사실은 잔 아브릴의 개성을 적절히 담아낸 표현이었던 것이죠. 잔 아브릴이 처음 춤을 배운 이유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청소년기에 근육이 자신도 모르게 실룩대는 신경성 질병을 앓아 그것을 치료하려고 춤을 배웠는데, 결국 그것이 직업이 되었고 나중에는 대단한 명성까지 얻었습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한 가지 더∼
파리 북부에 자리한 몽마르트르는 19~20세기 초 카바레 등 환락가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몰려 있던 곳입니다. 로트레크뿐만 아니라 피카소와 반 고흐, 위트릴로, 모딜리아니 등의 아틀리에가 이곳에 있었고, 당시 젊은 예술가들의 집합소였던 ‘라팽 아질’과 같은 카페들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습니다. 몽마르트르의 테르트르 광장에 가면 화가들이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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