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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유인경의 Happy Talk

한번 신나게 펑펑 울어보자

■ 일러스트·정지연

입력 2004.12.01 15:05:00

한번 신나게 펑펑 울어보자

인간은 누구나 상처받는 존재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남모르게 숨겨둔 아픔이 있게 마련.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을 느끼는 여인, 언제나 미소 짓고 있지만 뻐근한 뒷목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성공한 남자. 이들 모두 호숫가의 백조와 같다.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기 위해 물 아래에서는 쉴 새 없이 발길질을 해야 하는…. 슬픔은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울고 싶을 땐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지금까지 터뜨리지 못하고 간직해온 아픔이 있다면 소리 내어 큰 소리로 울어보자. 그리고 스스로를 토닥거리며 위로해보자. 누구나 외롭긴 마찬가지라고.
나이 들수록 더욱 우아하고 세련된 자태를 지닌 그는 모든 걸 갖춘 사람으로 보였다. 본인은 한 분야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전문가이고 남편 역시 그에 못지않은 전문가, 아이들도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줬으니 어느 것 하나 남부러울 게 없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 그가 거의 1년 만에 모습을 보였다. 그와는 일 때문에 만났지만 금세 서로 호감을 느껴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는 식사를 하고 수다를 떠는 사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가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연락이 뜸해졌다. 건강이 걱정되어 전화를 걸면 “제가 곧 연락드릴게요”라고만 했다. 그러던 중 그로부터 “저녁이나 함께 먹자”는 전화를 받았고, 한 레스토랑에서 잔잔하게 웃고 있는 그를 만났다.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나 1년 만에 처음으로 바깥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저녁 식사하는 거예요. 그동안 외부 사람들과 전혀 만나지 않았거든요.”
그는 지난 1년 동안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우울증에 특별한 이유가 있겠냐만, 그저 하염없이 죽고만 싶었다고 한다. 운전을 하다가도 한강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불면증 때문에 병원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보면 ‘이걸 모았다가 한꺼번에 털어 넣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또 온 집안 식구들이 잠든 밤에 혼자 집안을 서성거리다 자신이 귀신 같다는 생각이 들어 또 죽고 싶었다고 한다. 낮에는 기운이 떨어져 그저 방바닥에 누워 있거나 의자에 앉아 창 밖만 바라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건 가족조차도 그의 우울증이나 자살충동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갖춘 듯 보이지만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여인
그는 집에 틀어박혀 있다보니 조금만 먹어도 살이 쪘다고 한다. 샤워를 하던 중 자신의 허물어진 몸을 보자 너무 무섭고 서글퍼져서 ‘이러다 죽으면 비록 시체라도 참 한심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다니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우울증을 치료하다 바깥나들이를 하게 되었는데, 첫 만남의 대상자로 나를 선택했다고 한다. 고맙게도 날 만나면 즐거울 거라고 믿었다고.
“갱년기 증세 아니에요? 아니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들이 갖는 허망함 같은 걸까요? 1등을 하거나 금메달을 따고 나면 기쁘다기보다 허탈한 마음이 든다고 하잖아요.”
그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내게 알리고 싶지 않은 어떤 아픔이나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떻든 운동을 한 후 다행히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그는 나와 만난 날 오랜만에 많이 먹고 많이 웃었다. 근사한 옷차림에 외제차를 타고 사라지는 그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구나” 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남자도 그랬다. 화려한 이력, 온화한 인상, 굉장한 집안 출신인 미모의 예술가 부인, 호의적인 사회적 평판까지 두루 갖춘 그. 그를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세련되고 절제된 매너를 보였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했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되었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물었다.

한번 신나게 펑펑 울어보자

“혹시 어깨나 목이 많이 굳어 있지 않으세요?”
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아세요? 겉으로 드러나요?” 하며 신기한 듯 자기 목을 주물렀다.
“아뇨. 엄청 많은 결정을 내리고 책임도 져야 하는 자리에 계신 분이 그토록 온화한 표정을 짓고 계시니, 분명히 이중인격자일 것 같아서요(웃음). 마치 백조가 우아하게 호수에 떠 있지만 물밑에서 쉴 새 없이 ‘파다닥’ 발길질을 하는 것처럼요. 그렇게 평화로운 표정을 지으려면 몸은 굉장히 긴장하고 굳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요. 원래 사람은 자기 머리는 속여도 몸은 못 속이거든요.”
잠시 그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금세 사태를 수습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뭐 힘든 일은 많지만 괜찮아요. 난 참는 거엔 자신 있거든요.”

상처의 부위와 종류만 다를 뿐 누구나 상처를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자
그는 프로답게 웃어 보였지만 난 왠지 가슴이 찡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허한 곳이 있고 상처가 있다. 그 상처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몰래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치유하려고 애쓸 뿐 상처받지 않은 영혼은 없다. 절대 권력자들도 그렇고 못 가진 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사람들로부터 인격자라고 칭송받는 이들 역시 스스로가 “난 완벽한 사람이야”라며 만족해하진 않을 것이다. 세속의 욕망이 싫어 심심산골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한다 한들 매일 오롯하게 차오르는 충일감만 느낄까.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종교인들조차 늘 부족함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눈물의 기도를 올린다고 한다.
만화 주인공 캔디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라고 노래했지만 난 외롭고 슬픈 것을 인정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울화병, 심장병, 동맥경화 등등을 얻는 것보다 펑펑 울고, 소리도 좀 지를 필요가 있다.
아니 무엇보다 나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외롭고 상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상처의 부위와 종류만 다를 뿐, 인간은 모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버리면 나만 억울할 것도 없고 혼자 외로워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또 한 해가 끝자락으로 가고 있다. 해놓은 것 아무것도 없이 이렇게 한 해가 간다고, 나만 바보 같다며 자신을 들볶는 대신, 한번 신나게 펑펑 울어보자. 그리고 “괜찮아, 다들 그렇지 뭐”라고 스스로를 위로해주자. 웃을 일이 없는 사람보다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사람이 더 불쌍한 법이다. 그러고 보니 만화나 드라마만 봐도 알아서 잘 흘러나오는 나의 눈물과 콧물에게 감사해야겠다.


여성동아 2004년 12월 4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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