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씨(가명·22)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직업의 귀천은 엄연히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씨의 현직은 택시기사. 운전대를 잡은 지 두 달 조금 지났다. “몸은 힘들지만 남 앞에 떳떳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직업이 있어 행복하다”는 그의 전직은 ‘호스트’.
“제 차에 타는 손님들이 ‘젊은 청년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용기 잃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하시면 큰 힘이 돼요. 예전에 그 일(호스트)을 할 때는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에게조차 말하지 못했거든요.”
공부가 싫어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사회에 나온 뒤 마땅한 일거리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장면 배달, 전단지 배포, 카페 서빙을 하다 호스트바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 때가 3년 전인 2001년. 그리고 시급 2천~3천원 받는 아르바이트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은 수입에 매료돼 점점 호스트 세계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여자들과 술 마시고 놀면서 돈까지 벌 수 있어 좋았어요.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큰돈을 만질 수 있어 다른 일할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쉽게 번 돈은 쉽게 사라지더라고요.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손님과 남자 종업원 모두 옷 벗고 놀아
그가 밝힌 호스트바의 놀이문화 실태는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이상이다. 룸에 들어가면 먼저 남자 얼굴마담이 들어와 잠시 자기소개를 하고 여자 손님들을 향해 “초이스(선택)하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고 한다. 손님들이 “OK”하면 얼굴마담이 ‘선수’들을 데리고 들어오는데 이때 손님방에 들어오는 남자종업원의 수는 손님의 3~4배 정도. 그중 손님이 ‘간택’한 남자만 남고 나머지는 퇴장한다.
“초이스가 되면 예명과 나이 등의 신상을 간단히 소개한 후 (손님) 옆에 앉아요. 혼자 오는 손님은 드물고, 보통 2~4명씩 무리지어 오죠. 예전엔 호스티스들이 많았는데, 차츰 대학생과 주부들의 출입이 늘고 있는 추세에요. 종업원은 손님이 시키는 대로 다 해요. 선수가 웃통을 벗고 노는 것은 기본이고, 손님도 함께 옷을 벗고 노는 경우도 허다해요.”
호스트의 젖꼭지에 케첩이나 마요네즈를 바르고 손님이 핥는 것은 고전적인 놀이 방법. 한때 TV에서 ‘3,6,9게임’이 유행할 때는 게임을 하다가 틀릴 때마다 옷을 벗는 게임을 했다고 한다. 게임은 팬티를 벗을 때까지 계속됐다고.
“손님이 정한 규칙에 따라 손님과 선수 모두 알몸이 되는 경우도 있고 선수만 알몸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호스티스 중 일부는 남성에게 당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요구를 하기도 해요. 오럴섹스는 평범한 행위에 속할 정도죠. 햇수로 2년 정도 일했어요. 물론 매일 일한 건 아니에요. 돈 생기면 놀고, 돈 떨어지면 다시 일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라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어요. 하루는 어느 손님이 제 팬티에 얼음을 가득 집어넣더라고요. 손님들은 차가워서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저를 보고 죽어라 웃더군요.”
손님들이 난잡한 행위를 요구해 호스트 생활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그는 돈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의 여자친구는 김씨가 호스트로 일한 것을알고있지만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호스트바를 찾는 손님들은 룸살롱을 찾는 남자들처럼 몸을 만지거나 애무하는 것보다 호스트를 가지고 노는 것을 즐겨요.”
호스트바의 게임 중 백미는 ‘왕게임’. 손님과 호스트들이 추첨을 해 한 명의 ‘왕’을 뽑아 왕이 시키는 행위를 무조건 하는 게임이다.
“왕이 한 커플에게 ‘섹스를 하라’고 시키면 실제로 성행위가 이뤄지기도 해요. 물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이뤄지죠. 그것을 지켜보는 손님이나 호스트 모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쳐다봐요. 파트너의 몸을 더듬으며 보는 커플도 있고요.”
호스트들이 손님으로부터 받는 팁은 1차가 10만원선. 2차는 50만원 정도다. 호스티스나 대학생에 비해 주부들이 대부분 팁을 후하게 준다고 한다. 손님 4명을 기준으로 할 때 술값과 팁 등에 필요한 비용은 1백50만~2백만원 정도.
“돈 없으면 출입 못해요. 주부 손님들은 대부분 돈이 많아요. 팁을 20만~30만원씩 주는 사람도 많죠. 종종 2차를 요구하며 시가보다 몇십만원 높은 금액을 제시하기도 하고요. 룸 안에서는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야한 행위는 다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가 접대부 생활을 하며 벌어들인 한 달 수입은 4백만~5백만원 정도. 그러나 그의 수중에 남는 돈은 없었다고 한다. 친구들 앞에서 폼 잡기 위해 비싼 술 사주고 명품 옷과 액세서리 등을 구입하는 데 썼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오늘밤 나가면 다시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고 한다.
“손님이 현금으로 술값을 계산하면 그날 저녁에 (팁을) 받고, 카드로 계산하면 다음날 출근해서 받았어요. 그런데 1년쯤 선수생활을 했더니 몸이 축나더라고요. 새벽 2시에 출근해 술 마시고 노니까요. 호스티스들은 자신들의 영업이 끝나는 새벽 6시경에 주로 찾아와요(원래 호스트바는 호스티스들을 주고객으로 해서 생겼기 때문에 새벽에 근무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 사람들과는 오후 2시까지 마시죠. 결국 술과 담배에 찌들어 얼굴은 노랗게 됐고 몸이 망가졌어요.”
호스티스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단체로 호스트바를 찾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그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위를 하라”고 시키는 여성도 있었다고.
“대부분의 호스트들은 돈 벌면 이 생활 절대로 안한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는데 정작 나가서 제대로 사는 사람을 못 봤어요. 하지만 전 지난 해 그 바닥을 떠나면서 결심했어요.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보자. 힘들고 고생스럽더라도 남들 앞에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고. 물론 쉽지 않았죠. 고등학교 중퇴 학력으로는 취직이 어려우니까요. 처음엔 다른 일을 하다 운전을 좋아하니까 택시기사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의 퇴근 시간은 새벽 5시. 오후 4시에 출근해 12시간여 동안 운전대를 잡는다. 한달 수입은 1백30여만 원. 호스트로 일하던 시절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월급이지만 그는 땀 흘려 번 돈이라 소중하다고 말한다.
“첫 월급 탔을 때 감개무량했죠. 월급 타면 전부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는데 은행에 예금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는 예전에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시는데 지금의 모습은 대견하게 생각하시죠.”
김씨는 택시운전이 호스트바 생활보다 수입은 훨씬 적지만 마음은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3년 정도 택시운전을 더 할 생각이라고 한다. 월급을 모아 장사밑천을 마련할 때까지 이를 악물 작정이다. 그의 여자친구도 김씨의 굳은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고 한다.
“돈 벌면 오토바이 가게를 차릴 거예요. 오토바이를 타거나 만지는 걸 좋아하거든요. 지금은 힘들지만 꿈이 있어서 행복해요. 조만간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준비하려고 해요. 성공한 사람 중에 밑바닥 생활부터 시작한 사람이 적지 않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월급 모은 돈으로 작은 가게를 차리고, 그 가게가 번창하면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꿈은 이뤄진다고 봐요.”
일곱살 때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있는 그의 변화된 모습을 가장 반기는 사람은 어머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만날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는데 요즘은 대견해 한다고.
“호스트바에서 일한 경험을 값진 채찍으로 여기고 살아요. 또 다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죠. 사실, 하루에 12시간씩 운전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의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하면 진짜 낙오자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
그는 또래 친구들이 대학에 다니며 미래를 설계할 때 자신은 택시 운전대를 잡으며 내일을 향한 꿈을 키운다고 한다.
“예쁜 여자친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 겁니다.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제가 이 인터뷰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쉽게 번 돈은 쉽게 쓰게 돼 있어요. 땀 흘린 노동의 대가가 얼마나 소중한 지 깨달으면 좋겠어요. 사람답게 사는 직업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은 아니거든요.”
인터뷰를 마친 후 손님을 맞기 위해 도로 위를 달려가는 그의 얼굴에 꿈은 ‘꾸는’ 자의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자의 것이라는 교훈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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