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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되는 연극 ‘위트’ 무대 서는 윤석화

“30년을 바쳐도 변하지 않는 연기 열정, 가슴으로 낳은 내 아들 수민이…”

■ 글·구미화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 의상&소품협찬·강희숙, 테스 제이 킴, 지클로제 ■ 코디네이터·박미순

입력 2005.01.31 11:22:00

지난해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의 제작과 연출을 맡고, 21세의 여주인공 ‘아네트’ 역까지 소화하며 무대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던 윤석화. 그가 오랜만에 정극으로 관객들 앞에 선다. 오는 2월 난소암에 걸린 중년의 영문학 교수 이야기를 다룬 연극 ‘위트’에 출연하는 것.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그가 들려준 나의 연극 인생 & 가족 이야기.

연극인 윤석화(49). 지난해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로 연출 실력을 인정받은 그가 오는 2월 ‘위트’로 다시 연극 무대에 선다. 공연 기획자로 변신한 송승환이 대표로 있는 PMC 프로덕션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여배우 시리즈’ 첫 번째 주자로 나서는 것. 강북권에 집중돼 있는 연극 문화를 강남권으로 확산시키자는 뜻에서 청담동에 있는 우림청담씨어터 무대에 올리는 ‘여배우 시리즈’에 박정자 손숙 김성녀 양희경 김지숙 등과 함께 참여하게 된 윤석화가 선택한 작품은 ‘위트’. 국내에서 한번도 공연된 적이 없는 작품이다.
‘위트’는 영국 시인 존 던을 연구하느라 평생을 바친, 천재적이지만 인간미 없는 중년의 영문학자 비비안 베어링이 난소암에 걸린 뒤 말기암 환자들을 한 인간으로 대하기보다 암 연구 대상으로만 여기는 의사들의 진료를 받으며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말기암 환자인 비비안을 연기하기 위해 윤석화는 지난 1월19일 삭발을 했다).
한 가지 일에 빠져들어 평생을 바치고, 날카로운 이성과 유머 감각을 소유한 비비안의 모습은 윤석화와 닮은 구석이 많은 듯하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점이 닮았죠. 비비안은 영문학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심각한 존 던을 선택했거든요. 저 역시 TV 드라마나 영화를 했더라면 사는 게 좀더 쉬웠을 텐데 연극을 선택해 특히 어려운 작품들을 많이 했어요.”

국내 초연되는 연극 ‘위트’ 무대 서는 윤석화

“30대에 작품밖에 모르고 지냈던 것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어요”
75년 ‘꿀맛’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선 그는 올해로 연극 데뷔 30주년을 맞는다. 그는 지금껏 공연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신의 아그네스’와 ‘덕혜옹주’, 모노드라마 ‘목소리’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스터 클래스’를 꼽았다.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고종의 고명딸 덕혜옹주의 비극적 삶을 그린 ‘덕혜옹주’를 일본에서 공연할 때, 일본을 꾸짖는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20대부터 80대 노인 관객들까지 공연장을 가득 메웠어요. 연극이 끝나고 노인 분들이 제 손을 부여잡으며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이고, 젊은이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가 있는지 몰랐다’며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배우가 때론 유관순도 될 수 있다는 생각과 배우가 되길 잘 했다는 자긍심을 갖게 한 작품이죠.”
두 편의 모노드라마 ‘목소리’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이 뭔지를 경험하게 해준 작품이다.
“제 연기 인생에서 그때와 같은 관객들의 호응을 다시 경험하기는 힘들 거예요. 관객이 정말 이렇게 많을 수 있나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로 인한 해프닝도 많았어요. 산울림 소극장에서 ‘목소리’를 공연할 때 예약 전화가 계속 통화 중이니까 만날 전화국에 전화 고장신고가 들어오는 거예요. 하루는 전화국 직원이 전화를 해서 ‘대체 거기가 뭐 하는 데냐’고 물었다가 ‘윤석화 연극 ‘목소리’ 공연 중입니다’ 하니까 깜짝 놀라서는 ‘아, 저 예약 좀 해주세요’ 한 적도 있고, 어떤 사람이 공중전화로 예약을 하고 있는데 뒤에 서 있던 사람이 ‘끊지 말고 나도 좀 바꿔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고요(웃음).”
‘딸에게 보내는 편지’ 지방 공연 때는 관객들이 너무 몰려 제시간에 막을 올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치열한 삶이 자기 자신을 보는 듯했던 ‘마스터 클래스’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연기한 나머지 공연 당시 “최소 10년 안에는 이 작품을 다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197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30년간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주름잡은 그지만 공연을 앞두고는 여전히 예민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큰 행복을 느낀다고.
“연극을 하는 동안 가장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굉장히 예민해지지만 그렇다고 늘 밖으로 드러낼 순 없잖아요. 예민해져 있으면서도 아닌 척하는 것도 나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고, 그러다 어쩔 수 없이 어느 순간 꽝 하고 터졌을 때 그 뒷수습을 하려면 더 큰 지혜를 발휘해야 하니까 그것도 내 우주를 더 넓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이야 그의 표현대로 ‘도가 트이면서’ 여유로워졌지만 과거엔 공연을 앞두고는 잠자는 시간 외에는 작품밖에 몰랐다고 한다. 심지어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30대에 그랬던 것 같아요. 물론 저 스스로 자신을 못살게 구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한 10년 동안 잠과 작품밖에 모르고 지냈던 것이 지금까지 내가 살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국내 초연되는 연극 ‘위트’ 무대 서는 윤석화

“‘토요일 밤의 열기’ 준비하는 동안 30년간 피워온 담배 끊었어요”
‘토요일 밤의 열기’는 뮤지컬 제작자이자 연출자로 변신하는 기회를 준 작품이다. 2003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토요일 밤의 열기’를 제작해 관객들에게 선보인 그는 지난해엔 제작과 연출을 맡고,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며 1인 3역을 소화해내 화제가 됐다.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그가 스물한 살의 여주인공 아네트 역을 맡는다고 했을 때 항간에선 ‘욕심도 많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는 30여 년간 피워온 담배를 끊을 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한다.
“절체 절명의 위기에 있는 난파선을, 실은 정말 멋있는 배인데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호수에 머물고 있는 이 배를 어떻게든 바다로 끌고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제작과 연출, 그리고 배우의 역할까지 감당해야 했을 때 두려움이 커서 저 스스로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단한 결심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비록 4개월이었지만 담배를 끊었죠. 지금 생각해도 제가 어떻게 담배를 끊었을까 싶어요.”
박건형을 비롯한 대부분의 배우들을 오디션을 통해 선발했던 2003년 공연 당시 홍보 효과가 미흡했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도 같은 ‘토요일 밤의 열기’를 흥행에 성공시키기 위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아무리 좋은 연극관, 예술관을 갖고 만든 작품이라도 관객들과 뜨겁게 만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더군다나 ‘토요일 밤의 열기’는 어떤 면에서 제 자존심입니다. 그런데 신인 배우들을 내세우니까 홍보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홍보나 마케팅에 돈을 쏟아 붓고 싶지는 않고, 또 그럴 돈도 없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나선 거예요.”
‘윤석화가 뮤지컬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수는 있지만 일단 공연장에 들어서면 관객들은 냉정해진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펄펄 나는’ 20대 후배들과 함께 연습을 하며 매일같이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한다.
“다들 제자이고 내가 선생인데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잖아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마다 눈물을 줄줄 흘렸죠. 제 나이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춤을 추면서 ‘내가 이 나이에 지금 뭐 하는 건가’ 싶을 만큼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길 만큼 연습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했거든요. 너무너무 불안하고 겁이 나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그토록 힘겨운 준비 끝에 리허설이 만족스럽게 끝나자 그는 사무치는 외로움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무대 안팎에서 제 역할을 다해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더 이상 연출자인 자신이 설 자리는 없다고 느껴졌다고.
“‘아, 이제 내가 빠져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순간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요. 정말 물밀듯 외로움이 밀려와서 못 먹는 술을 다 먹었어요(웃음). 그 다음날은 연습실에 나가지 않고 혼자 극장에서 영화 ‘디 아워스’를 연달아 두 번 보면서 펑펑 울었고요. 그렇게 혼자서 힘겨움과 외로움을 극복하고 나서야 다시 연습실로 갈 수 있었죠.”
지난해 여름 보름간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윤석화는 같은 해 10월에 한국뮤지컬대상 시상식에서 연출상을 수상하며 연출자로서도 최고의 위치에 올랐다.

국내 초연되는 연극 ‘위트’ 무대 서는 윤석화

“엄마~ 하는 아들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불끈 솟아요”
연극배우이자 연출 및 제작자이고, 월간 ‘객석’의 발행인이자 설치극장 정미소 운영자로 한국 연극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그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수식어는 ‘입양 홍보대사’다. 2003년 4월 생후 2개월 된 아들 수민이를 입양한 그는 동방사회복지회 국내 입양 홍보대사를 맡아 자선 콘서트를 여는 등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지난 연말 아들 수민이에게 쓴 편지들을 모아 ‘작은 평화’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작은 평화’는 수민이가 이렇게 크면 좋겠다는 희망을 담은 책이자 자신의 반성문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에 훗날 정체성 혼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아들을 위해 “수민아, 원래 아가들은 배로 낳는단다. 그런데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은 가슴으로 낳는대. 그런 것을 입양이라는 말로 표현한단다”라는 말을 남겨두기도 했다.
“젊은 시절, 배우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릴 때는 경솔해 보이는 게 싫어서 책을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나이가 되니까 자유로워진 면이 있더라고요. 30년간 배우로 살아오면서 나름대로 터득한 것들을 내 아들에게 들려주고, 다른 젊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을 썼어요. 생명이라는 것, 제 아들이 제게 용기를 준 거죠.”
그에게 자유로움과 너그러움을 갖게 해준 수민이는 현재 홍콩에 머물고 있는 아빠 김석기씨와 함께 지내고 있다. 때문에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 한 달에 한 번은 홍콩으로 건너가는데, 한국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전화선을 타고 흘러나오는 아들의 “엄마~” 하는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불끈 솟는다고 한다.
“연극 하는 동안은 수민이가 여기에 있어도 제가 잘 챙겨주지 못하니까 아빠랑 같이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홍콩 집에 있게 했어요. 얼마나 잘 크는지 순간순간이 아쉬울 정도예요(웃음).”
그의 홍콩 집에는 그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가 두 개 걸려 있다고 한다. 포스터를 볼 때마다 수민이가 “엄마” 하고 외치는 걸 보면 기특하고, 아이의 의식 속에 엄마가 배우라는 사실이 막연하게나마 있는 것 같아 신기하다고.
“수민이는 ‘토요일 밤의 열기’ 음악을 아주 좋아해요. 수민이에게 평소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수민이가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싶을 때면 꼭 ‘토요일 밤의 열기’를 틀어달라고 해요. 덕분에 수민이가 신이 나면 (박)건형이의 목소리를 몇 번씩 듣게 되죠(웃음).”
“수민이가 온 다음 생활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하는 남편과 수민이의 양손을 나눠 잡고 해변을 거닐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는 그는 아들에게 사랑은 부족함이 없이 줄 생각이지만 아이가 잘못할 경우에는 단호하게 야단도 칠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 초연되는 연극 ‘위트’ 무대 서는 윤석화

“60대가 되면 매일 화장대에 앉는 습관 들여 진짜 멋을 부려보고 싶어요”
올해 우리 나이로 쉰 살이 되었지만 그의 몸엔 군살이 전혀 없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무지하게 많이’ 먹는다는 그는 운동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민이를 볼 때마다 ‘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도 아이와 떨어지면 금세 잊는다고.
“평소 화장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 아침에 세수만 하고 나와 차 안에서 화장품을 발라요. 얼굴에 이것저것 바르는 게 번거로운데 요즘은 에센스라는 게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그거 하나만 바르면 끝나요(웃음).”
그러나 60대가 되면 멋을 내볼 생각이라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대에 앉는 습관을 들여볼 생각이라고. 그는 그러면서도 “과연 내가 화장대 앞에 앉을 수 있을까” 하고 혼잣말하며 웃어 보였다.
이화여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75년, 우연히 희곡을 접하고 ‘비를 맞는 듯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 연극을 시작했다는 윤석화. 늘 진실되게 살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딜레마에 빠졌던 그에게 연극 무대는 ‘진실의 땅’이었다고 한다. 무대에서만은 그 누구보다도 진실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 작품 한 작품 빠져들다보니 되돌아갈 수 없는 길을 오게 됐다고.
올 여름 다시 한번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하고, 겨울엔 20년간 꿈꿔온 창작극을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는 그는 자신을 꼭 닮은 여자를 연기하게 될 ‘위트’가 “내 연기 인생에 쉼표를 찍어줄 수 있는 작품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윤석화의 ‘위트’ 2월11일~3월27일/우림청담씨어터/문의 02-569-0696, 0656● PMC 프로덕션에서 여성동아 독자 분들께 윤석화의 ‘위트’ 초대권을 드립니다. 706쪽 기사 참조

여성동아 2005년 2월 4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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