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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새로운 출발

두 번의 세계 여행 마치고 외국어고등학교에 나란히 합격한 ‘솔빛별 자매’가족

“외고에서 열심히 공부한 뒤 외국에 함께 나가 영화 공부하고 싶어요”

■ 기획·구미화 기자 ■ 글·백경선‘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2005. 01. 10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고, 지난 97년과 2002년 두 차례나 세계일주 여행을 다녀와 화제가 됐던 ‘솔빛별 가족’의 예솔·한빛·한별 자매가 2005학년도 제주 외국어고등학교 입시에 나란히 합격했다. 학교에 다니게 된 것이 마냥 기쁘다는 세 자매와 독특한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를 제주에서 만났다.

두 번의 세계 여행 마치고 외국어고등학교에 나란히 합격한 ‘솔빛별 자매’가족

“그동안공부를 하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이제 학교에서 원 없이 공부할 거예요.” 지난 97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온 가족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 화제가 됐던 ‘솔빛별 가족’의 조예솔(16) 조한빛(15) 조한별(15), 세 자매가 최근 나란히 제주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해 또 한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2월 2005학년도 제주 외국어고등학교 신입생 추가 모집에 지원해 첫째 예솔이는 일어과에, 쌍둥이인 한빛과 한별은 스페인어과에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예솔이는 고등학교 진학이 또래에 비해 1년 늦어졌지만 한별이와 한빛이는 정상적으로 진학하게 됐다.
‘미래는 도전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가훈처럼,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솔빛별 가족은 지난 7월 말 제주로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여행에서 돌아온 99년부터 2년여 동안 제주에서 산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집에 다시 둥지를 튼 것이다.
그들을 만나기 위해 제주로 내려가면서, 솔빛별 자매는 세계 여행을 다니며 자유롭게 살아 평범한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자유분방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애월읍 언덕 위의 하얀 이층집에서 만난 세 자매는 제주 바다만큼이나 순수했다.
자매는 학교라는 집단의 일원이 된다는 사실에 몹시 흥분해 있었다. 그동안은 스스로 알아서 모든 걸 해야 했는데, 이제는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도 하게 됐다면서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아이들처럼 들떠 있었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세 자매는 97년엔 초등학교를, 2002년엔 중학교를 휴학한 탓에 지난 4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입학 자격을 얻었다.
“예비 소집일에 학교에 갔더니 몇 가지 선행 과제를 내주더라고요. 숙제를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그동안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란 걸 무지 해보고 싶었거든요.”
두 번의 세계 여행 마치고 외국어고등학교에 나란히 합격한 ‘솔빛별 자매’가족

동요 작곡가로도 활동한 적이 있는 엄마의 영향 때문인지 솔빛별 자매는 웬만한 악기들은 다 다룰 줄 안다. 몇해 전부터는 매주 한번씩 풍물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자매의 어머니 노명희씨(43)는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질 않은 탓인지, 아이들이 가장 바라는 게 학교에 가 선생님께 배우는 것이었다”며 “그동안 또래들과 너무 다르게 키우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지만 아이들이 나름대로 자신의 길을 잘 개척해 나가는 것 같아 대견하다”고 말했다.
제주 외고는 전 학생이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 늘 함께 지냈던 부모와 떨어지려니 서운하지 않냐고 묻자 셋째 한별이가 “우리는 괜찮은데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신다”고 말한다. 이유인즉, 세 자매가 살림을 도맡다시피 해왔기 때문이라고.
“맞아요. 제가 가장 서운해요. 아이들은 밥하고 청소하는 것에서 해방되니까 좋겠지만, 전 앞으로가 걱정이에요(웃음).”
자매의 부모는 사실 세 딸이 외국어고등학교에 합격한 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고 한다. 제주 외고는 제주에 있는 중학교 상위 10%의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자매는 중학교 때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 하지만 아버지 조영호씨(48)는 여행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학교 기초도 탄탄하지 않은데 외고에서 성적이 바닥을 맴도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죠. 아이들도 걱정이 되는지 ‘내가 정말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자꾸 물어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이들을 믿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잘 이겨냈거든요.”

두 번의 세계 여행 마치고 외국어고등학교에 나란히 합격한 ‘솔빛별 자매’가족

아버지 조씨는 딸들에게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삶을 가르치고 싶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지금껏 한 번도 학원에 보내지 않았다고. 사교육비로 쓸 돈을 아이들의 삶을 살찌우는 일에 투자한 셈이다. 조씨는 97년 직장을 그만두고, 초등학교 3학년과 4학년인 아이들과 함께 1년간 미국 캐나다 케냐 등 27개국을 돌았다. 그로부터 5년 뒤 다시 호주 남미 아프리카 북유럽 인도 중국 등지를 여행했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할 필요도 없고, 또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멋진 삶을 사는 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보다 어릴 때 많은 꿈과 추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 세계 여행을 떠난 거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에 정착한 것도 딸들에게 더 많은 경험과 다각도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이들 가족은 첫 번째 세계 여행을 다녀온 직후인 99년 1월 초 제주로 이사해 2년여 동안 살았다. 당시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아버지 조씨는 주중엔 직장 근처에서 혼자 생활하고, 주말에만 제주에 내려와 가족들과 지냈지만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평범하지 않은 길을 걸어오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조씨 부부의 바람대로 세 자매는 맑고 순수하게 잘 자랐다. 한 살 터울인 큰딸 예솔이와 쌍둥이 한빛과 한별은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늘 붙어 다닌다. 키도 고만고만해 마치 세 쌍둥이처럼 보이지만 각각의 개성이 뚜렷하다고 한다.
첫째 예솔이는 맏언니답게 성격이 차분한 편이다. 아버지의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여유로움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둘째 한빛은 터프하고 주장이 강한 편이라 주로 ‘행동대장’ 역할을 맡고, 막내 한별이는 세 딸 중 가장 애교가 많아 부모를 조를 때면 늘 앞장선다고 한다. 성격뿐만 아니라 잘하는 것도 다 다르다. 예솔이는 수학을 잘하고, 한빛이는 영어를, 한별이는 글쓰기를 잘한다. 이처럼 저마다 다른 색깔을 지닌 솔빛별 자매는 어려울 때마다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준다고. 자매들은 검정고시 합격도, 외국어고등학교 합격도 셋이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은다.
두 번째 여행이 마무리될 즈음 가족들은 세 자매의 진로를 놓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중학교에 복학을 할 것인가, 아니면 고입 검정고시를 볼 것인가 토론을 벌인 끝에 검정고시를 보기로 결정했다. 세 자매는 2003년 11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
“학원을 알아보니까 수강료가 3개월에 1백만원이라는 거예요. 셋이 다니면 3백만원이잖아요. 너무 비싸서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아이들이 열심히 알아보더니 인터넷 강의를 신청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한 사람만 신청을 해서 세 명이 함께 듣겠다고요.”
오랜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강의를 듣는 게 힘들었을 텐데 불평 한마디 없이 잘 해준 아이들이 부모는 한없이 고맙고 대견할 뿐이다.
“힘들고 지쳐서 짜증이 날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땐 솔이 언니가 다 풀어줬어요(한빛).”
“우리가 아무리 화를 내도 솔이 언니가 다 받아주는 거예요.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일 때쯤 솔이 언니가 ‘놀자~’고 해요. 셋이서 놀고 나면 또 괜찮아져요(한별).”
쌍둥이 자매 한별과 한빛은 큰언니 예솔이가 묵묵히 투정을 다 받아준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견딜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4월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고입 연합고사를 준비하던 세 자매는 제주 외고가 2005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 미달이 돼 추가 모집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번 넣어보자’ 하는 맘으로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운 좋게도 합격을 했다고. 제주 외고는 중학교 내신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는데 중학교 내신 성적이 없는 이들 자매는 검정고시 성적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검정고시는 60점만 받으면 합격인데, 저희는 기왕에 보는 거 좋은 점수를 받겠다고 맘먹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래서 과학만 빼고 주요 과목 모두 90점을 넘었는데, 외고에 들어가려고 그렇게 열심히 했던 건가봐요(웃음).”

두 번의 세계 여행 마치고 외국어고등학교에 나란히 합격한 ‘솔빛별 자매’가족

노명희·조영호 부부는 무슨 일이든 서로 힘을 모아 해내고야 마는 세 딸 덕분에 얼굴 찡그릴 일이 없다고 한다.


늘 함께하는 세 자매는 장래 희망까지 비슷하다. 세 명 모두 영화 일을 하고 싶어하는데 첫째 예솔이는 영상 편집을, 한빛과 한별이는 영화 연출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저희 셋 다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와 함께 영화를 많이 보면서 자랐어요. 엄마 아빠가 영화를 무척 좋아하시거든요. 그리고 여행하는 동안 아빠가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저희들도 일상생활이나 여행 과정을 찍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감독이나 영상 편집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됐죠.”
특히 셋 중 한별이가 영화에 관심이 많다. 예솔이는 리포터나 MC에도 관심이 있고, 영어를 잘하는 한빛이는 영화 번역이나 고고학 쪽에도 관심이 있는 것.
세 자매는 영화에 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두 번째 여행을 떠나기 전 1년 동안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에서 시나리오 작가 전문가 과정을 수료했고, 청소년 문화연대에서 VJ 과정과 영상 과정을, 청소년 정보문화센터에서 영상 편집 과정을 이수했다고 한다. 또한 동요 작곡가로 활동하기도 했던 엄마 노씨가 직접 만든 노래 ‘하늘, 바다… 그리움’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기도 했다고. 두 번째 세계일주 여행을 하면서는 세계 곳곳의 신비한 문화유산을 직접 촬영하고, 리포팅까지 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세 자매는 앞으로도 작품을 계속 만들어 각종 공모전에 응모할 계획이라고 한다.
세 자매가 외국어고등학교에 지원한 것도 “영화를 하려면 아무래도 외국어를 잘하는 것이 좋고, 외국어를 빨리 배우려면 외고에 다니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솔빛별 자매는 셋 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외국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며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찾겠다”고 말했다.
“아이들 아빠가 항상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길은 있다’고 말해주는데, 아이들이 그 말에 세뇌를 당했나봐요(웃음). 열심히 정보를 찾고 방법을 모색하면 길은 꼭 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솔빛별 가족은 모든 문제를 대화로 해결한다. 요즘도 저녁 식사 후 다섯 식구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한별이는 “가족이 너무 화목하면 살이 찐다”는 법칙까지 발견했다고.
“우리처럼 대화를 많이 하는 집도 없을 거예요. 이것도 여행을 통해 얻은 수확이죠. 여행을 하면서 작은 문제가 생겨도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하면서 해결했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습관이 돼버렸어요. 저녁에 온 가족이 모여 얘기할 때면 엄마, 아빠는 술을 마시고, 저희들은 안주를 집어 먹다보니 살이 찔 수밖에요(웃음).”
요즘 이들 가족은 앞으로의 고등학교 생활과, 오는 2월쯤 펴낼 책 얘기를 많이 나눈다고 한다. 두 번째 세계 여행기를 정리해 책으로 펴낼 예정인 것. 솔빛별 가족은 이미 첫 번째 세계 여행기를 담은 ‘솔빛별가족 세계여행기’와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솔빛별 세계 여행기’를 펴낸 바 있다.
아버지 조씨는 평화방송과 전자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유선방송협회 사무국장과 대구 유선방송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후 지금껏 1년 넘게 ‘백수’ 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선 어떤 그늘도 발견하지 못했다. 두 번의 여행을 통해 든든한 동지가 된 이들 가족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우리 부부 얼굴빛이 좀 안 좋아지면 아이들이 먼저 눈치 채고 이런 말을 해요.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라고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걱정하고 있을 수 있겠어요? 다시 웃는 거죠(웃음).”
가족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가득하고, 삶의 여유와 사랑이 가득한 이들 가족이 그 어떤 부자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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