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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 환경운동의 ‘대모’ 왕가리 마타이

■ 기획·구미화 기자 ■ 글·윤경희 ■ 사진·동아일보 사진DB파트

2004. 11. 11

총 1백94명의 후보자가 경합을 벌인 올해 노벨평화상은 아프리카 환경운동의 ‘대모’ 왕가리 마타이가 수상했다. 온갖 시련을 딛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 환경운동의 ‘대모’ 왕가리 마타이

지난 10월8일 노벨위원회는 케냐의 환경부 차관인 왕가리 마타이(64)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케냐를 포함한 아프리카에서 환경운동을 통해 사회, 경제, 문화 발전에 노력해 온 것이 수상 이유.
왕가리 마타이는 지난 30년 동안 아프리카에 3천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은 그린벨트 운동에 헌신해 왔다. 그는 1976년 케냐 전국여성위원회에서 활동하던 시절 나무심기운동을 시작해 86년부터는 이 운동을 ‘범아프리카 그린벨트 네트워크’로 확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도 확산시켰다. 현재 이 네트워크에 소속된 5만여 명의 회원들은 아프리카에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부채탕감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98년 9월에는 ‘2000년 연대’를 조직해 공동 회장을 맡고, 2000년까지 아프리카 빈곤국의 채무를 모두 탕감해 서구 자본이 부채 환수를 명목으로 삼림을 강탈하는 것을 막기 위한 운동을 펼쳤다. 자국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노력해온 그는 케냐의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민주화 정권이 들어선 후 빛을 보았고 2002년 98%의 압도적인 지지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지난해 케냐 환경부 차관에 임명됐다.

사회적 활동 인정하지 않는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 겪어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노벨평화상 수상, 환경운동의 ‘대모’ 왕가리 마타이

왕가리 마타이의 이력 앞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자주 붙는다. 그는 중·동부 아프리카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 박사다. 1940년 케냐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피츠버그 대학에서 생물학 석사학위를 딴 뒤 나이로비 대학에서 박사학위(수의학)를 받았고 나이로비 대학 최초의 여교수(동물해부학과)가 되었다. 또한 그는 이번 수상으로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환경운동가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됐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남성 위주의 아프리카 사회는 똑똑한 여성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린벨트 활동에 앞장설 때는 여자가 남자들을 이끄는 것은 아프리카의 전통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정부의 홀대를 받았고, 개인적으로는 활발한 사회활동과 성공을 인정해주지 않는 남편과 이혼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가장 먼저 수상 기념으로 마을에 ‘낸디 플레임’이라는 케냐 토착 식물을 심었으며, 상금은 아프리카의 숲을 살리는 운동에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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