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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봉사하는 삶

‘위탁모 30년 근속’ 표창장 받은 조완수

■ 글·윤경희‘여성동아 인턴기자’ ■ 사진·홍중식 기자

2004. 12. 10

친부모에게서 버려진 아이가 입양되기 전까지 자신의 집에서 아기를 키우는 위탁모 봉사활동을 30년 동안 해온 이웃이 있다. 지난 10월 말 홀트아동복지회로부터 ‘30년 근속 표창장’을 받은 조완수씨가 그 주인공. 그간 1백51명의 아이를 키운 그의 남다른 아기사랑.

‘위탁모 30년 근속’ 표창장 받은 조완수

조완수씨(61)를 만나기 위해 홀트아동복지회를 찾았을 때 몹시 분주한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이 날은 입양되기 전 아기의 모습을 남겨두기 위해 아기와 위탁모가 함께 사진을 찍는 날. 오늘의 주인공 조완수씨는 생후 5개월 된 영은이를 안고 사진촬영에 임했다.
조완수씨가 위탁모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1974년. 옆집에서 아기를 입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남매를 키우며, 군인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바쁘게 살아오다가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찾아갈 무렵이었다.
“막내가 여섯 살 때였어요. 그때는 입양이 흔치 않았는데 옆집 사시는 분이 고아원에서 아기를 데려와 키우시더라고요. 하루는 놀러 가서 아기를 봤는데 자박자박 걸어다니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다시 아기를 키우고 싶어졌죠. 그러던 차에 ‘위탁모’ 활동을 알게 됐어요.”
그가 처음 만난 아이 희성이는 그의 집에 올 당시 네 살이었는데 제대로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이 매일같이 양 옆에서 잡고 걷기 연습을 시키자 보름도 안 돼 걷기 시작했다. 또한 가족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들으면서 말문도 자연스럽게 트였다.
옆집에 입양되어 온 아기 보고 위탁모 활동 시작
희성이를 다섯 달 동안 키우면서 그는 신생아 한 명을 더 맡았다. “어차피 아기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외출 못하는 건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두 명의 아기를 맡아왔는데 지금은 영은이만을 키우고 있다. 지난 여름 재훈이가 미국으로 입양된 후에 아직 새로운 아이가 맡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탁모 30년 근속’ 표창장 받은 조완수

그는 밤에 보통 세 번 정도는 일어나서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아기로 인해 힘든 건 그만이 아니다. 자녀들이 결혼해 독립하기 전에는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여섯 식구가 함께 살았는데, 회사원인 아들은 밤에 아기 울음소리에 잠을 깨면 차를 몰고 한강둔치로 가서 자다가 출근하기도 했다고. 하지만 자녀들은 한 번도 아기 키우는 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남편은 그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16년간 직업 군인으로 일하다가 전역 후 버스 운전을 해온 남편은 한밤중에 아기가 아프면 병원으로 들쳐업고 뛰곤 했다.
그는 아기를 키우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아기가 아플 때라고 한다. 특히 뇌성마비와 같이 몸에 장애가 있거나 낯을 심하게 가리는 아기가 아플 때는 더욱더 가슴이 미어진다고.
“아픈 아기들을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요. 그럴 때면 ‘내가 이 일을 안 했으면 이렇게 울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생각이 들죠. 그렇게 아기들은 저에게 기쁨이기도 하고 눈물이기도 해요.”
그동안 키웠던 아이들 중에 유독 기억에 남는 아이는 미라. 갓난아기 때부터 19개월을 키웠는데 머리가 짱구라서 별명이 망치였다. 그런 미라를 두고 남들은 아이가 못 생겼다고 말했지만 그의 눈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예쁘게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천식이 심했던 아이는 입양 부모를 찾지 못해 보호시설에 보내졌다. 그는 미라를 보낸 후 아이가 눈에 밟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위탁모 30년 근속’ 표창장 받은 조완수

“이제는 아기들이 없으면 허전해서 못 살것 같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조완수씨.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한번은 빨래를 하다 말고 아이 얼굴을 보려고 보호시설을 찾아 나서기도 했어요. 하지만 홀트아동복지회 직원 차를 타고 한 번 가본 곳이라 도저히 혼자서는 못 찾겠더라고요. 홀트아동복지회에 전화를 걸어 위치를 물어봤지만 한참을 헤매다가 못 찾고, 그만 길에서 울어버렸어요.”
직접 입양을 생각한 아이도 있었다. 귀여운 행동으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네 살배기 진석이였다. 특히 그의 자녀들이 진석이의 입양을 바랐다고 한다.“아이가 크면 저와 남편은 70세 노인이 되니까 진석이에게 안 좋고, 자식들에게도 부담이 될 것 같아서 포기했어요”라며 당시의 착잡했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아기 키우기에 정성을 다한다. 아기들 엉덩이가 무를까봐 면기저귀만을 고집하고 아기 기저귀나 아기옷만큼은 삶아 빨아서 입힌다.
조완수씨는 지난 10월21일 30년간의 위탁모 활동으로 홀트아동복지회가 주는 ‘30년 근속 표창장’을 받았다. 이 사실은 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는데 그는 친정 식구들이 병석에 계신 친정아버지께 그의 기사를 보여드렸다며 기뻐했다. 그는 87세가 된 친정아버지가 지난 가을에 쓰러지셨을 때도 아기 때문에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두 명의 손자와 두 명의 손녀를 둔 그에게 어린 손녀를 돌볼 생각이 없냐고 묻자 그는 “제 손녀는 부모가 있지만 제가 기르는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잖아요” 하고 답했다.
그는 자녀들이 편안히 지내라고 마련해 준 아파트도 마다한 채 합정동에 있는 홀트아동복지회와 가까운 집에 살고 있다. 위탁 가정은 입양기관과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 내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아기들을 계속해서 키울 생각이라는 그는 “이제는 아기들이 없으면 집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해서 못 살아요. 그러고 보면 이것도 병이에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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